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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도시와 사람을 보고 싶다면 역시 번화가로 가는 게 좋겠지.
     
   비서들을 시켜 뽑아두었던 놀이공원 티켓은….
     
   ‘고생한 녀석들이나 놀고 오라고 해야겠군.’
     
   VVIP 프리패스 이용권을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서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
     
   지금부터는 소녀를 보살피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아! 저기, 혹시 이 아이들도 같이 가도 될까요?”
     
   시선을 한참이나 내리자, 소녀의 푸르스름한 정수리가 보였다.
     
   뭘 데려가겠다는 건가 했더니.
     
   “…참새? 네가 기르는 건가?”
     
   오동통한 참새 세 마리가 소녀의 손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짹짹거리며 저희끼리 털 고르는 느긋한 모습이 사람과 함께 하는 게 꽤 익숙해 보였다.
     
   “으음…. 기르는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이 아이들이 절 따라온 거라서요.”
     
   소녀가 참새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자 열심히 털을 고르던 참새들도 약속한 듯 동시에 고개를 기울인다.
     
     
   “허.”
     
   작은 아이가 참새를 보며 아이, 아이 거리는 게 참 앙증맞다.
     
   뭔진 몰라도 동물이 사람을 따라 하는 게 평범한 일은 아닐 텐데.
     
   혹시 뭔가를 창조해 내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도 가진 건가?
     
   한 사람이 세 가지의 능력을 동시에 각성한 건 그 기록이 전무한 일이었다.
     
     
   심각해진 길드장의 표정에 소녀가 시무룩하게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역시 번거로우시겠죠…?”
     
   그렇게 막 참새 가족을 바닥에 내려놓아 주었고.
     
   째액! 참새들이 화내며 소녀의 손아귀에 달라붙던 때였다.
     
   “아니, 같이 가도 괜찮다.”
     
   생각을 마친 길드장이 뿅- 하고 허공에서 작은 가망을 꺼내 내밀었다.
     
   어지간한 헌터들은 꿈도 못 꾸는 인벤토리 반지를 이용한 것이었다.
     
     
   정작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소녀는 ‘헉!’ 탄성을 내지른다.
     
   “기적! 길드장님도 소원의 힘을 가지셨군요!”
     
   단순히 놀랐다기보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 가득하다.
     
   무어라 대답할 새도 없이 소녀가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땍- 일갈했다.
     
   “하지만 길드장님. 그렇게 소원을 낭비하면 못 써요!”
     
   음음! 길드장님은 나처럼 교단에서 교육받지 못하셨으니까 내가 잘 도와드려야겠다!
     
   그러나 의욕에 앞선 탓에 소녀의 손아귀에 납작해질 뻔했던 참새들이 짹짹-! 성질부리듯 지저귀며 가방 위로 내려앉았다.
     
   “…음. 그래.”
     
   평상시 조용하고 침착한 환경을 선호하던 그에겐 너무나도 낯선 혼란스러움이었다.
     
     
   “아셨죠? 소원은 남을 위해 쓸 때 빛나는 법이에요. 그리고 몸을 아끼는 건 기본이구요.”
     
   짹짹-! 짹! 날아든 참새들이 소녀의 얘기를 방해하듯 끼어든다.
     
   “씁! 어른이 말하는 데 끼면 못 써!”
     
   째애액-! 마치 대화가 통하는 듯한 모습에 길드장이 저도 모르게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
     
   이래서 애 키우는 건 아무나 못 한다는 것이군.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는 소녀가 무어라 또 다른 잔소리를 쏟아낼까, 황급히 변명했다.
     
   “그런 게 아니다. ‘인벤토리’라고 물건을 다른 곳에 넣어 두었다가 꺼낸 것이지.”
   “아….”
     
   그제야 제가 혼자 지레 날뛰었다는 걸 깨달은 소녀가 시무룩하니 고개를 내리 숙였다.
     
   이것 참,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 건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길드장은 다급히 꺼내든 가방을 소녀에게 건네 내밀었다.
     
   “선물이다.”
     
   상당히 힘들게 구한 물건이었다.
     
