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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소녀의 철저한 대응에 채팅창에는 그 어떤 반응도 올라오지 않았다.
     
   채팅창 여포나 다름없던 김성영을 이렇게 발라 먹는다고?
     
   심지어 말투나 타자 속도로 보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주소랑 부모님의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아낸 걸까?
     
   이거… 잘못 건들면 큰일 난다!
     
     
   인터넷 강의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채팅창에 빙하기가 내려앉았다.
     
   덕분에 강사는 유례없이 편안한 강의를 이어가는데.
     
   강의가 평온하게 흘러가는 반대급부로 갑자기 바빠진 이 역시 존재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연신 결재 서류를 확인하던 한 사내.
     
   청성 길드장 이성환이 막 은평구청장 조사 보고서를 확인하려던 때였다.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다.
     
   예정에 없던 연락이었다.
     
     
   “…뭐? 잠깐. 김성영 학생의 학부모가 뭐 어쨌다고?”
     
   처음에는 이게 무슨 농담인가 싶었다.
     
   “그, 그러니까. ‘죄인’이라는 학생이 김성영 학생의 개인 정보를 탈취해 협박했다고 합니다.”
     
   청성 길드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는 철저하게 인증받은 인원만 들어올 수 있는 곳.
     
   보통 학생들은 길드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 넘는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뭐?
     
   개인 정보 탈취에 협박에.
     
   그걸 또 길드장인 그에게 따지고, 이젠 아예 고소까지 하겠다고?
     
   자칫하면 청성 길드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세히 얘기해 봐.”
     
   자연히 이성환 길드장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말다툼이 일어난 것?
     
   그럴 수 있다.
     
   누울 자리조차 구분 못 하는 혈기 넘치는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대체 어떤 뒷배를 가지고 있기에 주소와 개인 정보까지 털어낼 수 있던 걸까.
     
   철저히 조사해서 확실하게 대응해야….
     
   “어… 길드장님. 이거 접속 코드가 길드장님께서 어제 발급하셨던 걸로 나오는데요?”
     
   아….
     
   “일단 급한 일이 있어서 끊지.”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다 싶더라니.
     
   그가 추천장을 이용해 발급한 코드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그중 최근에 발급받은 거라곤 사찰의 꼬맹이를 위한 것이었으니.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번 사태의 범인은 그 꼬맹이다.
     
   하루 만에 일을 벌일 줄이야.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자명 스님이 뛰어난 각성자라고 공인한 아이다.
     
   ‘능력이 뭔지는 몰라도 숨기고 있는 실력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군.’
     
   잠시간 고민하던 이성환 길드장은 비서가 보내주었던 채팅 로그를 확인한 뒤.
     
   소녀에게 잘못을 물을 생각을 그만두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에게 부모 어쩌고 먼저 시비를 건 쪽은 김성영 학생이다.
     
   현피니 어쩌니 싸움을 건 쪽도 김성영 학생이 먼저였다.
     
   즉, 소녀가 안위의 위험을 느끼고 능력을 사용했다고 하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가 관심을 보인 건 다른 쪽이었다.
     
     
   “마침 잘 됐어. 오늘 실습은 학생들의 한계 측정으로 바꾸도록 하지.”
     
   소녀에게 보내준 노트북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그저 그런 물건이 아니었다.
     
   돈을 주고서도 구하지 못하는, 게이트 너머의 재료와 각성자들의 능력을 담아 만든 일종의 간이 가상 현실 접속 장치이기도 했으니.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김성영 학생을 이용해 소녀의 실력과 그 한계를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 뜬금없는 길드장의 명령에도 비서는 군말 없이 대답했다.
     
   “예,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김성영 학생의 학부모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자식 교육은 부모가 못난 탓이지. 경고 남기고, 그래도 고소한다고 날뛰면 법적으로 대응해.”
     
   아이들의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다면 그 역시 굳이 참고 있을 필요는 없다.
     
   길드장의 속뜻을 이해한 비서가 곧장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편.
     
   “새로 온 친구가 있어서 간단히 복습해 봤어요. 지금부터는 새로운 내용을 배워볼게요.”
     
   소녀는 모니터 너머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여인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걸까?
     
   이 작은 기계에서 사람이 살아 움직이다니!
     
   역시 이교도들의 기술력은 엄청나구나!
     
   “각성자의 평균 연령은 18세라고 했죠? 하지만, 그렇게 각성한 분 중에서도 두 번째 각성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린 그렇게 두 개의 능력을 가진 분들을 이레귤러라고 부르죠.”
     
   소녀는 강의에 집중하면서도 영 집중하지 못했다.
     
