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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소녀는 너무나도 슬프다.
     
   억울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해인 스님… 믿었는데….
     
   사진 찍어도 영혼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 노트북에 갇혀버렸잖아…!
     
     
   강사의 말에 따라 손가락을 살짝 얹은 게 전부였다.
     
   설마 그 탓에 이교도들의 영혼 감옥에 갇혀버릴 줄이야!
     
   이대로 영영 이곳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걸까?
     
   벌벌 떨던 소녀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탈출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 악독한!
     
   아주 철저하게도 가뒀구나!
     
   강사의 손에 끌려가는 소녀는 숫제 도축 직전의 소처럼 침울해졌다.
     
   그러나 소녀가 어찌 행동한들 앞서가는 강사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 왔다!”
     
   소녀가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일순간에 시선이 모여든다.
     
   나이와 성별이 제각각인 무리였지만, 언뜻 봐도 성인이 된 자는 없어 보인다.
     
   천만다행이다.
     
   지하의 선각자들, 그리고 손님들은 대부분 성인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소녀의 트라우마 범위에서 살짝 떨어져 있다는 거니까.
     
     
   “자, 어서 가봐요.”
     
   쭈뼛대던 소녀가 슬금슬금 학생들을 향해 다가간다.
     
   차마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땅을 바라본 채.
     
   “안녕! 네가 죄인이니?”
     
   저를 향해 말을 걸어 올 때마다 새우처럼 구부러지는 어깨.
     
   누가 봐도 불편해하는 게 분명한 반응이었다.
     
     
   이런.
     
   강사는 그제야 소녀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목소리를 높인다.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의 한계를 측정하는 날이에요. 서로 친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험이 급하니까 바로 설명 시작할게요.”
     
   툭.
     
   강사가 소녀의 손을 놓고 단상으로 향한다.
     
   그러자 곧장, 가만히 지켜만 보던 학생들이 우르르 모여 소녀의 곁을 둘러쌌다.
     
   그중 누구보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화가 가득 난 김성영이었다.
     
     
   “야, 뭐야. 이딴 꼬맹이가 나한테 그 지랄을 했던 거야?”
     
   질풍노도의 열다섯.
     
   막 몸이 커 가며 저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데서 쾌감을 얻는 나이였다.
     
   무엇보다 제 또래 남자라고 생각하던 아이가 저보다 작고 예쁘고 귀여운 소녀라고 하니.
     
   “너, 끝나고 봐.”
     
   일부러 주변 학생들에게 들으라는 듯 슬그머니 경고를 남긴다.
     
   소녀는 소년의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 두려움, 경계심은 물론 그득한 욕망을 눈치챘음에도 무어라 반응할 수 없었다.
     
   몸에 새겨진 무력감에 자연스레 굴종할 뿐이었다.
     
     
   두 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어색한 분위기 속.
     
   “‘이레귤러’의 두 번째 각성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첫 번째 각성에 성공하고, 적응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촤라락-
     
   강사의 손짓에 따라 운동장 위로 우스꽝스럽게 생긴 목각인형이 솟아올랐다.
     
   오뚝이처럼 몸통은 삼각형 모양으로 두툼하고, 팔은 앙상하다.
     
   동그란 목 위로 달린 얼굴에는 (@ㅠ@)처럼 생긴 표정이 유성 펜으로 얼룩덜룩 그려져 있다.
     
   “그러니 오늘은 여러분의 한계를 측정해 볼 거예요. 1차 각성의 능력에 따라 2차 각성의 가능성도 커진다고 할 수 있어요.”
     
   놀랍게도 강사가 할 일이 없어서 만들어 낸 장난감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해야 할 거니까, 잘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하세요.”
     
     
   강사가 목각인형 앞으로 마주 선다.
     
   “시험자, 양조야.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연기하듯 어색하게 말하며 인형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다.
     
   그러자 마주 인사하듯 목각인형이 앞으로 까딱- 기울어지며 표정이 바뀐다.
     
   (༼.◕ヮ◕.༽)
     
   “와, 씨. 표정 개꼴받네.”
     
   김성영의 중얼거림처럼 사람의 속을 긁기 딱 좋은, ‘너 좆밥이잖아?’를 표현한 듯한 표정.
     
