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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외전 1. 한국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아까부터 뭐지?”

천노을의 휴대폰이 아까부터 자꾸 윙윙거리는 게 신경이 쓰인 경수는 충전 중인 휴대폰을 뽑아 화면을 켰다. 손바닥 안에서 휴대폰이 또 한 번 진동했다. ‘0401’ 네 자리 숫자를 입력하자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주세요.’라는 경고창이 떠올랐다.

“바꿨나?”

분명 비밀번호가 자신의 생일인 ‘0401’이었는데, 너무 쉬워서 비둘기도 풀겠다는 제 말을 듣고 얼마 전에 바꾼 모양이었다. 이번엔 천노을의 생일 ‘0212’를 입력해봤지만, 이것도 답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234’를 입력해보자, 바로 화면 잠금이 풀리고 배경 화면이 나타났다.

“…왜 이딴 걸로 바꾼 거야?”

이럴 거면 잠금을 뭐 하러 걸어놔… 경수는 착잡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휴대폰이 또 윙, 하고 울렸다. 손가락으로 상단 바를 내리자 밀린 SNS 알림과 메신저 알림, 그리고 몇몇 어플 광고들이 떠 있었다. 그것 중 경수의 눈에 꽂히듯 들어온 게 하나 있었다.

「[알림 30개] 친구가 게시물에서 회원님을 태그하셨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여긴 잘 들어가지도 않는 애가 그새 알림이 서른 개나 쌓였다고?”

말도 안 된다. 게다가 충전기를 꽂아둔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경수는 물소리가 들리는 욕실 쪽을 힐긋 돌아보았다가 충동적으로 어플 알림을 클릭해보았다. 대다수가 SNS 친구들의 게시글 업데이트 소식이었는데, 몇 개는 학교 익명 페이지에 태그가 되어 있었다.

「강산 님이 게시물에 회원님을 태그하셨습니다. “@천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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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한대전_31982번째 외침

익명이요ㅠㅠ

경영대 천노을? 씨 여자친구 있어요? 프로필도 친구 공개고 타과에 아는 친구가 없어서 이거 물어보려고 가입했어요ㅠㅠ

(좋아요 3)

▶강산: @천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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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 마나 ‘이름 초성이 ㄴㅇ인 사람 태그해’와 같은 쓸데없는 게시글일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천노을을 찾는 글이 맞았다. 이런 유의 게시글에 태그 당하는 경험을 전혀 해본 적이 없던 경수는 굳은 채 한참을 눈만 깜빡였다.

글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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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한대전_32004번째 외침

저번 주 금요일 저녁에 중도 앞에서 개나리색 후드티 눌러쓰고 옆에 친구분한테 혼나고 있던 남자분 찾고 싶어요! 어떻게 남자가 그런 색이 잘 받죠…? (칭찬이에요ㅠㅠ) 사막여우 닮으셨어요ㅠ흑ㅠㅠㅠ

바닥에 와플 떨어져 있던 거 보니까 그거 떨어뜨리신 것 같던데ㅋㅋㅋ 혹시 여자친구 없으시면 제가 초코 와플 사드리고 싶네요! 혹시 여자친구 없으시구… 괜찮으시면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좋아요 10)

▶김재현: 이거 너? 떨궈서 와플 못 먹었다매ㅋㅋ @천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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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노을이 확실하다. 옆에서 혼내던 놈은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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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책임져야겠는데… #한대전_32015번째 외침

금요일 오전 제2열람실… 제 앞자리에 앉아 있던 노란 후드티 남자분 제보요. 공부도 안 하시던 것 같은데 왜 자꾸 절 쳐다보셨죠? ㄷㄷ 저도 남잔데요 밤에 누우면 자꾸 그쪽 생각이 납니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좋아요 58, 슬퍼요 3)

▶김이영: ㅋㅋㅋㅋㅋㅋ아 개슬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Love Lee: 밤에 생각나는 건 진짜 찐인데ㅋㅋ

▶정시원: @백상연 너였으면 좋겠다ㅋ

└백상연: ㅋㅋㅋㅇㅉㄹㄱ 그날 중도 안 감ㅗㅗ 이딴 거 태그 걸지x

▶한복남: ㅋㅋㅋㅋㅋㅋㅋㅋ예쁜 사랑하세요^^….

▶혜나: 얘두라 이거 바바!!ㅋㅋㅋㅋㅋ 위에도 노란 후드티 찾던 사람 또 있던데ㅋㅋ 동일인인가 봨ㅋㅋㅋㅋㅋㅋ @선영Lee @한유진

└선영Lee: 숨겨왔던 나의….

└한유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궁금하다 어떻게 생겼길래

▶강산: @yuna han 좆같은 병아리 후드티? 천노을 아님?

└yuna han: 맞을 듯ㅋㅋㅋ 우리 학교 말고도 그냥 살면서 샛노란 옷 입은 놈 천노을밖에 못 봄

▶yuna han: 설마 이것도 너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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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 천노을을 찾고 난리야. 조금 짜증이 난 경수는 소파 위에 있는 자신의 휴대폰을 가져와, 혹시나 자신이 태그 된 글도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알림이 몇 개 와 있었다.

서, 설마 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권태열 님이 게시물에 회원님을 태그하셨습니다.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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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배달하는 페이지

친구 중에 제일 사기 잘 당할 것 같은 사람 태그하기!

(좋아요 399)

▶권태열: @김경수 (좋아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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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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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열: @김경수 (좋아요 3)

└김경수: @권태열 ㅋㅋ시발새끼야 너 나랑 친해?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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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태그한 친구에게 답글을 달고 난 경수는 다시 노을의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천노을 얜 잘 들어가지도 않는데 왜 이리 태그가 많이 돼?”

학교 소식 열람과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들과 연락하기 위해 계정을 새로 만든 천노을의 피드에는, 게시글이 가입할 때 자동으로 써지는 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게시글에 댓글도 몇 개 달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학교의 익명 페이지에 태그가 자주 걸린다는 것은, 그를 언급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겠지.

“…….”

경수는 갑자기 뒷골이 당기기 시작했다. 인간은 왜 사회적인 동물일까. 아니, 물론 사람들과 잘 지내면 좋긴 하지만 그것도 적당히 해야 할 것 아닌가. 천노을 걔는 왜 그따위로 생겨 먹어서 사람을 막 짜증 나게 하지?

천노을에겐 뭔가 문제가 있었다. 모든 말에 잘도 반응하며 헤실헤실 웃고, 은근히 말끝을 늘이며 말을 해서 그런지 애교까지 묻어난다. 하기야. 남자인 자신까지 꼬여내는 데 성공한 그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천노을… 내가 가만히 있었더니… 다른 사람한테도 그러고 다녔나 보네.”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천노을을 빼앗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갑자기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경수는 아무래도 자신의 선에서 이런 사람들을 딱 끊어놔야겠다고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포털 사이트에서 눈이 얼굴의 절반만큼 크고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는 파란 머리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사진을 저장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 정떨어지는 말투를 검색해서 좋은 참고자료를 찾아냈다. 완벽하게 베끼지는 못하겠지만 어설프게나마 그 말투를 따라 하기로 마음먹었다.

“천노을 미안.”

경수는 노을이 당장 들을 수 없는 사과의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SNS 어플에 들어가 답글 창에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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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천노을

└천노을: (사진) 피식… 죄송합니다만 제게는 소중한 애인이 있습니다….

└강산: ? 머리 괜찮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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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쪽은 됐고, 다른 글에도 답을 남겨야 한다. 장난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진짜… 진짜 이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야 해.”

