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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아작-! 소녀가 조그마한 입으로 사과 탕후루를 한껏 깨물었다.
     
   한입에 반토막 내버린 길드장과 달리, 거의 벌레가 파먹은 수준의 작은 흔적.
     
   …저렇게 먹고도 배가 차나?
     
   아니. 일단 맛이 제대로 느껴지긴 하나?
     
   유행을 따라간다고 탕후루를 먹을 게 아니라 아이가 먹기 쉬운 사탕이라도 살 걸 그랬다.
     
   그가 괜한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사이.
     
   “와! 우! 우와! 혀가 아려요!”
     
   정작 소녀는 아그작, 아그작 탕후루를 잘만 뜯어 먹었다.
     
   하기야 체격이 작다고 미각마저 작을 리는 없으니.
     
   어느덧 앙증맞은 입술이 설탕으로 번들번들해질 정도로 열심히도 탕후루를 베어 물었다.
     
     
   달다!
     
   너무 달아서 혀가 아파!
     
   세상에, 이교도들은, 지상 사람들은 이런 걸 먹고 살았다니!
     
   어쩐지 지상 사람들이 대부분 행복할 수 있던 이유 중에는 이런 맛 좋은 음식 덕분이겠지?!
     
   아삭아삭 씹히는 과일의 식감에 더불어 오독오독한 설탕 코팅은 씹는 맛이 상당했고.
     
   새콤하게 터져 나오는 과즙과 설탕물에 침이 홍수처럼 고일 지경이었다.
     
   “길드장님! 길드장님도 어서 드세요!”
     
   헤헤- 양 볼이 발긋 달아오른 채 웃어 보이는 소녀는 퍽 행복해 보였다.
     
   시선과 목소리는 길드장을 향해 있지만, 관심은 온통 탕후루를 향해 있는 모습.
     
     
   “많이 있으니 천천히 먹어라.”
     
   그 순수한 행복함에 길드장이 설핏 미소 지었다.
     
   여태 그 어떤 희소식에조차 미동도 없던 입술이 헤프게도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 열심히도 소녀의 볼록한 볼을 바라보던 탓에 정작 제 손에 들린 탕후루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아! 호, 혹시 사과 맛을 드시고 싶으셨나요?!”
     
   소녀는 그 빤한 시선에 황급히 손을 뻗었다.
     
   무어라 대답할 새도 없이 입가로 들이밀어지는 사과 탕후루.
     
   “헤헤, 드세요. 좋은 건 나누는 거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너나 먹으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에조차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
     
   길드장이 멍하니 입을 벌렸고, 소녀가 방긋 웃으며 사과 탕후루를 밀어 넣었다.
     
   소녀가 먹다 남긴 음식이라 찝찝하다거나 그런 것보단….
     
   “…달군.”
   “그쵸! 식탐의 악마가 알았다면 온 지구의 과일이 동나지 않았을까요?”
     
   너무나 달았다.
     
   굳이 단 걸 찾아 먹지 않던 그에게는 정말 아찔할 정도의 단맛이었다.
     
   그러나 그런 미각 따위보다 더한 것은 왠지 모르게 두근대는 마음이었으니.
     
     
   아이… 아이라….
     
   주변 어른들이, 길드원들이 그토록 결혼을 부르짖고 아이를 낳으라던 이유가 이해됐다.
     
   그와 마주하면서 그 자신을 보기보다 돈과 권력을 탐하는 인간들.
     
   혹은 그저 겉모습과 능력에 괴물 보듯 겁에 질리는 인간들과는 그 궤가 달랐다.
     
     
   그저 따스하다.
     
   “아- 하세요!”
     
   어느새 딸기 탕후루를 꺼내든 소녀가 이번에는 맛보기도 전에 먼저 그의 입으로 들이밀었다.
     
   한입에 들어온 딸기가 파악- 터지며 새콤한 과즙이 가득 고였다.
     
   길드장은 길게 말하는 대신, 봉투에서 또 다른 탕후루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청포도 탕후루였고.
     
   “입 벌려.”
   “……네!”
     
   그대로 소녀의 자그마한 입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이런 게 여유구나.
     
   어느덧 마주 본 채 탕후루를 나눠 먹던 두 사람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헤헤… 이제 좀 괜찮아지셨어요?”
   “음?”
     