   이를 알고 있던 강사조차 순간 울컥하며 가감 없이 능력을 쏟아낸다.
     
     
   파직-
     
   동체시력이 빠른 학생 몇 명만이 눈치챌 수 있던 작은 스파크가 튀고, 콰광-! 목각인형의 머리 위에서 요란한 낙뢰가 내려친다.
     
   “우와아아!! 강사님 멋져요!!”
     
   학생들이 펄쩍대며 환호할 만큼 화려한 효과였다.
     
   정작 소녀만큼은 ‘신께 받은 능력을 이렇게 낭비하다니… 이교도들은 폭력적이야….’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물론, 효과만 화려한 건 아니었다.
     
   파스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목각인형은 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새까맣게 그을어 있었다.
     
   표정이 완전히 사라진 채, 두툼한 배 위로 도르륵 점수가 떠 올랐다.
     
   [1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이게 1단계에요. 반격 없이, 정확한 위력만 측정하는 거죠. 물론 회복 계열이나 지원 계열 등의 능력 역시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점수가 측정될 거예요.”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이 1단계라는 사실이다.
     
     
   강사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2단계, 3단계, 4단계.
     
   각각 목각인형이 도망치고, 방어하고, 반격하는 등의 행동을 해 보였다.
     
   갈수록 난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5단계가 마지막이지만, 대부분은 4단계에서 탈락할 거예요. 일단 보기만 해 두세요.”
     
     
   그렇다면 5단계는?
     
   끼기긱-! 쿠우웅!
     
   목각인형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솟아나고 오뚝이 같던 삼각형 몸뚱이가 갑옷처럼 팔과 다리를 감싼다.
     
   표정 역시 (`ط´≠) 흉포하게 변한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됐다.
     
     
   목각인형이 주먹을 날리고, 콰아앙! 흙바닥에 작은 크레이터가 생기며 사방으로 모래 먼지가 흩날렸다.
     
   “…미, 미친!”
     
   학생들이 기겁하고, 강사 역시 맞서는 대신 도망가길 선택했다.
     
   그럼에도 목각인형은 멈추지 않는다.
     
   강사를 놓쳤음을 확인하기 무섭게 제자리서 도약해 강사의 앞길을 가로막으려 한다.
     
   “아! 모, 못 보겠어!”
     
   끔찍한 패배가 예견되는 상황.
     
   심약한 여학생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아무 실력도 없는 이가 청성 길드의 유망주들을 가르칠 리 없었으니.
     
   “멍청한 적을 상대할 때는, 이런 방법도 통한답니다!”
     
   강사와 목각인형이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짜악-! 손뼉을 친다.
     
   콰광-!
     
   강사의 손뼉에서 뻗어 나온 반달 모양의 충격파가 목각인형을 뚫고 지나갔다.
     
   정확히 목각인형의 몸을 세로로 이등분 내버린 공격이었다.
     
   [5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완벽해!]
     
     
   “후우… 봤죠?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
     
   어렵지… 않은 건가? 이게?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우리… 어제까지만 해도 능력 증폭, 능력을 유용하게 쓰는 법, 이런 거 배우지 않았던가?
     
   강사가 미쳤거나 청성 길드가 미친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난도가 갑자기 이렇게 미쳐 날뛸 리 없다.
     
   “…하, 뭐. 하, 할만하겠네요.”
     
   슬쩍.
     
   소녀를 바라본 김성영이 애써 센 척, 앞장서 나선다.
     
   ‘흥. 얼마나 겁에 질렸으면 저럴까.’
     
   소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탓에 괜한 자신감이 차오른 탓이다.
     
   정작 소녀의 표정을 일그러뜨린 건 다른 이유였다.
     
     
   소녀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강사님 이름이 양조야라고 하셨지?
     
   너무 멋진 분이야!
     
   전능신께 능력을 받은 이유가 있다는 듯, 이리 번쩍 저리 번쩍 스파크를 튀며 전투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
     
   마치 신의 사자, 신의 전사가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나도… 저렇게 싸우고 싶어!
     
   나도 저렇게 멋있어지고 싶어!
     
