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광원이 도로 위를 가로지른다.
검은 유성과 붉은 혜성.
두 물체는 눈 깜빡할 사이에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주변을 지나다니던 사람들, 평범하게 운전 중이던 차량, 휴가를 즐기고 있던 히어로. 모두가 화들짝 놀라 방금 막 스쳐지나갔던 차량들을 바라본다.
모두가 폭주 중인 광란의 속도광들을 바라보는 가운데, 평소에 그토록 원했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모스피드는 그깟 관심 따위에는 일절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조금 더 빨리!’
그의 시야에서 저 망할 드레스 입은 미치광이 바이크녀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추월한 적이 없단 뜻이다.
속도는 어느덧 시속 400km. 그러나 이 이상의 속도를 내기엔 두렵다.
차량에 달린 12,500 마력 엔진에 비하면 전장 4.9미터에 불과한 이 차량은 지나치게 가볍다. 400킬로미터부터 차체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하며, 그 이상의 속도를 낸다면 1mm의 핸들 조작 미스만으로도 차량이 휙-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모스피드도 일직선 서킷에서나 이런 속도를 내지 차량과 건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도에서 이런 스피드를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풋.”
들리지 않아야 할 웃음소리가 들린다.
다시 한 번 손가락을 뒤로 돌려 까딱인 바이크녀는 지금까지의 속도는 준비운동에 불과했다는 듯 쓰로틀을 당긴다.
가까웠던 둘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모스피드는 자신의 안에 박혀 있던 속도광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어올리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 뒈져보자.”
결국, 모스피드는 12단 기어봉을 붙잡았다.
잠시 후 그의 차량이 오토바이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 * *
‘으아아아아아……!’
바이크를 운전 중인 아일레는 눈동자를 마구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매지컬 동체시력을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주행하고 있지만, 제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여차하면 사고를 낼 수 밖에 없는 속도였다.
경험. 그놈의 경험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연습만 믿고 실제로 공도에서 달려본 적 없는 아일레는 운전 중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반사신경만으로 파악하고 판단해야만 했다. 경험으로 대충 어떻게 움직이면 될 지 예측하는 모스피드와는 달랐다.
그리고 그 경험 부족이 아일레의 발목을 잡았다.
‘사고-!’
그녀 전방에 사고가 발생했다.
0.03초. 사고를 파악한다.
0.04초.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0.1초.
붉은색 로켓 스파이더 091이 그녀를 지나쳐 앞서 나간다.
‘속도를 안 줄인다고…!?’
설마 저 앞에 사고가 난 것을 보지 못 했나? 아일레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모스피드는 저 앞에서 사고가 난 것을 보았으며 그 사고를 보고 아일레가 속도를 줄이는 것또한 보았다.
원래라면 같이 속도를 줄이는 게 맞지만 그러지 않았다. 앞서 나가던 아일레가 멈춰선 이 순간만이 역전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부아아아앙─!
붉은 혜성의 엔진이 울부짖는다. 차체가 아까 전보다 더더욱 가속하는 가운데 사고 지역까지 도착한 로켓 스파이더의 밑에서 로켓이 불을 뿜었다.
‘점프했어!?’
몇 번이고 말했지만 로켓 스파이더의 12,500 마력 엔진은 고작 자동차 따위에 장착하기엔 지나친 낭비다. 그리 남아도는 출력을 모스피드는 결코 놀게 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차량을 개조해 밑바닥에 부스터를 달았고, 엔진 출력을 활용한 부스터는 차량을 일순간 띄워 올릴 수 있었다.
왼쪽 밑바닥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부스터가 로켓 스파이더 차량을 그대로 띄워 올렸고, 도로에서 벗어난 로켓 스파이더는 그대로 빌딩의 벽면을 타고서 질주했다. 빌딩을 이용해 사고 지역을 통과한 모스피드는 다시금 부스터를 작동해 도로로 돌아온 뒤 유유히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본 아일레는 저도 모르게 쓰로틀을 당겼다.
‘아…….’
앞서 나가는 자를 본 속도광의 본능이 반응했다.
이제와서 속도를 줄인다고 해봐야 부딪치는 걸 피할 수는 없다.
연쇄 사고를 피하기 위해선 자신도 다른 수를 꺼내야만 했다. 예를 들자면 방금 모스피드가 그랬던 것처럼 점프를 한다든가 하는.
아쉽게도 아일레가 탄 바이크에는 점프 부스터가 달려있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바이크에게 그런 건 거추장스러울 뿐이었으니. 모스피드처럼 차체 아래에서 불을 내뿜어 점프하는 일 따윈 불가능했다.
대신 아일레는 부스터 대신 발로 땅을 걷어찼다. 마법소녀 특유의 근력이 오토바이를 붙잡고 그대로 날아오른다.
─마법소녀의 코어 근육이면 90도 쓰러진 바이크도 세울 수 있거든!?
