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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삑-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녀가 가상현실 접속기에 앉아 막 ‘더 히어로’에 접속한 뒤.
     
   “길드장님, 말씀하셨던 대로 사내 방송에 연결해 뒀어요.”
   “수고했다.”
     
   청성 길드의 사내 채널로 예정에 없던 방송 화면이 떠 올랐다.
     
   직원들로서는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뭐지? 갑자기 게임 방송?
     
     
   화면 중심을 기준으로 세로로 갈라진 두 개의 시점.
     
   그 절반은 소녀의 시선을 보여주듯 일인칭으로 도시의 광경을.
     
   나머지 절반은 삼인칭으로 소녀의 뒷모습을 비춘다.
     
     
   이는 소녀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일이었다.
     
   3대 길드의 수장인 그가 굳이?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나 싶긴 한데.
     
   ‘평범한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거리낀다면, 두 자아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모든 건 소녀를 위함이었다.
     
   소녀가 원한다면 평생 편안한 곳에서 살게 해 줄 능력이야 충분하지만.
     
   길드장이 보아온 소녀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곧 죽어도 제 할 일 다하며 살겠다고 고집할 게 뻔했으니.
     
   자칫 세뇌 상태의 소녀가 빌런처럼 여겨지진 않을까, 그렇게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입진 않을까 걱정한 탓에 떠올려 낸 방법이었다.
     
   세뇌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세뇌된 상태의 소녀를 별개의 인물로 만들어 내는 것.
     
   물론 이는 최악을 상정한 것이었다.
     
     
   – 이거 더 히어로 아니야? 그런데 웬 애가 들어가 있어?
     
   – 어 진짜네? 열 살은 되나?
     
   – 더 히어로 꽤 잔인하지 않나? 이거 애가 해도 되는 거야?
     
   – 팩트 : 놀랍게도 교육용이라 전체이용가다.
     
     
   속속들이 접속한 길드원들의 채팅이 우르르 올라가는 사이.
     
   “우와… 이게 가짜 세상이라구요…?”
     
   동기화가 끝난 듯 소녀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더 히어로’ 시작 장소인 구로디지털단지의 정경이 펼쳐졌다.
     
   햇빛을 번쩍이며 반사하는 수많은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그리고 3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니는 양복 차림의 사람들까지!
     
   우와, 우와!
     
   소녀가 손을 휘적거리자, 터덜터덜 지나가던 시민 NPC가 자상하게 말을 걸어왔다.
     
   “꼬마 영웅님, 혹시 길이라도 잃었니?”
   “…와.”
     
   표정과 목소리, 반응조차 완벽히 생생하다.
     
     
   이게 가짜라니….
     
   신나서 주변을 구경하던 소녀는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토록 생생한 세상이 가짜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과연 진짜일까?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의 존재는?
     
   어쩌면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진짜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시험 길에 서 있는 건 아닐까?
     
   그럼, 돌아가신 엄마 아빠도 지금쯤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계시겠지?
     
   순간 고양이처럼 뾰족해져 있던 소녀의 동공이 평상시처럼 되돌아왔다.
     
     
   히히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
     
   “어머, 귀여워라….”
     
   튜토리얼에 접속해 있던 몇 안 되는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쏠려 들었다.
     
   따로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없는 게임이니, 이게 아이의 본모습이라는 건데.
     
   어쩜 저렇게 인형같이 귀여운 아이가 있을까?
     
   저런 작은 아이가 이런 악명 높은 게임을 플레이하다니.
     
   부드럽게 웃으며 쳐다보던 것도 잠시였다.
     
     
   ‘더 히어로’는 게이머들, 그리고 각성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상당했다.
     
   빌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답시고 과하게 구현해 낸 현실감.
     
   전체이용가라는 이용 등급과 달리 살점과 피가 흥건한, 불쾌하기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금세 소녀를 향한 걱정이 쏟아졌다.
     
     
   모두가 아이를 도와줘야 하나, 뭐라고 경고라도 해줘야 하나 눈치를 살피던 때.
     
   한 여인이 앞장서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줌마 같은 후덕한 외모.
     
   그러나 그런 외모와 달리, 그녀는 C급 인증을 받은 각성자였다.
     
