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남겨줘.”
“……무슨 헛소리를-.”
에이트의 말을 들은 뮤는 그가 농담을 지껄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허세를 부리는 거거나.
보통 그런 허세는 실물을 보게 되면 사라지게 되는 법. 뮤는 제 부하들을 향해 턱짓했다.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수인들은 그 즉시 레비탄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난도질했다.
날카로운 날붙이가 몸을 푹푹 찔러대는 가운데, 레비탄은 입을 악 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신음 한 번 내뱉지 않았다. 고통스럽지 않거나 그에 관련된 훈련을 받아서는 아니었고, 그저 이 상황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고 있던 동료를 배신하고 위험지대까지 데리고 온 이 상황이. 설령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고려한다고 해도 그렇다.
푸욱-!
레비탄을 마구 찔러대던 수인들은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는 그녀를 보며 놀랍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곤 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 년 이거 비명 한 번 안 지르는 데요? 어떡할까요?”
“……뭘 그런 걸 물어. 하여간 짐승 새끼들.”
부하에게 잔소리를 내뱉은 뮤는 그대로 부하가 들고 있던 단검을 뺏은 뒤 레비탄의 눈두덩이를 찍어 눌렀다. 과연 이것마저도 참을 수는 없었는지, 레비탄은 미약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으, 으으윽…….”
“─에이트 씨. 머리는 남겨달라고 하셨죠? 이거 어떡하나. 당신이 안 나오면 머리도 없어지게 생겼는데.”
뮤는 그리 말하며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미약했던 레비탄의 비명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과연 그 모습엔 에이트도 표정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영화라는 걸 알면서도 고어한 모습에 얼굴 찌푸리는 게 사람이었다.
코앞에서 실제로 고통 받는 동료가 있거늘 어찌 태연할 수 있을까.
“……에이트, 나가지 마.”
“알아요. 안 나갑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네가 뭘 할 수 있을 거 같아?”
비라는 그런 에이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그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멈춰세웠다. 물론 에이트는 그녀가 말리지 않았더라도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않았으리라.
다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저 녀석들이 레비탄을 아예 죽이지 않는다는 보장은?
당장 레비탄이 고통 받는 저 모습을 보아라. 그녀의 배신이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음은 명확히 알 수 있다. 무언가 협박을 받거나 최면 세뇌를 당했다는 뜻…….
그렇다면 배신한 대가는 지금 당장 치르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중에. 그러니까 본부로 돌아가 사정청취를 모두 끝낸 이후에 하는 게 맞았다.
“비라 씨. 여기서 본부까진 거리가 얼마나 되죠?”
“못 해도 수백 킬로…… 그건 왜?”
“아뇨. 아무튼 그래서야 금방 지원이 오는 건 꿈도 못 꾼단 소리네요. 그렇죠?”
비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Z 시에 있는 히어로가 우리들을 구하러 오는 걸 기대해봐야 하는 걸까.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이 Z 시는 빌런들의 도시로. 히어로는커녕 경찰도 제 일을 하지 않는 슬럼가라고 한다. 뒷세계에 발을 담그고 불법적인 일을 서슴치 않으니 돈이야 많겠다만은 사람 살기엔 좋지 않은 동네.
E 시에서는 심심하면 인종 차별 당하던 수인이 여기엔 잔뜩이요 그들을 차별하던 인간은 한 명도 보이지 않던 이유가 있었다.
“증원도 못 와, 히어로도 없어…… 우리 큰일난 거 아닌가요? 비라 씨.”
“내가 그래서 아까 도발하지 말랬잖아……!”
“그렇네요. 괜히 도발했나……?”
에이트가 방금 전 했던 말을 후회하는 가운데, 둘의 이야기를 듣던 레비탄이 칼에 찔려 신음하면서도 소리쳤다.
“─비라! 절대 능력 풀지 말앙-! 알았징-?”
“이 년이! 넌 빨리 저 놈들이 이쪽으로 오게 만들 것이지!”
“꺄하앙-!”
가벼운 신음과 함께 레비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이제 죽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육신은 살겠지만 마음과 정신이 죽겠지.
Z 시의 연구소에서 탈출한 이후, 쭉 억눌러왔던 그녀의 생체 인자가 천천히 깨어난다. 레갈리아가 내린 왕명에 의해 봉인되었던 힘이.
─자네는 앞으로 ‘동료를 위해서만’ 이 힘을 쓸 수 있네.
스스로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힘을 쓸 수 없지만.
동료를 위해서라면 아주 가벼운 일에도 쓸 수 있는 힘.
물론 결코 쓸 리 없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응. 나 같은 배신자보다 너희가 사는 게 더 좋은 일이니깡.’