   그러면 신께서도, 죄인인 나를 조금 더 다르게 봐주시지 않을까?
     
     
   꽈아악- 소녀가 저도 모르게 앙증맞은 주먹을 쥔다.
     
   몸속에서 뭔지 모를 기운이 일렁이며 심장을 미친 듯이 두근댄다.
     
   당장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목각인형을 상대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 그럼, 성영 학생이 먼저 시험을 볼게요.”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네! 너, 잘 보고 있어. 네가 누구한테 덤빈 건지 똑똑히 보라고!”
     
   다른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 김성영이 소녀를 향해 삿대질하며 기세등등하게 뛰쳐나갔다.
     
   “아…….”
     
   조금만 더 빨리 나설걸.
     
   그럼 내가 처음으로 싸워볼 수 있을 텐데.
     
   소녀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김성영의 시험에 집중했다.
     
   그 탓에, 끄드득- 소녀는 제 발아래 있던 돌덩어리 하나가 가루가 되어 흩날림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김성영! 시험을 시작하겠다!”
     
   김성영이 목각인형을 향해 까딱이며 고개 숙이자, (༼.◕ヮ◕.༽) 표정의 인형이 한 손을 쭉 내밀고 손을 까딱인다.
     
   “…나, 날 무시해?!”
     
   강사를 상대할 때 이상으로 명백한 무시가 담긴 행동.
     
   “너, 죽었어!”
     
   슬쩍, 버릇처럼 소녀를 뒤돌아본 김성영이 곧장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간다.
     
     
   팟- 하고 사라지는 김성영의 신형.
     
   “와! 역시 김성영!”
     
   그의 능력은 꽤나 희귀한 축에 속하는 ‘가속’.
     
   움직임을 눈치채기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물론,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것이라 그대로 달려 나가 목각을 공격하진 못했다.
     
   이 속도에 주먹이라도 휘둘렀다간 제 손만 뭉개질 테니.
     
   김성영은 강사에게 배웠던 대로 한 손에 딱 쥐기 좋은 돌을 주워 들고는, 그대로 목각인형의 뒤통수를 향해 속력을 더해 던진다.
     
     
   콰작!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돌이 인형의 뒤통수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대포라도 맞은 듯 움푹 파인 뒤통수.
     
   [1단계 89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1단계는 꽤 높은 점수로 통과했다.
     
   김성영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저, 될 때까지 해 볼게요!”
   “그래요. 각성자들에게는 용기도 중요하니까요.”
     
   물론,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조차 은근슬쩍 소녀를 바라보면서였다.
     
     
   그렇게 김성영의 시험은 계속됐다.
     
   시험 2단계 ‘회피’.
     
   “아! 씨발! 실수했다!”
     
   생각보다 빨랐던 목각인형의 속도에 김성영이 던진 돌의 위력이 반감되었고.
     
   [2단계 63점!]
   [흐음… 이 정돈가? 이래도 계속 해?]
     
   처음과 달리 처참한 점수가 돌아왔다.
     
   “이익!!”
     
   힐끗- 소녀를 바라본 김성영이 3단계로 넘어간다.
     
   ‘방어’ 단계로, 복싱 방어 자세처럼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린 목각인형.
     
   위기감을 느낀 김성영은 머리를 굴렸다.
     
   보란 듯 상의를 훌렁 벗어 돌을 모아 담은 뒤.
     
   엄청난 속도로 목각인형의 주위를 빙빙 돌며, 기관총처럼 돌을 쏘아 던졌다.
     
   파바바바박-!
     
   목각인형은 어떻게든 막아내려 했지만, 속도도 속도거니와 엄청난 연사 속도에 결국 쉴 새 없이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3단계 77점!]
   [괜찮아! 계속 해!]
     
     
   이어지는 4단계 ‘반격’ 단계는?
     
   “흥! 한 방에 눕히면 된다는 거잖아!”
     
   김성영은 그제야 부모님께 선물 받았던 비수를 꺼내 던졌다.
     
   청성 길드의 대장장이가 만들어 낸 것으로 무기 자체에 ‘관통’ 능력이 부여된 것이었다.
     
   결과는?
     
   콰직!
     
   [4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무기의 효과로 엄청난 점수를 받고 통과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되죠?”
     