   동료들에게 대인전을 훈련하기 좋다는 이유로 ‘더 히어로’를 추천받아 들어왔던 건데.
     
   그런 위험천만한 게임에 아이를 가만 놔둘 순 없었다.
     
   딸아이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소녀.
     
   여인은 아이가 긴장할세라 방긋 웃으며 자세를 낮춰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가. 혹시 게임 하러 온 거니?”
     
   소녀는 본능적으로 주춤, 여인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야 길드장님이 말하길 이 게임에 악마가 나온다고 했고.
     
   이런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다들 악마 들린 쓰레기들이잖아?
     
   겉으로만 저렇게 웃고 속으로 무슨 생각일지 몰라!
     
   손대려 하면 바로 손목을 꺾어서 불태워 버려야지!
     
   소녀는 교단에서 교육받은 대로 긴장감을 가득 끌어 올렸다.
     
   “무슨 일이세요…?”
     
   물론, 그래봤자 남들이 보기엔 주먹만 한 고양이가 하악질하는 꼴이었으니.
     
   머리카락을 암만 삐죽 세우고 쳐다봐 봤자 여인이 겁먹고 물러날 일은 없었다.
     
   오히려.
     
   ‘겁먹었네. 설마 누가 게임을 강제로 시킨 건 아니겠지?’
     
   이런 걱정을 하며 더 나긋나긋해진 목소리로 소녀를 설득하고자 했다.
     
     
   “아줌마 딸이 생각나서. 혹시 이게 위험한 게임이라는 건 알고 있니? 막 사람도 죽고, 피도 나오고 그런 게임이거든.”
     
   그러나 그런 얘기는 역효과였다.
     
   아앗! 딸 같다고?!
     
   그간 소녀가 둘러보던 인터넷에 그 무엇보다 많이 보았던 게 바로 ‘딸 같아서 그랬다’라거나 ‘자식 같아서 그랬다’라고 증언하던 기사들이었다.
     
   역시…!
     
   이 아줌마는 내 몸을 노리고 있구나…!
     
   게임 속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면 오해를 풀 거란 길드장의 기대와 달리, 소녀의 오해는 오히려 더욱 커지기만 했다.
     
   결국 편견을 고치지 못하면 달라지지 않을 시선이었다.
     
     
   “저, 저는 그런 거 관심 없어요…!”
     
   헉! 세상에! 저 아줌마는 어린이를 애호하는구나!
     
   본래의 몸이었더라도 선뜻 받아들이지 않을 제안이건만.
     
   무엇보다 지금 그의 몸은 미아의 것!
     
   저런 수상쩍은 악마 들린 아줌마와는 살결조차 닿게 둘 수 없었다!
     
   소녀가 후다닥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어?! 아가야?!”
     
   내가 뭘 잘못했나?
     
   요즘 애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물러나니, 그제야 튜토리얼이 시작됐다.
     
     
   삐익! 삐이이익-!
     
   멀쩡한 성인들조차 식겁하게 만드는 요란한 알림음이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플레이어들의 시야 위로 주르륵 글자가 떠 올랐다.
     
     
   [튜토리얼 : 최초의 빌런]
     
   – 게이트의 출현과 함께 사회가 혼란스럽던 때, 각성한 힘에 취해 날뛰는 대한민국 최초의 빌런이 나타났다.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빌런이 더 큰 피해를 내기 전에 제압하자.
     
     
   단순한 글자뿐만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만든 홍보용 게임이라는 목적답게, 빌런이 나타나던 당시 현실의 긴급 속보 장면, 경찰들의 통신 내용이 적나라하게 재생됐다.
     
   “거, 거기 경찰이죠! 여기 미친 인간이 사람들을 막 죽여요!!”
   “땅이! 땅이 막 솟구친다고!”
   “개새끼들아! 다 죽은 뒤에 올 생각이야?!”
     
   죽음의 두려움에 미쳐버린 격한 감정의 목소리들.
     
     
   “…뭔, 게임을 이따위로 진짜같이 만들었어?”
     
   도로 곳곳에 흩어져 있던 플레이어들이 기겁하며 표정을 찌푸렸다.
     
   너무도 적나라한 현실 게이트를 여러 번 겪었던 각성자들조차 굳어버린 상황.
     