훈련 내내 비라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조언이 도움이 된 탓일까. 차량의 행렬을 가볍게 뛰어넘은 아일레는 도로 위에 착륙했고,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 * *
“좋았어! 아일레! 그거야!”
“흠…… 달리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이 짐승새끼야! 초치지 말고 응원이나 해!”
악의 조직 본부 안.
비라와 갈름은 아일레와 모스피드의 레이스를 지켜보았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침음성 흘리긴 했지만 어쨌건.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는 박빙의 승부. 둘의 레이스는 지켜보는 사람들을 손떨리게 만들었다.
물론 그 과정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다.
“뭘 그렇게 시끄럽게… 여기서 응원해도 아일레한테는 안 들려요.”
“에이트 너…… 혹시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니? 감정이라는 게 없어? 아일레가 질 수도 있잖아!”
“질 수도 있다니 그게 무슨…… 아일레가 일부러 지려고 하지 않는 이상 질 수가 없는데요.”
과학자, 에이트는 그리 말하며 커피를 훌쩍였다.
아일레가 타고 있는 머신은 그가 직접 개조한 물건.
성능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아일레가 패배한다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니면 뭐,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앗!”
쨍그랑-!
그리고 그때 과학자가 들고 있던 머그잔의 손잡이가 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불길함을 담은 날카로운 소리에 모두가 놀란 가운데, 과학자는 덤덤하게 깨진 머그잔 조각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중국산인가…… 여긴 중국도 없는데…….”
그리 머그잔 조각을 줍던 과학자가 미약하게 신음을 흘렸다. 날카로운 머그잔 조각에 손가락을 찔린 것이었다.
“쓰으읍- 베였네.”
“……에이트?”
“네. 비라 씨. 왜요?”
“아니, 너무 불길한 거 아니야? 갑자기 그렇게 사고가 연달아…….”
“그런 미신도 믿으세요? 신기하네. 그럴 것 처럼 안 생겼는데.”
과학자는 그리 말하며 뒷정리를 끝마쳤다. 새 커피를 끓이고 의자에 앉는 순간, 의자 한쪽 다리가 무너지며 과학자 쪽을 향해 커피가 화아악-! 쏟아졌다.
“─에이트!?”
“아, 괜찮아요. 다행히 얼굴엔 안 맞아서.”
“몸에 묻었잖아!”
“옷이 두꺼워서. 이것도 다행히 괜찮아요.”
이 정도면 운 좋게 끝났다며 웃는 과학자를 보며 비라는 불안함에 잠겼다. 옆에서 저렇게 불운에 빠진 이를 보면 덩달아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부디 아무 문제 없이 끝나기를…… 비라는 그리 기도하며 다시금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레이스는 끝나가고 있었다.
* * *
‘저 미친년.’
모스피드는 백미러를 통해 차량 사이를 점프하는 아일레를 발견하곤 헛웃음 터트렸다. 저게 자신이랑 같은 사람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 무거운 바이크를 타고 그대로 점프해서 수십 미터를 뛰어넘다니?
그러고도 바로 균형을 되찾아 바로 뒤까지 따라왔다는 사실이 어처구니 없었다. 저런 기예를 보였으면 당연히 바닥을 굴러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렇지만 허점은 있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스피드는 아일레의 약점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그녀는 경험이 없다. 일직선으로 주행할 때는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코너를 돌 때나 다른 차량을 만날 때마다 내보이는 반응을 보면 너무나 쉽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코너링은 초보자도 저런 초보자가 없을 정도로 엉성했고, 차량을 만날 때마다 움찔거리며 반응이 늦어지는 게 보였다. 물론 뛰어난 반사신경과 바이크 특유의 속도로 그 어설픈 코너링이며 반응을 해결했지만.
그럼에도 그 부분이 약점이라는 건 틀림이 없었다.
‘이 앞 터널을 지나면 연속 코너링 구간. 거기서 승부를 본다.’
우연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를 노린 건지, 이 루트는 모스피드가 평소에 자주 주행하던 코스길이었다. 그렇다면 골은 정해져 있었다.
D 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드래곤 힐스Dragon HillS.
폭주를 마친 뒤 그곳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게 그의 일과였다.
‘─보여주마! 너 같은 초보자는 넘을 수 없는 벽을!’
차량들로 가득 찬 터널에 도착한 순간.
모스피드는 터널의 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속 수백킬로가 넘는 속도와 12,500 마력의 초고출력엔진. 그리고 중력을 컨트롤하는 특유의 감각이 필요한 예술적 기예.
모스피드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기술 중 하나인 역중력 드라이브였다.
그리 터널의 천장을 타고 달리면서 모스피드는 슬쩍 위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자신의 그림자에 깔려 감춰지는 와중에, 유일하게 로켓 스파이더의 그림자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건 하늘을 날고 있는 빗자루. 아니 바이크였다.