   이 정도만 해도 얻어맞을 위험을 감수하며 5단계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애당초 저 쪼그마한 예쁘고 귀여운 소녀가 그와 같은 점수를 받지는 못할 테니.
     
   김성영은 소녀를 빤히 바라보며 기세등등하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봤냐? 네가 누구한테 시비를 건 건지?”
     
   그리고,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 김성영을 제치고 앞으로 나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저요! 저, 저 할래요!”
     
   여태까지의 소심하던 모습과 달리, 왠지 모르게 광기마저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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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너무나도 슬프다.

억울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해인 스님… 믿었는데….

사진 찍어도 영혼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 노트북에 갇혀버렸잖아…!

강사의 말에 따라 손가락을 살짝 얹은 게 전부였다.

설마 그 탓에 이교도들의 영혼 감옥에 갇혀버릴 줄이야!

이대로 영영 이곳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걸까?

벌벌 떨던 소녀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탈출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 악독한!

아주 철저하게도 가뒀구나!

강사의 손에 끌려가는 소녀는 숫제 도축 직전의 소처럼 침울해졌다.

그러나 소녀가 어찌 행동한들 앞서가는 강사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 왔다!”

소녀가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일순간에 시선이 모여든다.

나이와 성별이 제각각인 무리였지만, 언뜻 봐도 성인이 된 자는 없어 보인다.

천만다행이다.

지하의 선각자들, 그리고 손님들은 대부분 성인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소녀의 트라우마 범위에서 살짝 떨어져 있다는 거니까.

“자, 어서 가봐요.”

쭈뼛대던 소녀가 슬금슬금 학생들을 향해 다가간다.

차마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땅을 바라본 채.

“안녕! 네가 죄인이니?”

저를 향해 말을 걸어 올 때마다 새우처럼 구부러지는 어깨.

누가 봐도 불편해하는 게 분명한 반응이었다.

이런.

강사는 그제야 소녀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목소리를 높인다.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의 한계를 측정하는 날이에요. 서로 친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험이 급하니까 바로 설명 시작할게요.”

툭.

강사가 소녀의 손을 놓고 단상으로 향한다.

그러자 곧장, 가만히 지켜만 보던 학생들이 우르르 모여 소녀의 곁을 둘러쌌다.

그중 누구보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화가 가득 난 김성영이었다.

“야, 뭐야. 이딴 꼬맹이가 나한테 그 지랄을 했던 거야?”

질풍노도의 열다섯.

막 몸이 커 가며 저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데서 쾌감을 얻는 나이였다.

무엇보다 제 또래 남자라고 생각하던 아이가 저보다 작고 예쁘고 귀여운 소녀라고 하니.

“너, 끝나고 봐.”

일부러 주변 학생들에게 들으라는 듯 슬그머니 경고를 남긴다.

소녀는 소년의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 두려움, 경계심은 물론 그득한 욕망을 눈치챘음에도 무어라 반응할 수 없었다.

몸에 새겨진 무력감에 자연스레 굴종할 뿐이었다.

두 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어색한 분위기 속.

“‘이레귤러’의 두 번째 각성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첫 번째 각성에 성공하고, 적응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촤라락-

강사의 손짓에 따라 운동장 위로 우스꽝스럽게 생긴 목각인형이 솟아올랐다.

오뚝이처럼 몸통은 삼각형 모양으로 두툼하고, 팔은 앙상하다.

동그란 목 위로 달린 얼굴에는 (@ㅠ@)처럼 생긴 표정이 유성 펜으로 얼룩덜룩 그려져 있다.

“그러니 오늘은 여러분의 한계를 측정해 볼 거예요. 1차 각성의 능력에 따라 2차 각성의 가능성도 커진다고 할 수 있어요.”

놀랍게도 강사가 할 일이 없어서 만들어 낸 장난감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해야 할 거니까, 잘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하세요.”

강사가 목각인형 앞으로 마주 선다.

“시험자, 양조야.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연기하듯 어색하게 말하며 인형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다.

그러자 마주 인사하듯 목각인형이 앞으로 까딱- 기울어지며 표정이 바뀐다.