   “아이! 아이는 지금 어디에…!”
     
   소녀를 놓쳐버렸던 여인이 사지를 벌벌 떨며 다급히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금세 멀지 않은 곳에 선 소녀를 발견해 냈는데.
     
     
   “꺄아아악! 살려줘!!”
     
   NPC들이 미친 듯이 도망가는 혼란 가운데, 우뚝.
     
   “……진짜 악마네?”
     
   혼자 다른 세상 사람처럼 선 채 스으윽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시민들이 도망쳐 온 방향을 바라보며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씨익.
     
   앙증맞은 입술 너머로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난다.
     
   평소였다면 귀여운 아이라고, 너무 예쁘다고 생각할 미소지만.
     
   ‘무슨, 애 표정이….’
     
   살기가 가득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신나 보이기도 한다.
     
   마치 제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은 것만 같은 반응.
     
   그런 소녀에게 시선이 사로잡힌 건, 여인 한 명뿐이 아니었다.
     
     
   “다들 뭐 하고 있어요! 와서 싸워요!”
     
   소녀보다 앞장선 각성자들이 빌런을 붙잡아 세우기 급급한 사이.
     
   소녀보다 뒤에 선 각성자들은 멍하니 소녀를 바라봤다.
     
   그 반응만 보아서는 마치 소녀가 빌런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이런 씨발! 공격이 안 통하잖아! 저게 어떻게 C급이야?!”
     
   정작 그런 반응에조차 소녀의 시선은 오롯이 빌런을 향해 있었다.
     
   퍼걱!
     
   가장 먼저 나서 빌런을 상대하던 각성자의 머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리며, 벌써 한 명의 플레이어가 털썩 쓰러져 내렸다.
     
   단순 등급으로만 따지면 C급 각성자에 불과한 빌런이었지만.
     
   “각성자의 능력은 석화입니다! 공략에 따르면 사거리에 접근하지만 않으면 될 겁니다!”
     
   각성 등급의 기준은 게이트 너머의 괴물들을 기준으로 한 것.
     
   한낱 C급조차도 대인전에 뛰어난 이들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각성자 대부분은 막 대인전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들이었으니.
     
   다급히 저희가 인터넷에서 봐 온 공략을 따라 해 보려 하지만.
     
   그래봤자 막기 급급하고, 판단 실수 한 번으로 죽어 나갈 뿐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소녀가 꽈악- 자그마한 두 주먹을 그러쥐었다.
     
   피, 피, 그리고 피투성이.
     
   얇은 손목 위로 핏줄이 돋아나고, 그러면서도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는지 씩씩대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80명을 죽인 살인마?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이며 또한 자식인 사람들이다.
     
   소녀의 부모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저 자신을 희생한 사람도 있겠지.
     
   같은 인간이 과연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아니. 그럴 리 없어.
     
   전능 신께 선택받아 각성자가 된 이가 그런 죄악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건 말도 안 돼.
     
   때문에, 확신했다.
     
     
   저건 악마야.
     
   악마가 들린 자,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일 거야.
     
     
   겨우 진정됐던 소녀의 동공이 다시 고양이처럼 날카로워졌다.
     
   악마는 죽어야만 한다.
     
   더 이상 무고한 피해자를 늘려선 안 된다.
     
   [악마를 죽여라. 그게 네가 천국으로 갈 지름길이니.]
     
     
   죽여, 죽여라, 죽여야 해.
     
   붉은 방, 살점투성이의 방, 죽음, 비명, 해골.
     
   번쩍-
     
   눈앞에서 불빛이 점멸한다.
     
     
   “씨바아아아악! 꼬마!! 피해!!”
     
   빌런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던 각성자가 소녀의 앞을 가로막는다.
     
   아무리 위험해도 이건 게임이다.
     
   아니, 게임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두고 도망칠 순 없다.
     
   제 탓에 아이를 다치게 둘 바에야 차라리 튜토리얼 하나 못 깬 바보라고 무시당하는 게 낫다.
     
     
   그렇게 사내가 이를 악문 채, 공격에 대비해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하던 때였다.
     
   덥석-
     
   무언가 작고 말랑한 게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 어어?!”
     
   덩치 큰 그조차 주체하지 못하고 당겨질 강력한 힘.
     