   비싸고 희귀한 물건이었다기보다 비서진의 의견이 정확히 반반으로 나뉜 탓이었다.
     
   “열 살 남짓의 여자아이요? 그럼 당연히 쿠루미 캐릭터 가방이죠!”
   “에이, 언젯적 쿠루미에요. 요즘 애들은 조숙해서 그런 거 싫어해요.”
     
   망토를 쓴 고양이 모양의 캐릭터 가방.
     
   그리고 연분홍색의 작고 아담한 캐쥬얼 가방.
     
   길드장은 고민 끝에 캐릭터 가방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단에서 자란 아이라면 감수성이 부족하겠지.’
     
   이런 사소한 것이라도 교단에서 받지 못했던 동심을 챙겼으면 싶었다.
     
   그런 고민 덕분이었을까.
     
     
   “…이, 이게 제… 거예요? 왜요…?”
     
   소녀가 입을 쩍 벌린다.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손을 뻗어 가방을 안으려다가, 흠칫 주먹을 쥔다.
     
   좋아하는 게 분명한데.
     
   왜 아직도 눈치를 살피는 걸까.
     
   “저… 그럼, 대가로 뭘 드리면 되나요?”
     
   선물이라고 말했음에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으면 타인의 호의에 저런 반응인 건지.
     
   으득- 이를 악문 길드장이 아무렇지 않은 척 미리 생각해 두었던 변명을 내뱉었다.
     
   “그래. 네 거다. 강의를 빠짐없이 잘 듣고 있다고 해서 주는 선물이지.”
     
     
   강의를 잘 듣는다고 선물을 준다니?
     
   쿠궁! 소녀가 두 팔을 들어 올린다.
     
   짹짹-! 가방에서 내려온 참새들이 소녀의 손바닥 위로 내려앉았음에도 신경 쓰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교단에서 교육받을 때도 조금만 더 열심히 해 볼 걸!
     
   그럼 이런 선물을 더 받았을지도 모르는데!
     
   “참새들은 떨어질 수도 있으니 가방 안에 넣어두고.”
   “…네!”
     
   소녀가 방긋 웃으며 가방을 안아 들었다.
     
   킁킁,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꾸득꾸득한 냄새가 난다.
     
   묘하게 중독성 있는 냄새다.
     
   “헤헤….”
     
     
   길드장은 재촉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분명 ‘소원’의 힘이라고 말했지.
     
   물건을 만들어 내던 능력이 ‘창조’가 아니라 ‘소원’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말하는 투로 보아 뭔가 대가가 필요한 듯하니.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라면 교단 놈들이 탐냈던 건가.’
     
   소녀가 교단에 붙잡혀 있던 이유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소녀가 탈출에 성공한 이유를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자, 같이 가려면 여기로 들어가.”
     
   짹짹!
     
   “싫어? 좁아서 그래? 아! 답답해서 그런 거지?”
     
   째액!
     
   “음… 그럼 지퍼를 살짝 열어두면 되지 않을까? 너희가 여기로 들어가야 나랑 같이 갈 수 있어. 길드장님이 곤란해하시잖아.”
     
   길드장이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에조차 소녀는 순수했다.
     
   참새와 정말로 대화하듯, 엄청난 협상 과정 끝에.
     
   “자! 이러면 됐지?”
     
   짹짹!
     
   결국 참새 가족은 소녀에게 신선한 쌀알을 얻은 뒤에야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떠날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진이 빠지는 느낌이다.
     
   길드장은 그런 티를 내지 않은 채, 소녀의 손을 맞잡으며 물었다.
     
   “…혹시 높은 곳을 무서워하나?”
     
   끙차- 가방을 멘 소녀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죽지만 않으면 떨어지는 것도 괜찮아요.”
     
   섬뜩한 대답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녀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더 좋은 경치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꽉 잡고. 무섭다면 언제든 말해라.”
   “네!”
     
     
   길드장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맞잡은 소녀의 손을 염동력으로 한 번 감싼 뒤.
     
   그제야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산길을 따라 걷는 것 같더니.
     
   “힉!”
     
   길드장과 소녀의 몸이 천천히 허공을 향해 떠오른다.
     
