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획을 들은 아일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걔네들 영역에서 짓밟는다니. 정확히 뭘 하는 건데요?”
“아까 비라가 그랬지? 녀석은 속도광이라고.”
“예. 그랬죠……?”
“그러니까 아일레. 너도 속도광이 되어라.”
“……네?”
무언가 잘못 들었다는 것마냥 고개 갸웃거리는 아일레를 보며 나는 씨익 미소지었다. 그녀는 아직 사회 경험이 적어서 그런 미치광이들을 상대하는 법을 모르겠지만 매일 같이 미치광이들과 부대껴 살던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미친놈은 미친놈으로 제압해야한다는 걸.
그리고 스피드를 즐긴다는 놈 치고서 정말로 순수하게 속도만을 추구하는 녀석들은 없다. 속도광이라는 녀석들은 모조리 남들보다 빠르다는 사실에 우월감 느끼는 정신병자들이었다. 이 세계도 그닥 다르지 않으리라.
“네가 그 빌런 녀석보다 빠른 스피드광이 되는 거야.”
그걸로 끝.
패배한 속도광은 광기를 잃는다.
광기를 잃은 미치광이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은 빌런 하나가 그렇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일레는 최후의 최후까지 걱정했다. 그러니까 본인이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작전에서 승리한 경우에도 모스피드가 반성하지 않고 속도광 짓을 이어나갈 경우를.
“……만약에 그렇게 이겼는데도 빌런 짓을 계속하면요?”
“녀석이 졌는데도 빌런 짓을 계속하면?”
“네.”
다행히 그 경우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내가 직접 빌런을 그만두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줄게.”
“앗, 넵.”
그런 신사답지 않은 빌런을 배려해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 * *
아일레 속도광 작전을 계획한 이후,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그 빌런 놈의 정보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었다.
녀석이 주로 어디서 활동하고, 언제 나타나고, 또 무슨 기체를 타는가 같은 녀석의 모든 정보를.
다행히 녀석은 빌런이었고, 빌런에 대한 정보는 히어로 협회에서 공개하고 있었다. 신빙성 높은 협회 위키에 모스피드의 이름을 검색하자 이미 상당한 양의 정보가 모여 있었다.
[모스피드Mospped]
XXXX년 X월 XX일 M 시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빌런……
뛰어난 운전 실력으로 추격망을 벗어나……
빌런 행위에 주로 사용되는 차량은 붉은 색 로켓 스파이더 091로써……
위키에는 모스피드가 처음 빌런 행위를 시작한 날짜부터 평소 출몰 위치. 사용하는 차량이요 히어로 협회의 분석관들이 분석한 심리 프로파일링. 심지어는 시민들에게 제보를 받아 만들어진 실시간 위치 추적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대체 왜 안 잡는 건지, 이 빌런도 어느 대기업 회장이 취미로 활동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 악의 조직 같은 경우가 그렇게 흔할 리가 없었다. ……흔할 리 없다고 믿고 싶다.
‘애시당초, 녀석이 그랬더라면 비라가 알고 있었겠지.’
비라는 저래보여도 나름 재벌 호위 출신의 엘리트요, 레갈리아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존재였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비밀 정보 따위도 여럿 알고 있을 것이요, 레갈리아처럼 특이한 걸 좋아하는 재벌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법 했다.
모스피드가 실은 정체를 숨긴 재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다짐했을 때 옆에서 힘내라고 응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말렸으리라.
그러나 비라는 말리기는커녕 내게 따로 귀뜸해주지도 않았다.
‘무슨 빌런이 나도 없는 슈퍼카를…….’
나는 빌런이 타고 다닌다는 차량을 검색했다. 시중가 대략 20만 달러. 말도 안 되는 가격은 아니었지만 일개 서민이 구매하기에는 퍽 버거운 금액이긴 했다.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타고 다니는 시점에서 그 빌런이 평범한 중산층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재벌까지는 아니겠지만 차량에 수십만 달러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쓰는 부자라는 뜻.
대체 이놈의 세상은 뭐 이리 사회에 불만이 많은 상류층이 많은 건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마저도 뒤로 미뤘다.
‘12,500마력? 이런 걸 조종할 수나 있나?’
로켓 스파이더 091.
12,500마력馬力의 괴물 머신.
뛰어난 신체능력을 지닌 히어로들을 위해 만들어진 슈퍼카.
대충 살펴 보니 날개만 달면 그대로 하늘도 날 수 있을 거란 평가를 듣는 물건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영차 따위가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한 머신.
“─그러니까 우리도 하늘을 나는 걸 기본으로 한다.”
“느헤에-?”
관심 없는 빌런이요 더더욱 관심 없는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졸고 있던 아일레는 입가에 묻은 침을 쓰윽- 닦아내며 치맛단에 문질거렸다.
당연히 방금 전까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 하는 그녀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날아요? 누가요?”
“네가.”
“……제가요?”
“뭘 이제와서. 마법소녀일 때도 잘만 날아다녔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마법의 힘으로 하늘을 나는 것과 날아다니는 걸 타고 나는 걸 다르게 생각하는 지, 아일레는 퍽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가 가진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주기로 했다.
“생각해봐. 아일레. 마법소녀가 자라면 뭐가 되지?”
“은퇴해요…… 일반인이 되죠…?”
“아니. 마법소녀가 자라면 마녀가 된다.”
“???”
“그리고 자고로 마녀는 빗자루를 타는 게 관례지.”