     
   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뒤로 끌어당겨진 사내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던 때.
     
   소녀와 사내를 향해 날아들던 뾰족한 돌덩어리들이 핑거스냅에 사라지던 영화 속 시민들처럼 파스스- 가루가 되어 흩날려 사라졌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타인의 능력을 이렇게 쉽게 무력화한다고?
     
     
   황당해하고 있던 사내를 제치고 앞장서 나선 소녀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아저씨는 제 뒤나 지켜주세요!”
     
   그렇게 소녀의 가녀린 두 손 위로 스르륵-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크고 묵직한 더블배럴 샷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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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녀가 가상현실 접속기에 앉아 막 ‘더 히어로’에 접속한 뒤.

“길드장님, 말씀하셨던 대로 사내 방송에 연결해 뒀어요.”

“수고했다.”

청성 길드의 사내 채널로 예정에 없던 방송 화면이 떠 올랐다.

직원들로서는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뭐지? 갑자기 게임 방송?

화면 중심을 기준으로 세로로 갈라진 두 개의 시점.

그 절반은 소녀의 시선을 보여주듯 일인칭으로 도시의 광경을.

나머지 절반은 삼인칭으로 소녀의 뒷모습을 비춘다.

이는 소녀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일이었다.

3대 길드의 수장인 그가 굳이?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나 싶긴 한데.

‘평범한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거리낀다면, 두 자아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모든 건 소녀를 위함이었다.

소녀가 원한다면 평생 편안한 곳에서 살게 해 줄 능력이야 충분하지만.

길드장이 보아온 소녀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곧 죽어도 제 할 일 다하며 살겠다고 고집할 게 뻔했으니.

자칫 세뇌 상태의 소녀가 빌런처럼 여겨지진 않을까, 그렇게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입진 않을까 걱정한 탓에 떠올려 낸 방법이었다.

세뇌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세뇌된 상태의 소녀를 별개의 인물로 만들어 내는 것.

물론 이는 최악을 상정한 것이었다.

– 이거 더 히어로 아니야? 그런데 웬 애가 들어가 있어?

– 어 진짜네? 열 살은 되나?

– 더 히어로 꽤 잔인하지 않나? 이거 애가 해도 되는 거야?

– 팩트 : 놀랍게도 교육용이라 전체이용가다.

속속들이 접속한 길드원들의 채팅이 우르르 올라가는 사이.

“우와… 이게 가짜 세상이라구요…?”

동기화가 끝난 듯 소녀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더 히어로’ 시작 장소인 구로디지털단지의 정경이 펼쳐졌다.

햇빛을 번쩍이며 반사하는 수많은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그리고 3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니는 양복 차림의 사람들까지!

우와, 우와!

소녀가 손을 휘적거리자, 터덜터덜 지나가던 시민 NPC가 자상하게 말을 걸어왔다.

“꼬마 영웅님, 혹시 길이라도 잃었니?”

“…와.”

표정과 목소리, 반응조차 완벽히 생생하다.

이게 가짜라니….

신나서 주변을 구경하던 소녀는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토록 생생한 세상이 가짜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과연 진짜일까?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의 존재는?

어쩌면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진짜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시험 길에 서 있는 건 아닐까?

그럼, 돌아가신 엄마 아빠도 지금쯤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계시겠지?

순간 고양이처럼 뾰족해져 있던 소녀의 동공이 평상시처럼 되돌아왔다.

히히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

“어머, 귀여워라….”

튜토리얼에 접속해 있던 몇 안 되는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쏠려 들었다.

따로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없는 게임이니, 이게 아이의 본모습이라는 건데.

어쩜 저렇게 인형같이 귀여운 아이가 있을까?

저런 작은 아이가 이런 악명 높은 게임을 플레이하다니.

부드럽게 웃으며 쳐다보던 것도 잠시였다.

‘더 히어로’는 게이머들, 그리고 각성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상당했다.

빌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답시고 과하게 구현해 낸 현실감.

전체이용가라는 이용 등급과 달리 살점과 피가 흥건한, 불쾌하기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금세 소녀를 향한 걱정이 쏟아졌다.

모두가 아이를 도와줘야 하나, 뭐라고 경고라도 해줘야 하나 눈치를 살피던 때.