이름도 나이도 모를 파란 머리 캐릭터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그녀도 이해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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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a han: 설마 이것도 너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노을

└천노을: (사진)

└yuna han: @천노을 야 너 해킹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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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노을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보니 무심코 ‘내 애인! ㅇㅅㅇㅋㅋ’이라고 입력하고 있었다. 경수는 멈칫한 뒤 그 말들을 백스페이스키로 모두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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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노을: NoNo… 『애인』 입니다만(웃음)

└yuna han: ;; 미친 새끼 (좋아요 12)

└정민재: ㅋㅋㅋㅂㅅ

└강산: ㅋㅋㅋㅋㅋㅋㅋ남자 고백이 얼마나 싫었으면 별 같잖지도 않은 컨셉을ㅋㅋㅋㅋ

└김재민: 차라리 싫다고 하든가 이게 더 마상임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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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차라리 미친 새끼인 게 낫지.”

천노을의 프로필 사진까지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바꾸고 나니 좀 안심이 된다. 이걸 본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천노을을 그저 잘생긴 놈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피해갔으면.

“혀엉.”

달칵,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경수는 황급히 노을의 휴대폰을 소파 아래로 휙 집어넣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앉았다.

“벗은 건 전데 형이 왜 놀라요?”

노을은 지나치게 뻣뻣하게 굳은 경수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디 아파요?”

“안, 안 아파. 그리고… 옷 좀 입어.”

“왜 놀랐어요, 아까?”

노을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경수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태연하게 대응했다.

“내가?! 안 놀랐는데?”

“놀랐는데?”

“아닌데?”

“놀랐어요.”

“아니야.”

“놀람!”

“아님.”

“…….”

분명히 뭔가 있는데… 평소와 확연히 다른 경수의 태도에, 노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고 딴청을 피웠다. 일을 벌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떻게 수습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멋대로 프사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바꿔두고, 태그 된 곳에다 댓글을 달아서 화를 내지는 않을까.

‘내가 너무했나.’

…아니, 그전에 휴대폰을 찾게 된다면 곧바로 들키고 말 텐데.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가 무섭게 경수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난 바보야. 로그아웃이라도 해둬야 했는데!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휙휙 스쳤다. 하나만 생각하고 뒷일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안 나갈 거면 제 머리 말려주세요, 형.”

“싫어.”

“그래요 그럼… 난 그냥 추위에 덜덜 떨다 죽고 말 거야.”

“…….”

경수가 대꾸하지 않자, 노을은 이상한 소리 하는 것을 멈추고, 눈치껏 얌전히 경수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형, 집에 안 가요?”

“가려고 했는….”

“왜 안 갔어요?”

“…….”

안 그래도 후회하는 중이다. 지레 찔려서 적반하장으로 말을 내뱉었다.

“너 지금 나 쫓아내는 거야?”

“으음… 아니요? 그냥 아까 짐도 다 싸두고 그랬길래.”

노을의 시선이 경수의 뒤에 팽개쳐진 가방을 힐긋 스쳤다.

“그래서 전 나오면 당연히 아무도 없을 줄 알았죠.”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즉에 집에 갈 채비는 다 해뒀는데 가기 전에 놈의 휴대폰을 보는 바람에… 천노을의 시선을 피해 로그아웃을 시키지 않고서는 더더욱 갈 수가 없다.

“형, 저한테 뭐 숨기는 거 있죠?”

정곡을 찌르는 말에 경수의 시선이 흔들렸다.

“내, 내가 뭘.”

“…….”

“없어!”

“왜 소리를 지르지?”

“그런, 그런 거 아니야… 하하, 내가 뭘….”

노을은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경수를 내려다보며 도대체 숨기는 게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끝까지 시치미를 뗄 모양이었다.

“내가 숨기는 거 있으면 네 소원 하나 들어준다!”

노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는 지나치게 당황하여 횡설수설하는 경수를 보며 자신이 잠깐 씻고 나온 사이에 뭔가 달라진 게 없는지 천천히 살펴보았다. 방 안쪽에 있는 옷장 서랍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와… 설마 제 속옷 훔쳤어요?”

“미친 새끼. 내가 너냐?”

그 말에 노을이 억울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서 제가 왜 나와요?”

“왜인지 잘 생각해봐.”

천노을은 전과가 있었다.

“저는 그냥 정중히 달라고 부탁한 건데….”

“그런데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잖아.”

“…아무튼!”

아무튼 좋아하시네.

“형이 가지고 싶으면 가방에 넣은 건 그냥 드릴게요….”

“안 훔쳤어! 그리고 필요 없어!”

“그 대신 밤에 제 생각하면서 혼자 하는 것도 다 영상 통화로 보여줘야… 어? 내 폰 어디 갔지?”

“……!”

이렇게나 빨리 알아채다니, 쓸데없이 똑똑한 새끼!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바로 들킬지도 몰랐다. 큰일 날 것을 직감한 경수는 순발력을 발휘해 큰소리로 외쳤다.

“노을아, 나 오늘 자고 갈까?!”

*

순발력 있게 말을 꺼낸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급하게 얼버무리느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자고 갈 생각은… 그리고 이럴 생각도 없었는데.

“하아….”

시원한 향이 나는 혀가 입술을 가볍게 훑었다. 두 개의 혀가 얽히며 더운 숨이 허공에서 뒤섞였다. 잠시 떨어졌던 입술이 말캉한 감촉과 함께 다시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입을 벌려주던 경수는 슬슬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러려던 게 아닌데….’라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노을은 손으로 반쯤 풀어 헤쳐진 상의를 마저 벗겨내며 경수의 맨살을 어루만졌다. 샤워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촉촉함이 남은 노을의 손바닥이 기분 좋았다.

노을은 키스를 하며 등허리를 매만지던 손을 앞으로 옮겼다. 노을은 복근부터 가슴까지를 마사지하듯 더듬거리다 조금 더 손을 위로 옮겼다. 경수는 노을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파묻은 채 키스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노을은 일어선 경수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살짝 돌리며 입술을 잘근 물었다.

“형…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굴어요?”

경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노을의 얼굴을 무심코 쓰다듬으려다가 가까스로 이성을 다잡고 손을 침대 위로 꾹 짓눌렀다.

“넌 왜 말을 그따위로 해?”

“내가 뭘요.”

“…….”

그는 웃으며 소리를 내어 쪽쪽 입을 맞췄다. 꼿꼿하게 일어난 유두를 손가락으로 살짝 꼬집는 바람에 경수의 허리가 뒤틀렸다.

“아읏!”

꼬집은 데 대한 사과인지, 노을은 손바닥으로 경수의 가슴을 몇 번 토닥거렸다. 노을은 다시 다정하게 손가락으로 유두를 만지작거리며 그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노을은 경수의 한쪽 유두를 짧게 물었다가 놓으며, 반대편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굴렸다.

“씨발, 아프잖아….”

“아프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

실은 그 말도 맞았다. 천노을은 어디서 뭘 보고 왔는지 어느 순간부터 잠자리 때마다 경수의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물론 처음에는 아무 감흥도 없었다. 경수는 지금까지 젖꼭지는 남자에게 달려 있을 필요가 없는 흔적 기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을과 밤을 보낼 때마다 그가 꾸준히 자극해댄 탓인지, 이제는 살짝 꼬집기만 해도 야릇한 기분이 들고는 했다.

천노을 때문에 자신이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요즘엔 방에 혼자 있을 때도 종종 그의 생각을 하게 된다. 집 안 곳곳에 노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식탁 위에서 과제를 하다가도, 그곳에서 노을과 했던 기억 때문에 갑자기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천노을은 언제부턴가 경수의 삶에 비집고 들어와 앉아, 이제는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났느냐고, 졸린 목소리로 걸려오는 전화가 오지 않으면 섭섭할 지경이다.

“형, 무슨 생각 해요?”

“네 생각은 아냐.”

“…뭐라고요?”

“네 생각은 아냐.”

“한 번 더 기회를 드릴 테니 다시 말해봐요.”

“네 생각은 아냐.”

“형!”

신기했다. 세상에 두려울 거라곤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막무가내인, 일단 뭐든지 달려들고 보는 천노을에게 스며들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와 있으면 바뀌고 싶어진다. 변화가 두렵지 않았다. 이전의 자신이었더라면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을 하기도 했다. 대학을 가기로 결심한 것이라든지, 노을과의 먼 미래를 생각해본다든지.