     
   휘익-! 노트북을 들어서 탈탈 흔들어 본다.
     
   하지만, 강사는 부동의 자세로 열심히도 설명을 이어 나간다.
     
   “저기… 선생님…?”
     
   슬쩍 선생님을 불러보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려 해도 왠지 모르게 시선을 피하는 느낌이다.
     
   “…히잉.”
     
   설마?
     
   이 나쁜 이교도들이 선생님을 강제로 가둬둔 걸지도 몰라!
     
   그래서 저렇게 의욕 없는 표정으로 눈도 안 마주쳐 주는 걸 거야!
     
     
   “해인 스님. 이 안에 산 제물을 가둬놓은 건가요?!”
     
   소녀의 날카로운 물음에-
     
   “푸핰핰하하하하하!!”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있던 해인 스님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커다란 덩치로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고.
     
   웃다가 배가 터질 것 같아서 가슴을 탕탕 치며.
     
   “…해인 스님? 그건 무슨 의식 행위인가요?”
   “꺼억! 끄허허허허허헉! 꺼어억!”
     
   그러다가 소녀의 궁금증 가득한 시선을 마주하자 정말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아이고, 이렇게 순수하고 작은 녀석이 앞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갈는지.
     
   자명 스님과 그들이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어쩔 뻔했나.
     
     
   “……….”
     
   소녀의 뚱한 시선에 해인 스님이 겨우 호흡을 다잡으며 대답했다.
     
   “꼬맹아, 사람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니야. 거울 알지?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저 멀리 있는 사람의 모습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거지.”
     
   이대로 계속 놀리다간 겨우 얻은 강의 기회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도 있으니.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인이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를 켜고 그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채 소녀에게 화면을 보여준다.
     
   “자, 이거 봐. 여기 내가 똑같이 나오고 있지?”
   “히잇…! 여, 영혼을 가두는 건가요?”
     
   기겁한 소녀가 바둥대며 스마트폰에서 멀어진다.
     
   바퀴벌레라도 본 듯 눈썹을 찌푸리고, 경멸과 혐오가 담긴 표정.
     
   솔직히 너무나도 놀리기 좋은 반응이었다.
     
     
   ‘이걸 나 혼자만 봐도 되나?’
     
   해인 스님은 순간 소녀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이 순진한 모습을 다른 스님들에게도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학대다.
     
   저희의 즐거움을 위해 아이를 놀리는 건 어른이 해서는 안 되는 짓.
     
   “아니야. 자세히 봐. 내가 움직이는 대로 똑같이 움직이지 않아?”
     
   해인 스님은 소녀에게 스마트폰을 들려준 뒤, 이리저리 움직여 보였다.
     
   “아! 헤헤… 그럼, 이 악독한 도구는 안 부숴도 되겠네요!”
     
   몇 년이나 된 보급형 스마트폰이 부서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이제 소녀가 저 비싼 노트북을 탈탈 터는 일은 두 번 다시 없겠지?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한 해인이 소중한 스마트폰을 쓰다듬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소녀와 해인이 그 난리를 피우는 동안에도 강의는 착실히도 진행되고 있었으니.
     
     
   “말했듯 그런 ‘이레귤러’는 사실상 S급 각성자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어요. 어린 나이에 각성한 여러분들은 두 번째 각성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어느덧 짧은 강의가 끝난 듯, 강사가 막 강의 내용을 정리하며 뭔가를 꺼내 보였다.
     
   학생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평가판이었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해 볼 시간이에요. 다들 가상 현실에 접속해 주세요. 우리 새로 온 친구는 노트북 왼쪽 위의 버튼에 손가락을 대 볼까요?”
     
   가상 현실?
     
   대체 뭘 하려고 노트북에 손을 대라는 거지?
     
   불안해진 소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해인 스님을 바라본다.
     
   “스님…?”
     
   혹시 손을 댔다가 영혼을 빼앗기면 어떡하지?
     
   그런 소녀의 불안을 눈치챈 듯, 해인 스님이 두툼한 주먹을 들어 보였다.
     
   “이건 나도 잘 몰라서 뭐라 얘기를 못 해 주겠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내가 직접 나서서 노트북을 부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해 봐.”
     
     
   사실 해인 스님 역시 노트북만으로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안마의자처럼 거대한 캡슐 의자가 필요하다는 게 상식.
     
   그러나, 청성 길드장과 길드의 강사가 뻔히 들킬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 그럼 믿고 해 볼게요…!”
     
   그간 함께 살며 해인 스님이 그녀를 얼마나 신경 써 주는지 잘 아는 소녀였다.
     
