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종의 시체는 뒤늦게 달려온 경찰이 처리해주었다. 경찰은 우리에게 경례를 하며 품속에서 수표 종이 하나를 꺼내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건 포상금입니다. 시청으로 가시면 교환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오- 정말요?”
“예. 나중에 정의로운 시민상도 같이 수여될 예정이니, 그때 꼭 참석해주셨으면 하는 바…….”
“네-! 꼭 갈게요!”
싱글벙글 웃으며 알겠다고 답한 비라는 경찰이 저 멀리 사라지자 수표를 냅다 쓰레기통 안에 집어 던졌다. 탁탁- 양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비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마주보았다.
“왜? 악의 조직원이 경찰한테 상 받고 그럴 수는 없잖아?”
“레비탄 씨는 경찰 일 하던데요.”
“일 하는 거랑 상 받는 건 다르지? 걔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중에 할 수 있는 게 경찰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거기도 하고.”
그리 말한 비라는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걸쳐 올렸다. 툭- 가녀린 팔뚝이 내 몸을 강제로 끌어당겼다.
“그보다, 어때? 이 누나 굉장하지. 반했어? 응?”
“굉장하다면 굉장한데…… 팔다리 날아간 적 있는 허접한 능력이잖아요.”
“아-! 그걸 건드리는 거야!? 나름 트라우마인데!”
비라는 볼을 부풀리고 입술을 뾰루퉁하게 내밀었다. 다 큰 성인 여성이 의도적으로 내보이는 애교는 솔직히 말해서 보고 있기 힘들었다.
뭘 하느냐는 듯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비라도 자기의 애교가 너무 심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실웃음을 내뱉었다.
“헤헤- 좀 과했나?”
“아뇨. 잘 어울리세요.”
“칭찬이 아니라 욕 같은데? 아무튼- 어지간하면 내 능력을 뚫고 너를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팔다리 날아갔을 때도 아가씨는 지켰고.”
나는 방금 전 보았던 각성종의 돌격을 떠올렸다. 각성종의 크기는 어지간한 코뿔소만했으며 그 속도는 어지간한 차량보다 재빨랐다. 그러니까 수천 킬로그램 무게의 짐승이 시속 백여 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들었단 뜻이다. 생물학적으로 이 속도를 낼 수 있는 짐승은 없다.
근육의 힘은 단면적에 비례하는 데 반해 무게는 부피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각성종보다 백 배는 가벼운 치타가 겨우 시속 100여킬로미터밖에 내지 못 한다는 걸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즉, 각성종의 돌진은 단순히 근육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초능력이 뒤섞인 돌진이라는 뜻이었다. 아마도 그 안에 담긴 물리적 에너지는 전차의 포격만큼이나 위협적이었을 것…….
‘그걸 미동도 없이 막아내다니, 생각보다 튼튼한데.’
순간적으로나마 과학자로서의 본성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대체 얼마나 큰 충격까지 막아낼 수 있을지, 저걸 부수려면 뭘 들고 와야할 지-.
나는 그녀의 배리어를 샅샅이 분석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억지로 짓눌렀다. 이 세상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쓴웃음지은 나는 그녀에게서 천천히 떨어졌다.
“땀냄새나요.”
“……그, 그래? 미안- 내가 너무 가까이 달라붙었지…?”
“농담이에요.”
“─이 녀석이!”
비라가 장난스럽게 내 전신에 달라붙었다. 태양 아래 달궈져 땀으로 끈적거리는 살결이 내 몸에 달라붙었다.
* * *
그 뒤.
조직으로 복귀한 비라는 제 복귀를 조직원들에게 알렸다.
“비라─? 팔다리가 다시 생겼군. 분명 고칠 수 없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응! 운이 좋았지.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거든.”
“하긴, 내 몸뚱아리도 고쳐주는 녀석인데 팔다리쯤이야…… 그렇다면 한 판 뜰 수 있겠군?”
갈름은 팔다리 돌아온 비라를 보며 기쁘게 미소지었다.
“어, 언니-!? 팔다리가…….”
“아일레일레-! 우리 아일레 언니가 안아보자!”
“으으윽…… 떠, 떨어져주세요….”
아일레는 어째선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비라를 바라보았다. 기쁘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복합적인 감정이 그녀를 괴롭히는 듯 했다.
“비라양-!? 다 나은 거양!?”
“레비땅! 다 나았지롱!”
“꺄아아앙-! 좋앙! 같이 놀러가장!”
레비탄은 과하리 만치 활기차게 비라를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일레가 그토록이나 떨떠름했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음침아싸찐따인 아일레는 외향적이고 활기찬 사람에게 쥐약이다.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이 오직 한 사람. 레비탄뿐이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팔다리 돋아나더니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인종인 인싸로 초특급진화해버린 상황. 그녀의 이성과 본능이 인싸가 된 비라를 보며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리라.
‘저건 시간이 답이지.’
나는 아일레의 미래를 예측하곤 웃음지었다. 그녀가 갑자기 인싸가 된 비라를 거북해하건 어쨌건 결국 함락당해선 예전처럼 사이가 좋아질 것이다. 거북했던 인싸와 친하게 지내며 본인도 나름 인싸가 된 기분을 즐길 것이고.
그리하여 저 암울한 성격도 조금은 고쳐지리라. 그건 좋은 일이었다. 여러모로. 언제까지 음침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과, 과학자 씨…….”
“아일레? 비라 씨랑 더 놀지. 왜 왔어?”
“그, 그건 좀… 언니가 다른 사람이 됐어요…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된것마냥….”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걸.”
“아무튼 이야기 하고 있으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라 조금…….”
아일레는 그리 말하며 내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그녀가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말 없이 어깨 위치를 조정해주자, 아일레는 기쁜 듯 미소지었다.