…아니, 잠깐. 미래?

“혀엉.”

“…….”

그러고 보니 자신이 무심결에 떠올렸던 모든 미래 속에 천노을이 존재했다. 언제, 어떤 장소에 있든 장난스럽게 웃는 노을의 얼굴이 끼어 있다. 물론 지금도 변함없이 놈을 좋아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스럽게 제 일상까지 침범당했을 줄이야.

“형… 벌써 졸려요? 그럼 안 되는데.”

이 새끼 도대체 나를 어떻게 한 거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느 순간부터 놈에게 서서히 세뇌당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경수는 충동적으로 노을의 머리채를 틀어쥐었다.

“아악!”

“…….”

너무 아프게 쥐었나. 손에 힘을 살짝 풀어주자 노을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왜요!”

“괘씸해서.”

“그러니까 왜요!”

“몰라. 갑자기 좀 그렇네. 왜? 불만이야? 그렇게 불만이면 한 판 붙어.”

“응, 좋아요! 그런데 지금도 붙어먹고 있잖아요.”

“천노을.”

웃음기 하나 없는 살벌한 목소리에 노을은 꼬리를 내리고 중얼거렸다.

“…아니이, 내가 뭘 했다구.”

노을은 경수의 감정 기복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갑자기 왜 화를 내지? 그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제 연인의 몸을 마음껏 만지고 탐구했다. 손가락이 피부에 스칠 때마다 경수의 허리가 움찔거렸다.

노을은 습한 숨을 내뱉으며 경수를 끌어안았다.

“형한테서 좋은 냄새 나요.”

“개수작 부리지, 또?”

노을은 툴툴거리면서도 제 허벅지 위에 앉아, 아무 반항 없이 입술을 벌려주는 연인의 모습에 벌써 아래가 뻐근하게 일어선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혀를 빠는 경수를 당장 침대에 엎어 놓고 싶었다. 그가 몸을 뒤틀든 쾌감에 엉엉 울든 아랑곳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좆을 끝까지 박아 넣고 허리를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뭘 봐?”

“헤헤… 형이용.”

한 대 맞을 각오가 아직 되지 않았다. 노을은 배시시 웃으며 딱딱해진 성기를 경수의 엉덩이골에 슬쩍 문질렀다. 얇은 속옷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하는 유사 성행위만으로도 몇 번이나 쌀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냥 경수가 자신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정하기에는 충분하다.

“형, 허리 좀….”

물론 가능은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코앞에 좋아하는 사람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데. 고작 엉덩이에 제 것을 비비는 정도로만 만족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형이 먼저 자고 간다고 말한 기념일이니까. 노을은 들뜬 마음에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그리고 속옷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경수의 맨살을 주무르듯 몇 번 만지다 안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손가락 하나도 들어가기 힘들 만큼 구멍이 꽉 다물려 있었다.

“아, 잠깐만. 벗을게.”

“이대로도 괜찮아요. …이게 더 좋아요.”

“좋고 말고가 아니라….”

“아니다. 그냥 엎드려요.”

“잠…깐만. 어?”

노을은 경수를 제 무릎 위로 엎드린 자세가 되도록 가볍게 툭, 밀쳤다. 속절없이 풀썩 엎어진 그는 허리를 들어 올리려다가 등허리를 꾹 짓누르는 손바닥 탓에 자포자기하듯 다시 엎드리고 말았다.

“야, 닿잖아….”

“으응.”

몸에 닿은 노을의 단단해진 성기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다. 노을은 경수의 까만 속옷을 옆으로 살짝 밀어 잡은 뒤, 꼬리뼈 아래 봉긋하게 살이 솟아오른 곳에 젤을 쏟아부었다. 아직 차가운 젤이 피부에 닿자, 경수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앗, 차가워!”

“미안해요. 그런데 다리만 조금 더 벌려볼래요?”

노을은 영혼 없이 중얼거리며 흘러내리는 액체를 손으로 모아 두 둔덕 사이로 가까이 가져갔다. 입구와 그 주변을 충분히 둥글리듯 만지던 손가락이 틈을 벌리며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끄응, 신음을 참는 듯 억눌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을 파고든 손가락이 잠시 빠져나왔다가, 굵기를 더해 구멍을 더 넓게 벌렸다. 언제 끼웠는지 모를 콘돔이 그의 손가락에 씌워져 있었다.

“……?”

경수의 뇌 회로가 잠시 정지했다.

“너 그거… 읏.”

아까 분명 콘돔 하나밖에 없다고…! 그걸 왜 지금 써! 경악하는 듯한 목소리에 노을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손가락을 더 밀어 넣었다.

“네? 왜요? 형 다칠까 봐서요….”

“뭐?”

“경수 형이 아프면 제 마음이 더 아프니까요….”

이 미친 새끼가, 그 말이 아니잖아!

노을을 다그치려던 경수는 그의 손가락이 민감한 지점을 푹 쑤시고 들어오자, 말을 잇지 못한 채 숨을 크게 집어삼키고 허리를 젖혔다. 경수는 벌써 묽은 액체가 울컥 새어 나오는 성기를 노을의 허벅지에 문지르며 쾌감을 재촉했다.

노을은 속옷이 안을 쑤시는 데 방해가 되어 몇 번이고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굳이 한 손으로 속옷을 잡고 구멍을 넓혔다.

아… 진짜 너무 마음에 들어.

그는 속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안으로 푹 쑤셔 넣었다. 안에서 끝을 살짝 구부려 그 지점을 정확히 찔러주면.

“하, 으으, 흑!”

내벽이 손가락을 꽉 조이며 허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엉덩이골을 가로지르는 속옷과 모양 좋은 엉덩이, 그리고 그 사이 좁은 구멍에 박혀 있는 손가락까지. 어느 것 하나 시각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었다.

“…사진.”

남겨두고 싶었다. 이건 그 어떤 절경인 자연경관보다도 더 보존할 가치가 있고, 아름답고 고귀하고 또… 인류 문화유산… 제1급… 뭐더라? …사실은 다 거짓말이고 그냥, 속된 말로 미친 듯이 꼴린단 소리였다.

“사진 찍고 싶어요.”

“흐으… 뭐?”

“내 폰….”

“…….”

뒤를 풀어주다 말고 갑자기 휴대폰을 찾는 노을의 목소리에 경수의 눈동자가 떨렸다. 급기야 노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휴대폰을 찾기 시작하자,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설마 지금 당장 나가서 진짜 휴대폰을 찾아온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면 자신은 정말 끝이었다! 사진은 그렇다 쳐도 자신이 프사를 애니 캐릭터로 바꾼 채, 개 같은 말투로 댓글을 달았다는 걸 천노을이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좋으냐고 실실거린다면 정말 쪽팔려서 죽을지도 모른다….

“노, 노을아! 천노을!”

“네?”

경수는 손을 뒤로 뻗어 노을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 탓에 손가락이 더 깊숙이 파고들어 허리가 움찔 떨렸지만, 그는 그 고난을 이겨내고 손가락을 뒤에서 빼냈다. 벌어진 구멍이 움찔거리며 다시 원래 모양을 찾았다. 노을은 갑자기 방해받은 탓에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노을아.”

“네.”

“…천노을.”

“네에, 자꾸 왜 불러요?”

절대로 천노을이 휴대폰을 찾지 못하게 할 것. 그러기 위해 우선은 그를 정신없게 만들어야 한다. 경수는 손을 뻗어 노을의 것을 움켜쥐며 비장하게 말했다.

“빨아줄게.”

“…네?”

경수는 침대를 짚고 몸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비장하게 말했다.

“빨아준다고. 네 거.”

“혀엉…!”