   소녀 역시 해인 스님의 인성을, 이교도들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그렇게 툭.
     
   자그마한 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리자-
     
   “우리 새로운 친구! 어서 와요!”
   “…에?”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이 뒤바뀌어 버렸다.
     
   사방을 성벽처럼 둘러싼 드높은 산봉우리.
     
   그리고 가운데로 우뚝 솟은 건물 하나와 주변을 두른 넓은 운동장.
     
   마치… 그간 말로만 듣던 ‘학교’라는 그곳이 이러할지 싶은 공간이었다.
     
     
   이건 꿈일까?
     
   꿈이 아니고서야 이런 곳에 올 수 있을 리 없는데.
     
   소녀는 쉽사리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멍하니 드넓은 운동장을 바라봤다.
     
   “아직 멍하죠? 처음이라 그럴 거예요.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런 소녀의 눈앞으로, 강사가 손을 쭉 내밀어 왔다.
     
     
   길드장님이 직접 ‘실력을 확실히 확인해 보라’고 언급 받은 아이가 아니던가.
     
   강사는 의욕 없던 여태까지와 달리,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천천히 익숙해져 볼까요?”
     
   차마 소녀에게 ‘죄인’이라 부를 수 없어서 ‘새로운 친구’라는 호칭을 택했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
     
   움찔, 움찔.
     
   눈치를 살피며 주변을 살펴보던 소녀가 조심스레 강사의 손을 맞잡았다.
     
   여인인 그녀의 손아귀에 비해도 한참 작고 오밀조밀한 손.
     
   ‘귀, 귀여워… 얘는 몇 살일까…?’
     
   인재 중의 인재들만 들어올 수 있는 강의였지만, 이 정도의 어린아이는 처음이었다.
     
     
   최연소인 아이마저 열다섯 중학생의 나이.
     
   그러나 이 소녀는 아무리 봐도 열 살 미만, 높게 봐줘도 십 대 초반임이 분명했다.
     
   즉. 천재 중의 천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길드장님이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거겠지?’
     
   이상할 정도로 움찔대는 게 과하게 겁에 질린 모습이 안타깝다.
     
   근처에 특별히 무서워할 만한 건 없을 텐데.
     
   아마 가상 현실을 접속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 모양이다.
     
   “감옥… 여, 영혼 감옥….”
   “자, 이제 인사하러 가 볼까요?”
     
   강사는 곧장 소녀의 손을 끌고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운동장으로 향했다.
     
     
   문제는, 아이에게 신경 써 달라는 이야기에만 관심이 쏠린 탓에 ‘김성영 학생과 부딪히게 하지 마라’는 이야기는 잊어버린 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추가! 15화는 플러스 신청관계로 내일 오전중에 공개될 예정입니다!다음화 보기

소녀의 철저한 대응에 채팅창에는 그 어떤 반응도 올라오지 않았다.

채팅창 여포나 다름없던 김성영을 이렇게 발라 먹는다고?

심지어 말투나 타자 속도로 보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주소랑 부모님의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아낸 걸까?

이거… 잘못 건들면 큰일 난다!

인터넷 강의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채팅창에 빙하기가 내려앉았다.

덕분에 강사는 유례없이 편안한 강의를 이어가는데.

강의가 평온하게 흘러가는 반대급부로 갑자기 바빠진 이 역시 존재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연신 결재 서류를 확인하던 한 사내.

청성 길드장 이성환이 막 은평구청장 조사 보고서를 확인하려던 때였다.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다.

예정에 없던 연락이었다.

“…뭐? 잠깐. 김성영 학생의 학부모가 뭐 어쨌다고?”

처음에는 이게 무슨 농담인가 싶었다.

“그, 그러니까. ‘죄인’이라는 학생이 김성영 학생의 개인 정보를 탈취해 협박했다고 합니다.”

청성 길드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는 철저하게 인증받은 인원만 들어올 수 있는 곳.

보통 학생들은 길드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 넘는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뭐?

개인 정보 탈취에 협박에.

그걸 또 길드장인 그에게 따지고, 이젠 아예 고소까지 하겠다고?

자칫하면 청성 길드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세히 얘기해 봐.”

자연히 이성환 길드장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말다툼이 일어난 것?

그럴 수 있다.

누울 자리조차 구분 못 하는 혈기 넘치는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대체 어떤 뒷배를 가지고 있기에 주소와 개인 정보까지 털어낼 수 있던 걸까.

철저히 조사해서 확실하게 대응해야….

