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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소녀를 도울 방법이 확실해졌으니 이젠 움직일 때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적절한 주변인들의 도움이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겠지만, 그렇다고 길드장이나 양조야 강사가 내내 소녀의 곁에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
     
   “적어도 아이의 보호자와 팀장 이상급과는 공조해야겠군.”
     
   조금 못 믿음직하긴 한데 지금 소녀의 곁을 지키고 있을 자매 역시도 미리 생각해 두었던 예비 조력자 중 하나였다.
     
     
   “으아아! 문이 왜 잠겨있는 거야! 열어줘요! 이러다 음료 다 녹아!”
     
   잠깐 자매만 불러서 대화를 나누려 했더니, 그새 배달시킨 음료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염동력으로 고정된 문을 차마 부수진 못하고 소심하게 문을 쾅쾅 두드려 대고 있는 한유연.
     
   “하아…….”
     
   과연 누가 저 꼴을 스물네 살의 성인이라고 생각할까.
     
   저런 녀석들에게 이렇게 중요한 비밀을 밝히는 게 실수는 아닐지 골이 지끈거린다.
     
   길드장은 목구멍까지 치민 한숨을 꿀꺽 삼키고는 보안 요원이 챙겨온 음료 봉투를 챙겨 들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후… 후후후후, 아가 많이 피곤해쪄요?”
     
   문 앞에서 발광하던 동생과 달리, 팀장인 언니 쪽은 멀쩡히 아이를 봐주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소, 손길이 음란해요…!”
   “어머 똑똑하기도 해라. 그런 단어는 어디서 배웠을까? 볼이랑 머리 만지는 건 좀 봐주지 않을래?”
     
   “새, 생각도 음란해요…!”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로 쉼 없이 푸른 머리를 열심히 쓰다듬어 내리거나 말랑말랑한 볼을 쭉 잡아 늘인다거나.
     
   같은 성인에게 했더라도 진즉 잡혀갔을 짓거리를 하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어대는 꼴이었다.
     
     
   아.
     
   내가 길드원을 잘못 들였구나.
     
   내가 죽고 없어지면 청성 길드는 이대로 망해버리겠구나.
     
   길드장은 뒤늦게 후회했다.
     
     
   그라고 해서 저 아담한 아이를 짐처럼 달랑달랑 들고 다니고 싶었을까.
     
   소녀가 불편해하진 않을까, 괜히 트라우마를 일으키진 않을까 접촉을 최소화해 왔던 건데….
     
   말로는 죄악이니 싫다니 하면서도 배시시 웃는, 붉게 홍조를 띤 소녀를 보자 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역시 저와 동성인 자매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거겠지.
     
   그러니 이건 질투가 아니다.
     
   “으아앙아…!”
   “어쩜 머릿결이 이렇게 곱지? 우리 아가 진짜로 물의 정령인 거 아니야?”
     
   아이가 너무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선을 더 넘기 전에 책임지고 말리는 것일 뿐이다.
     
     
   “둘 다 할 말이 있으니 따라오도록.”
     
   마치 죄인을 대하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길드장의 분노를 겪어본 적 없는 소녀만이 고개를 갸웃.
     
   어라? 길드장님이 기분이 왜 이렇게 나빠 보이지?
     
   “길드장님… 이거… 드실래요?”
     
   통신사 대리점에서 서비스라고 쥐여준 젤리 하나를 슬쩍 내밀었다.
     
   새콤하고 달콤한 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는 젤리.
     
   스님들께 나눠주려고 아껴뒀던 건데, 이거라면 길드장님의 기분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아껴뒀다가 너나 먹어라.”
     
   그런 소녀의 속내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다.
     
   딴에는 열심히 연기하려 하지만, 쭉 내민 젤리를 바라보며 에효-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게 누가 봐도 아까워하는 모습이었으니.
     
   문제는 길드장이 사양하자.
     
   “…마, 맛있어요. 한 번만 드셔보세요!”
     