(༼.◕ヮ◕.༽)

“와, 씨. 표정 개꼴받네.”

김성영의 중얼거림처럼 사람의 속을 긁기 딱 좋은, ‘너 좆밥이잖아?’를 표현한 듯한 표정.

이를 알고 있던 강사조차 순간 울컥하며 가감 없이 능력을 쏟아낸다.

파직-

동체시력이 빠른 학생 몇 명만이 눈치챌 수 있던 작은 스파크가 튀고, 콰광-! 목각인형의 머리 위에서 요란한 낙뢰가 내려친다.

“우와아아!! 강사님 멋져요!!”

학생들이 펄쩍대며 환호할 만큼 화려한 효과였다.

정작 소녀만큼은 ‘신께 받은 능력을 이렇게 낭비하다니… 이교도들은 폭력적이야….’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물론, 효과만 화려한 건 아니었다.

파스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목각인형은 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새까맣게 그을어 있었다.

표정이 완전히 사라진 채, 두툼한 배 위로 도르륵 점수가 떠 올랐다.

[1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이게 1단계에요. 반격 없이, 정확한 위력만 측정하는 거죠. 물론 회복 계열이나 지원 계열 등의 능력 역시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점수가 측정될 거예요.”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이 1단계라는 사실이다.

강사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2단계, 3단계, 4단계.

각각 목각인형이 도망치고, 방어하고, 반격하는 등의 행동을 해 보였다.

갈수록 난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5단계가 마지막이지만, 대부분은 4단계에서 탈락할 거예요. 일단 보기만 해 두세요.”

그렇다면 5단계는?

끼기긱-! 쿠우웅!

목각인형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솟아나고 오뚝이 같던 삼각형 몸뚱이가 갑옷처럼 팔과 다리를 감싼다.

표정 역시 (`ط´≠) 흉포하게 변한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됐다.

목각인형이 주먹을 날리고, 콰아앙! 흙바닥에 작은 크레이터가 생기며 사방으로 모래 먼지가 흩날렸다.

“…미, 미친!”

학생들이 기겁하고, 강사 역시 맞서는 대신 도망가길 선택했다.

그럼에도 목각인형은 멈추지 않는다.

강사를 놓쳤음을 확인하기 무섭게 제자리서 도약해 강사의 앞길을 가로막으려 한다.

“아! 모, 못 보겠어!”

끔찍한 패배가 예견되는 상황.

심약한 여학생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아무 실력도 없는 이가 청성 길드의 유망주들을 가르칠 리 없었으니.

“멍청한 적을 상대할 때는, 이런 방법도 통한답니다!”

강사와 목각인형이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짜악-! 손뼉을 친다.

콰광-!

강사의 손뼉에서 뻗어 나온 반달 모양의 충격파가 목각인형을 뚫고 지나갔다.

정확히 목각인형의 몸을 세로로 이등분 내버린 공격이었다.

[5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완벽해!]

“후우… 봤죠?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

어렵지… 않은 건가? 이게?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우리… 어제까지만 해도 능력 증폭, 능력을 유용하게 쓰는 법, 이런 거 배우지 않았던가?

강사가 미쳤거나 청성 길드가 미친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난도가 갑자기 이렇게 미쳐 날뛸 리 없다.

“…하, 뭐. 하, 할만하겠네요.”

슬쩍.

소녀를 바라본 김성영이 애써 센 척, 앞장서 나선다.

‘흥. 얼마나 겁에 질렸으면 저럴까.’

소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탓에 괜한 자신감이 차오른 탓이다.

정작 소녀의 표정을 일그러뜨린 건 다른 이유였다.

소녀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강사님 이름이 양조야라고 하셨지?

너무 멋진 분이야!

전능신께 능력을 받은 이유가 있다는 듯, 이리 번쩍 저리 번쩍 스파크를 튀며 전투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

마치 신의 사자, 신의 전사가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나도… 저렇게 싸우고 싶어!

나도 저렇게 멋있어지고 싶어!

그러면 신께서도, 죄인인 나를 조금 더 다르게 봐주시지 않을까?

꽈아악- 소녀가 저도 모르게 앙증맞은 주먹을 쥔다.

몸속에서 뭔지 모를 기운이 일렁이며 심장을 미친 듯이 두근댄다.