“어… 길드장님. 이거 접속 코드가 길드장님께서 어제 발급하셨던 걸로 나오는데요?”

아….

“일단 급한 일이 있어서 끊지.”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다 싶더라니.

그가 추천장을 이용해 발급한 코드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그중 최근에 발급받은 거라곤 사찰의 꼬맹이를 위한 것이었으니.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번 사태의 범인은 그 꼬맹이다.

하루 만에 일을 벌일 줄이야.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자명 스님이 뛰어난 각성자라고 공인한 아이다.

‘능력이 뭔지는 몰라도 숨기고 있는 실력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군.’

잠시간 고민하던 이성환 길드장은 비서가 보내주었던 채팅 로그를 확인한 뒤.

소녀에게 잘못을 물을 생각을 그만두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에게 부모 어쩌고 먼저 시비를 건 쪽은 김성영 학생이다.

현피니 어쩌니 싸움을 건 쪽도 김성영 학생이 먼저였다.

즉, 소녀가 안위의 위험을 느끼고 능력을 사용했다고 하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가 관심을 보인 건 다른 쪽이었다.

“마침 잘 됐어. 오늘 실습은 학생들의 한계 측정으로 바꾸도록 하지.”

소녀에게 보내준 노트북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그저 그런 물건이 아니었다.

돈을 주고서도 구하지 못하는, 게이트 너머의 재료와 각성자들의 능력을 담아 만든 일종의 간이 가상 현실 접속 장치이기도 했으니.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김성영 학생을 이용해 소녀의 실력과 그 한계를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 뜬금없는 길드장의 명령에도 비서는 군말 없이 대답했다.

“예,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김성영 학생의 학부모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자식 교육은 부모가 못난 탓이지. 경고 남기고, 그래도 고소한다고 날뛰면 법적으로 대응해.”

아이들의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다면 그 역시 굳이 참고 있을 필요는 없다.

길드장의 속뜻을 이해한 비서가 곧장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편.

“새로 온 친구가 있어서 간단히 복습해 봤어요. 지금부터는 새로운 내용을 배워볼게요.”

소녀는 모니터 너머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여인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걸까?

이 작은 기계에서 사람이 살아 움직이다니!

역시 이교도들의 기술력은 엄청나구나!

“각성자의 평균 연령은 18세라고 했죠? 하지만, 그렇게 각성한 분 중에서도 두 번째 각성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린 그렇게 두 개의 능력을 가진 분들을 이레귤러라고 부르죠.”

소녀는 강의에 집중하면서도 영 집중하지 못했다.

휘익-! 노트북을 들어서 탈탈 흔들어 본다.

하지만, 강사는 부동의 자세로 열심히도 설명을 이어 나간다.

“저기… 선생님…?”

슬쩍 선생님을 불러보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려 해도 왠지 모르게 시선을 피하는 느낌이다.

“…히잉.”

설마?

이 나쁜 이교도들이 선생님을 강제로 가둬둔 걸지도 몰라!

그래서 저렇게 의욕 없는 표정으로 눈도 안 마주쳐 주는 걸 거야!

“해인 스님. 이 안에 산 제물을 가둬놓은 건가요?!”

소녀의 날카로운 물음에-

“푸핰핰하하하하하!!”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있던 해인 스님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커다란 덩치로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고.

웃다가 배가 터질 것 같아서 가슴을 탕탕 치며.

“…해인 스님? 그건 무슨 의식 행위인가요?”

“꺼억! 끄허허허허허헉! 꺼어억!”

그러다가 소녀의 궁금증 가득한 시선을 마주하자 정말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아이고, 이렇게 순수하고 작은 녀석이 앞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갈는지.

자명 스님과 그들이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어쩔 뻔했나.

“……….”

소녀의 뚱한 시선에 해인 스님이 겨우 호흡을 다잡으며 대답했다.

“꼬맹아, 사람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니야. 거울 알지?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저 멀리 있는 사람의 모습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거지.”

이대로 계속 놀리다간 겨우 얻은 강의 기회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도 있으니.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인이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를 켜고 그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채 소녀에게 화면을 보여준다.

“자, 이거 봐. 여기 내가 똑같이 나오고 있지?”

“히잇…! 여, 영혼을 가두는 건가요?”

기겁한 소녀가 바둥대며 스마트폰에서 멀어진다.

바퀴벌레라도 본 듯 눈썹을 찌푸리고, 경멸과 혐오가 담긴 표정.

솔직히 너무나도 놀리기 좋은 반응이었다.

‘이걸 나 혼자만 봐도 되나?’

해인 스님은 순간 소녀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이 순진한 모습을 다른 스님들에게도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학대다.