   마치 허공을 수영하는 듯한, 온몸이 간질거리는 묘한 감각.
     
   소녀가 몸을 바르르 떨자, 참새 가족이 가방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째애액-! 그리고 연이은 지저귐이 터져 나왔다.
     
   “긴장하지 말고, 가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느긋이 주변이나 구경해라.”
   “…여, 역시 길드장님은 천사셨군요!”
     
   길드장은 소녀의 헛소리를 무시한 채 염동력을 사용하는 데 집중했다.
     
   솔직히, 지금 이건 S급 각성자인 그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혼자 날아다니는 거야 간단하지만, 제삼자를 데리고 다니는 건 열 배의 힘이 든다.
     
   무엇보다 소녀에게 거센 바람을 맞힐 수 없으니 바람도 막아야 했다.
     
     
   그런 안정감 덕분에 소녀는 금세 하늘을 나는 감각에 익숙해졌다.
     
   높이, 더 높이.
     
   소녀는 제 몸을 핥듯이 스쳐 지나는 부드러운 바람에 꺄르륵 웃음을 터뜨린다.
     
   아래로 펼쳐진 북한산의 정경은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아! 저기! 저기가 저희 사찰인가요?”
   “그래.”
     
   충분히 높이 올라온 덕분에 이미 지나쳐 온 사찰조차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보인다.
     
   안에서 돌아다닐 때는 되게 넓은 곳인 줄 알았는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개미보다 작게 보이니, 저렇게 좁은 곳이었나 싶었다.
     
   게다가 저 반짝거리는 건 스님들의 머리겠지?
     
   “인사하면 들릴까요?”
   “안 들리겠지.”
     
   다 자란 그녀를 매번 꼬맹이, 아가라고 부르는 스님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이렇게 하늘을 나는 걸 보면 다들 엄청나게 놀랄 텐데!
     
   ‘아.’하고 소녀가 짧은 탄식을 흘렸다.
     
   그러나 투덜거리는 대신, 빠르게 체념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데 집중했다.
     
   역시나 포기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대단해요! 길드장님! 저기 저건 뭔가요!”
   “저건… 한옥 마을인가. 아마 그럴 거다.”
     
   “한옥이 뭔가요?”
   “우리나라의 전통 방식의 건물을 말한다.”
     
   “저렇게 나무로 지으면 곰팡이는요? 버섯도 자라나요? 허억! 선조분들은 집에서 버섯을 따 먹을 수 있는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셨던 거군요!”
     
   예상치도 못한 헛소리에 길드장과 소녀가 휘이익- 지상을 향해 한 치는 떨어져 내렸다.
     
   순간 집중력이 풀린 탓이었는데.
     
   “히히힛! 이거! 이거 다시 해주세요!”
     
   혹시나 소녀가 놀라진 않았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옥을 얘기하던 건 그새 잊어버린 듯.
     
   “헉! 길드장님! 저 건물은 왜 다 똑같이 생겼어요? 건물을 복사하는 각성자도 있나요?”
     
   이름 모를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신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고도 소녀의 쟁알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저긴 옥상에 나무를 기르나 봐요! 역시 다들 버섯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요!”
     
   어지간히 신난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쯤 되니 왠지 모르게 귀가 아픈 느낌이었다.
     
   불쌍한 아이가 행복해하는 걸 보니 좋긴 한데….
     
   “아! 저 십자가! 이교도들의 본부!”
   “앗! 저기는 자명 스님이 차지한 곳인가요!”
   “와! 학생들이 많아요! 다들 웃고 있네요! 역시 지상은 행복한 곳이었어요!”
     
   이대로 한강과 남산까지 돌아주려던 계획은 포기했다.
     
   집중력 문제도 문제지만, 역시 멀리서 구경하는 것보다 직접 가서 보는 게 좋을테니.
     
   절대 귀가 아파서, 정신 사나워서 하는 변명이 아니다.
     
   그렇게 절에 도착했을 때보다 10년은 늙은 듯 초췌해진 길드장은 다급히 속력을 높여 소녀와 함께 경복궁 어귀에 내려섰다.
     