그리하여 아일레가 탈 머신은 빗자루로 결정되었다.
나무가 아니라 쇳덩어리로 만들었고, 바퀴가 두 개쯤 달리고, 핸들이 달리긴 했지만 어쨌건.
“자, 이건 빗자루다.”
“……누가 봐도 바이크인데요.”
“아니. 세상에 하늘 나는 바이크가 어딨어? 이건 빗자루라니까?”
“하, 하늘을 나는 빗자루도 없어요…….”
“여기 있잖아.”
아일레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노려 보는 가운데.
하늘을 나는 호버크래프트Hovercraft.
아니, 위치크래프트Witchcraft가 완성되었다.
사실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바이크를 사다가 개조하기만 하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뭐, 그 바이크를 뜯어다가 부스터랑 비행 기능 정도만 넣어주면 되니까…….’
두 바퀴 달린 제 빗자루를 보며, 아일레는 조심스레 물었다.
“저…… 과학자 씨?”
“왜 그래?”
“보통 이런 건 그, AI 같은 걸로 완벽 주행하고 그러던데. 이것도 혹시……?”
만능 AI론을 들이밀며 요행을 부리려는 아일레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그녀에게는 아쉽게도, 이 바이크에는 AI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
“아일레. AI한테 모든 걸 맡길 거였으면 애시당초 네가 복수할 필요가 있니?”
“그, 그건 그렇지만…….”
“사람이 말이야. 직접 노력해서 쟁취할 생각을 해야지. 벌써부터 요령 피우고 그러면 안 돼.”
“……네에에. 잘못했습니다.”
푸욱- 기 죽은 아일레를 보며,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등을 팍팍 후려쳤다.
“그깟 AI가 없어도 이길 수 있어. 아일레! 기운 내! 너는 악의 마법소녀잖아!”
“그치만…… 저 면허도 없는데…….”
“면허 없는 게 무슨 상관이야?”
“……네?”
“우린 빌런이다. 아일레. 빌런이 법 지키는 거 봤냐?”
진심이냐는 듯 이쪽을 바라보는 아일레를 뒤로 하고서, 나는 그녀와 특훈에 들어갔다. 면허가 없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바이크 운전에 대한 기초는 쌓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엑셀이 뭐고 브레이크가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나도 면허가 없어 운전 교육을 시켜줄 수가 없단 것이었는데, 다행히 비라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자자. 아일레. 쫄지마! 안 넘어져!”
“너, 넘어질 거 같아요오…!”
“마법소녀의 코어 근육이면 90도 쓰러진 바이크도 세울 수 있거든!?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서!”
비라는 아일레에게 앞으로 나가는 방법, 멈추는 방법, 코너링 하는 방법. 기타 등등─ 정말이지 바이크 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온갖 기술들을 모조리 교육했다.
고작 몇 시간만에 아일레는 어디 가서 바이크 좀 타봤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복수뿐이었다.
“아일레. 다음주 금요일. 비가 온다네.”
“……딱 좋네요.”
결전은 일주일 뒤.
그녀가 모스피드를 처음 만난 날과 같이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 * *
부와아아아앙-!
12,500 마력의 엔진이 불을 내뿜는다.
세상을 집어삼킬 것마냥 굉음을 뱉어대며 소리를 뿜어대던 로켓 스파이더 091은 그대로 그 육중한 거체를 앞으로 쏘아냈다.
순간, 멈춰있던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뒤로 사라진다. 모스피드는 이 순간이 가장 짜릿했다. 중력가속도에 의해 영혼이 탈곡되는 듯한 이 느낌만이 그가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좋아. 오늘은 어디까지 달려볼까.’
시속 300킬로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속도로 주행하면서도, 모스피드는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스치는 일이 전무했다. 뛰어난 레이서로서 그런 사고를 일으킨다는 것 자체에 큰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차량으로 도로가 막히는 경우에도 딱히 상관 없었다. 보아라- 인도가 비어 있지 않느냐.
그렇게 순식간에 도시 2개를 가로지른 모스피드는 슬슬 지루함을 느끼곤 핸들을 돌렸다. 어째선지 오늘따라 주행에 감흥이 없었다.
이 미친듯한 질주도 질리고야만걸까. 폭주로도 도파민을 느낄 수 없다면 이제 무얼로 도파민을 느껴야할지…… 모스피드는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다행히,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스르르륵-.
‘……응?’
어느 순간부터.
그의 로켓 스파이더 091 옆을 오토바이 한 대가 따라서 달리고 있었다.
전장이 전부 새카만, 무슨 로봇처럼 삐죽삐죽 뾰족한 가시 같은 겉장갑이 잔뜩 달린 미래형 오토바이가.
‘미친년인가?’
모스피드는 웬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질주하는 여성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속옷이 훤히 다 보일 법한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서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건 미친년이 맞았다.
그리고 그 미친년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 스르릉- 엔진 소음 하나 없이 그의 앞으로 나아간 오토바이녀는 그를 돌아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까딱까딱-.
“─미친년이!”
그 손가락의 의미는 이러했다.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봐라.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도발.
모스피드는 기어봉을 붙잡고 풀악셀을 밟았다. 그의 붉은색 로켓 스파이더가 불을 뿜어내며 앞으로 쏘아졌다.
“승부다!”
새카만 오토바이녀는 좋다는 듯 그를 따라 스로틀을 당겼다.
잠시 후, 두 개의 유성이 도로를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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