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트가 새 연구요 자양강장제의 양산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레갈리아는 제 앞에 놓인 물약 샘플을 바라보며 가볍게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이게 갈름이 그토록 칭찬하던…….”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자양강장제, 피로회복제랑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슬쩍- 혀를 내밀어 맛을 본 결과 맛도 그닥 다르지 않은 듯 했고.
이 물약 대체 어디에 특별한 비밀이 숨어 있기에 갈름을 전성기로 되돌려놓았단 말인가? 레갈리아는 그 비밀을 몸소 파헤치기 위해 제 앞에 놓인 물약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양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녀의 작은 입으로도 이를 전부 다 삼키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을 전부 들이켠 레갈리아는 상큼한 레몬 맛에 입맛을 다시다가, 그닥 특별한 효과를 느낄 수 없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 일도 없다니?’
갈름을 전성기로 되돌린 약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먹었을 때에도 똑같이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기리라 생각했다. 갈름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도 히어로마냥 강한 힘을 뿜어낸다든가 그런.
그러나 의아하게도 그녀에겐 그 어떤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래서야 그냥 평범한 에너지 드링크 하나 마신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갈름과 에이트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레갈리아는 혹시 몰라 기업의 연구자들에게 포션의 감정을 의뢰했다. 성분적으로 무언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며.
“─회장님? 여기 사인해주셔야 할 서류입니다.”
“음- 가져오게.”
그 뒤로, 레갈리아는 포션 따위를 생각할 겨를 없이 업무에 집중했다. 오늘따라 몸이 개운하고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그냥 평범한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도 생기는 일 아닌가?
그닥 특별함을 느끼지 못 하고 시간을 보내던 레갈리아가 이상함을 느낀 건 그날 밤이 되어서였다.
저녁을 먹고, 씻고, 가벼운 운동까지 끝마친 그녀는 정확히 10시가 되자마자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린아이는 일찍 자고 일어나야 키가 빨리, 그리고 많이 크는 법인지라 그녀는 이 루틴을 절대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도 평소처럼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들었어야 하거늘, 몸은 피로를 일절 느끼지 못 하겠다는 듯 멀뚱멀뚱 그녀의 정신을 일깨웠다.
“……큰일이구나.”
이대론 잠이 오지 않으리란 걸 직감한 레갈리아는 그저 눈을 감고 침대 위에서 양을 세며 시간을 녹였다. 그녀가 양을 대략 2만 8천마리쯤 세었을 때. 그녀는 해가 떠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을 자지 못 했다.
레갈리아는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출근했다.
그날 밤도 양을 셌다.
잠에 빠질 때까지, 레갈리아는 백만 마리의 양을 세었다.
* * *
“우오오오오-!”
“피로가, 피로가 물러간다아아앗!”
“삼일 밤낮을 새도 괜찮을 거 같아……!”
에이트가 만든 자양강장제는 조직원 모두에게 배부되었다. 조직원들은 피로할 때나 혹은 전투에 나서기 직전에 약을 빨았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지만 레갈리아가 사흘 밤낮을 지새워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처럼, 평소 피로에 찌든 몸이 활력으로 가득찬 것이다.
전투원들의 경우에는 아예 어지간한 히어로보다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평소 그들이 휘두르던 방망이가 기껏해야 운동 좀 한 일반인에 불과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이는 엄청난 쾌거였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수혜를 본 건 갈름이었다. 애시당초 이 물약은 갈름을 위해 맞춤제작된 물건이었으니 그가 남들보다 더한 혜택을 받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으하하하하-! 오거라! 애송이들아!”
갈름은 제 무기를 휘두르며 히어로들과 대적했다. 그가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신입 히어로조차 상대할 수 있는 닳아빠진 수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갈름이 휘두르는 말도 안 되는 위력의 무기를 보며 기함을 터트렸다.
“저 망할 짐승 새끼 왜 저렇게 쎄졌어-!?”
“몰라! 그보다 레드! 짐승 새끼란 말은 종족 차별이야!”
“아, 그런 거 신경 쓸 때냐고 지금!”
“여유가 넘치나 보구나! 그럼 기어를 올리겠다!”
“으아아아아악-! 미친 개새끼야-!”
갈름은 자신이 호랑이 수인이요, 그리하여 개보단 고양이에 가깝단 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개새끼란 말이 쏙 들어가도록 무기를 마구 휘둘렀다.
수많은 전장을 돌파한 전쟁 영웅답게, 갈름의 무기술은 달인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결과 하나만 놓고 본다면 어지간한 달인보다 나았다.
그렇게 검 휘두르며 히어로들을 괴롭히기를 잠시, 무기 휘두르던 갈름의 품속에서 알람이 마구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갈름은 무기 휘두르다 말고 멈춰섰다.
“음- 퇴근 시간이군. 이만 가보겠다.”
“저, 저저 미친 새끼…! 아직 3시야 이 빌런 새끼야!”
“히어로들의 근무 시간은 내 알 바가 아니군. 이만 가보겠다.”
갈름은 그리 말하며 쓰러진 전투원들을 데리고 후퇴했다. 히어로들은 그 뒤를 쫓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 했다. 방금 정정당당히 정면에서 싸울 때에도 갈름을 제압하지 못 했을 뿐더러 약간씩 봐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이쪽을 죽일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무기를 휘두르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그런 상대를 추격하다가는 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단 뜻이었다. 히어로는 빌런을 제압하는 사람이지 목숨을 내다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망치는 빌런 조직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히어로들은 뒤늦게 복귀했다. 그리고 협회로 돌아가 불만을 토해냈다.