그는 본격적으로 제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놈의 입술만큼이나 뜨거운 성기가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경수는 침대 아래로 내려와, 침대에 걸터앉은 노을의 다리 사이에 앉았다. 삽입 전에 서로 만져주거나, 서로의 몸에 성기를 문지르는 것은 종종 했지만, 구음은 거의 하지 않았다. 천노을은 몰라도 경수에게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행위였다.

“뭐 해요. 구경만 할 거예요?”

빨아주겠다고 패기 있게 말했지만, 막상 발기한 노을의 것을 마주하자, 자신이 내뱉은 말을 모두 취소하고 싶어졌다. 아니, 애초에 이게 몸속에 들어간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거긴 씨발, 맛이라도 안 느껴지지. 입은….

“형, 아- 해요. 아아.”

“읍읍.”

“해준다면서요.”

노을은 기둥을 잡고, 그의 입술 색을 닮아 발긋한 분홍빛 귀두를 경수의 입술 위에서 덧그리듯 움직였다. 전에도 자신이 한 번 빨아준 적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천노을이 한 소리니 백 퍼센트 믿기에는 근거가 부족했다.

그리고 사실 경수는 그때 잔뜩 취해 있어서 기억이 전혀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새벽녘에 잠깐 눈을 떴을 때에도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슬슬 참기 어려워지는지 노을의 ‘혀엉.’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떻게 해, 이걸 단번에 입안에 담을 용기가 나지 않는데.’

경수는 코앞에서 꺼떡거리는 거대한 분홍빛 성기를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노을은 이내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말했다.

“…형 하기 싫으면 관둬요. 난 나가서 휴대폰이나 찾아와야….”

“……!”

“으읏, 형?”

그 말이 경수의 행동에 불을 지폈다. 경수는 일단 천노을을 이 방에서 꼼짝도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허벅지를 꽉 눌러 잡고 혀를 내어 기둥을 길게 핥아 올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노을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눈이 동그래진 채 숨을 참고 있었다. 말간 눈빛이 자신을 향했다. 그답지 않게 놀라서 바보같이 보이는 노을의 얼굴을 보니 조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망설임 끝에 마침내, 경수는 입을 벌려 색이 예쁜 귀두를 물었다. 조금 미끈거리는 귀두가 혓바닥에 닿았다. 입이 잔뜩 벌어졌다. 끝만 살짝 머금는 정도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입으로는 호흡할 수가 없었다.

‘시발, 내가 살다 살다 남의 걸 다 빨아보네.’

경수는 그대로 한참을 있다가, 자신의 목 뒤를 잡고 허리를 움찔거리는 노을 때문에 무심코 입안을 움찔거렸다.

“하, 으으….”

제 어깨를 살짝 그러쥐고 내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다가와, 귓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경수는 성기를 받치듯 가만히 있던 혀를 어설프게 움직여 귀두를 자극하고 크게 무리가 없는 곳까지 성기를 받아들였다. 손으로는 기둥과 고환을 기계적으로 만지작거렸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성기가 들락거릴 때마다 척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노을은 제 아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고갯짓을 하는 경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경수의 목이 움찔거릴 때마다 성기가 조였다. 머리를 잡고 깊숙이 박아 넣고 싶었지만 그러면 다친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서로 즐겁자고 하는 건데, 한쪽이라도 아프거나 다치면 안 되니까 그건 다음 주쯤에 해달라고 해야지. 노을은 그 와중에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먹지 않았다.

“하아.”

경수는 입안에 가득 들어차 있던 성기를 뱉어내며 손을 들어 입가를 닦아냈다. 묽은 타액과 무엇인지 모를 액체가 섞여 조금 끈적했다. 입안에도 잔잔한 풋내가 남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혀를 움직이고 자극하는 대로 노을이 반응하는 것은 좋았지만… 얜 진짜 이게 좋나?

“…….”

“…….”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가 노을과 눈이 마주쳤다. 꼭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람처럼 눈가가 붉었다. 오늘따라 왜 저렇게 예쁘게 생겼어? 생소한 느낌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경수는 크게 당황하다 입을 열었다.

“뭐, 뭘 봐.”

노을은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좆을 잡아 경수의 뺨에 느리게 문지르며 말했다.

“형 얼굴에 싸고 싶어요.”

“…뭐?”

“형 얼굴에….”

“그건 들었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안 돼요…?”

미친 새끼, 당연히 안 되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게 맞는데, 열기에 거칠어진 숨소리와 예쁘게 붉어진 노을의 얼굴에 마음이 약해졌다.

“형, 진짜 안 돼요?”

당연히 안 되는데….

“전 그냥, 입에다 싸면 맞아 죽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물어본 건데.”

노을이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예쁜 얼굴로 지껄이는 말은 터무니가 없었지만 왠지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지, 맞아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경수는 멍해진 머리로 노을의 말을 정리해보다가, 입술에 문질러지는 성기에 입을 꾹 닫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얼굴에 하면 안 돼요? 조금만 쌀게요.”

“…얼마나?”

“한 방울?”

“미친 새끼.”

단번에 정신이 돌아왔다.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그렇지 한 방울이라니, 지나가는 개도 비웃을 소리였다.

“아, 안 속네….”

“그게 조절이 되겠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래도 바로 닦으면 되잖아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하려는데 벌어진 입술 사이로 성기가 불쑥 들어왔다. 치아에 기둥이 살짝 긁혔는지 노을에게서 읏, 하고 신음 소리가 조금 새어 나왔다.

“싸기 전에 뺄 테니까 입 벌려요.”

“이아이?”

진짜지? 라고 물은 것뿐인데 노을의 움직임이 멎었다. 손바닥 아래의 허벅지가 돌처럼 단단해졌다. 경수는 눈만 들어 노을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입술을 꾹 깨문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노을이 애원하듯 말했다.

“아, 제발 형. 제 거 물고 말하지 마요. 쌀 뻔했잖아….”

노을은 한숨 섞인 애원과 함께 경수의 머리카락을 잡고 허리를 튕기듯 움직였다. 귀두가 혀를 긁으며 움직이자, 왼쪽 뺨이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성기가 저 좋을 대로 입안을 범했다.

그때 문 너머에서 휴대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응?”

‘안 돼!’

찔리는 것이 있는 경수는 그 소리에 어깨를 움찔 떨었고, 노을은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우읍….”

“네, 알았어요.”

노을은 경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머리를 토닥거리며 허리를 움직여 성기를 입안에 비볐다. 반도 넣지 않았는데 경수는 숨이 막혔다. 노을은 경수가 쿨럭거리면 기둥을 뒤로 빼내고 잠시 숨 쉴 틈을 준 뒤, 다시 입안을 좆으로 틀어막았다. 한참 입을 벌리고 있느라 턱이 뻐근하고, 성기를 마구 문지른 입안이 얼얼했다.

“형, 눈 감아요.”

그 말에 경수가 고개를 든 순간 좆이 뒤로 빠져나갔다. 성기가 뺨에 퉁, 하고 닿은 순간 뜨거운 액체가 울컥 토해져 나와 경수의 얼굴을 뒤덮었다. 경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

속눈썹 끝에 맺혀 있던 희뿌연 정액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노을은 아직 힘을 잃지 않은 성기를 경수의 입술에 문지르며 제 것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황홀하게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눈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당분간 이 얼굴만 떠올려도 몇 번이고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는 한 대 맞더라도 실수인 척 얼굴에 해야지!

“잠시만 기다려요.”

“어, 어디 가는데! 가지 마!”

“왜 놀라요? 수건만 가지고 올게요.”

노을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욕실에서 수건에 물을 묻혀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거실에서 또 진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노을은 일단 바닥에 앉아 있는 경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자꾸 누구지. 이 시간에 누구 만나기로 했어요?”

“…아니.”

“아니면 내 건가?”

경수는 고개를 작게 저으면서도 진동 소리가 신경이 쓰이는지 속눈썹을 움찔거렸다.

‘뭐가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지?’