     
   소녀가 말했듯 사람 사는 모습,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곳.
     
   주변에 맛집도 꽤 많기에 그간 먹지 못했을 맛있는 음식도 먹여줄 생각이었다.
     
   “길드장님? 여긴가요?”
   “그래. 지금부터는 걸어갈 거다.”
     
   “헤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긋 웃는 얼굴에 길드장 역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놀랍게도 소녀에게 정보를 알아내겠다던 처음의 각오는 이미 잊어버린 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내일 3시다음화 보기

도시와 사람을 보고 싶다면 역시 번화가로 가는 게 좋겠지.

비서들을 시켜 뽑아두었던 놀이공원 티켓은….

‘고생한 녀석들이나 놀고 오라고 해야겠군.’

VVIP 프리패스 이용권을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서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

지금부터는 소녀를 보살피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아! 저기, 혹시 이 아이들도 같이 가도 될까요?”

시선을 한참이나 내리자, 소녀의 푸르스름한 정수리가 보였다.

뭘 데려가겠다는 건가 했더니.

“…참새? 네가 기르는 건가?”

오동통한 참새 세 마리가 소녀의 손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짹짹거리며 저희끼리 털 고르는 느긋한 모습이 사람과 함께 하는 게 꽤 익숙해 보였다.

“으음…. 기르는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이 아이들이 절 따라온 거라서요.”

소녀가 참새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자 열심히 털을 고르던 참새들도 약속한 듯 동시에 고개를 기울인다.

“허.”

작은 아이가 참새를 보며 아이, 아이 거리는 게 참 앙증맞다.

뭔진 몰라도 동물이 사람을 따라 하는 게 평범한 일은 아닐 텐데.

혹시 뭔가를 창조해 내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도 가진 건가?

한 사람이 세 가지의 능력을 동시에 각성한 건 그 기록이 전무한 일이었다.

심각해진 길드장의 표정에 소녀가 시무룩하게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역시 번거로우시겠죠…?”

그렇게 막 참새 가족을 바닥에 내려놓아 주었고.

째액! 참새들이 화내며 소녀의 손아귀에 달라붙던 때였다.

“아니, 같이 가도 괜찮다.”

생각을 마친 길드장이 뿅- 하고 허공에서 작은 가망을 꺼내 내밀었다.

어지간한 헌터들은 꿈도 못 꾸는 인벤토리 반지를 이용한 것이었다.

정작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소녀는 ‘헉!’ 탄성을 내지른다.

“기적! 길드장님도 소원의 힘을 가지셨군요!”

단순히 놀랐다기보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 가득하다.

무어라 대답할 새도 없이 소녀가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땍- 일갈했다.

“하지만 길드장님. 그렇게 소원을 낭비하면 못 써요!”

음음! 길드장님은 나처럼 교단에서 교육받지 못하셨으니까 내가 잘 도와드려야겠다!

그러나 의욕에 앞선 탓에 소녀의 손아귀에 납작해질 뻔했던 참새들이 짹짹-! 성질부리듯 지저귀며 가방 위로 내려앉았다.

“…음. 그래.”

평상시 조용하고 침착한 환경을 선호하던 그에겐 너무나도 낯선 혼란스러움이었다.

“아셨죠? 소원은 남을 위해 쓸 때 빛나는 법이에요. 그리고 몸을 아끼는 건 기본이구요.”

짹짹-! 짹! 날아든 참새들이 소녀의 얘기를 방해하듯 끼어든다.

“씁! 어른이 말하는 데 끼면 못 써!”

째애액-! 마치 대화가 통하는 듯한 모습에 길드장이 저도 모르게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

이래서 애 키우는 건 아무나 못 한다는 것이군.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는 소녀가 무어라 또 다른 잔소리를 쏟아낼까, 황급히 변명했다.

“그런 게 아니다. ‘인벤토리’라고 물건을 다른 곳에 넣어 두었다가 꺼낸 것이지.”

“아….”

그제야 제가 혼자 지레 날뛰었다는 걸 깨달은 소녀가 시무룩하니 고개를 내리 숙였다.

