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하하하하-! 과학자! 좋은 아침이다!”
“네? 네… 좋은 아침입니다.”
갈름에게 자양강장제를 넘겨준 다음 날. 빌런 조직으로 출근한 나는 이상하리 만치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갈름을 보며 흠칫 놀랐다. 사람이 저렇게 갑자기 바뀌어도 되는 걸까 싶을 만치 바뀌었다.
사람이 뭘 잘못 먹은 걸까. 호랑이 수인이니까 풀떼기를 주워 먹어서 저렇게 된 걸지도 몰랐다. 내가 그렇게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갈름을 바라보자 그는 내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잠시 멈춰섰다가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겁 먹을 필요 없다! 시비를 걸러 온 건 아니니까!”
“아, 예. 그렇겠죠.”
“오히려 너한테 시비를 거는 녀석이 있다면 내게 말해라! 내가 대신 해결해줄 테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다. 과학자. 부탁이 하나 있는데…….”
아, 그랬구만. 나는 갈름이 내게 친근한 척 말을 걸어온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 없지. 내게 원하는 게 있으니 저리 친절하게 말을 걸어온 거였을 터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사무적이던 갈름이 이렇게 친근해진 이유는 뭘까? 돈이라도 빌려달라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꼴보기 싫으니까 이 조직에서 나가라는 부탁일까. 아니, 후자를 부탁하기엔 안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놀랍게도 갈름이 부탁한 건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어제 만들어준 물약. 몇 개 더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네? 아, 자양강장제요.”
“자양강장제? 그걸 고작 자양강장제라고 말하다니….”
갈름이 대단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뭐가 문제인지 몰라 고개만 연신 갸웃거렸다. 그러나 의문이 드는 것과는 달리 마음은 편해졌다.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보증을 서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양강장제 좀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으니까.
그건 너무나도 쉬운 부탁이었다.
“갈름 씨가 쓸만하다고 생각하시면 보스에게 정식으로 말씀하시면 돼요. 그럼 보스가 공식적으로 생산을 지시하실 테니까…….”
“과학자. 너는 그런 걸로 만족하는 거냐?”
“만족이요? 딱히 만족이고 자시고 할 거 까지는…….”
나야 뭐 지구에 있던 물건을 성분 그대로 베껴서 만들어다가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 물약을 만드는 데 내가 머리를 감싸맨 것도 아니고 돈을 쏟아부은 것도 아니니 만족이니 아쉬우니 말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마음 같아선 아무것도 시키지 말고 돈만 퍼줬으면 좋겠지만─ 레갈리아가 자신을 조직의 과학자로서 스카웃한 이상 최소한의 업무는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 수준이 학부생 수준이건 어쨌건…….
그러나 갈름은 내 말을 무어라 오해한 건지 얼굴 표정을 붉으락푸르락 바꾸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렇군. 내가 보스에게 말하면 된다. 이거지?”
“네. 몇 개 만들어드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꾸준한 공급을 원하시면 아무래도…….”
“그래. 걱정마라. 네 처우에 대해서도 금방 해결해주마.”
“예? 예?”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무서운 기세를 풀풀 풍기며 떠나는 갈름을 본 나는 내가 무언가 말실수를 했던 게 있나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건 없었다. 덕택에 갈름 씨가 왜 저렇게 화가 난 건지 이해할 수 없어 한참을 머리를 감싸맸다.
* * *
기업 이블스의 빌딩 최상층.
회장의 집무실이 존재하는 이 계층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멋대로 들어가시면 안…….
─시끄럽다-!
콰아앙-!
매섭게 문을 박차고 들어선 호랑이 수인을 본 레갈리아는 매번 있는 일임을 직감하곤 쥐고 있던 깃펜을 내려놓았다.
“어이-! 보스! 할 말이 있다!”
“……갈름. 아무리 여가 보고 싶어도 그렇지. 여기가 어딘지 망각한 건 아닌가? 엄연히 절차라는 게 있을 텐데?”
“그깟 절차에 소비할 시간은 없다.”
레갈리아의 말에 코웃음 내뱉으며 소파에 자리 잡은 갈름은 자연스럽게 소파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보스라면 내가 왜 찾아왔는지쯤은 이미 알고 있겠지?”
“아아…… 어제 그 소식이라면 들었네.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건가? 축하하지. 그렇게나 많은 자원을 쏟아부어도 안 되던 일인데…….”
“그거, 과학자 녀석이 만든 물약 덕분이다.”
“……무어라?”
레갈리아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듯 두 눈을 껌뻑였다. 잠시 후, 다시금 눈뜬 그녀는 진심이냐는 듯 갈름을 바라보았다. 갈름은 제가 거짓말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고.