레비탄은 그리 생각하며 발작하는 제 생체 인자를 해방했다. 목줄 풀린 생체 인자는 그녀의 몸을 게걸스럽게 집어 삼키며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그 증상은 금세 겉으로 드러났다.
그녀를 십자가에 묶고 있던 쇠사슬이 툭툭- 강제로 끊어진다. 평범한 여성에 불과했던 레비탄의 몸이 근육질로 뒤덮이고, 더 나아가 부풀어오른 살점 따위가 십자가마저 집어 삼켰다.
“저게, 무슨…….”
그 모습을 지켜보던 뮤는 침음성을 삼켰다.
변화한 레비탄의 모습이 그가 아는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L-시리즈.
레비아탄Leviathan 계획의 실패작들.
분명 실패작들의 폭주로 인해 연구소가 폐쇄되고 연구는 그 뒤로 종결된 줄 알았거늘 어찌?
“성공작이라고?”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을 부정할 정도로 뮤는 미련하지 않았다. 폭주한 레비아탄은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통제 불가능한 폭탄. 모든 걸 파괴하는 파괴신이었으니까.
슬쩍- 안경을 치켜세운 뮤는 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후퇴한다.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도망치도록.”
“예? 이사님. 그렇지만…….”
“어차피 저 괴물 앞에선 그 누구도 무사할 수 없어. 저 두 놈년도 곧 있으면 도망칠 거다. 우리는 멀리서 포위망을 유지하다가 도망치는 녀석들을 잡으면 그만이다. 여기 있으면 개죽음이야.”
뮤를 포함한 수인 일행은 그리 말하며 순식간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인간을 뛰어넘는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발휘하자 정말이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 수인들이 모조리 떠나고, 변신을 끝마친 레비탄은 이 자리에 남은 에이트와 비라를 바라보며 침을 뚝뚝 흘렸다. 그녀의 침이 닿은 사막이 융해되어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다.
“……비라 씨? 저거 버틸 수 있겠어요?”
“어…… 맞아봐야 알 거 같은데. 아마 버티지 않을…….”
콰아아앙-!
레비탄의 주먹이 배리어를 내려치고, 비라의 배리어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비라는 살짝 식은 땀을 흘리며 레비탄을 바라보았다.
이성을 잃은 그녀는 괴물이 되어서 침을 질질 흘리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레비탄이 먼저 이성을 되찾고 자신들을 지켜주리란 희망은 갖다 버리는 게 나을 듯 했다.
“못 버텨요?”
“버틸 수, 있어…!”
“사실대로.”
“……30분 이상은 힘들지 않을까?”
“알았어요.”
그 말을 들은 에이트는 그대로 비라의 품에서 벗어나 배리어를 빠져 나왔다. 그 행동에 화들짝 놀란 비라가 다시금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에이트는 괜찮다는 듯 비라를 물렸다.
배리어에서 빠져 나온 에이트는 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전파가 통하네.’
배리어가 전파 따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간섭도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는지, 저 배리어 안쪽에서는 스마트폰을 쓸 수가 없었다. 이제야 제대로 작동하는 스마트폰을 확인한 에이트는 우선 본부 쪽에 응원 요청을 보내고서 제가 미리 만들어둔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솔직히 말해서 프로그램은 전공 교양으로만 배웠기에 제대로 작동할 지 자신은 없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선 뭐라도 해봐야지.
【군사 위성 해킹 중…… 완료】
머리 위에 떠 있는 수백 수천 개의 위성. 그 중에 몇 안 되는 군사 위성이 때마침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 지나가는 위성을 해킹, 이쪽이 이용한다.
‘물론 사용했다는 걸 숨길 수는 없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목숨을 내다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에이트가 그리 생각하며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제 앞에 아무런 방비 없이 모습을 드러낸 인간을 발견한 레비탄이 손을 내뻗었다.
괴물의 손아귀가 에이트의 몸을 붙잡기 일보 직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새하얀 빛줄기가 그대로 레비탄의 손을 녹여버렸다.
─쿠, 오오오오오-!
“이런, 많이 아픈가 보네.”
─크아아아앙-!
“괜찮아. 다 고쳐줄 테니까.”
지이이이잉-!
다시 한 번 내려온 빛줄기가 레비탄의 반대손을 불태운다. 순식간에 양팔을 잃어버린 레비탄이 미친 듯이 발을 구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한 흔들림 앞에서도, 에이트는 한 점의 흔들림 없이 레비탄을 응시했다.
“지금은 좀 참아.”
잠시 후, 수십 발이 넘는 빛줄기가 지상을 강타했다.
“─과학자 씨!”