“아우-! 소장님! 저 짐승 새끼 그냥 체포하면 안 됩니까!?”
“안 된다.”
“아니, 왜 안 된다는 건데요!?”
갈름의 정체요 그가 어느 빌런 조직에 속해 있는지, 심지어는 그 빌런 조직이 어디에 있는 지 조차 알고 있는 상황이거늘 그를 체포해선 안 된다니?
그냥 그가 쉬고 있는 틈을 타서 조직의 기지로 히어로가 떼로 몰려가 체포하면 되는 거 아닌가? 히어로인 레드가 생각하기엔 그러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지 못 하는 이유가 있었다.
“거긴 대통령도 함부로 못 들어가.”
“예? 대통령도 못 들어간다뇨?”
“그 도시는 전부 이블스 기업의 사유지다. 널린 건물부터 길거리 돌아다니는 차량까지 전부 마찬가지고. 도시에 사는 시민들은 이블스의 물건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다.”
“……아니, 빌런이잖아요. 시민을 다치게 할 지 모르는데.”
“며칠 몇 시 몇 분에 습격할 거라고 예고까지 하는 애들이? 심지어 그 시민들 대부분이 이블스 기업의 직원이거나 하청 업체의 직원이라는 건 아냐? 거기 시민들이 대피령 내리면 업무 시간에 일 안 해도 된다고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 말을 들은 레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말문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그게 대체 무슨 꼴인가. 그래서야 마치…….
“그게 무슨, 완전 애들 소꿉장난이잖아요…….”
“그거 어디 가서 말하면 욕 먹는다. 배가 불렀다고.”
“왜요……?”
“빌런들이 게릴라 작전 펼치면서 히어로 가족들 머리에 총알부터 꽂아넣는 도시나, 아예 외계에서 찾아와서 대화도 안 통하는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 도시보다는 나으니까. 아니면 너 그런 도시로 전출 갈래?”
“……아니요, 잘못했습니다.”
그곳으로 가면 네가 원하는 히어로 놀이를 실감나게 할 수 있다는 소장의 말에 레드는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확실히. 납득은 할 수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빌런들이 마구잡이로 날뛰고 사람들을 마구 죽여대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잘 생각해보면 이런 형태의 빌런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 도시에서 활동하면서 일종의 룰을 만들고 있었다. 이 도시에선 이렇게 활동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다른 누구보다 자신들을 먼저 적으로 돌리게 될 거라고.
실제로 이 도시의 빌런 범죄 사망률은 다른 도시에 비해 십분지 일도 안 되지 않는가?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그런 이상한 생각을 품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제압해서 체포하는 거다. 다행히 그런 것까지 뭐라 하지는 않으니까.”
“……그거 말인데요. 그 짐승 새끼 이상하리만치 강해지지 않았어요? 원래 그렇게 강했나-.”
“레드.”
“아, 미안. 짐승이 아니라 빌런 새끼.”
레드의 말에 소장은 그럴 수도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며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 물건을 본 레드는 이게 뭐냐는 듯 소장을 바라보았다.
소장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제가 꺼내든 물건의 정체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블스 기업에서 내놓은 신제품이다. 에너지 드링크지.”
“이건 왜…….”
“우리 과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이 제품은 대략 몇 만분의 일 정도로 희석된 거 같은데 그럼에도 현존하는 모든 에너지 드링크의 성능을 아득히 뛰어넘는다고 하더군. 가격 대비 성능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악의 조직이 운영하는 기업에서 내놓은 성능 좋은 에너지 드링크.
그리고 갑자기 강해진 악의 조직의 간부.
이 둘의 관계를 의심하지 못 한다면 목 위에 있는 것이 모자걸이는 아닐까 의심해봐야만 했다.
“─우리는 이걸 만든 과학자를 찾는다.”
“……찾으면요?”
“어떻게든 우리 쪽으로 회유해봐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소장도 레드도 그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걸 만든 게 누구인지는 몰라도 세계적인 공룡기업, 이블스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 * *
“─에취!”
“괘, 괜찮으세요……?”
“아, 네. 갑자기 오한이 끼쳐서.”
나는 코를 훔치며 연구실까지 찾아온 아일레를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동안 파악하기를 자기 의견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이 음침한 소녀가 제 연구실까지 찾아온 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렸다.
그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그, 보, 보스한테 들었어요. 에이트 씨가 제 도구를 만들어주실 거라고…….”
“예. 그렇죠. 평소에 쓰던 건 있으세요?”
“아, 아뇨. 전 그냥…… 마법소녀를 만날 수 있어서 빌런 조직에 들어온 거라서…….”
“흠. 그럼 그냥 제가 알아서 만들면 되나요?”
“……뭐든지 상관 없나요?”
아일레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드물게 자기 의견을 표출하려나 보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일레는 놀랍게도 말도 더듬지 않고 이야기했다.
“─전 촉수가 되고 싶어요.”
“……네?”
“촉수요. 모르세요? 마법소녀 동인지를 보면 자주 나오는.”
아니, 알긴 하는데.
나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아일레를 바라보았다.
이 음침한 소녀는 진심이라는 듯 나를 마주보았다.
벌써 머리가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