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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2화. 해보는 수밖에.
     
     
     
     
     
     
     
     
   “이봐. 지정된 흡연 구역 외에는 전지역 금연인 거 몰라?”
     
   말끔한 정장 차림의 동양인 사내가 커다란 허스키의 목줄을 쥐고 강호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하아. 심장이야.’
     
   강호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하지만 안도는 잠시였다.
     
   [이름]: 사토시 한조.
   [소속]: 보안청
   [직급]: 2급 보안요원
   [종]: 인간 / 퓨어
   [등급]: 비각성.
   [특성]: 비각성.
     
   사내와 자신의 시야 사이에 떠 있는 상대방의 정보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후우. 한동안 안 보이더니. 확실히 이건 심리적인 문제는 아니야.’
     
   스카우트 고글이나 헬멧 등 아무런 장비도 없이 투명한 상태창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처음에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환청처럼 이것도 환각이 아닐까 걱정됐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앙 통제실과 기술지원팀에 문의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최첨단 과학 시설의 집약체인 세계 종 보관소라고 해도 그런 기능은 없었다.
     
   ‘말이라도 해볼 걸 그랬나.’
     
   조금 전에도 리사 박사에게 이 증상에 관해 말할까 말까 망설였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의사의 반응이 뻔히 예상돼 입을 다물었다.
   정작 본인 스스로도 환각을 의심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내 추측이 맞는 것 같아.’
     
   한 달 전, 재난 매뉴얼을 다 외웠을 때 갑자기 이명이 들려왔었다.
     
   – 정보 동기화가 완료됐습니다.
     
   당시엔 이것도 환청인가? 싶었지만, 환청과는 확연히 다른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이후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해당 정보가 떠올랐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 추측이 가능했다.
     
   ‘이거, 재난 매뉴얼에서 봤던 정보들이다.’
     
   그렇다면 동기화라는 말은 이해됐다.
   본의 아니게 내용을 모조리 외워버렸고, 그래서 그 내용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왜 그런 현상이 자신에게만 나타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편의성만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아. 직관적이고 명확해서 오히려 좋은 게 사실이야.’
     
   사소한 의문은 있었다.
   몇몇 항목이 그랬다.
     
   ‘종, 등급, 특성, 이게 다 뭐야?’
     
   그런데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 프로토타입 동기화 및 패치 완료.
   – 프로토타입 이능 확장과 강화 프로세스가 시작됐습니다.
     
   상태창 현상에 대해서는 재난 매뉴얼이라는 개연성이라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뜬금없는 소리였다.
   추측은커녕 무슨 소린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프로토타입이라는 게 대체 뭔데? 프로세스 시작은 또 뭐고?’
     
   하지만 의문은 의외로 빨리 풀렸다.
     
   갈피를 잡지 못해서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을 다 시도해 볼 때였다.
   문득 재활훈련과 병행했던 특별 훈련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아무런 특이점을 찾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걸 다시 해 봤더니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피시잇.
     
   손바닥 위에 빛 구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른 건,
     
   ‘혹시, 나노 칩?!’
     
   담당 의사의 설명 중,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였다.
     
   특수 혈청과 나노 칩.
     
   재활 과정에서 특수 혈청의 효과는 확인했다.
   인간의 한계를 가뿐히 넘어서 버린 신체 능력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연구진이 기대했던 게 이런 현상이었을까?’
     
   한강호는 손바닥 위에서 빛나고 있는 광옥(光玉)을 한참이나 황당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 후,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자신의 환각 증세를 의심하면서도 틈나는 대로 연구하고 연습했다.
   관련한 현상이나 그에 관한 논문, 각종 자료 등도 꾸준히 찾아봤다.
   그래서 설명할 만한 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플라즈마.’
     
   자유자재로 플라즈마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인류 역사에 청동기, 철기, 화약, 그리고 핵 다음으로 기록될 일이다.
   그래서 그 활용의 예로 찾은 것이 아이언맨의 플라즈마였다.
   앞으로 더 연구해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정도가 상상력의 한계였다.
     
   ‘백번 양보해서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한강호는 사토시의 정보를 보다가 떠오른 상념을 그만 털어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남다른 크기를 자랑하는 잘생긴 허스키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늑대야, 개야?’
     
   [이름]: 울프
   [소속]: 보안청
   [직급]: 1급 보안요원 / 탐지견
   [종]: 늑대개 / 1차 변이체.
   […]: ……
     
   ‘아, 어쩐지, 늑대개였구나.’
     
   강호는 울프가 사토시보다 상관인 걸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피식.
     
   그런데 그 웃음이 보안요원의 오해를 사버렸다.
     
   “웃어? 사람 말이 우스워?!”
     
   강호는 발끈하는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 타들어 간 담배꽁초를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잘잘못을 떠나 처음부터 고압적인 그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래서 적당히 상대하고 넘길 생각이었다.
     
   “그래요. 미안해요.”
   “……”
     
   전혀 미안하지 않은 강호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태도에 사토시는 더 화가 뻗쳤다.
     
   “… 신분 확인.”
     
   강호는 별다른 거부 없이 상대가 내민 팬 스캐너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경비원이야? 하!”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뀐 사토시는 홀로그램 패드를 꺼내 강호의 신상을 조회했다.
     
   “응? 이거 뭐야?”
     
   그는 미간을 잔뜩 구기고서 경비원과 패드를 번갈아 봤다.
     