   심지어 소녀는 제 나이 또래 같지 않게도 여우 같은 면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무뚝뚝한 상태였던 길드장.
     
   그런 그의 표정이 풀어지고, 시선이 제게로 향하자, 소녀가 슬그머니 눈알을 굴리며 소곤거렸다.
     
   “자명 스님도 그렇고, 길드장님도 그렇고… 다들 저 같은 죄인을 받아준 좋은 분들인데, 너무 고민이 많아 보여서요….”
     
   그랬나?
     
   내가 그렇게 아이도 알아챌 정도로 대놓고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사람은 원래 실수하는 동물이고,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걱정하느라 즐겨야 할 것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건 슬프잖아요.”
     
   소녀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짜잔- 하고 뭔가를 꺼내 보였다.
     
   대체 어디서 꺼낸 거지? 싶은 자그마한 참새 모양 인형이었다.
     
   어딘지 익숙하게 생긴 게 소녀가 데리고 다니는 아참이를 본 따 만든 것 같은데.
     
   “이건…?”
   “이 작은 아이들도 매일 먹을 걸 걱정하면서 땅만 보고 있진 않더라구요. 셋이 같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를 때는… 헤헤, 되게 부러웠거든요.”
     
   슬쩍- 손을 뻗은 소녀가 길드장의 주머니 속으로 참새 인형을 집어넣었다.
     
   왠지 모르게 뚝 부러진 듯한 손톱이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어떻게든 도와드릴 테니까…. 길드장님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쉬셨으면 좋겠어요!”
     
   길드장은 그제야 인정했다.
     
     
   언뜻언뜻 소녀를 보며 걱정했다.
     
   아이의 마음은 괜찮을까, 교단에 대한 다른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있을까.
     
   구청장이 알고 보니 교단 소속이었다거나.
     
   그를 보고자 나타난 시민들에게 방해 받는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고 실망하진 않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할까.
     
   청성 길드가 대한민국의 3대 길드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단순히 아이와 놀아주기만 하면 되는 일조차 단순하게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런 그가 곁에서 무뚝뚝하게 서 있으려니 아이가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길드장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제가 괜한 말을 한 건 아닐까, 소녀가 시무룩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그래. 그럼, 이제 걱정 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군.”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언뜻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뚝뚝하지만, 세심한 배려가 담긴 목소리.
     
   소녀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는 이미 어딘지 모를 건물에 들어선 뒤였다.
     
     
   “어서오…….”
     
   가장 먼저 마주친 건 유리로 된 진열장 안에 가득 찬 벽돌 같은 물건들.
     
   그리고 그 뒤에 선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었다.
     
   “…처, 청성 길드장?!”
   “오팔 프로 맥스 16. 지금 당장 개통 가능합니까.”
     
   “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사줄까 말까, 생각하길 그만두고 쳐들어온 곳은 통신사 대리점이었다.
     
   다른 잡스러운 물건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며 주문을 덧붙였다.
     
   “이어팟 프로, 울트라 워치, 태블릿. 있는 대로 최신형으로, 오팔 제품으로 주십시오.”
     
   소녀로서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다,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대리점 직원들로서는 그야말로 복 터진 일이었다.
     
     
   길드장은 애매한 곳에 돈 아낄 생각이 없었다.
     
   일단 소녀에게 사주는 거니 무조건 최고로! 무조건 좋고 비싼 거로!
     
   “아 해라.”
   “…아?”
     
   직원들이 발에 땀 나도록 돌아다니는 사이, 소녀에게는 여유롭게도 탕후루를 물려 주었다.
     
   충치?
     
   그딴 건 치료 계열 각성자가 없는 후진국에서나 걱정해야 할 일이다.
     
   애당초 그가 보기엔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말라 빠진 게 멸치 꼴인 소녀였으니.
     
   “저, 저 배 터져요….”
   “음. 하나만 더 먹어 봐라.”
     
   “히이익!”
     
   소녀는 말 그대로 질릴 정도로 사과, 파인애플, 청포도, 딸기, 귤, 심지어 두리안 탕후루까지 하나씩 맛을 본 뒤에야 설탕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끄윽- 소심한 트름 소리에 소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작 듣는 길드장은 ‘이제야 배가 다 불렀군.’ 생각하며 뿌듯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소녀의 먹방이 끝난 뒤.
     