에이트의 응원 요청을 듣고서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를 타고 곧장 달려온 아일레는 엉망진창이 된 사막과 대체 뭔지 모를 걸레짝을 들고 앉아 있는 에이트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날아오는 아일레를 발견한 에이트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그녀를 반겼다. 그녀가 타고온 위치크래프트라면 이곳에서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으리라.
“여, 아일레. 빨리 왔네.”
“과학자 씨가 부르시는 데 당연…… 그보다 그건 뭔가요?”
“이거? 레비탄.”
“……네? 뭐라고요?”
“레비탄이라고.”
아일레는 에이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대체 저 걸레짝이 어딜 봐서 레비탄이라는 말인가? 차라리 도축한 돼지를 몽둥이로 마구 매질하고 짓밟은 거라고 하는 쪽이 신빙성 있었다.
그러나 에이트가 이런 농담을 제게 건넨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바. 아일레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사실 저 고깃덩어리를 계속 보고 있기에도 조금 그랬다.
“……뭐, 알았어요. 일단 빨리 본부로 돌아가죠. 보스가 지금도 걱정하고 있다니까요?”
“그래. 돌아가자. 가서 할 말이 많으니까.”
에이트는 그 길로 곧장 본부로 복귀했다. 하늘을 나는 위치크래프트를 타고 도망쳐버리니 주변에서 에이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오메가 인더스트리의 수인들은 닭 쫓던 개마냥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본부에 도착한 에이트는 곧장 제 연구실에 레비탄을 데려다놓은 뒤 회장실로 향했다. 도착한 회장실에선 레갈리아가 분노에 휩싸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소녀의 분노였지만 전혀 우습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에이트는 보스에게 이런 면모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래. 오메가 녀석들에게 공격당했다고.”
“예. 그 과정에서 레비탄 씨가 배신하긴 했는데…… 본의가 아닌 듯 했습니다. 이건 제가 치료한 이후에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를 납치한 후엔 레비탄을 고문까지 했고?”
“제가 아프진 않았지만요.”
“후후, 그래. 그렇단 말이지.”
웃음을 터트리는 레갈리아를 보며 에이트는 그녀의 화가 벌써 풀렸나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분노하면 오히려 냉정해진다고 했던가.
레갈리아가 딱 그런 상태였다.
그녀는 곧장 수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 상대에게 무어라무어라 지시를 끝마친 레갈리아는 통화를 끊은 뒤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의 부하를. 악의 조직을 건드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똑똑히 알게 해주겠네. 과학자? 자네는 레비탄의 치료를 우선시하게나.”
“예, 알겠습니다. 보스.”
“그럼 나가보게나. 후후, 후후후- 짐승들 피눈물이나 쥐어 짜는 천것이 감히 여를 건드려……?”
후후거리는 보스를 뒤로 하고서, 에이트는 제 연구실로 돌아왔다. 약에 깊게 담가둔 레비탄의 신체는 어느새 조금씩 재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재생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했던 행동이나 뮤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그녀는 어떤 연구소의 실험체요, 그 실험체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영영 노예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유전자 단위의 치료…… 조금 힘들겠네.’
그렇지만.
이것도 모두 동료를 위한 일이다.
에이트는 그리 생각하며 메스를 들어올렸다.
* * *
“─실패했다고?”
“죄송합니다. 보스.”
오메가 인더스트리의 사장이자 Z 시를 지배하는 주인. 오메가는 뮤의 말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실패한단 말인가?
그가 제 부하에게 허락한 금액은 일개 연구원이 거절할 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설령 그 금액으로 스카우트하는 게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분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과학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감히 제 명령을 실패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왕에 대한 항명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이어진 말을 들은 오메가는 그의 실패를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Z 시까지 납치하는 건 성공했습니다만, 실패한 줄 알았던 L 시리즈의 성공작이 대뜸 나타나는 바람에…….”
“……L 시리즈의 성공작?”
“예, 그렇습니다.”
“그게 성공했을 줄이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L 시리즈가 성공했었단 말을 들은 오메가는 뮤의 실패를 인정해주었다. 아예 사라진 줄 알았던 L 시리즈의 성공작이 나타났다는 소식의 기쁨이 뮤의 실패가 가져다주는 분노를 내리눌렀기 때문이다.
흠흠- 헛기침 몇 번 내뱉은 오메가는 다음 번에는 실패하지 말라고 근엄하게 명령했다.
“이미 한 번 실패한 이상 경호는 지난 번 이상으로 강해졌을 거다. 어떻게든 이를 뚫고서 그 녀석을 데려오도록. L 시리즈의 성공작도 될 수 있으면 데려오고.”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가보도록.”
