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버스터가 어지간한 컴퓨터 이상의 성능과 현존하는 모든 Ai를 찍어 누르는 성능을 갖고 있다는 게 알려지자, 사람들은 곧장 이 네모버스터가 어떻게 그런 성능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 분석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 실물이 없다면 모를까 네모버스터는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 중 하나였으니까.
방구석 유튜버, 유명 대학의 교수, 정부 조직의 과학자까지.
수많은 과학도들이 네모버스터를 손에 넣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 어떤 이도 이 자그마한 태엽 로봇이 어떻게 그런 성능을 내는 지 이해하지 못 했다.
“뭐지?”
“어째서 이런 손바닥만한 회로로 그런 성능을 낼 수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이건 물리학을 완전히 무시하는 수준이야!”
과학자들은 기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손바닥만한 장난감에서 대체 어떻게 그런 성능을 낼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발견한 중세 시대 사람들이 이런 기분일까. 눈앞에 결과물이 있고 그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재현하려는 시도 또한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재현에 실패했다고?”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가? 공장 직원을 매수해서 설계도도 빼돌렸지, 설계도대로 완성된 실물도 있지. 그런데 재현을 못 해?”
책임자의 말에 과학자는 면목이 없다는 듯 목덜미를 계속 더듬거렸다.
“아마도 설계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특별한 제조 과정이 있는 듯 하여서…….”
“그걸 알아내란 말이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계도에서 제작 순서를 숨긴 거라면 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까짓 재현이 뭐가 어렵다고?”
“물론 설계도와 현물이 있으니 무작정 따라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하겠지만, 그걸 위해서 필요한 숫자가 천문학적인 수준인지라…….”
안 된다 안 된다 말만 하는 과학자들을 본 책임자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문과였던 그가 과학자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그가 이해한 건 누구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걸 설계도 갖고도 따라하지 못 하는 과학자들이 무능하단 것이었다.
“그럼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동력은? 그만한 에너지가 어떻게 태엽에서 나왔는지는 알아냈나?”
“태엽 자체는 저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태엽과 크게 차이 나지 않더군요. 최대한 돌려봐야 LED에 잠깐 불 키우는 게 한계인…….”
“잠깐. 그러면 대체 어떻게 그런 동력을 낸다는 건데? 안에 내장된 회로는 어떻게 작동시키고?”
“아마도 회로에 숨겨진 기능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회로에 필요한 전력이 고작해야 그 정도 수준이라는 뜻으로…….”
LED 전구를 아슬아슬하게 킬 정도의 저전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형 그래픽카드를 넘어서는 고연산력과 로봇을 움직이는 고출력기.
그 말을 들은 책임자는 그제야 장난감 로봇에 들어가 있는 회로가 어떤 수준의 물건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만든 이블스 기업이 얼마나 괴물 같은 기업인지도.
“……그걸 만든 이블스 기업은 뭐 하는 녀석들이라냐?”
“글쎄요. 외계인이라도 잡은 게 아닐까요?”
“그런가…….”
책임자는 히어로 협회에 이블스 기업 안에 불쌍한 외계인이 감금되어 있는 거 같으니 빨리 구하러 가라고 신고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뭐 하는 녀석이길래 이런 걸 만들었는지, 얼굴 한 번 보고 싶군.”
* * *
나는 대뜸 아일레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과, 과학자 씨…… 저, 저랑 같이 쇼핑 가시지 않을래요?”
“응? 좋아. 언제?”
“지, 지금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일레가 쇼핑을 가자고 하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아일레를 따라 쇼핑몰로 향한 나는 의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일레는 양손 가득 마법소녀 굿즈를 들고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에헤헤헤. 가, 감사합니다. 과학자 씨.”
“갑자기 웬 쇼핑인가 했더니…….”
“호, 혼자서 오면 다 못 사거든요…… 한 명당 구매 제한이 있어서…….”
그녀는 그리 말하며 품에 든 마법소녀 굿즈를 가득 끌어안았다. 그게 그렇게 좋은 지는 둘째치고서, 그녀가 원하는 물건을 구하지 못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악의 마법소녀. 악의 조직 간부이지 않은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보스한테서 뜯어내면 그만이니까.