   아. 길드장님이 어지간히 화나신 게 아니구나!
     
   소녀는 한층 절박하게 젤리를 들이밀었다.
     
     
   조공이라도 바치듯 고개를 푹 내리 숙이고 양손에 받쳐 올린 젤리 하나.
     
   그 모습은 마치 ‘떡볶이 머거야지!’라며 신나서 뛰쳐나온 초등학생의 코 묻은 돈을 빼앗는 모습처럼 보일 지경이었으니.
     
   상황을 알고 지켜보는 자매들조차 ‘와 길드장님 쓰레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길드장은 그제야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을 슬그머니 풀고는 잽싸게 젤리를 받아먹었다.
     
   소녀의 손아귀 위에 있을 때는 그렇게 커 보이던 게, 길드장이 받아들자 손가락 한 마디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
     
   사실상 간에 기별도 안 갔지만-
     
   “맛있군. 고맙다.”
     
   그렇게 길드장이 진심 반, 연기 반으로 반응을 보인 뒤에야 소녀가 헤헤 헤픈 웃음을 보였다.
     
   역시 화났을 때는 단 걸 먹이면 되겠구나!
     
   작은 오해와 함께였다.
     
     
   본의 아니게 길드장의 분노를 풀어준 소녀.
     
   ‘이건… 기회다!’
     
   캐리어에서 음료를 꺼내던 채로 굳어 있던 한유연이 퍼뜩 몸을 일으켰다.
     
   에잇.
     
   우리가 잘못한 건 둘째치고.
     
   이 작고 귀여운 아이에게 이미 중독되어 버려서 두 번 다시 옛날로 돌아가진 않을 거다.
     
   쫓겨나더라도 소녀는 우리가 데려간다!
     
   어차피 언니는 그동안 혼자서 충분히 즐겼을 테니까!
     
   후….
     
   죽을 땐 죽더라도 감사 인사 한번 받는 건 괜찮잖아?
     
     
   “이거 다 너 먹으라고 시킨 거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대로 먹고 있어. 맛만 보고 버려도 되니까 사양 말고.”
     
   무덤덤한 척 새빨간 단발머리를 귀 너머로 쓸어 넘긴다.
     
   그렇게 오다 주웠다는 듯 무심하게 소녀의 앞으로 음료 캐리어를 슬쩍 내려 놓는다.
     
   찰랑- 투명한 플라스틱 컵 너머로 형형색색의 음료가 요동친다.
     
   꿀꺽.
     
   비닐을 뚫고 나는 단 냄새에 소녀가 저도 모르게 흥건해진 침을 삼켰다.
     
   여긴… 천국일까? 지상에는 어떻게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게 많은 거지?!
     
   스님들은 그동안 왜 이렇게 심심한 것만 드시던 걸까!
     
   역시 이교도들 사이에도 분파 갈등이 있는 게 분명해!
     
     
   홀린 듯, 소녀가 멍하니 음료를 바라보며 내면의 식탐과 치열한 대결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 내가 언제부터 음식의 맛을 따졌다고!
     
   미아의 몸으로 옮겨오기 전만 해도 음식은커녕 수액으로 연명하던 처지였다.
     
   대장과 소장은 물론, 위의 일부마저 소원의 대가로 바쳤기 때문이었는데.
     
   역시 이런 사치스러운 음식에 홀랑 넘어갈 수는 없다!
     
   응!
     
   차라리 스님들과 같이 먹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치와 낭비는 죄악이에요!”
     
   결심한 소녀가 양팔을 허리에 걸친 채 단호히 거절했다.
     
     
   와, 저게 진짜 나랑 같은 인간 맞나?
     
   저렇게 귀여운 생물이 있을 수가 있다고?
     
   한유연은 물론 한다연과 길드장마저 흠칫할 정도로 귀여운 저항이었다.
     