뮤를 내보낸 오메가는 제 여자들이 따라주는 와인을 훌쩍였다. 설마 L 시리즈의 성공작이 나타나다니? 그 계획이 성공했다는 뜻은 지금이라도 재연구를 시작해서 자신의 힘을 늘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딴 구석진 Z 시가 아니라, 모든 도시를 제 손아귀 아래에 둘 수 있다는 뜻…… 모든 도시의 주인. 황제. 그 감미로운 단어에 오메가는 취하고 또 취했다.
콰아아아앙!
─끄아아아악-!
그러나 그 취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오메가의 심기를 거스르는 잡음이 귓가를 가득 지배한 것이다. 오메가가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제 부하에게 눈짓하는 것보다 빠르게, 그가 있는 방의 문이 단번에 박살나며 안으로 휘이익-! 날아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오메가는 인상을 파악 찌푸리며 문을 박차고 들어온 수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표정을 굳혔다.
“……가, 갈름?”
“오랜만아구나. 털 달린 백수 새끼야.”
“네가 어떻게…… 분명 회복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오메가가 놀라서 소리치는 가운데, 갈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회복했지. 보스의 도움으로.”
“말도 안 돼. 네 몸은 부상이나 질병이 아니라 그저 녹슨 걸 텐데-! 바꿔 끼우기라도 하지 않는 한 고칠 수 없어!”
“있더라고. 바꿔 끼우지 않고서도 나를 고칠 방법이.”
갈름은 그리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자와 술, 약으로 가득한 방은 예전의 오메가가 가장 혐오했던 모습이었다.
“─너나 나나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구나. 은퇴하고나서도 편히 쉬지 못 하고, 서로 이런 꼴이나 봐야 한다니.”
“허-! 못 쓸 만치 녹슬어서 은퇴한 너랑 나를 비교하는 거냐? 나는 너처럼 못 쓰게 되어서 은퇴한 게 아냐. 내 스스로 거길 기어 나왔지.”
“왜? 쥐새끼마냥 이런 음침한 곳이 네 취향이었냐?”
“거기 있는 건 내게 족쇄를 채우는 짓이었으니까!”
오메가는 그리 말하며 제 부하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아무리 목청 터져라 소리쳐도 그의 부하가 몰려오는 일은 없었다.
의아함에 잠시 멈칫했을 무렵, 갈름은 제 허리춤에서 머리통 하나를 휙- 집어 던졌다. 익숙한 얼굴. 하관이 뜯겨 나간 뮤의 머리였다.
“─그 거북이 새끼. 껍데기는 튼튼하더군. 그러나 내 발톱을 막을 만치 튼튼하진 않았고.”
“……다 죽였나?”
“글쎄다- 우리 보스가 사람 죽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하- 인종차별자라는 말을 참 돌려서도 말하는 군.”
“먼저 사람을 문 짐승 새끼는 도축해야한다고 하시더군.”
갈름은 그리 말하며 제가 여기까지 온 용건을 꺼내들었다.
“─오메가. 너는 우리 악의 조직을 건드렸다. 그 대가를 똑똑히 치러라. 이게 보스의 전언이다.”
“내가 언제 너희를…….”
“기억이 안 나나? 당장 오늘 있었던 일인데?”
갈름의 말을 들은 오메가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까 전 뮤에게 들었던 보고를 떠올렸다. 이블스 사의 과학자와 L 시리즈의 성공작.
대체 어째서 실패했나 했더니만…… 이런 뒷사정이 있었나.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깨달은 오메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휙- 내던졌다.
“하, 으하하하-! 그래, 갈름! 현역 때부터 너랑은 한 번 붙어보고 싶었지!”
“선배라고 불러야지. 건방진 백수 새끼야.”
“네가 전성기의 힘을 회복했다고 한들, 혼자서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모든 생물의 끝이자 종점! 오메가다아아아!”
오메가가 그리 소리치며 갈름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하늘에서 빛줄기가 쏘아져 내렸다. 강렬한 에너지 파동에 휩쓸린 오메가가 바닥을 구르는 가운데, 구멍난 천장으로부터 마법소녀가 사뿐히 내려왔다.
“─미안하지만, 혼자라고는 한 마디도 안 했거든.”
갈름은 그리 말하며 주먹을 쥐었다.
악의 마법소녀는 그런 갈름의 뒤를 엄호하며 조심스레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갈름 씨. 빨리 끝내도록 하죠. 1분 1초도 더 있기 싫은 동네라.”
“그러지. 간다. 건방진 후배야.”
“……망할.”
바닥을 구르던 오메가는 저를 향해 달려오는 갈름이요 악의 마법소녀를 보면서 제 미래를 직감했다. 사라져가는 의식 속으로, 그는 자신이 누굴 건드렸는지에 대해 깨달았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악의 조직이었다.
정말 푸짐하게 넣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