물론 그녀가 갈름이나 아일레에게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만들라고 에이트에게 지시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도움’이 되는 물건이었다.
‘갈름의 신체를 전성기 수준으로 돌려놓는 물약을 만들었다고? 그것도 일주일만에?’
그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인지는 설명조차 하기 힘들었다. 갈름은 이깟 빌런 조직 따위에 소속 되어 있을 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인왕獸人王 갈름Galeum.
전직 군인이요 온갖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전설. 수인족만 아니었다고 한다면 지금쯤 원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허나 수인족이 받는 종족적 차별과 작전 중 터트린 몇몇 사고 때문에 전역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감옥에 가 있어야 할 인물이거늘 이렇게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부터가 그가 세운 전공이 너무나도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그런 갈름이 군인 시절 손에 넣었던 재력이요 인맥, 모든 걸 사용해서도 치료할 수 없던 게 그의 몸이었다. 사실상 세상에 있는 그 무얼 쓰더라도 고칠 수 없는 몸이라는 뜻이다.
‘그게 말이 되나?’
쉬이 믿을 수 없었지만 갈름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어제 보여준 광경은 그가 전성기 때의 힘을 되찾았다는 선명한 증거였다.
물론 억지로 믿고 집어 삼키려고 해도 쉬이 믿을 수 없을 만치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렇군…… 역시 여가 주워온 인재야.”
“그 인재 말인데─ 딱히 본인 대우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뭣이-? 여의 조직이 뭐가 어떻다고-! 업계 최고 복지를 갖췄다고 생각한다만!”
“녀석쯤 되는 과학자라면 그 정도 복지는 당연한 수준이지. 안 그러냐? 일주일만에 나를 전성기로 되돌리는 약을 만드는 천재라고?”
“으으으…… 그건 그렇다만….”
그렇다면 대체 무얼 해주어야 하는 걸까. 레갈리아가 한참 골머리싸매며 고민하고 있을 무렵 갈름은 씨익 웃으며 자신이 과학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달했다.
“녀석이 말하기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기는 고작 이 정도 보여주는 걸로는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그만한 업적을 세웠음에도 말인가?”
“그래. 그리고 하나 더. 보스에게도 적잖은 실망을 내비치더군.”
“으으음……?”
“고작 이 정도로 만족할 거냐? 나는 더 할 수 있다!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으니 뭐든지 맡겨라! 그렇게 말했다.”
말 한 적 없다.
에이트는 그렇게 말한 적 없었으나, 갈름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그가 생각한 적 없는 속마음이 수인왕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던 것이다.
갈름은 사내로서, 그에게 은혜를 입은 수인족으로서 이를 보스에게 전달해주러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이건 에이트뿐만 아니라 보스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에이트가 보스에게 실망을 느끼고 다른 조직으로 떠나가버린다면 크나큰 손실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좋아. 갈름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여도 조금은 더 에이트를 믿어줘야겠군.”
“그래. 그거다. 우선은 녀석이 만든 물약을 조직원 전부에게 배급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마시면 일반 전투원도 어지간한 C급 D급 히어로는 상대할 수 있을 거다.”
“……그 정도란 말인가? 여도 한 번 마셔보고 싶군.”
무언가를 칭찬하는 모습을 딱히 본 적 없는 갈름이 저렇게나 말하니 레갈리아도 에이트가 만들었다는 물약 자체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한 효과가 있다면, 그걸 다운그레이드해서 민간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무얼. 레갈리아 그녀는 빌런 조직의 수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세계를 호령하는 세계적인 공룡기업의 회장이기도 했다. 좋은 상품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뭐, 당장 중요한 건 에이트에게 더 많은 연구를 주는 건가.’
에이트가 들었다면 기겁할 생각을 하며, 레갈리아는 그에게 맡길 의뢰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되었으니, 다음은 아일레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만들도록!”
“……예?”
빌런 조직에 가입한 지 일주일.
아직 한 달도 채 지나기 전이거늘 벌써 두 번째 의뢰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정말 하기 싫다는 듯한 눈빛으로 레갈리아를 바라보았지만, 레갈리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하기 싫어? 길바닥에 나앉고 싶니?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알겠, 습니다.”
“아─ 그렇지, 참. 자네가 만든 물약 말일세. 그걸 우리 조직에 공식적으로 배포하기로 했네.”
“예? 그 말씀은…….”
“음. 양산도 같이 부탁하네. 그럼 이만.”
“아, 아아-.”
글썽거리던 눈물이 기어이 터져나왔다.
나는 곧 닥쳐올 과로를 상상하며 절망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