   저 작은 몸으로 암만 흥흥- 콧바람 불어봤자 이미 소녀의 성격은 파악된 뒤였으니.
     
   “그래? 안 먹으면 어쩔 수 없지. 다 버려야겠네.”
     
   극과 극은 통하는 법.
     
   여태 한유연이 소녀의 앞에서 헤픈 모습만 보여줘서 그렇지, 그녀는 누구보다 막 나가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당장이라도 음료를 쏟아 버리겠다는 듯, 음료를 들고 벌떡 일어서자-
     
   “헉! 아, 안 돼요! 여, 열심히 먹어 볼게요!”
     
   소녀 역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쭉 뻗어 들었다.
     
   “…풉.”
     
   그러나 암만 쭈우욱 늘려봤자 짜리몽땅.
     
   한유연이 손을 슬쩍 들기만 해도 닿지 못할 거리였으니.
     
   다급해진 소녀는 교단에서 배웠던 ‘있어 보이는 척’하던 것조차 완전히 잊어버리고야 말았다.
     
   “나, 낭비하면 지옥에 떨어질 거예여! 어서 이리 주세여!”
     
   폴짝, 폴짝-
     
   어떻게든 음료를 돌려받겠다고 열심히 뛰느라 발음이 뭉개지는 것조차 신경 쓰지 못했다.
     
     
   그야 절박할 수밖에.
     
   한유연, 한다연 자매는 처음 보는 그녀에게조차 친절하게 대해준 착한 이들이 아니던가.
     
   이 음료 역시 호의로 사 준 것이었으니.
     
   그렇게 착한 이들이 음식 낭비로 지옥에 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소원이라도 빌어야 할까…?
     
   시작은 장난이었지만, 어느새 소녀가 울먹거리기 시작한 상황.
     
   “제, 제가 어떻게든 다 먹어 볼게요…,”
     
     
   어, 어라?
     
   한유연은 뒤늦게 당황했다.
     
   평소에도 악질이란 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제 장난으로 저 작고 귀여운 아이를 울렸다고 생각하니 미친 듯한 자괴감이 치밀었다.
     
   오죽하면 평소에도 ‘우우 스레기’라면서 분위기를 풀어주었을 한다연조차….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니?”
     
   나는 이 일과 무관하다는 뜻, 빠르게 거리를 벌려버렸고.
     
   “어? 어…?”
   “…오늘 상담을 좀 길게 해야겠군.”
     
   “으악! 그, 그것만은…!”
     
   소녀가 또래 아이처럼 즐겁게 노는 모습에 잠자코 두고 보던 쓴소리를 참지 않았다.
     
   결국 또륵- 소녀의 발그레 달아오른 볼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 뒤.
     
   “으아아! 내, 내가 미안해! 장난이었어! 자! 여기! 다 마셔…가 아니라! 남으면 나랑 언니가 먹을 테니까, 응? 편하게 맛만 봐도 되니까?”
     
   한유연이 다급히 파르르 두 손을 떨며 소녀의 앞에 음료를 대령했다.
     
   자존심도 다 버린 듯 양 무릎을 덜썩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꼴이었다.
     
     
   그런데.
     
   “…괜찮아요. 맛있는 건 나눠 먹는 거라고 했으니까요.”
     
   정작 음료를 받아 든 소녀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뾱-! 음료 뚜껑에 빨대를 박아 한유연의 입가로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참으로 자연스러운 배려였다.
     
   다 커서 제 절반밖에 안 되는 아이를 괴롭히던 누구랑은 정 반대인 성숙한 행동.
     
   “나… 진짜 쓰레기였잖아…?”
     
   그 사실을 깨달은 한유연이 입을 쩍 벌린 채 두 눈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녀의 편은 없었다.
     
   “저 못난년이 뭐가 좋다고 음료를 나눠줘! 이리 와, 언니랑 같이 먹자!”
     
   오히려 한다연은 소녀의 첫 음료를 받은 게 저 빌어먹을 동생이라는 것에 질투심을 불태우며 열 손가락을 꿈틀거렸고.
     