   길드장과 소녀가 느긋하게 노는 사이에도 직원들은 VVIP 고객님을 위해 서류 작성, 개통 작업 등을 알아서 열심히 처리해 두었고.
     
   그렇게 소녀가 받은 물건은 이와 같았다.
     
     
   오팔 프로 맥스 16 4TB 아르메스 프리미엄 에디션. 2년 보험 포함 570만 원.
     
   오팔 패드 프로 6TB. 2년 보험 포함 440만 원.
     
   오팔 맥스 헤드셋과 이어폰 프로 합 110만 원.
     
   외로 6G 완전 무제한 요금제 월 16만 원까지.
     
   앉은 자리서 탕후루나 냠냠 먹으며 약 1,200만 원을 긁은 것이었다.
     
   여기에 2를 곱하면 기본 옵션의 소형차 한 대쯤은 뽑을 돈….
     
     
   잠깐.
     
   그거 괜찮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소형차 말고 방탄 사양으로 한 대를.
     
   “…객님? 고, 고객님? 듣고 계실까요?”
   “아. 예. 듣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개통은 고객님 명의로 돌려둬서 사용하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실 겁니다. 다만, 오팔폰은 학생용 컨트롤 앱이 없어서, 이런 게 필요하시다면….”
   “괜찮습니다.”
     
   뭐, 자동차야 나중에 꼬마가 다 커서 운전 면허를 딸 때 선물해 주면 되겠지.
     
   게다가 똑똑한 아이다.
     
   굳이 이용 시간 제한이니 앱 제한이니 둘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한아름 생긴 기계의 향연에 소녀가 어쩌지 못하고 헤- 입만 벌리고 있던 때.
     
   “받아라, 네 거다. 설명해 줬던 스마트폰이지.”
     
   길드장은 세팅이 완료된 스마트폰을 들어 소녀의 손아귀에 쥐여 주었다.
     
   “무, 무거워요.”
     
   어른들은 어떻게 이런 걸 한 손으로 들고 쓰는 걸까?!
     
   자그마한 두 손으로 꽉 잡아야 겨우 들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길드장과 직원들조차 뭔가를 기대하는 듯 소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 와! 가, 감사합니다!”
   “그래. 쓸만한지 한 번 봐라.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로 사주마.”
     
   이쯤 되니 소녀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휩싸였다.
     
   그야 어른들이 빤히 바라본다는 건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거니까.
     
     
   음, 으음….
     
   어떻게 해야 아저씨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소녀가 퍼뜩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해인 스님이 알려주셨던 거가 있었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이나 비슷하게 생긴 기계니까 쓰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톡, 톡-
     
   길드장을 따라 하듯 화면을 몇 번 두들겨 봤다.
     
     
   금세 인터넷 창이 떠오르며 익숙한 사이트가 반겼다.
     
   “아! 길드장님! 이거 보세요!”
     
   이쯤 되면 사용법은 대충 짐작된다.
     
   소녀는 곧장 청성 길드에서 만든 강의생 전용 사이트에 접속했다.
     
   주소를 외워둔 덕분에 스마트폰을 처음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행동이었다.
     
   “쓸만한가 보군.”
     
   길드장은 뿌듯했다.
     
   역시 똑똑한 아이다.
     
   오늘 막 처음 접한 물건을 이렇게 쉽게 쓰다니.
     
   그러나, 이어지는 소녀의 행동에까진 차마 뿌듯하게 미소 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스마트폰 선물 받았는데 이거 좋은 건가요?? (작성자:익명54)
     
   (오팔 전자제품 풀세트를 찍은 사진.jpg)
     
   갑자기 선물 받았는데 좋은 건가요??
     
   – 익명 41 : 금수저임??
   – 익명 58 : 아 나도 오팔 갖고 싶은데 그놈의 우주폰 그만 쓰고 싶은데!
   – 익명 27 : 싸이버거 하나만….
     
     
   엥? 김성영이 이 정도는 다들 갖고 있다고 했는데요? (작성자:익명54)
     
   (오팔 프로 맥스 16 상세 스펙 사진.jpg)
     
   청성 길드에서 강의 듣는 분들인데 이 정도는 흔한 거 아닌가요?
     