당장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목각인형을 상대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 그럼, 성영 학생이 먼저 시험을 볼게요.”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네! 너, 잘 보고 있어. 네가 누구한테 덤빈 건지 똑똑히 보라고!”

다른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 김성영이 소녀를 향해 삿대질하며 기세등등하게 뛰쳐나갔다.

“아…….”

조금만 더 빨리 나설걸.

그럼 내가 처음으로 싸워볼 수 있을 텐데.

소녀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김성영의 시험에 집중했다.

그 탓에, 끄드득- 소녀는 제 발아래 있던 돌덩어리 하나가 가루가 되어 흩날림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김성영! 시험을 시작하겠다!”

김성영이 목각인형을 향해 까딱이며 고개 숙이자, (༼.◕ヮ◕.༽) 표정의 인형이 한 손을 쭉 내밀고 손을 까딱인다.

“…나, 날 무시해?!”

강사를 상대할 때 이상으로 명백한 무시가 담긴 행동.

“너, 죽었어!”

슬쩍, 버릇처럼 소녀를 뒤돌아본 김성영이 곧장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간다.

팟- 하고 사라지는 김성영의 신형.

“와! 역시 김성영!”

그의 능력은 꽤나 희귀한 축에 속하는 ‘가속’.

움직임을 눈치채기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물론,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것이라 그대로 달려 나가 목각을 공격하진 못했다.

이 속도에 주먹이라도 휘둘렀다간 제 손만 뭉개질 테니.

김성영은 강사에게 배웠던 대로 한 손에 딱 쥐기 좋은 돌을 주워 들고는, 그대로 목각인형의 뒤통수를 향해 속력을 더해 던진다.

콰작!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돌이 인형의 뒤통수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대포라도 맞은 듯 움푹 파인 뒤통수.

[1단계 89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1단계는 꽤 높은 점수로 통과했다.

김성영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저, 될 때까지 해 볼게요!”

“그래요. 각성자들에게는 용기도 중요하니까요.”

물론,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조차 은근슬쩍 소녀를 바라보면서였다.

그렇게 김성영의 시험은 계속됐다.

시험 2단계 ‘회피’.

“아! 씨발! 실수했다!”

생각보다 빨랐던 목각인형의 속도에 김성영이 던진 돌의 위력이 반감되었고.

[2단계 63점!]

[흐음… 이 정돈가? 이래도 계속 해?]

처음과 달리 처참한 점수가 돌아왔다.

“이익!!”

힐끗- 소녀를 바라본 김성영이 3단계로 넘어간다.

‘방어’ 단계로, 복싱 방어 자세처럼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린 목각인형.

위기감을 느낀 김성영은 머리를 굴렸다.

보란 듯 상의를 훌렁 벗어 돌을 모아 담은 뒤.

엄청난 속도로 목각인형의 주위를 빙빙 돌며, 기관총처럼 돌을 쏘아 던졌다.

파바바바박-!

목각인형은 어떻게든 막아내려 했지만, 속도도 속도거니와 엄청난 연사 속도에 결국 쉴 새 없이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3단계 77점!]

[괜찮아! 계속 해!]

이어지는 4단계 ‘반격’ 단계는?

“흥! 한 방에 눕히면 된다는 거잖아!”

김성영은 그제야 부모님께 선물 받았던 비수를 꺼내 던졌다.

청성 길드의 대장장이가 만들어 낸 것으로 무기 자체에 ‘관통’ 능력이 부여된 것이었다.

결과는?

콰직!

[4단계 100점!]

[너 재능 있어! 계속 해!]

무기의 효과로 엄청난 점수를 받고 통과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되죠?”

이 정도만 해도 얻어맞을 위험을 감수하며 5단계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애당초 저 쪼그마한 예쁘고 귀여운 소녀가 그와 같은 점수를 받지는 못할 테니.

김성영은 소녀를 빤히 바라보며 기세등등하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봤냐? 네가 누구한테 시비를 건 건지?”

그리고,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 김성영을 제치고 앞으로 나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저요! 저, 저 할래요!”

여태까지의 소심하던 모습과 달리, 왠지 모르게 광기마저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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