이것 참,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 건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길드장은 다급히 꺼내든 가방을 소녀에게 건네 내밀었다.

“선물이다.”

상당히 힘들게 구한 물건이었다.

비싸고 희귀한 물건이었다기보다 비서진의 의견이 정확히 반반으로 나뉜 탓이었다.

“열 살 남짓의 여자아이요? 그럼 당연히 쿠루미 캐릭터 가방이죠!”

“에이, 언젯적 쿠루미에요. 요즘 애들은 조숙해서 그런 거 싫어해요.”

망토를 쓴 고양이 모양의 캐릭터 가방.

그리고 연분홍색의 작고 아담한 캐쥬얼 가방.

길드장은 고민 끝에 캐릭터 가방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단에서 자란 아이라면 감수성이 부족하겠지.’

이런 사소한 것이라도 교단에서 받지 못했던 동심을 챙겼으면 싶었다.

그런 고민 덕분이었을까.

“…이, 이게 제… 거예요? 왜요…?”

소녀가 입을 쩍 벌린다.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손을 뻗어 가방을 안으려다가, 흠칫 주먹을 쥔다.

좋아하는 게 분명한데.

왜 아직도 눈치를 살피는 걸까.

“저… 그럼, 대가로 뭘 드리면 되나요?”

선물이라고 말했음에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으면 타인의 호의에 저런 반응인 건지.

으득- 이를 악문 길드장이 아무렇지 않은 척 미리 생각해 두었던 변명을 내뱉었다.

“그래. 네 거다. 강의를 빠짐없이 잘 듣고 있다고 해서 주는 선물이지.”

강의를 잘 듣는다고 선물을 준다니?

쿠궁! 소녀가 두 팔을 들어 올린다.

짹짹-! 가방에서 내려온 참새들이 소녀의 손바닥 위로 내려앉았음에도 신경 쓰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교단에서 교육받을 때도 조금만 더 열심히 해 볼 걸!

그럼 이런 선물을 더 받았을지도 모르는데!

“참새들은 떨어질 수도 있으니 가방 안에 넣어두고.”

“…네!”

소녀가 방긋 웃으며 가방을 안아 들었다.

킁킁,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꾸득꾸득한 냄새가 난다.

묘하게 중독성 있는 냄새다.

“헤헤….”

길드장은 재촉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분명 ‘소원’의 힘이라고 말했지.

물건을 만들어 내던 능력이 ‘창조’가 아니라 ‘소원’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말하는 투로 보아 뭔가 대가가 필요한 듯하니.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라면 교단 놈들이 탐냈던 건가.’

소녀가 교단에 붙잡혀 있던 이유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소녀가 탈출에 성공한 이유를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자, 같이 가려면 여기로 들어가.”

짹짹!

“싫어? 좁아서 그래? 아! 답답해서 그런 거지?”

째액!

“음… 그럼 지퍼를 살짝 열어두면 되지 않을까? 너희가 여기로 들어가야 나랑 같이 갈 수 있어. 길드장님이 곤란해하시잖아.”

길드장이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에조차 소녀는 순수했다.

참새와 정말로 대화하듯, 엄청난 협상 과정 끝에.

“자! 이러면 됐지?”

짹짹!

결국 참새 가족은 소녀에게 신선한 쌀알을 얻은 뒤에야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떠날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진이 빠지는 느낌이다.

길드장은 그런 티를 내지 않은 채, 소녀의 손을 맞잡으며 물었다.

“…혹시 높은 곳을 무서워하나?”

끙차- 가방을 멘 소녀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죽지만 않으면 떨어지는 것도 괜찮아요.”

섬뜩한 대답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녀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더 좋은 경치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꽉 잡고. 무섭다면 언제든 말해라.”

“네!”

길드장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맞잡은 소녀의 손을 염동력으로 한 번 감싼 뒤.

그제야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산길을 따라 걷는 것 같더니.

“힉!”

길드장과 소녀의 몸이 천천히 허공을 향해 떠오른다.

마치 허공을 수영하는 듯한, 온몸이 간질거리는 묘한 감각.