쉴틈없이 말을 걸어대며 신경을 갉아먹던 비라, 레비탄에게서 벗어난 아일레는 내 옆자리가 마치 휴식처라는 듯 완전히 긴장을 풀고서 안정을 취했다.
“……과학자 씨.”
“응. 왜?”
“며칠 뒤에…… 마법소녀 코믹북이 열리거든요…? 가, 같이 가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일레 부탁이라면 어디든지.”
“저, 정말이죠!?”
아일레는 두 눈을 부릅뜨며 재차 확인을 받았다. 나는 얼마든지 같이 가주겠다고 확언을 해주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손가락을 꼬아 약속하고 도장까지 찍었지만…….
같이 가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게 그토록 기쁜지, 아일레로서는 드물게 두 다리를 흔들거리며 콧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익숙한 멜로디. 그녀가 자주 보는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의 주제가였다.
이렇듯 비라의 복귀는 악의 조직에게 평화를 선물했다. 원래도 아무 일 없긴 했지만 이토록 활기차진 않았더랬다. 악의 조직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음습하고 음침했지.
‘평화롭네…… 악의 조직스럽지 않게도.’
그러나 그 평화가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나는 저 멀리 대련하는 비라와 갈름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까지고 이 평화가 지속되리라 여기며.
약속의 날. 그러니까 아일레와 함께 마법소녀 코믹북인지 뭔지 하는 행사로 가기로 한 날.
아일레는 놀랍게도 악의 마법소녀 복장을 차려 입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아일레?”
“왜, 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꼴로 가는 건 조금…….”
본인이 악의 마법소녀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뭔지. 지적을 받은 아일레는 괜찮다는 듯 어디선가 커다란 바바리 코트를 꺼내 들었다.
마법소녀복 위로 트렌치 코트를 걸친 아일레는 이제 되었다는 양 양팔을 쭈욱 뻗었다.
“이, 이러면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은데…….”
“아, 아뇨! 정말 괜찮아요! 저를 믿어주세요!”
퍽 믿음직스럽지 못한 말투였지만, 결국 나는 그녀에게서 마법소녀복을 벗기는 데 실패했다. 본인이 저렇게 가고 싶다는 데 어쩔 것인가?
보스가 준비해준 차량에 올라타 행사장으로 향한 우리는 행사장에 도착하고 나서 아일레가 그토록 괜찮다고 외쳐댔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우, 우와아아…! 저건 1세대 마법소녀인 매지컬 캐논…! 퀄리티 좋다….”
“……무슨 마법소녀 코믹북이라며?”
“네, 네에에-! 마법소녀 굿즈를 파는 곳이에요!”
이곳엔 각양각색의 마법소녀로 코스프레한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고 했던가. 진짜 마법소녀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그게 진짜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흥분을 금치 못 하던 아일레는 곧장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코트를 벗어던졌다. 이 행사장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돋보이는 악의 마법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시선이 아일레를 향해 몰려든다.
“……악의 마법소녀다.”
“진짜 아냐?”
“바보야. 진짜가 이런 데를 왜 오냐?”
사람들은 진짜와 구분할 수 없는 퀄리티를 갖춘 아일레를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 탄성이 그토록 기분 좋은지, 아일레는 움찔움찔 몸을 떨어댔다.
슬쩍- 뒤를 돌아본 아일레는 마치 허락을 기다리는 애완동물처럼 나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지. 가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일레는 멋지게 모델 워킹을 하며 마법소녀들 한복판을 걸어나갔다.
수많은 가짜들 사이에서, 오직 단 하나의 진짜가 빛을 발했다.
“─에이트.”
“네. 비라 씨.”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마.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비라는 행사장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을 보며 그리 읊조렸으나, 나는 딱히 걱정이 들거나 하지 않았다. 자고로 이런 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오타쿠요 오타쿠 중에 나쁜 사람이 없다는 선입견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무능력자가 장애인 취급 받을 정도로 모든 이들이 초능력 가진 세상이다.
비라의 능력을 뚫을 정도로 위험하면서 정신병까지 가진 사람은 진즉에 정신병원이나 감옥에 들어가 있겠지.
“걱정마요. 이런 곳에 설마 위험한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 방심이 가장 위험하단 말이지…….”
“비라 씨를 믿는 거예요.”
“호위를 믿는 건 좋은데….”
“괜찮다니까요? 애시당초 이런 곳에 위험한 능력자가 올 리가 없다니까 그래도.”
나는 그리 말하며 행사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비라는 내 옆에 꽉 달라붙은 상태로 주변을 힐끔힐끔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이런 곳이 익숙치 않은 애인쯤으로 보인 걸까, 주변에서 오타쿠들의 살기등등한 시선이 날아들었다.
살의 섞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행사장 안을 돌아다니던 어느 순간, 누군가가 비라와 부자연스럽게 접촉했다.
“앗- 죄송.”
좁아터진 곳에서 유약해보이는 비라를 노린 성추행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내와 부딪친 비라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갑자기 사라진 비라에게 반응할 틈도 없이, 그 사내는 씨익 웃으며 내게도 손을 갖다댔다. 그 손이 닿는 순간 내 육신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
“아저씨 안녕?”
차량 안으로 납치당한 나는 곧이어 의식을 잃고서 기절했다. 이 또한 무슨 초능력의 일종…….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나는 주변이 꽉 막힌 어느 방 안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에는 방금 전 나와 부딪친 사내가 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리자, 뒤늦게 납치범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 새끼 웃는데?”
“냅둬, 좋은 꿈이라도 꿨나보지.”
악의 조직 간부로서 무척이나 수치스럽게도.
나는 납치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