     
   “하아…. 둘 다 그만하고 따라와라.”
     
   이대로 놔뒀다간 온종일….
     
   아니, 소녀가 성인이 돼서 결혼한다고 집을 나선 뒤에야 상황이 정리될 듯했으니.
     
   “당장.”
     
   길드장은 결국 소녀를 혼자 놔둔 채, 염동력까지 써서 자매를 끌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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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도울 방법이 확실해졌으니 이젠 움직일 때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적절한 주변인들의 도움이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겠지만, 그렇다고 길드장이나 양조야 강사가 내내 소녀의 곁에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

“적어도 아이의 보호자와 팀장 이상급과는 공조해야겠군.”

조금 못 믿음직하긴 한데 지금 소녀의 곁을 지키고 있을 자매 역시도 미리 생각해 두었던 예비 조력자 중 하나였다.

“으아아! 문이 왜 잠겨있는 거야! 열어줘요! 이러다 음료 다 녹아!”

잠깐 자매만 불러서 대화를 나누려 했더니, 그새 배달시킨 음료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염동력으로 고정된 문을 차마 부수진 못하고 소심하게 문을 쾅쾅 두드려 대고 있는 한유연.

“하아…….”

과연 누가 저 꼴을 스물네 살의 성인이라고 생각할까.

저런 녀석들에게 이렇게 중요한 비밀을 밝히는 게 실수는 아닐지 골이 지끈거린다.

길드장은 목구멍까지 치민 한숨을 꿀꺽 삼키고는 보안 요원이 챙겨온 음료 봉투를 챙겨 들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후… 후후후후, 아가 많이 피곤해쪄요?”

문 앞에서 발광하던 동생과 달리, 팀장인 언니 쪽은 멀쩡히 아이를 봐주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소, 손길이 음란해요…!”

“어머 똑똑하기도 해라. 그런 단어는 어디서 배웠을까? 볼이랑 머리 만지는 건 좀 봐주지 않을래?”

“새, 생각도 음란해요…!”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로 쉼 없이 푸른 머리를 열심히 쓰다듬어 내리거나 말랑말랑한 볼을 쭉 잡아 늘인다거나.

같은 성인에게 했더라도 진즉 잡혀갔을 짓거리를 하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어대는 꼴이었다.

아.

내가 길드원을 잘못 들였구나.

내가 죽고 없어지면 청성 길드는 이대로 망해버리겠구나.

길드장은 뒤늦게 후회했다.

그라고 해서 저 아담한 아이를 짐처럼 달랑달랑 들고 다니고 싶었을까.

소녀가 불편해하진 않을까, 괜히 트라우마를 일으키진 않을까 접촉을 최소화해 왔던 건데….

말로는 죄악이니 싫다니 하면서도 배시시 웃는, 붉게 홍조를 띤 소녀를 보자 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역시 저와 동성인 자매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거겠지.

그러니 이건 질투가 아니다.

“으아앙아…!”

“어쩜 머릿결이 이렇게 곱지? 우리 아가 진짜로 물의 정령인 거 아니야?”

아이가 너무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선을 더 넘기 전에 책임지고 말리는 것일 뿐이다.

“둘 다 할 말이 있으니 따라오도록.”

마치 죄인을 대하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길드장의 분노를 겪어본 적 없는 소녀만이 고개를 갸웃.

어라? 길드장님이 기분이 왜 이렇게 나빠 보이지?

“길드장님… 이거… 드실래요?”

통신사 대리점에서 서비스라고 쥐여준 젤리 하나를 슬쩍 내밀었다.

새콤하고 달콤한 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는 젤리.

스님들께 나눠주려고 아껴뒀던 건데, 이거라면 길드장님의 기분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아껴뒀다가 너나 먹어라.”

그런 소녀의 속내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다.