저희의 즐거움을 위해 아이를 놀리는 건 어른이 해서는 안 되는 짓.

“아니야. 자세히 봐. 내가 움직이는 대로 똑같이 움직이지 않아?”

해인 스님은 소녀에게 스마트폰을 들려준 뒤, 이리저리 움직여 보였다.

“아! 헤헤… 그럼, 이 악독한 도구는 안 부숴도 되겠네요!”

몇 년이나 된 보급형 스마트폰이 부서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이제 소녀가 저 비싼 노트북을 탈탈 터는 일은 두 번 다시 없겠지?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한 해인이 소중한 스마트폰을 쓰다듬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소녀와 해인이 그 난리를 피우는 동안에도 강의는 착실히도 진행되고 있었으니.

“말했듯 그런 ‘이레귤러’는 사실상 S급 각성자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어요. 어린 나이에 각성한 여러분들은 두 번째 각성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어느덧 짧은 강의가 끝난 듯, 강사가 막 강의 내용을 정리하며 뭔가를 꺼내 보였다.

학생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평가판이었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해 볼 시간이에요. 다들 가상 현실에 접속해 주세요. 우리 새로 온 친구는 노트북 왼쪽 위의 버튼에 손가락을 대 볼까요?”

가상 현실?

대체 뭘 하려고 노트북에 손을 대라는 거지?

불안해진 소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해인 스님을 바라본다.

“스님…?”

혹시 손을 댔다가 영혼을 빼앗기면 어떡하지?

그런 소녀의 불안을 눈치챈 듯, 해인 스님이 두툼한 주먹을 들어 보였다.

“이건 나도 잘 몰라서 뭐라 얘기를 못 해 주겠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내가 직접 나서서 노트북을 부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해 봐.”

사실 해인 스님 역시 노트북만으로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안마의자처럼 거대한 캡슐 의자가 필요하다는 게 상식.

그러나, 청성 길드장과 길드의 강사가 뻔히 들킬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 그럼 믿고 해 볼게요…!”

그간 함께 살며 해인 스님이 그녀를 얼마나 신경 써 주는지 잘 아는 소녀였다.

소녀 역시 해인 스님의 인성을, 이교도들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그렇게 툭.

자그마한 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리자-

“우리 새로운 친구! 어서 와요!”

“…에?”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이 뒤바뀌어 버렸다.

사방을 성벽처럼 둘러싼 드높은 산봉우리.

그리고 가운데로 우뚝 솟은 건물 하나와 주변을 두른 넓은 운동장.

마치… 그간 말로만 듣던 ‘학교’라는 그곳이 이러할지 싶은 공간이었다.

이건 꿈일까?

꿈이 아니고서야 이런 곳에 올 수 있을 리 없는데.

소녀는 쉽사리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멍하니 드넓은 운동장을 바라봤다.

“아직 멍하죠? 처음이라 그럴 거예요.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런 소녀의 눈앞으로, 강사가 손을 쭉 내밀어 왔다.

길드장님이 직접 ‘실력을 확실히 확인해 보라’고 언급 받은 아이가 아니던가.

강사는 의욕 없던 여태까지와 달리,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천천히 익숙해져 볼까요?”

차마 소녀에게 ‘죄인’이라 부를 수 없어서 ‘새로운 친구’라는 호칭을 택했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

움찔, 움찔.

눈치를 살피며 주변을 살펴보던 소녀가 조심스레 강사의 손을 맞잡았다.

여인인 그녀의 손아귀에 비해도 한참 작고 오밀조밀한 손.

‘귀, 귀여워… 얘는 몇 살일까…?’

인재 중의 인재들만 들어올 수 있는 강의였지만, 이 정도의 어린아이는 처음이었다.

최연소인 아이마저 열다섯 중학생의 나이.

그러나 이 소녀는 아무리 봐도 열 살 미만, 높게 봐줘도 십 대 초반임이 분명했다.

즉. 천재 중의 천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길드장님이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거겠지?’

이상할 정도로 움찔대는 게 과하게 겁에 질린 모습이 안타깝다.

근처에 특별히 무서워할 만한 건 없을 텐데.

아마 가상 현실을 접속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 모양이다.

“감옥… 여, 영혼 감옥….”

“자, 이제 인사하러 가 볼까요?”

강사는 곧장 소녀의 손을 끌고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운동장으로 향했다.

문제는, 아이에게 신경 써 달라는 이야기에만 관심이 쏠린 탓에 ‘김성영 학생과 부딪히게 하지 마라’는 이야기는 잊어버린 채였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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