   – 익명 41 : 개새끼야 너 어디 사냐?
   – 익명 73 : 그래서 김성영이 뭐 하는 새낀데?
   – 익명 74 : 김성영 걔 아닌가? 학생부 가속 각성자
   – 익명 27 : 그 정도면 금수저 맞네….
     
     
   …어디서 배운 건지, 소녀는 왠지 모르게 분탕질을 쳐 놓고 뿌듯하게 히히 웃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내일 오전 6시다음화 보기

아작-! 소녀가 조그마한 입으로 사과 탕후루를 한껏 깨물었다.

한입에 반토막 내버린 길드장과 달리, 거의 벌레가 파먹은 수준의 작은 흔적.

…저렇게 먹고도 배가 차나?

아니. 일단 맛이 제대로 느껴지긴 하나?

유행을 따라간다고 탕후루를 먹을 게 아니라 아이가 먹기 쉬운 사탕이라도 살 걸 그랬다.

그가 괜한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사이.

“와! 우! 우와! 혀가 아려요!”

정작 소녀는 아그작, 아그작 탕후루를 잘만 뜯어 먹었다.

하기야 체격이 작다고 미각마저 작을 리는 없으니.

어느덧 앙증맞은 입술이 설탕으로 번들번들해질 정도로 열심히도 탕후루를 베어 물었다.

달다!

너무 달아서 혀가 아파!

세상에, 이교도들은, 지상 사람들은 이런 걸 먹고 살았다니!

어쩐지 지상 사람들이 대부분 행복할 수 있던 이유 중에는 이런 맛 좋은 음식 덕분이겠지?!

아삭아삭 씹히는 과일의 식감에 더불어 오독오독한 설탕 코팅은 씹는 맛이 상당했고.

새콤하게 터져 나오는 과즙과 설탕물에 침이 홍수처럼 고일 지경이었다.

“길드장님! 길드장님도 어서 드세요!”

헤헤- 양 볼이 발긋 달아오른 채 웃어 보이는 소녀는 퍽 행복해 보였다.

시선과 목소리는 길드장을 향해 있지만, 관심은 온통 탕후루를 향해 있는 모습.

“많이 있으니 천천히 먹어라.”

그 순수한 행복함에 길드장이 설핏 미소 지었다.

여태 그 어떤 희소식에조차 미동도 없던 입술이 헤프게도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 열심히도 소녀의 볼록한 볼을 바라보던 탓에 정작 제 손에 들린 탕후루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아! 호, 혹시 사과 맛을 드시고 싶으셨나요?!”

소녀는 그 빤한 시선에 황급히 손을 뻗었다.

무어라 대답할 새도 없이 입가로 들이밀어지는 사과 탕후루.

“헤헤, 드세요. 좋은 건 나누는 거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너나 먹으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에조차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

길드장이 멍하니 입을 벌렸고, 소녀가 방긋 웃으며 사과 탕후루를 밀어 넣었다.

소녀가 먹다 남긴 음식이라 찝찝하다거나 그런 것보단….

“…달군.”

“그쵸! 식탐의 악마가 알았다면 온 지구의 과일이 동나지 않았을까요?”

너무나 달았다.

굳이 단 걸 찾아 먹지 않던 그에게는 정말 아찔할 정도의 단맛이었다.

그러나 그런 미각 따위보다 더한 것은 왠지 모르게 두근대는 마음이었으니.

아이… 아이라….

주변 어른들이, 길드원들이 그토록 결혼을 부르짖고 아이를 낳으라던 이유가 이해됐다.

그와 마주하면서 그 자신을 보기보다 돈과 권력을 탐하는 인간들.

혹은 그저 겉모습과 능력에 괴물 보듯 겁에 질리는 인간들과는 그 궤가 달랐다.

그저 따스하다.

“아- 하세요!”

어느새 딸기 탕후루를 꺼내든 소녀가 이번에는 맛보기도 전에 먼저 그의 입으로 들이밀었다.

한입에 들어온 딸기가 파악- 터지며 새콤한 과즙이 가득 고였다.

길드장은 길게 말하는 대신, 봉투에서 또 다른 탕후루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청포도 탕후루였고.

“입 벌려.”

“……네!”

