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블스 기업 최상층.
악의 조직의 총수 레갈리아는 제 비서에게 과학자에 대한 걸 보고받았다.
“─이상입니다.”
“흐으음…… 그렇군. 배신할 의향은 없어 보였나?”
“예. 히어로 측에 붙기 위한 게 아니라 니베르나 개인을 향한 호의로 보이더군요. 실제로 니베르나 본인도 과학자님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고요.”
“그럼 되었다.”
에이트가 니베르나에게 슈트를 만들어준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레갈리아는 과학자가 말하지 않아도 그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사는 집이요, 장사 중인 건물, 신분, 쓰는 카드까지 모조리 레갈리아의 지갑에서 나온 물건 아닌가?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걸 레갈리아에게 의지하고 있으니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숨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과학자가 대뜸 히어로 하나에게 슈트를 만들어줄 때에는 그녀도 나름 기겁했지만…….
‘배신할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니라면야.’
만일 에이트가 악의 조직을 배신하고 히어로 협회에 붙으려고 했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졌을텐데. 그가 스스로의 기술력이 보통이 아님을 자각한 상황 아닌가. 그가 머릿속에 갖고 있는 지식의 일부만 풀어도 떼돈을 벌어들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바, 에이트는 순식간에 스스로를 지킬 재산을 획득했으리라.
물론 지금껏 분석한 에이트의 성격상 자신들을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지구에서 온 지식의 보고를 쓸 수 없게 된다는 건 참으로 크나큰 문제였다.
왜냐하면 레갈리아는 악의 조직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과학자의 도움이 무척이나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일단 그 니베르나라는 히어로도 반쯤 우리 조직원이라 생각하고 지원하도록.”
“예. 어떤 식으로 지원할까요?”
“CF 몇 개 찍게 해주고 공인 히어로에서 프리 히어로로 넘어오게 해. 우리 과학자의 슈트를 갖고 있는데 히어로 협회놈들 손에 맡기는 건 조금 그렇군.”
“협회에서 놓아주지 않을 텐데요.”
“후원금 줄인다고 하게나.”
레갈리아의 명령을 들은 비서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곧장 회장실을 나섰다. 그녀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선 한시 바삐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홀로 남은 레갈리아는 잠시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새카만 천장. 무늬 하나 없어 생각에 잠기기 좋은 그 천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는 군.’
그녀가 악의 조직을 설립한 이유.
지금껏 성공하지 못 한 그 목표의 가능성이 기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모두 지구에서 떨어진 과학자 덕분이었다.
그가 가진 지구의 지식. 이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통해 발전한 그 기술이 지금껏 막혀 있던 활로를 뚫어주었다.
‘그때까지, 놓칠 수는 없지.’
목적을 이룰 때까지.
레갈리아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과학자를 놓아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 * *
소일거리삼아 가게를 차리기는 했지만 매일 출근하는 건 역시나 귀찮은 일이었다. 이상하리 만치 몸 움직이기 싫은 오늘 같은 날은 더더욱.
자체 휴일을 결정한 나는 가게 문을 열지 않고 연구실에서 뒹굴거렸다. 가게로 출근하지 않을 때에는 연구실에서 뒹굴거리는 게 일과였으니까.
그렇게 연구실에서 초능력에 관한 연구 논문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와중, 대뜸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아일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 과학자 씨-! 좋은 아침…!”
“아일레? 무슨 일이니?”
“과학자 씨.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시간이야 항상 널널하지. 아일레가 부탁한다면 없는 시간도 만들 수 있고.”
“그, 그럼 지금! 잠깐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아일레는 그리 말하며 나를 이끌고 연구실 바깥으로 향했다. 친구 하나 없는 그녀가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악의 조직원 중 한 사람일 것이다.
당장 내 이름만 봐도 에이트(8) 아닌가. 이는 내 앞에 최소 7명의 조직원이 더 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만난 간부는 갈름, 아일레, 레비탄 세 명뿐이었다.
새로 만날 조직원은 어떤 사람일까 기대하며 아일레의 뒤를 따라 나선 나는 이곳에서 볼 거라고 생각치 못 한 사람을 만나 뻣뻣하게 굳었다. 상대방도 내가 굳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아일레, 저것 좀 봐. 놀라서 딱딱하게 굳었네.”
“괘, 괜찮아요 과학자 씨! 이쪽은 비라 언니… 우리 조직 간부에요.”
“……에이트입니다.”
나는 그리 말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가 곧장 회수한 뒤 왼손을 다시금 내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른팔과 왼다리 없는, 휠체어 타고 다니는 장애를 가진 여성을 만나면 누구나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으리라.