“중고로 사면 되지 않아? 리셀로 구하면 못 구하는 건 없을 거 같은데.”
“주, 중고라니…! 제 마법소녀가 남의 손에 닿는 꼴은 못 봐요…!”
“제 마법소녀라니, 네 게 아니잖아…….”
“그, 그리고 되팔렘 하는 새, 사람들도 싫어요…! 마법소녀한테 이득이 간다면 모를까…!”
“아, 그건 인정.”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던 와중, 지나치던 가게 안쪽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손님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였다.
“─네모버스터가 왜 없어! 여기 있는 거 다 알고 왔는데!”
“죄송합니다 손님. 그 제품은 이미 다 팔려서…….”
“아니! 여기 있는 거 다 안다고! 빼돌릴 생각 말아! 당장 내놓으라고!”
이블스 사의 신작. 네모버스터를 찾는 사내를 본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기업에서 만든 물건을 사주려는 마음은 정말이지 고맙지만, 딱 보기에 저 사내가 장난감이 필요해서 그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기 많네요…… 네모버스터.”
“인터넷에서 가격이 확 올랐으니까.”
“아, 그럼 저 아저씨도…….”
“되팔이 목적이겠지.”
네모버스터 안에 내장된 회로가 어지간한 최신형 그래픽카드보다 낫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재고로 남아있던 네모버스터를 순식간에 싹쓸이해가기 시작했다.
덕택에 지금 네모버스터의 시장 가격은 1천 달러 이상. 판매가가 10달러도 안 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100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가격이 올라갔으면 올라갔지 내려갈 일은 없었다. 이블스 기업에서는 이미 네모버스터의 생산·판매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회수는 안 해서 다행인가.’
만약 회수까지 했더라면 더 큰 소란이 일어났을 텐데. 다행히 레갈리아는 회수가 아닌 판매 중단만을 결정했다.
상품에 아무런 문제도, 하자도 없는데 성능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이유만으로 회수를 결정했다간 기업 이미지가 바닥을 긴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쓸데없이 회수를 했다간 이번 사태를 이블스 기업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사고쯤으로 생각하겠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1회성 한정판 느낌으로 내놓았단 태도를 고수하면 사람들이 이블스 기업의 기술력을 찬양하리란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정확히는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한…….’
그 사실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곳 과학 기술이 그토록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진 못 했다. 무기의 수준이 무척이나 뛰어났기 때문이다.
음속의 20배로 관성 기동하는 전투기나 인공위성에서 사람을 떨어트려도 안전한 우주복 등등…… 어지간하게 발전하기 않고서야 성공시킬 수 없는 기술들이 여럿 있길래 이곳 기술력도 나름 쓸만하구나 생각했는데.
다시 찾아보니까 그거 다 초능력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더라.
‘그걸 다 초능력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냐고.’
이른바 초능력 공학. 일단 그럴싸한 겉모습만 만들고 나머진 몽땅 다 초능력자의 초능력에 의존하는 말만 공학이지 공학의 틀을 쓴 차력쇼.
허나 초능력 없는 지구에서 온 나는 그런 공학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 했고, 덕택에 이런 오해들이 생겨났다.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지.’
이번 사태로 내가 가진 지식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탐스러운 물건인지, 그 지식들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함부로 풀었다간 세계대전을 아무렇지 않게 일으킬 수 있는 기술들…… 레갈리아가 그토록 호들갑 떨던 이유도 대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저기- 과학자 씨?”
“응? 왜?”
“생각 중에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어울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일레의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돌아간다고 한들 어차피 할 일도 없었다. 아일레는 내 답변에 웃음을 짓더니 잽싸게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했다.
“여, 여기 근처에 마법소녀 콜라보 카페가 있거든요! 펴, 평소엔 인싸들이 가득한 곳이라 가보질 못 했는데…….”
“아, 웬일로 말을 다 건다 했더니만.”
“보, 보통은 친구나 애인이랑 같이 간다는데, 저는 둘 다 없어서…….”
“그럼 오늘은 내가 아일레 애인이네?”
“네, 네에엣-!? 노, 농담하지 말아주세요!”