노을은 눈썹에 엉겨 붙은 정액도 꼼꼼하게 닦아내고 꾹 다문 경수의 입술에 소리를 내어 짧게 입을 맞췄다.

“대충 다 닦았다. 이제 눈 떠도 돼요, 형.”

꼭 감겼던 경수의 눈이 서서히 뜨이며 까만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 담긴 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와중에도 진동은 여전했다. 경수의 고개가 자꾸 뒤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렇게도 신경이 쓰일까. 노을은 눈치 빠르게 먼저 나서서 물었다.

“휴대폰 가지고 올까요?”

그러자 경수는 노을의 어깨를 덥석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

“아니 내 말은, 필요 없다고….”

그는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거실의 진동 소리가 신경 쓰이는 게 맞으면서도 아닌 척하려는 게 수상했다.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의심이 들자 노을의 눈매가 가느다래졌다.

아니, 그런데 형은 어떻게 불안해하는 모습도 귀여워…? 노을은 다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뭐가, 뭐가 안 되는데!”

“기다려봐요, 제가 당장 가지고 올게요. 누군지 몰라도 이 시간에 전화하지 말라고 말을 해야….”

노을은 경수를 떠보듯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경수가 먼저 일어나 노을의 어깨를 잡고 침대 위로 내던졌다.

“우와… 형 지금 저 덮치는 거예요?”

노을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진짜 휴대폰에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런 노을의 생각을 알 턱이 없는 경수는 엉거주춤하게 누운 노을의 위로 올라타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딴생각 말고 나한테만 집중해.”

“…….”

그 말을 들은 순간 노을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성기가 꺼떡거리며 각도를 달리했다. 피식피식 웃어대는 노을을 보는 경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새끼가, 지금 나 비웃어?”

본격적으로 짜증을 내려던 순간 몸이 뒤집혔다.

“좋아서 웃어요. 비웃는 게 아니고.”

이불이 등에 닿았고, 곧이어 입술이 막혔다.

부드러운 입술이 목덜미에 쪽쪽 소리를 내며 닿았다. 상냥한 입맞춤을 내리는 입술과는 다르게 거칠고 빠른 움직임에 숨이 모자랐다.

“허으, 하, 으응!”

침대 시트를 꽉 그러잡는 제 손 위로 노을의 손이 덮였다. 내벽을 밀어내며 퍽 소리가 나도록 안에 파고든 성기가 다시 안을 긁으며 쓱 빠져나갔다. 정확히 그 부분만을 콱콱 찔러 올리는 감각에 벌써 목이 다 쉬어가는 게 느껴진다.

“아읏. 흑!”

경수는 참지 못하고 허리를 뒤틀었다. 그러자 노을이 경수의 몸을 잡고 자신의 하체와 완전히 맞닿게 한 뒤, 두꺼운 귀두 끝을 안에서 비볐다. 그 움직임에 성기가 꿈틀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경수는 눈을 꼭 감으며 숨을 헐떡였다.

‘씨발 새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집요해!’

배 안쪽이 울리는 기분에 몸을 뒤틀어봐도 상체를 꽉 끌어안은 손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노을은 가슴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아래로 내려 성기 끝을 틀어막았다.

“윽….”

내벽을 벌리며 파고들어 온 좆이 정확하게 자신이 느끼는 부분을 찔러 올리는 순간 경수는 첫 번째 사정을 했다. 그리고 자세를 바꾸기 위해 성기를 잠깐 뺀 노을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픽 사정한 게 두 번째였다. 첫 사정에 비해 조금 묽은 정액이 노을의 뺨에 튀었고, 그는 뺨에 묻은 묽은 액체를 손으로 훔쳐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 미안.’

‘……?’

당황한 경수는 헛기침을 했고, 노을은 그런 경수를 보고 조금 어이없어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경수는 조금 죽고 싶어졌다.

아무튼 여러 차례 간 이후라 그런지, 천노을이 앞에 손만 가져다 댔는데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바들바들 떨리는 등줄기를 따라 손가락이 내려왔다. 노을은 꽉 맞닿았던 상체를 일으켜 열에 달떠 움찔거리는 등을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형, 말 안 할 거예요?”

“아읏…!”

그렇게 말하며 앞을 후벼 파는 손가락에 경수의 정신이 날아갔다. 노을은 자신이 허리를 뒤로 뺄 때마다 잔뜩 벌어진 구멍이 제 것에 달라붙는 광경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레 웃었다.

“진짜로 말 안 해요?”

“무슨…!”

“저한테 숨기는 거 있잖아요.”

“으으, 윽, 야, 거기 그만 좀….”

“제 휴대폰 본 적 없어요?”

“……!”

경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휴대폰’이라는 단어에는 충실하게 반응했다. 내벽이 조여들며 좆을 꽉 물었다.

‘귀여워….’

노을은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에 비해 지나치게 딱딱하고 이상하게 구는 경수를 몇 번 떠본 것만으로, 그는 자신이 씻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주 대충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보나 마나 제게 말 못 할 뭔가를 저질러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거겠지.

‘어떻게 이렇게 투명할 수가 있지.’

무언가 숨기려고 하자마자 제게 들킨 것이 무척 그다웠다. 차라리 이게 좋았다. 그가 제게 뭔가 숨긴다는 것은 조금 불쾌했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구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 우스워졌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는 아마 곧 알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움직임을 멈추고 뺨에 입을 맞추며 노을이 넌지시 물었다.

“형, 제 휴대폰은요?”

“못, 못 봤….”

“어쩌지, 충전시켜야 하는데….”

제 말에 안도를 한 건지 옅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아직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단순해서 귀여워… 그는 경수의 성기 끝을 막은 채, 허리를 뒤로 빼고 안쪽으로 느릿하게 박아 넣었다.

“아, 좋아….”

“알아요.”

“하, 앗, 너한테 말한, 읏, 거 아니… 야!”

“여기 나랑 형밖에 없는데… 또 누가 들어요?”

노을은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거렸고, 성기가 잔뜩 부푼 채 내벽 깊은 곳까지 박힌 탓에 경수는 그가 웃을 때마다 흠칫거렸다. 노을이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그는 말을 잃고 헐떡이기 시작했다. 열기가 아랫배에 잔뜩 고였다. 그런데 노을의 손가락이 앞을 막고 있어 사정을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온몸에 고인 흥분이 터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씨발, 앞에 좀 놔!”

“싫어요!”

“야!”

“으응, 네에?”

노을은 또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쪽쪽거리기 시작했다. 저렇게 깝치다가 한 대 맞으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경수는 주먹을 쥐었다가, 조금도 봐주지 않고 움직이는 노을 때문에 몸이 미끄러지자, 손을 다시 펴고 몸을 지탱했다.

“저한테 숨기고 있는 거 하나만 말해주면 놔줄게요.”

“그딴 거 없어!”

“진짜죠? 숨기는 거 있으면 소원 들어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죠?”

“아니라니까, 그런 거….”

왜 이렇게 버티는 걸까. 어차피 내가 이따가 휴대폰을 찾아 확인해보면 다 들킬 것을. 노을은 불안한지 눈을 굴리는 경수를 끌어안으며 느긋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할 기회는 한 번뿐인데….”

사정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몸을 들썩이던 경수는 머리를 쥐어짜내 그가 천노을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다른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내벽에 느릿하게 비벼지는 성기가 선명한 쾌감을 전해줘 머릿속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흐, 으응, 형….”

보채는 말에 경수는 하는 수 없이 숨기고 있던 비밀 하나를 실토하기에 이르렀다.

“사, 사실 목요일에 일찍 잔 거 뻥이야!”

“…네?”

제 휴대폰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한 말에, 뜻밖의 사실까지 알아낸 노을은 멍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허리를 움직여 성기를 안으로 콱 박아 넣었다.

“집이라면서요.”

“읏! 아니, 혁이 승급전 때문에… 그 새끼가 치킨 사준대서 그거 돕, 돕느라….”

