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조명이 시야를 뒤덮는다. 뇌까지 익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줄기에 신음을 흘리자 머리맡에 서 있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조명을 줄이기 시작한다.
눈을 뜰 수 있을 만치 조명이 줄어들었고, 앞을 바라보자 얼굴에 꿰맨 자국이 가득한 남자 한 명이 라이트 따위를 비추며 내 눈 안쪽이요 얼굴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문제 없군.”
“……누구-.”
“의사다. 보면 모르나?”
본인을 의사라고 소개한 남성은 그 뒤로도 몇 가지 진찰을 더 하더니, 다 되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를 호출했다. 잠시 후 방안으로 익숙한 사람들이 우수수 들어오기 시작했다.
레갈리아와 아일레, 비라 같은 악의 조직 동료들이.
“닥터 매지컬메디컬. 치료는 잘 끝났나?”
“끝났습니다 회장님. 고작 이 정도 부상으로 저를 부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동네 병원 의사도 이 정도는 손쉽게 고치겠더군요.”
“여는 여의 부하들에게 최고를 붙여주고 싶을 뿐이네.”
“돈 받는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만.”
“그럼 깎아주겠나?”
“그럴 순 없죠. 아무튼, 치료는 모두 끝났으니 저는 이만…….”
얼굴에 실밥 가득한 사내가 방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세 사람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과, 과학자 씨…… 죄송해요!”
“……뭐가?”
“저, 저 때문에…….”
아일레는 본인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녀 잘못이 맞긴 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그런 사람 많은 장소로 갈 일도 없었을 테고,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무너진 건물 파편에 맞고 기절하는 일도 없었을 터…….
그러나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이 냉철한 이성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런 과학자들은 정치와 감성으로 예산을 따내는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중요한 건 이성이 아니라 공감. 야합과 타협.
“─미안. 기절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
“네, 네에에-?”
“분명 아일레 네가 같이 마법소녀 코믹 어쩌고에 같이 가자고 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된 거야?”
선의의 거짓말. 다행히 아일레는 그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 한 듯 했다. 그녀 뒤에 선 두 사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아일레는 입술을 몇 번 붙였다뗐다를 반복하며 들썩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
“네, 네에에… 과학자 씨는, 과학자 씨는… 샤, 샤워실에서 자빠져서 그렇게 된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지.”
“기, 기억이 돌아오셨나요!?”
아일레일레야…….
거짓말로 그녀를 위로해주려던 계획은 완전히 박살났다. 기회를 줘도 떠먹지 못 하는 아싸찐따 같으니라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리고 보스를 바라보았다. 레갈리아는 이제 촌극은 다 끝났냐는 듯 눈을 치켜떴다.
“과학자. 재미 없는 연기는 거기까지 하지. 할 얘기가 많으니.”
“예, 보스.”
“여, 연기였어요?”
끝까지 연기였던 걸 알아차리지 못 한 아일레를 보며 비라가 웃음을 터트리는 가운데, 레갈리아는 내가 기절한 이후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일러주었다.
“납치범들은 모두 빌런 수용소에 집어 넣었네. 아마 앞으로 평생 그곳에서 나오는 일은 없겠지.”
“아직 애들인데 말입니까?”
“애들이기에 더더욱. 그만한 능력을 타고나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는 건 갱생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니.”
순간이동이라는 희귀한 능력을 타고난 납치범은 그만한 능력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빌런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싹수가 노랗다는 뜻이다.
그리고 범죄자 인권이 피해자 인권보다 더 대단했던 지구와 달리, 이곳에서는 빌런이 되는 순간 영영 나올 수 없는 수용소에서 평생을 썩히게 되는 모양이다.
위험천만한 능력을 가진 빌런들을 굳이 죽이지 않고 가둬놓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히어로에게 살인 면허를 내줄 수는 없었으리라. 당장 빌런과 히어로는 그 능력이 일반인에게 휘둘러지냐 빌런에게 휘둘러지냐의 차이만 존재하지 않던가. 살인 허가증을 들고서 일반인들을 학살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왜 그러지? 아이들에게 동정심 갖는 성격이었나? 그들에게 선처를 바라나?”
“아뇨. 그럴 리가…… 그냥 가두기만 하다니 너무 친절한 거 같아서요.”