딴에는 열심히 연기하려 하지만, 쭉 내민 젤리를 바라보며 에효-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게 누가 봐도 아까워하는 모습이었으니.

문제는 길드장이 사양하자.

“…마, 맛있어요. 한 번만 드셔보세요!”

아. 길드장님이 어지간히 화나신 게 아니구나!

소녀는 한층 절박하게 젤리를 들이밀었다.

조공이라도 바치듯 고개를 푹 내리 숙이고 양손에 받쳐 올린 젤리 하나.

그 모습은 마치 ‘떡볶이 머거야지!’라며 신나서 뛰쳐나온 초등학생의 코 묻은 돈을 빼앗는 모습처럼 보일 지경이었으니.

상황을 알고 지켜보는 자매들조차 ‘와 길드장님 쓰레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길드장은 그제야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을 슬그머니 풀고는 잽싸게 젤리를 받아먹었다.

소녀의 손아귀 위에 있을 때는 그렇게 커 보이던 게, 길드장이 받아들자 손가락 한 마디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

사실상 간에 기별도 안 갔지만-

“맛있군. 고맙다.”

그렇게 길드장이 진심 반, 연기 반으로 반응을 보인 뒤에야 소녀가 헤헤 헤픈 웃음을 보였다.

역시 화났을 때는 단 걸 먹이면 되겠구나!

작은 오해와 함께였다.

본의 아니게 길드장의 분노를 풀어준 소녀.

‘이건… 기회다!’

캐리어에서 음료를 꺼내던 채로 굳어 있던 한유연이 퍼뜩 몸을 일으켰다.

에잇.

우리가 잘못한 건 둘째치고.

이 작고 귀여운 아이에게 이미 중독되어 버려서 두 번 다시 옛날로 돌아가진 않을 거다.

쫓겨나더라도 소녀는 우리가 데려간다!

어차피 언니는 그동안 혼자서 충분히 즐겼을 테니까!

후….

죽을 땐 죽더라도 감사 인사 한번 받는 건 괜찮잖아?

“이거 다 너 먹으라고 시킨 거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대로 먹고 있어. 맛만 보고 버려도 되니까 사양 말고.”

무덤덤한 척 새빨간 단발머리를 귀 너머로 쓸어 넘긴다.

그렇게 오다 주웠다는 듯 무심하게 소녀의 앞으로 음료 캐리어를 슬쩍 내려 놓는다.

찰랑- 투명한 플라스틱 컵 너머로 형형색색의 음료가 요동친다.

꿀꺽.

비닐을 뚫고 나는 단 냄새에 소녀가 저도 모르게 흥건해진 침을 삼켰다.

여긴… 천국일까? 지상에는 어떻게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게 많은 거지?!

스님들은 그동안 왜 이렇게 심심한 것만 드시던 걸까!

역시 이교도들 사이에도 분파 갈등이 있는 게 분명해!

홀린 듯, 소녀가 멍하니 음료를 바라보며 내면의 식탐과 치열한 대결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 내가 언제부터 음식의 맛을 따졌다고!

미아의 몸으로 옮겨오기 전만 해도 음식은커녕 수액으로 연명하던 처지였다.

대장과 소장은 물론, 위의 일부마저 소원의 대가로 바쳤기 때문이었는데.

역시 이런 사치스러운 음식에 홀랑 넘어갈 수는 없다!

응!

차라리 스님들과 같이 먹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치와 낭비는 죄악이에요!”

결심한 소녀가 양팔을 허리에 걸친 채 단호히 거절했다.

와, 저게 진짜 나랑 같은 인간 맞나?

저렇게 귀여운 생물이 있을 수가 있다고?

한유연은 물론 한다연과 길드장마저 흠칫할 정도로 귀여운 저항이었다.

저 작은 몸으로 암만 흥흥- 콧바람 불어봤자 이미 소녀의 성격은 파악된 뒤였으니.

“그래? 안 먹으면 어쩔 수 없지. 다 버려야겠네.”