“…형.”

“맛있더라 치킨….”

“……?”

겨우 참고 있던 열기가 터지는 순간 내벽이 노을의 것으로 잔뜩 젖어 들었다. 노을이 성기를 뒤로 조금 빼내자마자 허벅지를 타고 희뿌연 정액이 흘러내렸다. 경수는 그 감각에 고개를 홱 돌리며 경악했다.

“야.”

“…아니… 맛있다니, 그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노을은 변명하듯 중얼거리면서도 지난 목요일을 떠올렸다. 저녁부터 갑자기 피곤해서 빨리 잘 테니 내일 보자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왜 그딴 걸로 거짓말을 했지.

“이제 됐지? 놔줘.”

경수는 그의 말에 담긴 불만과 어이없음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빨리 손이나 놓으라며 몸부림을 쳤다.

“……!”

노을은 경수를 끌어안은 채 몸을 빙글 돌려 그를 제 위에 앉혔다. 순식간에 자신의 무게까지 실려 더 깊이 들어오는 성기에 경수는 숨을 집어삼켰다.

“야…!”

“치킨이 맛있었단 말은 왜 해요?”

“사, 사줄게. 놔….”

“제가 사 먹으면 되는데요?”

“…….”

“이건 거짓말한 것에 대한 벌이에요. 뭘 잘했다고 놓으래….”

“씨발, 벌은 무슨. 네가 내 선생이냐?”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노을의 입가에 웃음기가 번졌다.

“역할극이 하고 싶어요? 제가 과외 선생님인 건가?”

“미쳤냐? 놓으라고…!”

“어떻게 시작해요? 제가 먼저 할까요?”

“씨발…!”

간질거리는 열기를 이기지 못한 경수는 제 것을 꽉 쥐고 있는 노을의 손을 억지로 떼어냈다. 노을은 경수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경수야.”

“…….”

아찔한 전율과 함께 불같이 고여 있던 열기가 허무하게 터져 나왔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제 귓가에 속삭여지는 이름 탓이었다. 어이없이 맞이한 사정에 경수는 고개를 숙여 아랫배에 토해진 정액을 내려다보았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천노을이 자신을 조루 새끼라고 놀려도 할 말이 없었다.

“…….”

“…….”

경수가 자신도 모르게 뒤를 꽉 조이자, 천노을도 그것을 느꼈는지, 귓가에 한 번 더 경수의 이름을 속삭였다. 또 한 번 움찔거리는 구멍에, 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노을은 희미하게 웃으며, 잘게 떨리는 경수의 입술에 쪽 소리를 내어 키스했다. 어느새 다시 굵기를 더해가는 성기가, 젖어 있는 내부에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윽, 그만 좀…!”

“안 돼. 읏, 그러게 누가 선생님한테 거짓말하래.”

“미친 새끼. 네가 내 선생이면 난 네 조상님이다!”

“…조상님이요?”

“그래! 작작하고 좀 빼!”

“후손 플레이…?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해요?”

“미쳤어?”

“그건 또 신선하네요… 아무 데서도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없었는지 알겠어요. 좀… 하기 싫다.”

“하기 싫, 읏, 싫으면 빼… 아, 거기…!”

“빼라면서, 거짓말.”

“아!”

축축한 혀가 입을 벌리고 들어와 제 혀에 얽혔다. 혀가 빨리는 감각에 등줄기가 찌릿해진다. 벌써 허리가 울리는데, 가해지는 자극에 몸은 매우 정직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자극에 약한 경수는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팔을 들어 노을을 끌어안았다. 그는 어느새 거실에 있을 천노을의 휴대폰에 대한 생각은 모조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

호시탐탐 빠져나갈 기회만을 노리던 경수는 어느 순간부터 지쳐서 맥이 다 풀려버린 듯했다. 노을은 그가 잠이 들기 전까지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철통같이 그를 감시했다.

자는 체를 하던 경수가 완전히 잠이 들고 나서야 노을은 슬쩍 몸을 일으켜 침대 아래로 발을 디뎠다.

분명 씻으러 들어가기 전에 휴대폰을 충전기에 연결해두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다 숨긴 건지 두리번거리며 찾던 노을은 소파 아래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찾을 수 있었다.

화면 액정을 켜보니 웬 알림이 몇십 개씩이나 와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SNS 아이콘을 눌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자로 다물려 있던 입꼬리가 슬그머니 들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히.”

자신이 작성했을 리가 없는 이상한 댓글들에 ‘좋아요’가 수십 개씩 박혀 있었다. 댓글이 올라간 시간을 보니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딱 한 명으로 추려졌다.

형, 질투했구나? 너무너무 귀여워….

그는 어느새 히죽히죽 웃으며 잠시나마 ‘천노을’이었던 경수가 작성한 댓글을 캡처해 갤러리 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리고 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삭제당할 것을 대비해 메일로도 캡처한 사진을 보내두었다.

그러고는 댓글 알림 기능을 꺼두었다. 노을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불 뭉텅이를 끌어안고 있는 경수에게서 이불을 빼내고 그 사이로 들어가 누웠다. 따뜻한 경수의 팔이 제 가슴 위에 턱, 얹히고 그의 다리는 제 몸에 휘감겼다.

“형.”

“…….”

“어차피 금방 들킬 거, 이런 걸 뭐 하러 숨겼어요?”

“…….”

“너무 좋아서, 저… 또 설 것 같아요….”

“커어.”

노을은 내내 시달려 눈가가 붉어진 채 잠든 경수의 얼굴에 쪽쪽거리며 입을 맞췄다. 평소에는 이 정도로 뽀뽀를 하면 몽롱한 눈을 뜨고, 작작하고 자라며 짜증을 냈을 텐데 오늘은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눈썹만 꿈틀거리고 말았다. 이 순간을 즐겨야 했다. 내일 형이 제정신을 차리면 얼굴에 못 하게 할 테니까. 노을은 본격적으로 달려들어 경수의 양 뺨에, 꼭 감긴 눈가에, 그리고 입술에까지 쪽쪽거리며 입을 맞춰댔다.

“으악!”

“음냠….”

짝! 한참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뽀뽀를 하던 노을은 잠든 사람의 손맛을 얼굴로 받아내고 나서야 얌전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경수가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눈을 뜨자마자, 옆에 누운 노을이 웃음기 어린 말투로 말을 걸었다.

“잘 잤어요?”

“흐아암… 넌 참 잠도 없다. 몇 시에 일어난 거야?”

“방금 일어났어요!”

“그런데 누구한테 뺨 맞았냐? 좀 붉은데.”

“…형이요.”

아침부터 또 헛소리군. 웃기시네. 경수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깜빡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형 눈 엄청 부었어요. 붕어 같아.”

“…….”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대체 몇 시에 잠들었는지 가늠도 안 된다. 하여간 한 번 시작하면 정도를 모르고 달려들어 탈이었다. 노을은 경수의 양 뺨을 살포시 감싼 채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천노을은 경수의 뺨을 꾹 눌러보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붕어다, 붕어.”

“…….”

“귀여워….”

“노을아, 여기가 게임 속인 줄 알아?”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 손에 죽으면 이번 생은 끝이라는 뜻이야.”

“…헤헤.”

목숨도 하나면서 왜 그렇게 깝쳐, 깝치기를. 경수는 속으로 그렇게 읊조리며 손을 들어 노을의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렸다. 다소 강한 손짓에 노을의 머리가 마구 흔들렸다. 머리 위에 까치집이 생겼다. 그래도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노을은 뺨을 뜯기면서도 연신 헤실거리며 웃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평소보다 더 좋아 보였다. 기분 좋은 천노을을 보고 있자니 경수는 역으로 반감이 들었다.

“왜 웃어!”

“그냥요. 형이 좋아서 그래요.”

“어…어? 그래… 나도 좋아해.”

“알아요. 내일쯤엔 올라오려나….”

“뭐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형 머리가 엉망인데, 같이 씻을래요?”