그대로 소녀의 자그마한 입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이런 게 여유구나.

어느덧 마주 본 채 탕후루를 나눠 먹던 두 사람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헤헤… 이제 좀 괜찮아지셨어요?”

“음?”

심지어 소녀는 제 나이 또래 같지 않게도 여우 같은 면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무뚝뚝한 상태였던 길드장.

그런 그의 표정이 풀어지고, 시선이 제게로 향하자, 소녀가 슬그머니 눈알을 굴리며 소곤거렸다.

“자명 스님도 그렇고, 길드장님도 그렇고… 다들 저 같은 죄인을 받아준 좋은 분들인데, 너무 고민이 많아 보여서요….”

그랬나?

내가 그렇게 아이도 알아챌 정도로 대놓고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사람은 원래 실수하는 동물이고,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걱정하느라 즐겨야 할 것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건 슬프잖아요.”

소녀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짜잔- 하고 뭔가를 꺼내 보였다.

대체 어디서 꺼낸 거지? 싶은 자그마한 참새 모양 인형이었다.

어딘지 익숙하게 생긴 게 소녀가 데리고 다니는 아참이를 본 따 만든 것 같은데.

“이건…?”

“이 작은 아이들도 매일 먹을 걸 걱정하면서 땅만 보고 있진 않더라구요. 셋이 같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를 때는… 헤헤, 되게 부러웠거든요.”

슬쩍- 손을 뻗은 소녀가 길드장의 주머니 속으로 참새 인형을 집어넣었다.

왠지 모르게 뚝 부러진 듯한 손톱이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어떻게든 도와드릴 테니까…. 길드장님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쉬셨으면 좋겠어요!”

길드장은 그제야 인정했다.

언뜻언뜻 소녀를 보며 걱정했다.

아이의 마음은 괜찮을까, 교단에 대한 다른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있을까.

구청장이 알고 보니 교단 소속이었다거나.

그를 보고자 나타난 시민들에게 방해 받는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고 실망하진 않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할까.

청성 길드가 대한민국의 3대 길드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단순히 아이와 놀아주기만 하면 되는 일조차 단순하게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런 그가 곁에서 무뚝뚝하게 서 있으려니 아이가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길드장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제가 괜한 말을 한 건 아닐까, 소녀가 시무룩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그래. 그럼, 이제 걱정 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군.”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언뜻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뚝뚝하지만, 세심한 배려가 담긴 목소리.

소녀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는 이미 어딘지 모를 건물에 들어선 뒤였다.

“어서오…….”

가장 먼저 마주친 건 유리로 된 진열장 안에 가득 찬 벽돌 같은 물건들.

그리고 그 뒤에 선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었다.

“…처, 청성 길드장?!”

“오팔 프로 맥스 16. 지금 당장 개통 가능합니까.”

“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사줄까 말까, 생각하길 그만두고 쳐들어온 곳은 통신사 대리점이었다.

다른 잡스러운 물건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며 주문을 덧붙였다.

“이어팟 프로, 울트라 워치, 태블릿. 있는 대로 최신형으로, 오팔 제품으로 주십시오.”

소녀로서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다,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대리점 직원들로서는 그야말로 복 터진 일이었다.

길드장은 애매한 곳에 돈 아낄 생각이 없었다.

일단 소녀에게 사주는 거니 무조건 최고로! 무조건 좋고 비싼 거로!

“아 해라.”

“…아?”

직원들이 발에 땀 나도록 돌아다니는 사이, 소녀에게는 여유롭게도 탕후루를 물려 주었다.

충치?

그딴 건 치료 계열 각성자가 없는 후진국에서나 걱정해야 할 일이다.

애당초 그가 보기엔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말라 빠진 게 멸치 꼴인 소녀였으니.

“저, 저 배 터져요….”

“음. 하나만 더 먹어 봐라.”

“히이익!”

소녀는 말 그대로 질릴 정도로 사과, 파인애플, 청포도, 딸기, 귤, 심지어 두리안 탕후루까지 하나씩 맛을 본 뒤에야 설탕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끄윽- 소심한 트름 소리에 소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작 듣는 길드장은 ‘이제야 배가 다 불렀군.’ 생각하며 뿌듯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소녀의 먹방이 끝난 뒤.