“……자네가 말하니 뭔가 무서운데. 그 이상은 말하지 말아주겠나?”
레갈리아의 말을 들은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제아무리 대기업 회장이라지만 아직 어린아이 아닌가. 애가 듣기엔 조금 자극적인 내용일 수도 있었다.
나는 침대에 몸을 기대며 비라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내게 할 말이 남아 있어 보이는 듯한 그녀를.
“비라 씨? 비라 씨는 왜 왔습니까?”
“아니, 나는…….”
“경호에 실패한 호위니까 잘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저기, 그러니까…….”
내 말에 정곡이 찔린 건지, 비라는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제대로 된 말을 입에 담지 못 했다. 냉철하게 말해서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활기찬 인싸였던 그녀가 아일레마냥 쭈그리가 된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어째선지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녀를 더 괴롭히고 싶기까지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씹새끼(교수)도 아니고.
“왜 그러세요? 표정 푸세요. 누가 보면 제가 잘못한 줄 알겠네요.”
실시간으로 썩어가는 비라의 얼굴을 보며, 내가 너무 심했나란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그러나 반성은 하지 않는다. 다음 번에도 그녀를 놀릴 기회가 있으면 양껏 놀려줄 생각이다.
그러나 그녀가 영 표정을 풀지 않자, 레갈리아도 나를 따라 비라를 놀리기 시작했다.
“과학자. 비라가 이번에 실수가 있긴 했지만─ 그녀가 결코 부족한 호위는 아닐세. 오히려 이번 일로 인해 더욱 반성하고 정진하겠지. 여가 보증하겠네.”
“알고 있습니다. 보스. 그렇지 않고서야 보스가 제 호위로 그녀를 보내지는 않았겠지요.”
“그런데 이번 사태로 여가 잘못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군…….”
“아, 아가씨……!”
비라가 충격을 받아 절망에 빠진 가운데, 나랑 레갈리아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 마구 웃음을 터트리는 우리를 본 비라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닫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비라를 마주보며,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비라 씨. 너무 놀리고 싶은 표정을 짓기에 그만…….”
“……아니. 틀린 말은 안 했잖아? 그래. 다 내가 못 나서 그렇지. 팔다리 없던 장애년이 팔다리 다시 달았다고 신난 게 죄다 죄야. 안 그래?”
몇 번 이야기 나누던 비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내뱉기 시작했다.
슬슬 분위기가 싸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레갈리아는 그런 분위기를 얌전히 두고 보지 않았다.
“비라, 그만하게. 그러다가 과학자가 호위용 안드로이드라도 만들면 어쩌려고 그러나? 자네가 할 일이 없어질 텐데.”
“아, 넵. 아가씨. 그런데 제아무리 에이트라고 해도 그렇지, 그런 걸 만들 수 있을 리가…….”
“그래. 그렇겠지?”
두 사람은 의혹이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마주보았다.
“그런 걸 만들리가 없잖아요. 노동법 위반인데.”
“음- 역시 그렇…… 뭐?”
“아니, 무슨 법 위반?”
“노동법 위반이요. 로봇이 인간 일자리를 뺏게 만드는 건 인권 침…… 아.”
말을 꺼내던 나는 뒤늦게 이곳이 지구가 아니었음을, 그리하여 그런 법규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그런 로봇을 아무런 규제 없이 만들 수 있단 뜻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의 시선이 점점 더 차갑게 변해갔다. 제 일자리를 빼앗길 걱정하는 노동자의 살기 어린 눈빛이었다.
‘안 만든다니까.’
만국의 노동자들에게는 다행히도 나는 그런 로봇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만들고자 한다면야 기껏해야.
‘호신용품 정도지.’
* * *
몸을 지킬 수 있는 호신용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성능? 물론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성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실용성과 은밀성이다.
총 한 자루 들고 다니다가 누가 접근할 때마다 쏴죽이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나? 그랬다간 미치광이로 찍혀서 유치장 신세를 진다는 게 문제였지.
그러니까 호신용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무리 사용해도 사회의 지탄을 받지 않는 실용성이요, 그 다음은 누가 보더라도 호신용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은밀성이었다.
누가 봐도 위협적으로 보이는 물건이라면 상대방도 그 물건을 먼저 빼앗거나 제거할 테니까. 상대방이 보더라도 별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야만 했다.
‘시계나 팔찌가 제격이지.’