“아니. 너 혼자, 나 혼자, 그렇게 따로 씻어. 그리고 컴퓨터 좀 켜봐. 출석 체크 해놔야 돼….”

날이 맑았다. 기분 좋은 햇살이 창을 통해 넓게 들어오고 있었다.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경수는 마냥 평화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의미로 기지개를 켰다.

일은 이틀 뒤인 월요일 저녁에 발발했다.

꺼진 휴대폰에 충전기를 연결해 전원이 켜지기가 무섭게 알림 메시지가 여러 개 떠올랐다.

「Lee: 김경수 빨리 니 태그 당한 글 봐봐!!」

과 동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태그를 당하다니, 또 권태열 개놈이 이상한 글에 태그를 걸어둔 건가? 얘가 권태열을 어떻게 알지? 경수는 멍하게 생각하다 이번에야말로 놈을 차단해버리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전투력을 풀 충전하고는 어플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런데 화면에 떠오른 것은 경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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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도망쳐…! #한대전_32045번째 외침

익명으로 부탁드립니다. ^^

고민 끝에 제보하는데요, 지난 화요일 학생 식당에서 컵라면 가져오시다가 발이 걸리셔서 얼굴로 엎어지신 분을 찾고 싶습니다.

소리가 무척 컸고 건축학과 롱패딩 입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건 아마 확실할 겁니다. 저는 IQ 300에 멘사 특별회원이라 웬만해선 틀리게 기억하는 법이 없거든요ㅎ^^ 흰 패딩 입고 있던 친구분이랑 급히 치우시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신 것 같습니다만, 자꾸만 눈길이 가더군요. 저도 저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ㄷㄷ

그나저나 제가 그분의 허술함에 홀~딱 반한 것 같습니다.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도 샤워를 할 때도 계속 생각이 나요. 혹시 남자친구… 필요하실까요? ^^ 밥 한 번 사게 해주세요. 참! 복용하시는 약 없이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수술 경험 없으시겠죠? ^^ 시력은 1.0 이상에 B형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ㅋㅋ넝~담~ 재치 있었나요?

ㅎㅎ다음에 봤을 땐 형이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아요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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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읽어 내리는 동안 경수의 표정은 점차 굳어갔다. 지난주 학생 식당에서 보란 듯이 넘어져서 라면 국물에 옷을 다 버린 것도 맞았고, 그걸 본 동기들이 동네방네 다 소문을 내고 다녀서 동기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소름. 내 시력이랑 혈액형은 어떻게 알았지…?”

B형인 것도, 시력이 양쪽 모두 1.2인 것도 다 맞아떨어졌다. 척 보기에도 내가 B형에 시력이 좋은 것처럼 보이나? 경수는 점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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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영: @정민희 형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였어ㅋㅋㅋ 막줄 개소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민희: ㅋㅋㅋㅋㅋㅋ여러모로 소름이짘ㅋㅋ

▶김민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경수 너 장기조심해라

▶고승혜: @현지훈 말투 보니까 4학년 말고 적어도 대학원생 같은데ㅋ

└현지훈: 나 왜 태그해…?

└고승혜: 너 곧 석사 따잖아ㅋㅋ 그런데… 척척석사에서 끝낼 거야? 너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

└현지훈: 악마 새끼야

▶박성현: 요새 대숲 왜 이러냐… 사내새끼들이ㄷㄷ 복학하기 두렵군ㅋ 쩝… 나 다닐 때는 이런 글은 상상도 못 했는디ㄷㄷ;;

└정민희: 오빠 라떼 이스 홀스 시전하니까 진짜 화석 같아요~

└박성현: 그게 모야??

▶윤정원: 옷 갈아입으러 집 갔다 온 @김경수

└김민혁: ㅋㅋㅋㅂㅅ @김경수 집에도 갔다 왔음? ㅉㅉ

――――――――――

“…누구야?”

경수는 차마 답글을 달 겨를도 없이 휴대폰을 책상 위에 턱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경황없이 바닥을 치우던 기억만 나지, 당시 근처에 누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씨발, 형이라니. 형이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다니! 그날 학생 식당에 있던 사람만 수십 명인데, 한 명만 어떻게 기억하냐고!

‘자꾸만 눈길이 가더군요. 저도 저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ㄷㄷ’

“…….”

그래도 거절을 해야겠지. 남자친구… 아니, 애인이 있다고 달면 되나? 경수는 이런 큰 페이지에 자신에 대한 에피소드가 실린 일이 처음이라 조금 들떴다. 어이없고 곤란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예상치도 못하게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허술함에 홀~딱 반한 것 같습니다.’

글을 몇 번이고 읽어보던 경수는 그 문장에서 잠깐 멈칫했다.

‘천노을도 그래서 날 좋아했나?’

경수는 컵라면을 엎지르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와 ‘어디 다친 곳 없어요?’라며 먼저 묻고 군말 없이 치우는 것을 도와주던 노을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제 걱정을 하는 것도 좋았고 얼굴도 좋… 아무튼 경수는 천노을의 어느 한구석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었다.

‘아니, 아닌데. 그때만 실수로 엎었지, 난 좀 똑 부러지는 편 아닌가.’

그리고 노을은 매번 물어볼 때마다 처음에는 경수의 얼굴을 보고 좋아하게 된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다 좋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러니 자신의 허술함에 반했다거나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건 글을 쓴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다.

「차정원: 경수 여친 있으니까 이제 남친만 하나 사귀면 되겠넹~ 남녀 밸런스도 맞고!!」

「나: ㅗ」

정성스레 자신을 태그해주거나 톡으로 알려준 친구들에게 사랑을 담은 메시지를 보낸 경수는 문득 노을의 계정이 생각나 흠칫했다. 자고 일어난 뒤로 까맣게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헐레벌떡 친구 목록 중 천노을의 이름을 검색해 그의 계정에 들어가 보았다.

“아, 다행이다. 아직 모르는 건가?”

아직도 프로필 사진은 이름 모를 파란 머리 캐릭터였으며, 그가 쓴 댓글도 여전히 달려 있었다. 아직 바꾸지도, 제게 뭐라고 하지도 않은 걸 보니 이 사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행이야. 노을이가 여긴 관심이 많이 없어서.’

내일 몰래 노을의 휴대폰을 빼앗아 원상태로 돌려놔야겠다고 경수는 생각했다.

「차정원: 김경수!!!!! 경수야!!!!!!!!!!!」

「김이혁: YOU WERE A CAR」

미리 보기 메시지가 차례로 도착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플 알림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자신이 태그되었다는 댓글이었는데, 우선 자신을 애타게 찾는 톡방에 답장부터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나: 나 영어 약함;」

「김이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YOU WERE A CAR」

「차정원: you were a car」

「나: 너는 차다?」

「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이혁: 과거형 ㅂㅅ아」

「나: 너는 과거에 차다.」

「김이혁: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정원: ㅋㅋㅋ너는 차였다! 너는 차였다고!」

「나: ?? 그래 내 말이 그거임」

「김이혁: 어휴… 아무튼 you were a car」

「나: 나 아직 차 없는데? 면허만 땀… 뭔 소리야 니네」

「차정원: 아 나 지금ㅋㅋㅋㅋㅋㅋㅋ 배 아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약 먹어」

「차정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 그랰ㅋㅋㅋㅋㅋㅋㅋ」

「김이혁: ㅋㅋㅋㅋㅋㅋㅋㅋ어휴 어휴휴」

「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가 뭐 어쨌다고? 이번엔 무슨 놀이를 하는 건지 도무지 어울려줄 수가 없었다. 경수는 톡방 알림을 끄고 나와서 또다시 자신을 태그한 괘씸한 놈이 어떤 놈인지 확인하기 위해 상단 바를 내려 어플 알림을 눌렀다. 방금 전에 올라온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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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32045번 멘사남 후속작(팝콘) #한대전_32070번째 외침

마찬가지로 익명, 부탁드립니다.