극과 극은 통하는 법.

여태 한유연이 소녀의 앞에서 헤픈 모습만 보여줘서 그렇지, 그녀는 누구보다 막 나가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당장이라도 음료를 쏟아 버리겠다는 듯, 음료를 들고 벌떡 일어서자-

“헉! 아, 안 돼요! 여, 열심히 먹어 볼게요!”

소녀 역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쭉 뻗어 들었다.

“…풉.”

그러나 암만 쭈우욱 늘려봤자 짜리몽땅.

한유연이 손을 슬쩍 들기만 해도 닿지 못할 거리였으니.

다급해진 소녀는 교단에서 배웠던 ‘있어 보이는 척’하던 것조차 완전히 잊어버리고야 말았다.

“나, 낭비하면 지옥에 떨어질 거예여! 어서 이리 주세여!”

폴짝, 폴짝-

어떻게든 음료를 돌려받겠다고 열심히 뛰느라 발음이 뭉개지는 것조차 신경 쓰지 못했다.

그야 절박할 수밖에.

한유연, 한다연 자매는 처음 보는 그녀에게조차 친절하게 대해준 착한 이들이 아니던가.

이 음료 역시 호의로 사 준 것이었으니.

그렇게 착한 이들이 음식 낭비로 지옥에 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소원이라도 빌어야 할까…?

시작은 장난이었지만, 어느새 소녀가 울먹거리기 시작한 상황.

“제, 제가 어떻게든 다 먹어 볼게요…,”

어, 어라?

한유연은 뒤늦게 당황했다.

평소에도 악질이란 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제 장난으로 저 작고 귀여운 아이를 울렸다고 생각하니 미친 듯한 자괴감이 치밀었다.

오죽하면 평소에도 ‘우우 스레기’라면서 분위기를 풀어주었을 한다연조차….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니?”

나는 이 일과 무관하다는 뜻, 빠르게 거리를 벌려버렸고.

“어? 어…?”

“…오늘 상담을 좀 길게 해야겠군.”

“으악! 그, 그것만은…!”

소녀가 또래 아이처럼 즐겁게 노는 모습에 잠자코 두고 보던 쓴소리를 참지 않았다.

결국 또륵- 소녀의 발그레 달아오른 볼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 뒤.

“으아아! 내, 내가 미안해! 장난이었어! 자! 여기! 다 마셔…가 아니라! 남으면 나랑 언니가 먹을 테니까, 응? 편하게 맛만 봐도 되니까?”

한유연이 다급히 파르르 두 손을 떨며 소녀의 앞에 음료를 대령했다.

자존심도 다 버린 듯 양 무릎을 덜썩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꼴이었다.

그런데.

“…괜찮아요. 맛있는 건 나눠 먹는 거라고 했으니까요.”

정작 음료를 받아 든 소녀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뾱-! 음료 뚜껑에 빨대를 박아 한유연의 입가로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참으로 자연스러운 배려였다.

다 커서 제 절반밖에 안 되는 아이를 괴롭히던 누구랑은 정 반대인 성숙한 행동.

“나… 진짜 쓰레기였잖아…?”

그 사실을 깨달은 한유연이 입을 쩍 벌린 채 두 눈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녀의 편은 없었다.

“저 못난년이 뭐가 좋다고 음료를 나눠줘! 이리 와, 언니랑 같이 먹자!”

오히려 한다연은 소녀의 첫 음료를 받은 게 저 빌어먹을 동생이라는 것에 질투심을 불태우며 열 손가락을 꿈틀거렸고.

“하아…. 둘 다 그만하고 따라와라.”

이대로 놔뒀다간 온종일….

아니, 소녀가 성인이 돼서 결혼한다고 집을 나선 뒤에야 상황이 정리될 듯했으니.

“당장.”

길드장은 결국 소녀를 혼자 놔둔 채, 염동력까지 써서 자매를 끌어내야 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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