길드장과 소녀가 느긋하게 노는 사이에도 직원들은 VVIP 고객님을 위해 서류 작성, 개통 작업 등을 알아서 열심히 처리해 두었고.

그렇게 소녀가 받은 물건은 이와 같았다.

오팔 프로 맥스 16 4TB 아르메스 프리미엄 에디션. 2년 보험 포함 570만 원.

오팔 패드 프로 6TB. 2년 보험 포함 440만 원.

오팔 맥스 헤드셋과 이어폰 프로 합 110만 원.

외로 6G 완전 무제한 요금제 월 16만 원까지.

앉은 자리서 탕후루나 냠냠 먹으며 약 1,200만 원을 긁은 것이었다.

여기에 2를 곱하면 기본 옵션의 소형차 한 대쯤은 뽑을 돈….

잠깐.

그거 괜찮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소형차 말고 방탄 사양으로 한 대를.

“…객님? 고, 고객님? 듣고 계실까요?”

“아. 예. 듣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개통은 고객님 명의로 돌려둬서 사용하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실 겁니다. 다만, 오팔폰은 학생용 컨트롤 앱이 없어서, 이런 게 필요하시다면….”

“괜찮습니다.”

뭐, 자동차야 나중에 꼬마가 다 커서 운전 면허를 딸 때 선물해 주면 되겠지.

게다가 똑똑한 아이다.

굳이 이용 시간 제한이니 앱 제한이니 둘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한아름 생긴 기계의 향연에 소녀가 어쩌지 못하고 헤- 입만 벌리고 있던 때.

“받아라, 네 거다. 설명해 줬던 스마트폰이지.”

길드장은 세팅이 완료된 스마트폰을 들어 소녀의 손아귀에 쥐여 주었다.

“무, 무거워요.”

어른들은 어떻게 이런 걸 한 손으로 들고 쓰는 걸까?!

자그마한 두 손으로 꽉 잡아야 겨우 들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길드장과 직원들조차 뭔가를 기대하는 듯 소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 와! 가, 감사합니다!”

“그래. 쓸만한지 한 번 봐라.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로 사주마.”

이쯤 되니 소녀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휩싸였다.

그야 어른들이 빤히 바라본다는 건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거니까.

음, 으음….

어떻게 해야 아저씨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소녀가 퍼뜩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해인 스님이 알려주셨던 거가 있었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이나 비슷하게 생긴 기계니까 쓰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톡, 톡-

길드장을 따라 하듯 화면을 몇 번 두들겨 봤다.

금세 인터넷 창이 떠오르며 익숙한 사이트가 반겼다.

“아! 길드장님! 이거 보세요!”

이쯤 되면 사용법은 대충 짐작된다.

소녀는 곧장 청성 길드에서 만든 강의생 전용 사이트에 접속했다.

주소를 외워둔 덕분에 스마트폰을 처음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행동이었다.

“쓸만한가 보군.”

길드장은 뿌듯했다.

역시 똑똑한 아이다.

오늘 막 처음 접한 물건을 이렇게 쉽게 쓰다니.

그러나, 이어지는 소녀의 행동에까진 차마 뿌듯하게 미소 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스마트폰 선물 받았는데 이거 좋은 건가요?? (작성자:익명54)

(오팔 전자제품 풀세트를 찍은 사진.jpg)

갑자기 선물 받았는데 좋은 건가요??

– 익명 41 : 금수저임??

– 익명 58 : 아 나도 오팔 갖고 싶은데 그놈의 우주폰 그만 쓰고 싶은데!

– 익명 27 : 싸이버거 하나만….

엥? 김성영이 이 정도는 다들 갖고 있다고 했는데요? (작성자:익명54)

(오팔 프로 맥스 16 상세 스펙 사진.jpg)

청성 길드에서 강의 듣는 분들인데 이 정도는 흔한 거 아닌가요?

– 익명 41 : 개새끼야 너 어디 사냐?

– 익명 73 : 그래서 김성영이 뭐 하는 새낀데?

– 익명 74 : 김성영 걔 아닌가? 학생부 가속 각성자

– 익명 27 : 그 정도면 금수저 맞네….

…어디서 배운 건지, 소녀는 왠지 모르게 분탕질을 쳐 놓고 뿌듯하게 히히 웃고 있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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