지난번 컵라면 엎으신 분을 찾는다고 했던 IQ 300 멘사 특별회원인데요, 실은 더는 그분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한대전을 찾게 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제게 잘생기고 상냥한 남자친구가 생겨버렸습니다.

그러니 뒤늦게 제게 청혼이나 상견례 등으로 쓸데없는 연락을 주시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이만 절 잊고 행복하세요

(좋아요 17)

▶이화영: @정민희 ㅋㅋㅋㅋㅋㅋㅋ아 시발ㅋㅋㅋㅋ차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민희: 차ㅋㅋㅋㅋ임ㅋㅋㅋㅋ 후속작도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혼자 머 하냨ㅋㅋㅋㅋㅋㅋ 연재해주세요ㅋㅋㅋㅋㅋㅋ

▶김나희: ㅇㅖ? 이름도 모르는데 연락이요??? 청혼에 상견례??????

▶심세영: 먼 이런 놈이 다 잇냐….

▶방승현: 요즘 애들 진도 빠르네 ㄷㄷ

▶yuna han: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ㅉㅉ @김경수

└김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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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원: you were a carㅋㅋㅋㅋㅋ」

you were a car. 너는 차였다. …차였다?

「나: 아 시발」

「김이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ㅂㅅㅋㅋㅋ」

「혤: 이제 알았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차였다!!

아니, 아직 전 글에 애인 있다고 답을 달기도 전인데 거절당하고 말았다. 생애 두 번째로 언급된 한대전 글이 이딴 거라니. 누군지 잡히기만 하면 초면이라도 당장 달려가 명치를 세게 때릴 자신이 있었다. 경수는 이를 갈며 ‘한국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를 조용히 구독 취소했고, 이 일은 우스운 해프닝처럼 넘어가는 듯했다.

*

“…어?”

“아, 당 딸려. 형 저 초콜릿 사줘요.”

“…야. 너 이거 뭐야?”

“응?”

경수는 몰래 프로필 사진을 다시 원래대로 바꿔두려고 집어 든 노을의 휴대폰에서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 새로 만들었는지 아무것도, 친구도 없는 계정에 ‘한국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와의 메시지 기록이 있었다.

“아이큐 300에 멘사 회원? 지랄….”

“…….”

“야. 너 어디 가, 빨리 이리 와. 앉아.”

“…….”

노을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는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다 출입이 금지된 잔디밭을 가로질러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저 건너편에서 경비원이 ‘학생들, 잔디밭 들어가지 마아앜!’ 하며 달려오고 계셨다. 경수는 노을을 잡기 위해 이를 악물고 뒤를 따라 달렸다. 경비원은 경수와 노을을 잡기 위해 달려오다, 반대편에서 타이밍을 맞추어 달리는 학생 무리에게 삿대질을 하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안 때릴게! 뒤지기 전에 당장 서라!”

“허억… 뭔 소리야! 안 때리고 죽일 거란 말이잖아요!”

“잡히면 열 대, 얌전히 서면 열 대야!”

“아 진짜 뭔 소리야! 형 인기 있어 보이게 해주려던 건데 왜 그래요!”

“…뭐라고? 넌 진짜 잡히면 뒤졌다.”

적반하장으로 나오던 노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수에게 목덜미를 붙잡혀 얼굴이 희게 질렸다. 경수는 노을의 멱살을 짤짤 흔들며 목숨을 위협했다.

“유언.”

“범인은 김경수….”

“……?”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으면서 말은 또 잘한다. 노을은 말없이 웃는 경수를 힐끔힐끔 쳐다보다 눈치를 보며 슬쩍 말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제 여자친구 얼굴이라도 보게 해줘요.”

“여자친구?!”

“네. 폰 좀 줘봐요.”

“너 지금 나… 차는 거야?”

“제가요? 미쳤어요?”

“미친 건 너겠지. 그게 아니면 뭐야!”

“…저 억울해요! 형이 먼저 제 프로필 사진도 바꾸고! 여자친구라고 하면서 이상한 말투 쓰고 댓글 달았잖아요!”

“내가 언제… 아.”

그거라면. 순간 천노을 이 미친놈이 진짜 바람이라도 피우는 줄 알고 화가 날 뻔했던 경수는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래, 노을이가 그럴 리가 없지. 가끔 사람을 빡치게 하는 능력은 있어도 그 뒤에는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었다.

“형 때문에 어제 모르는 동기가 저한테 너도 그 애니 보냐고 말 걸었단 말이에요… 진짜 싫어.”

“큼….”

“걔가 제 번호 따가려고 했어요. 안 줬지만… 알아내서 연락이라도 오면 번호 바꿀 거야….”

“미안. 퉁치자.”

경수는 깔끔하게 제 잘못을 인정하고 노을의 옷을 탁탁 털어 옷매무새를 다듬어주었다. 노을은 눈을 또록또록 굴리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수의 손을 잡아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우리 화해한 거예요?”

“그래. 앞으로 이 얘기 꺼내기 없는 거야.”

“네.”

그래도 놈이 제게 ‘질투했어요? 왜 이런 댓글을 썼어요?’하고 물어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건가. 꽤 단순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경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노을의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목이 찢어질 것 같아요.”

“어, 괘, 괜찮아?”

“목말라서요.”

“…이딴 걸로 장난칠래?”

“누구한테 목이 졸려서 그런가? 콜록….”

“가자. 물이라도 사줄게.”

조금 미안해진 경수는 노을의 팔뚝을 잡아끌며 발걸음을 옮겼다. 노을은 제 팔을 잡은 경수의 손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를 쫓든, 그에게 쫓기든, 뭘 해도 즐겁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도 안 봐주는 듯하면서도 조금만 약한 소리를 하면 기세가 풀어지는 게 좋았다.

그냥… 형이라면 나는 다 좋아.

천노을은 땀에 젖은 머리를 터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애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자꾸만 풀어지는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며칠 뒤 저녁, 또다시 노을을 지목하며 그를 찾는 글 몇 개가 한대전에 올라왔고, 경수는 손까지 덜덜 떨며 짜증을 냈다. 노을은 착잡해하던 경수에게 전화를 걸어 ‘형 또 질투하고 있죠?’라고 하며 순식간에 경수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그런 글 몇백 개가 올라와도, 난 형이 하는 한마디 말이 더 좋아요. 아니야, 그냥 숨만 쉬어도 좋아요!

“아, 알아.”

-아는 사람이 왜 그런 거에 질투를 해요…?

…그렇게 본인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처럼 말했던 노을은, 정확히 한 달 뒤, 경수를 좋아한다며 그를 지목한 글이 페이지에 올라오자, 다짜고짜 집 앞까지 찾아왔다. 그러고는 경수에게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경수는 다짜고짜 노을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시끄럽게 조잘거리던 노을은 그제야 말을 그치고 슬그머니 팔을 들어 그를 마주 안았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경수는 질투에 돌아버린 노을을 보며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일단 들어와서 떠들어.”

“…네!”

노을을 집 안으로 들이자 이내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복도에 켜졌던 센서 등이 이내 딱 소리를 내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꺼졌다. 두 사람은 함께, 같은 장소에서 그날의 하루에 마침표를 찍었다.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gwihwanhaessneunde ibdae jeonnal-ida I returned, but it was the day before enlistment.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
Score 3.3
Status: Ongoing Native Language: Korean

Kim Minjun, who was a normal high school senior in South Korea, was suddenly summoned to another world and became a dark magician.

Minjun, who persevered through all sorts of hardships with the single-minded goal of returning home, saved this other world with his dark magic.

Casting aside a life as a hero and guaranteed riches, he returned to Earth.

Just when he was about to fully enjoy his life, a problem arose. A dungeon break occurred, and monsters began pouring out. Not only did this threaten the peaceful Earth life that Minjun had just returned to… But on his very first day back, he was also ordered to enlist in the 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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