한 여인이 앞장서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줌마 같은 후덕한 외모.

그러나 그런 외모와 달리, 그녀는 C급 인증을 받은 각성자였다.

동료들에게 대인전을 훈련하기 좋다는 이유로 ‘더 히어로’를 추천받아 들어왔던 건데.

그런 위험천만한 게임에 아이를 가만 놔둘 순 없었다.

딸아이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소녀.

여인은 아이가 긴장할세라 방긋 웃으며 자세를 낮춰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가. 혹시 게임 하러 온 거니?”

소녀는 본능적으로 주춤, 여인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야 길드장님이 말하길 이 게임에 악마가 나온다고 했고.

이런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다들 악마 들린 쓰레기들이잖아?

겉으로만 저렇게 웃고 속으로 무슨 생각일지 몰라!

손대려 하면 바로 손목을 꺾어서 불태워 버려야지!

소녀는 교단에서 교육받은 대로 긴장감을 가득 끌어 올렸다.

“무슨 일이세요…?”

물론, 그래봤자 남들이 보기엔 주먹만 한 고양이가 하악질하는 꼴이었으니.

머리카락을 암만 삐죽 세우고 쳐다봐 봤자 여인이 겁먹고 물러날 일은 없었다.

오히려.

‘겁먹었네. 설마 누가 게임을 강제로 시킨 건 아니겠지?’

이런 걱정을 하며 더 나긋나긋해진 목소리로 소녀를 설득하고자 했다.

“아줌마 딸이 생각나서. 혹시 이게 위험한 게임이라는 건 알고 있니? 막 사람도 죽고, 피도 나오고 그런 게임이거든.”

그러나 그런 얘기는 역효과였다.

아앗! 딸 같다고?!

그간 소녀가 둘러보던 인터넷에 그 무엇보다 많이 보았던 게 바로 ‘딸 같아서 그랬다’라거나 ‘자식 같아서 그랬다’라고 증언하던 기사들이었다.

역시…!

이 아줌마는 내 몸을 노리고 있구나…!

게임 속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면 오해를 풀 거란 길드장의 기대와 달리, 소녀의 오해는 오히려 더욱 커지기만 했다.

결국 편견을 고치지 못하면 달라지지 않을 시선이었다.

“저, 저는 그런 거 관심 없어요…!”

헉! 세상에! 저 아줌마는 어린이를 애호하는구나!

본래의 몸이었더라도 선뜻 받아들이지 않을 제안이건만.

무엇보다 지금 그의 몸은 미아의 것!

저런 수상쩍은 악마 들린 아줌마와는 살결조차 닿게 둘 수 없었다!

소녀가 후다닥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어?! 아가야?!”

내가 뭘 잘못했나?

요즘 애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물러나니, 그제야 튜토리얼이 시작됐다.

삐익! 삐이이익-!

멀쩡한 성인들조차 식겁하게 만드는 요란한 알림음이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플레이어들의 시야 위로 주르륵 글자가 떠 올랐다.

[튜토리얼 : 최초의 빌런]

– 게이트의 출현과 함께 사회가 혼란스럽던 때, 각성한 힘에 취해 날뛰는 대한민국 최초의 빌런이 나타났다.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빌런이 더 큰 피해를 내기 전에 제압하자.

단순한 글자뿐만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만든 홍보용 게임이라는 목적답게, 빌런이 나타나던 당시 현실의 긴급 속보 장면, 경찰들의 통신 내용이 적나라하게 재생됐다.

“거, 거기 경찰이죠! 여기 미친 인간이 사람들을 막 죽여요!!”

“땅이! 땅이 막 솟구친다고!”

“개새끼들아! 다 죽은 뒤에 올 생각이야?!”

죽음의 두려움에 미쳐버린 격한 감정의 목소리들.

“…뭔, 게임을 이따위로 진짜같이 만들었어?”

도로 곳곳에 흩어져 있던 플레이어들이 기겁하며 표정을 찌푸렸다.

너무도 적나라한 현실 게이트를 여러 번 겪었던 각성자들조차 굳어버린 상황.

“아이! 아이는 지금 어디에…!”

소녀를 놓쳐버렸던 여인이 사지를 벌벌 떨며 다급히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금세 멀지 않은 곳에 선 소녀를 발견해 냈는데.