소녀가 몸을 바르르 떨자, 참새 가족이 가방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째애액-! 그리고 연이은 지저귐이 터져 나왔다.

“긴장하지 말고, 가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느긋이 주변이나 구경해라.”

“…여, 역시 길드장님은 천사셨군요!”

길드장은 소녀의 헛소리를 무시한 채 염동력을 사용하는 데 집중했다.

솔직히, 지금 이건 S급 각성자인 그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혼자 날아다니는 거야 간단하지만, 제삼자를 데리고 다니는 건 열 배의 힘이 든다.

무엇보다 소녀에게 거센 바람을 맞힐 수 없으니 바람도 막아야 했다.

그런 안정감 덕분에 소녀는 금세 하늘을 나는 감각에 익숙해졌다.

높이, 더 높이.

소녀는 제 몸을 핥듯이 스쳐 지나는 부드러운 바람에 꺄르륵 웃음을 터뜨린다.

아래로 펼쳐진 북한산의 정경은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아! 저기! 저기가 저희 사찰인가요?”

“그래.”

충분히 높이 올라온 덕분에 이미 지나쳐 온 사찰조차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보인다.

안에서 돌아다닐 때는 되게 넓은 곳인 줄 알았는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개미보다 작게 보이니, 저렇게 좁은 곳이었나 싶었다.

게다가 저 반짝거리는 건 스님들의 머리겠지?

“인사하면 들릴까요?”

“안 들리겠지.”

다 자란 그녀를 매번 꼬맹이, 아가라고 부르는 스님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이렇게 하늘을 나는 걸 보면 다들 엄청나게 놀랄 텐데!

‘아.’하고 소녀가 짧은 탄식을 흘렸다.

그러나 투덜거리는 대신, 빠르게 체념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데 집중했다.

역시나 포기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대단해요! 길드장님! 저기 저건 뭔가요!”

“저건… 한옥 마을인가. 아마 그럴 거다.”

“한옥이 뭔가요?”

“우리나라의 전통 방식의 건물을 말한다.”

“저렇게 나무로 지으면 곰팡이는요? 버섯도 자라나요? 허억! 선조분들은 집에서 버섯을 따 먹을 수 있는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셨던 거군요!”

예상치도 못한 헛소리에 길드장과 소녀가 휘이익- 지상을 향해 한 치는 떨어져 내렸다.

순간 집중력이 풀린 탓이었는데.

“히히힛! 이거! 이거 다시 해주세요!”

혹시나 소녀가 놀라진 않았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옥을 얘기하던 건 그새 잊어버린 듯.

“헉! 길드장님! 저 건물은 왜 다 똑같이 생겼어요? 건물을 복사하는 각성자도 있나요?”

이름 모를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신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고도 소녀의 쟁알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저긴 옥상에 나무를 기르나 봐요! 역시 다들 버섯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요!”

어지간히 신난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쯤 되니 왠지 모르게 귀가 아픈 느낌이었다.

불쌍한 아이가 행복해하는 걸 보니 좋긴 한데….

“아! 저 십자가! 이교도들의 본부!”

“앗! 저기는 자명 스님이 차지한 곳인가요!”

“와! 학생들이 많아요! 다들 웃고 있네요! 역시 지상은 행복한 곳이었어요!”

이대로 한강과 남산까지 돌아주려던 계획은 포기했다.

집중력 문제도 문제지만, 역시 멀리서 구경하는 것보다 직접 가서 보는 게 좋을테니.

절대 귀가 아파서, 정신 사나워서 하는 변명이 아니다.

그렇게 절에 도착했을 때보다 10년은 늙은 듯 초췌해진 길드장은 다급히 속력을 높여 소녀와 함께 경복궁 어귀에 내려섰다.

소녀가 말했듯 사람 사는 모습,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곳.

주변에 맛집도 꽤 많기에 그간 먹지 못했을 맛있는 음식도 먹여줄 생각이었다.

“길드장님? 여긴가요?”

“그래. 지금부터는 걸어갈 거다.”

“헤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긋 웃는 얼굴에 길드장 역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놀랍게도 소녀에게 정보를 알아내겠다던 처음의 각오는 이미 잊어버린 채였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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