‘─무슨!?’
바이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까 전처럼 점프를 해서 체공한다거나 그런 게 아닌.
정말로 비행기처럼.
“씨발-! 무슨 바이크가 하늘을 날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모스피드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가, 곧장 숨을 들이켠 뒤 입을 닫았다. 초고속 주행 중. 입을 여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숨을 참고 체내외의 기압을 정상화시킨 모스피드는 제 머리 위에서 날고 있는 아일레를 바라보며 기어를 올렸다.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하고, 속도는 어느덧 주체할 수 없을 만치 빨라진 상태였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모스피드는 단 하나의 생각만을 붙잡고 있었다.
─이겨야 한다.
딸칵.
빛과 함께 터널의 끝이 모습을 드러내고, 모스피드는 곧장 부스터를 발동해 차체를 뒤집었다. 천장에 달라붙어 있던 그는 물론이요 하늘을 날고 있던 아일레 모두 도로 위에 다시금 발을 붙인다.
비겁하게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정정당당한 승부. 좋다. 아주 좋다. 모스피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꽃피우며 기어를 당겼다.
8단, 9단, 10단.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
드리프트를 위해 브레이크를 밟는 것조차 아까웠다. 뜨겁게 달궈진 타이어는 빗물로 식힌다. 그리고 기어이 코너길에 입성한다.
‘여기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기예. 묘기라 불러 마땅한 기술. 행운에 목숨을 건 도박. 모스피드는 기어를 올렸다. 11단, 12단. 12,500 마력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력.
시속 1,255km에 도달한 차체의 정면이 공기의 벽을 뚫고 지나간다. 마하의 벽. 음속을 뛰어넘은 차체가 미친 듯이 떨리며 발작을 일으킨다. 그 발작을 역이용해 코너를 돌았다.
‘내가 가장 앞선다-!’
소리를 넘어선 공간.
모스피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세계에서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렇게 코너링을 끝마치고, 저 멀리 드래곤 힐스Dragon HillS의 언덕이 눈에 들어왔을 무렵. 새카만 유성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모스피드는 빛을 보았다. 아주 새카만 빛을.
어둠으로 칠해진 빛이 그를 넘어서 언덕을 뛰어넘고, 그대로 하늘 넘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모스피드는 순간 빗물에 미끄러져 균형을 잃었고, 균형을 잃은 그의 차량은 그대로 수십 바퀴를 굴러 언덕 위에 찌그러진 채 멈춰섰다.
“아, 아아…….”
저 멀리 사라져가는 새까만 빛줄기를 바라보며, 모스피드는 직감했다.
자신의 질주는 여기까지라는 사실을.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으리란 것을.
승자는 남고 패자는 사라진다. 그것이 바로 스피드레이서의 규칙.
모스피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어젯밤, 빌런 모스피드의 폭주로 인해 D 시의 시민들이 공포에 떨었으며……]
[바이크를 탄 신원불명의 여성이 모스피드와 경주를 벌였다고 하여 크나큰 파문이─]
[히어로 협회는 해당 여성을 새 빌런으로 지목하였으며……]
“아주 재밌는 짓을 저질러줬더군.”
불행을 암시하는 미신은 존재했다.
나는 어제 있었던 사고가 모두 다 이것을 암시한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 아무것도-.”
“호오- 그럼 과학자 자네는 아일레 혼자 이 모든 짓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거군? 자네가 아니면 정비도 불가능한 마법소녀 옷을 입고. 어디서 난 건지도 모를 바이크를 타고?”
“그, 아일레가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요.”
“음음- 그렇군! 자네는 얌전히 있어 달라는 여의 부탁보다 아일레의 부탁을 더 무겁게 생각했다는 건가! 그렇다는 거지?”
“……죄송합니다. 보스.”
보스의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해서는 안 됐다.
나는 보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매번 이 정도 사과로 끝났던 일이지만 아쉽게도 이번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보스는 내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보스, 이건?”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리 건넨 서류를 읽은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블스 자동차 개발 기획」
그러니까 이번에 아일레에게 만들어줬던 반중력장치요 하늘을 나는 장치들이 들어간 자동차를 양산할 수 있도록 만들라는 뜻이었다.
“그, 이거 생각보다 힘든 일인데요. 이곳 기술로 양산하려면 진짜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고민을…….”
“잘 됐군? 그걸 하는 동안에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 할 테니?”
“그렇긴 한데…….”
곤란해하는 나를 바라보며, 보스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게. 자네는 마구 굴려질 필요가 있어.”
그 말투에서 내가 가장 질색하는 누군가가 떠올랐기에, 나는 반사적으로 서류를 들고서 회장실을 뛰쳐나왔다.
하마터면 PTSD가 재발할 뻔했다.
‘보스한테서 교수 얼굴이 생각날 줄이야…….’
그러나 이 일도 교수 아래에서 굴려질 때보다는 나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연구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