가볍게 건드리니 화들짝 놀라는 아일레를 보며 끅끅 웃음 터트린 나는 그녀의 토닥거림을 맞아주며 같이 마법소녀 콜라보 카페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돈이 다 떨어진 아일레가 은행에 들리자고 말해서 은행으로 발길을 돌렸다. 카드를 쓰면 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마법소녀에게 가는 돈은 1%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들린 은행에서 강도를 만났다. 초능력 쓰는 은행 강도를.
“─모두 움직이지 마!”
화르륵-!
순식간에 경비를 불태워버린 강도는 손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협박했다.
“전부 다 엎드려라! 너희들도 이렇게 무가치하게 죽고 싶지는 않겠지!?”
“어, 어어……”
“꺄아아아악-!”
“가, 강도다!”
사람들은 잽싸게 바닥에 엎드렸다. 이미 사람을 한 명 불태워죽인 강도의 말을 무시했다가 똑같이 불타 죽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나도 아일레를 끌어 안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품 안에 껴안기며 강제로 끌어내려진 아일레는 은행 강도를 이글이글 노려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일레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하지마.”
“……그치만-! 가만히 두고만 보라고요…!?”
“여기서 변신했다간 네 정체를 들킨다. 네 정체가 들키면 같이 있는 나도 의심받을 테고. 무엇보다 우리는 히어로가 아니야.”
그 말에 아일레는 손을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아일레는 얼마 전까지 무능력자였다가 악의 마법소녀로서의 힘을 손에 넣은 소녀. 제 힘을 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녀는 정의의 마법소녀가 아니다. 히어로도 아니었다. 그녀는 악의 조직 간부. 악의 마법소녀. 이른바 빌런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두면 시민들이-.”
“괜찮아.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냐?”
이곳은 이블스 기업과 거래하는 주 은행. 즉, E 시 최중요시설이었다. 이런 곳이 고작 경비 하나만 두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과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깥에서 경찰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은행 강도도 그 발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틀었지만, 달려든 경찰의 속도는 감히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치 빨랐다.
순식간에 강도를 제압하고 바닥으로 찍어누른 경찰은 그대로 강도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아차 하는 사이에 제압당한 은행 강도는 발버둥치며 소리쳤다.
“윽-!? 뭐, 뭐야! 이거 놔!”
마지막 발악이라는 걸까, 수갑 찬 손으로부터 불길이 쏘아져 나왔다. 과연 기민했던 경찰도 근거리에서 쏘아대는 불꽃은 피하지 못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그 불길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녹여버렸던 불꽃이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꺄아아악-! 비명을 내뱉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경찰은 그 불길을 얻어맞고도 살아남아선, 강도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컥-!”
주먹 한 방에 기절한 강도를 내려다보며 경찰은 퉤- 하고 침을 뱉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제 상의가 모조리 불타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곤 잽싸게 제 가슴팍을 가렸다.
“─흠흠, 시민 여러분. 강도는 제압했습니다! 이제 안심하시고 하시던 일을 계속하시면 되겠습니당.”
“우, 우와아아아아-!”
경찰의 말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리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경찰은 그 박수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아주다가, 잠시 후 들어온 동료 경찰이 건네주는 겉옷을 걸쳐입고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앞섬만 대충 여민 채 이쪽으로 다가오는 경찰을 본 나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눈을 피했다. 설마 아까 훔쳐보던 게 걸렸나……?
“아일레-!”
“레, 레비탄 씨.”
“이런데서 만나다니, 신기한 일도 다 있넹!”
그러나 경찰은 내가 아닌 아일레 쪽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분명 쇼핑 같이 올 친구도 없다고 했던 아일레가 아는 사람이라니?
나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경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경찰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눈웃음을 지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과 같은 눈빛이었다.
“이게 그 소문의 과학자양?”
“……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엥-? 보스가 말 안 해줬엉?”
경찰은 그리 말하며 제 머리 위에 자란 제 토끼 귀 옆으로 손을 가져다대며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뿅뿅- 악의 조직 간부. 레비탄이라고 행! 레비땅이라고 불러줭-!”
토끼귀를 쫑긋거리며 그리 외치는 경찰을 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도시는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대체 누가 알겠는가.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숨 걸고 강도로부터 시민의 목숨을 지켜낸 경찰이 빌런이라니?
아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