비라는 왼손으로 내 왼손을 맞잡았다. 이제 보니 왼손도 퍽 멀쩡하진 않았다. 불에 그을린 흉터투성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트릴 만큼 흉측한. 정말이지 혼신을 다해 무표정을 유지했다.
“비라야. 이 조직의 간부지.”
“간부, 라고요.”
“왜? 팔다리 없는 장애인이 간부라니까 신기하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니긴 무슨. 얼굴에 티 다 난다.”
할 말을 잃고 침묵을 유지하자 비라는 재밌다는 듯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뭐, 장난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그냥 간부끼리 인사 한 번 안한 거 같아서. 인사나 하러 온 거야.”
“인사 두 번 했다간 심장 떨어지겠는데요…….”
“에이 뭘. 이 정도 가지고. 내가 진심으로 나서면 수십 명이 입 뻥긋 못 하게 할 수도 있는데.”
농담 치고는 지나치게 사실감 넘치는 이야기였던지라,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넘어갔다. 이런 식으로 사람 놀리는 걸 즐기기라도 하는 건지 비라는 그 뒤로도 몇 번 더 대답하기 곤란한 농담들을 던졌다.
그렇게 농담을 주고 받고 대화를 나누며 친분이 어느 정도 쌓였을 무렵- 비라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갈름의 몸도 네가 고쳐줬다면서?”
“예? 그게 무슨…….”
“네가 무슨 에너즈 드링크 같은 걸 만들어줬다고 하던데.”
“예. 만들어드리긴 했죠.”
갈름의 몸을 고쳐준 기억은 없다. 자양강장제는 일시적으로 기운이 나게 하는 음료지 근본적으로 부상을 치료하거나 하는 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라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기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 의수도 만들어줄 수 있어?”
“의수……요?”
“응. 의수.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감각도 느껴지는 의수.”
비라는 그리 말하며 제 휠체어 아래에 있는 목각 의수를 꺼내들었다. 끼릭끼릭- 한손으로 제 오른팔을 조립한 비라는 목각 의수를 움직여보였다.
손가락이 뚝뚝 끊겨 움직이고, 손목이나 팔목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조잡한 의수가 눈에 들어왔다.
“봐? 이건 의수 제작 전문가가 만들어준 물건인데…… 전문가가 만들었음에도 개판이란 말이지. 힘조절도 안 되고,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그래서 저한테 의수를 새로 만들어달라고.”
“응! 갈름의 몸을 고쳐줬을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면 그런 의수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니야?”
그녀는 퍽 기대가 담긴 목소리로 물었지만, 미안하게도 내게 그런 기술은 없다. 그녀가 바라는 수준의 의수를 만드는 건 정말이지 복잡한 기술이 여럿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술은 의수를 조형하는 기술이었다. 그녀의 원래 팔다리처럼 의수를 만드는 기술…… 이건 과학적 지식보단 손재주가 필요한 물건이었기에, 아무리 나라고 해도 쉽게 재현할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건 좀 어려울 거 같은데요.”
“엑- 못 해?”
“불가능 한 것도 있기 마련이죠. 제가 뭐 신도 아니고.”
“……그렇구나. 못 하는 구나.”
실망했다는 듯 우울해하는 비라를 보며 퍽 미안한 마음이 솟구치기 시작했을 무렵, 그녀는 곧장 얼굴 표정을 바꾸며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분명 본인이 우울해할 때마다 주변 분위기를 강제로 끌어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리라. 팔다리 없는 장애인이 우울해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뭐- 그럼 악의 조직 천재 과학자도 못 만드는 물건을 발견한 내 승리인가?”
“승패가 있는 이야기가 아닌 거 같은데…….”
“아무렴 어때! 아니면 뭐야. 내 승리 인정 안 해주면 지금 질질 짠다? 다년차 장애인이 눈물 뽑아내는 솜씨 보고 싶은 게 아니면─.”
그 뒤로 제게 승리를 양보하라느니 어쩌니 하는 비라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던 나는 세 시간 동안 귀가 아려올 정도의 수다를 듣고 나서야 풀려났다.
머릿속에 간부 중엔 정상이 없다는 선례가 하나 더 추가될 무렵, 연구실에 도착한 나는 방금 전 비라가 지었던 표정을 떠올리며 쓴웃음지었다.
‘아니, 왜 만들기도 어려운 의수를 만들어달라는 거야?’
차라리 팔다리를 새로 돋게 해달라는 쪽이 더 쉬웠다.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빨간약의 구성 성분을 떠올리며 연구에 들어갔다.