그러나 남자가 팔찌를 끼고 다니는 건 퍽 게이 같은 짓인 데다가, 비싸 보이는 물건이라면 빼앗길 가능성도 있었기에 제외했다. 남은 건 시계였다.
콤마 초 단위로 시간을 정밀하게 알아낼 수 있는 시대에서도 시계는 애용받았다. 강도요 납치범들도 인질에게서 휴대폰을 빼앗았으면 빼앗았지 시계를 뺏거나 하지는 않는다.
즉, 호신용품으로서 제격이라는 뜻이었다.
‘가장 위험한 건 순간이동이지. 이건 필수로 막아야 하고.’
다행히 순간이동을 막아낼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 실증했다. 에밀리아 교수가 발견한 양자 공간 접힘 현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과거, 에밀리아 교수는 양자의 파동 간섭을 이용하면 공간이 접힌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뒤이은 물리학자들은 그 현상을 연구해 공간 이동을 막아내는 기술을 만들어냈으며 내가 납치범을 상대로 사용했던 공간통제술이 바로 그것이다.
‘배리어는…… 공격 한 번 막아낼 정도면 되려나.’
순간이동을 막아낼 수 있다면야 내가 공격을 막을 필요는 없었다. 비라가 있었으니까. 비라의 초능력은 악의 조직 최고의 방패. 인류 최고봉 수준의 능력이었다. 그녀가 못 막는 공격은 호신용품 수준으로는 막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런 그녀가 못 막는 공격을 대비하겠다고 매일 답답하게 슈트 같은 걸 입고 다닐 생각도 없었고.
그러니까 공격은 한 번 막을 정도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반격. 그러니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고민했다.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맞춰야하는가.
“으음…….”
비라의 방어막을 일격에 뚫을 수 있을 정도? 각하. 그만한 출력을 시계만한 소형기로 낼 수 있을 리 없다.
아일레가 맞고 아파할 정도? 각하. 아일레는 마법소녀 복을 제외하면 일반 여고생에 불과하다. 여고생이 전차만큼 강하다곤 하지만 초능력이 실재하는 이 세계에서 그녀를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실험해야 하는 건…….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는 거냐? 과학자.”
“예, 뭐. 싫으시면 거절하셔도 좋습니다.”
나는 갈름 앞에 서서 자그마한 권총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손바닥 안에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 나중엔 시계 안에 넣을 테지만 위력을 시험할 목적인 지금은 쏘기 좋은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 만든 총기를 갈름에게 겨누자, 갈름은 어디 쏴보라는 듯 씨익 미소를 지었다.
“고작 그 정도 장난감으로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리가─.”
피이잉-!
권총에서 쏘아져 나간 광선이 갈름의 복부를 꿰뚫고 지나간다.
갈름은 멍하니 구멍 뚫린 제 배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런 갈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쏩니다.”
“……아니, 이미 쏴놓고서.”
“아파서 못 참겠다. 이쯤이면 제압되겠다 싶을 때 얘기해주세요.”
나는 화력을 올린 새 권총을 꺼내들었다. 구분하기 쉽게 아까 전보다 살짝 더 커다랗게 만든 권총을. 여전히 손바닥만한 크기이기는 했지만 갈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흐, 흐흐- 그래. 고작 이 정도로는─.”
피유웅-!
“……장난감치곤 조금 매콤-.”
피이이잉-!
“아니, 말은 하게─.”
지이이잉─.
어느덧 손바닥 크기를 벗어난 총기를 겨누자, 갈름은 그건 좀 위험할 것 같다는 듯 손을 들어올렸다.
“─항복.”
“아, 죄송. 이미 눌렀는데.”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총을 발사했다. 갈름의 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과연 버티지 못 하겠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갈름은 입에 거품을 물고서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입에 빨간약을 흘려 넣어주는 동시에, 나는 어느 정도 화력으로 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지 확신했다.
‘처음 크기면 되겠네.’
그가 방심하고 있었다곤 하지만, 한 방 맞고 꼼짝도 못 하던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사실 그때 이미 화력이 충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냥 한 번 쏴보고 싶었다.
절대 사심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
퍼리사랑꾼님
우연_866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질문에 관한 건 작중 내용으로 모두 설명되었으리라 믿고 나머지는 독자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앞으로도 더 재밌는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