“꺄아아악! 살려줘!!”

NPC들이 미친 듯이 도망가는 혼란 가운데, 우뚝.

“……진짜 악마네?”

혼자 다른 세상 사람처럼 선 채 스으윽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시민들이 도망쳐 온 방향을 바라보며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씨익.

앙증맞은 입술 너머로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난다.

평소였다면 귀여운 아이라고, 너무 예쁘다고 생각할 미소지만.

‘무슨, 애 표정이….’

살기가 가득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신나 보이기도 한다.

마치 제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은 것만 같은 반응.

그런 소녀에게 시선이 사로잡힌 건, 여인 한 명뿐이 아니었다.

“다들 뭐 하고 있어요! 와서 싸워요!”

소녀보다 앞장선 각성자들이 빌런을 붙잡아 세우기 급급한 사이.

소녀보다 뒤에 선 각성자들은 멍하니 소녀를 바라봤다.

그 반응만 보아서는 마치 소녀가 빌런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이런 씨발! 공격이 안 통하잖아! 저게 어떻게 C급이야?!”

정작 그런 반응에조차 소녀의 시선은 오롯이 빌런을 향해 있었다.

퍼걱!

가장 먼저 나서 빌런을 상대하던 각성자의 머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리며, 벌써 한 명의 플레이어가 털썩 쓰러져 내렸다.

단순 등급으로만 따지면 C급 각성자에 불과한 빌런이었지만.

“각성자의 능력은 석화입니다! 공략에 따르면 사거리에 접근하지만 않으면 될 겁니다!”

각성 등급의 기준은 게이트 너머의 괴물들을 기준으로 한 것.

한낱 C급조차도 대인전에 뛰어난 이들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각성자 대부분은 막 대인전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들이었으니.

다급히 저희가 인터넷에서 봐 온 공략을 따라 해 보려 하지만.

그래봤자 막기 급급하고, 판단 실수 한 번으로 죽어 나갈 뿐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소녀가 꽈악- 자그마한 두 주먹을 그러쥐었다.

피, 피, 그리고 피투성이.

얇은 손목 위로 핏줄이 돋아나고, 그러면서도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는지 씩씩대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80명을 죽인 살인마?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이며 또한 자식인 사람들이다.

소녀의 부모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저 자신을 희생한 사람도 있겠지.

같은 인간이 과연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아니. 그럴 리 없어.

전능 신께 선택받아 각성자가 된 이가 그런 죄악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건 말도 안 돼.

때문에, 확신했다.

저건 악마야.

악마가 들린 자,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일 거야.

겨우 진정됐던 소녀의 동공이 다시 고양이처럼 날카로워졌다.

악마는 죽어야만 한다.

더 이상 무고한 피해자를 늘려선 안 된다.

[악마를 죽여라. 그게 네가 천국으로 갈 지름길이니.]

죽여, 죽여라, 죽여야 해.

붉은 방, 살점투성이의 방, 죽음, 비명, 해골.

번쩍-

눈앞에서 불빛이 점멸한다.

“씨바아아아악! 꼬마!! 피해!!”

빌런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던 각성자가 소녀의 앞을 가로막는다.

아무리 위험해도 이건 게임이다.

아니, 게임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두고 도망칠 순 없다.

제 탓에 아이를 다치게 둘 바에야 차라리 튜토리얼 하나 못 깬 바보라고 무시당하는 게 낫다.

그렇게 사내가 이를 악문 채, 공격에 대비해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하던 때였다.

덥석-

무언가 작고 말랑한 게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 어어?!”

덩치 큰 그조차 주체하지 못하고 당겨질 강력한 힘.

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뒤로 끌어당겨진 사내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던 때.

소녀와 사내를 향해 날아들던 뾰족한 돌덩어리들이 핑거스냅에 사라지던 영화 속 시민들처럼 파스스- 가루가 되어 흩날려 사라졌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타인의 능력을 이렇게 쉽게 무력화한다고?

황당해하고 있던 사내를 제치고 앞장서 나선 소녀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아저씨는 제 뒤나 지켜주세요!”

그렇게 소녀의 가녀린 두 손 위로 스르륵-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크고 묵직한 더블배럴 샷건이 나타났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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