* * *
끼릭끼릭-.
비라는 휠체어를 끌면서 제 방으로 돌아왔다. 방이라기보단 병실에 가까운, 개인 용품이라고는 일절 존재하지 않는 삭막한 방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휠체어에서 내리고 침대에 몸을 던진 비라는 의수를 해체하고 옷을 벗어던진 뒤 그대로 드러누웠다.
팔다리 하나 없이 필사적으로 옷을 벗어던지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애벌레가 된 듯한 느낌이 된다. 애벌레만도 못 한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자괴감이 더더욱 온몸을 지배한다.
“……죽고 싶네.”
혼자만의 시간. 우울한 일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순간 너덜너덜한 마음은 그녀의 정신을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제 가벼운 인사나 다름 없었다. 오늘도 또 시작이구나-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숨이 턱 막혀온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말로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생존 본능을 강제로 끌어낸 비라는 그제야 몸을 뒤집었다.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슬쩍- 그녀의 시선이 잘려나간 제 팔다리로 향한다. 제 보스를 지키다가 생겨난 부상. 덕택에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보상을 받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녀는 혼자서는 걷지도 못 하는 애벌레에 불과한데.
의수니 의족이니 그런 게 있어도 걷는 게 불편하긴 매한가지였다. 진짜 팔다리가 아닌 가짜 팔다리는 결코 그녀의 부족함을 채워주지 못 했다.
그녀가 가진 초능력이 팔다리를 기반으로 발생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팔다리가 절반씩 잘려나간 그녀는 초능력조차 제대로 쓰지 못 하는 무능력자가 되었다. 사실 팔다리 잃어버린 것보다 그쪽이 더 충격적이었다.
초능력을 기반으로 아가씨를 지키던 그녀가 이젠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아아, 오늘따라 우울한 게 오래 가네. 그 날인가…….’
비라가 자신의 주기를 계산하며 우울감으로부터 억지로 눈 돌리고 있을 무렵. 늦은 시간임에도 누군가가 찾아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비라 님? 안에 계십니까?
“으응……? 누구-?”
─간호원입니다.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허락을 맡고 방 안에 들어선 간호원은 더러워진 방 안이요 그녀가 내던진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그녀의 몸을 마사지했다. 팔다리 주무르며 불편한 곳이 없는지 확인한 간호원은 알약 하나를 꺼내든 뒤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건 뭐야?”
“과학자님께서 전달해달라고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주무시기 전에 드시라고.”
“으응-? 알겠어.”
대체 무슨 약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비라는 알약을 삼킨 뒤 목욕탕으로 향했다. 간호원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끝마친 이후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푹신한 베개에 몸을 기대 누우면, 이렇게 사는 것에 가치가 있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그녀는 그저 죽지 못 해 살아가는 시체에 불과했다.
‘내일도, 다음 주도, 다음 달도, 내년도…… 앞으로 평생 쭈우욱 이렇게 애벌레처럼 살아가는 거야…….’
악몽을 꿀 정도로 암울한 생각과 함께, 비라는 잠에 들었다.
“끄으응…….”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면서 가위에 눌렸다. 온몸이 간질거리는데 정작 몸은 1mm도 움직이지 않는 그런 가위였다.
답답했던 가위에서 드디어 풀려나 기지개를 켠 비라는 잠결에 침대를 내려왔다. 다리가 하나밖에 없어 곧잘 쓰러지기에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야 하거늘……!
툭-.
“……어?”
침대에서 두 발로 내려온 비라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오른팔로 제 왼발을 만지작거렸다. 그곳엔 다리가 있었다. 수년전에 잃어버린 제 다리가.
툭툭- 다리를 만지작거리던 비라는 제가 양손으로 다리를 만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사라졌던 왼발뿐만 아니라 오른팔마저도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어, 음…….”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보고서 말을 잇지 못 하던 비라는 조심스럽게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이제 두 번 다시 보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멀쩡했던 자신이 서 있었다.
징그러운 화상 흉터도, 잘려나가 일그러진 뭉특한 팔다리도 없는.
과거의 자신이.
“아, 아하하- 이거 꿈은 아니지……?”
조심스레 뺨을 꼬집어 본 그녀는 찌르르한 고통을 느끼며 이게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꿈이, 꿈이 아니네…….”
어째선지.
눈앞이 흐려진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비라는 자신이 이토록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팔다리 잘려나갔을 당시에도 이렇게나 눈물 흘리진 않았는데.
그때 미쳐 흐르지 못했던 눈물이 이제와 쏟아져 나오나보다.
그녀는 그저.
하염 없이.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