   ‘뭐가 이래? 왜 다 정보 접근 불가야?’
     
   다시 한번 강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사토시가 통신을 통해 기본 정보를 요청했다.
     
   –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추천하고 대통령 재가로 온 사람이야. 특수부대 소령 출신이란 것까지는 확인된다.
   – 괜히 실수하지 말고 보내드려.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너 퇴소다.
   “아, 네. 알겠습니다.”
     
   통신을 종료한 사토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무슨… 그런 대단한 사람이 왜 경비원이야? 아니, 애초에 지하 10층엔 왜 와 있어?’
     
   그의 의문과 당혹감은 일면 타당했다.
   세계 종 보관소에서 경비원은 놀고먹는 자리였다.
   모든 시설이 자동화되어 있고, 보안 및 경비 시설 또한 최첨단 무인 시스템이기에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낮기 때문이다.
   즉, 아무나 갖다 놔도 되는 직군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정체불명의 남자는 뭔가?
   세계 종 보관소가 위치한 국가의 대통령이 왜 나와?
     
   어쩐지 그에게서 권력의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이거 뭐, 언더커버, 그런 거 아냐?’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회생활의 절반은 줄서기라는 게 평소 지론이다.
   어쩌면 일생일대의 출세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촉이 왔다.
   그러니 일단 수습 먼저.
     
   “실례했습니다! 우선 여기, 신분증…”
     
   그가 절도 있는 태도로 강호에게 신분증을 돌려줄 때였다.
     
   왜애애앵-
     
   갑자기 사방에서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무, 뭐야?”
     
   사토시가 놀라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토시, 뭐 하고 있어.”
   “네? 뭐, 뭘요?”
   “당신, 병원 쉘터 보안요원 아냐? 1차 사이렌이 울리면 뭘 해야 하냐고.”
   “아. 어, 음.”
     
   한강호가 짧게 한숨을 뱉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허공을 살폈다.
   마치 모니터의 글자라도 읽는 것처럼, 눈동자가 좌에서 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다시 사토시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날 따라와. 이동 중에 교신해. 당장 병원 비상 전력 가동하고 전 보안요원은 의사 신변 보호와 환자들 이동 통제.”
     
   사토시는 얼떨결에 그의 명을 따랐다.
   직전까지 정체불명의 얼빵한 씹새끼였는데, 순간적으로 카리스마에 압도됐다.
   그리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특수부대 소령 출신!’
     
   달리는 것만 봐도 그의 운동능력이 얼마나 뛰어날지 가늠됐다.
   뚱뚱한 체형에 뒤뚱거리며 걷는 다른 백인 경비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두 남자는 어느새 공원을 가로질러 전력 시설이 있는 쉘터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때, 다시 한번 요란한 경보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삐비비비비-
     
   강호는 이어진 경보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내 뒤로 와!”
   “네? 아, 네!”
     
   사토시는 군말 없이 울프와 함께 강호의 뒤로 바짝 붙어 섰다.
   무슨 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이 남자, 믿음이 갔다.
     
   그사이 강호는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짧게 고민했다.
     
   ‘아직 플라즈마를 변형해 써본 적은 없는데.’
     
   하지만 더 고민하거나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해보는 수밖에.’
     
   그는 굴러오는 바위라도 막을 것처럼 살짝 자세를 낮췄다.
   그리곤 왼손을 쫙 펼쳐 앞으로 뻗고, 오른손은 하늘을 향했다.
   이어서 빠르게 생각했다.
     
   ‘초고밀도 방어막’
     
   그러자 몸 주위로 얇고 푸른 수증기 막 같은 게 일렁이더니, 이내 생경한 공간감이 느껴졌다.
     
   스으윽.
     
   반구 형태의 반투명한 막이 강호를 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쿠우웅.
     
   뭔가 터졌다.
   화염이 일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식의 폭발은 아니었다.
   마치 EMP라도 맞은 것 같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역시나, 폭발음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보이지 않는 공기의 파도가 밀려와 덮쳤다.
     
   “으윽!”
     
   쿠우우우.
     
   거센 풍압이 주위를 휩쓸었다.
   보기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몇이 쓰러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도 피해를 다 막아내진 못한 것 같았다.
     
   “웁!”
     
   멀미가 심하게 올라왔다.
   매스껍고 어지러웠다.
   결국 그는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어야 했다.
     
   털썩.
     
   “하아, 하아.”
     
   잠시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증세가 나아졌다.
     
   크르르. 컹.
     
   울프가 짖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사토시가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뭔가 새로운 메시지라도 있다는 듯 눈 주위가 밝게 깜빡이더니 사토시의 정보가 다시 떠올랐다.
     
   [이름]: 사토시 한조.
   […]: ……
   [종]: 인간 / 1종 변이체.
   [특성]: 닌자.
   [등급]: Lv. 1
   [전문 기술]: 은신, 투척.
   [보조 기술]: 탐색, 추적.
     
   달라진 항목들이 시선을 끌었다.
   황당한 항목도 추가됐다.
   이게 대체 뭔가 싶다가,
     
   ‘혹시 나도?’
     
   그래서 상태를 확인했다.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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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해보는 수밖에.

“이봐. 지정된 흡연 구역 외에는 전지역 금연인 거 몰라?”

말끔한 정장 차림의 동양인 사내가 커다란 허스키의 목줄을 쥐고 강호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하아. 심장이야.’

강호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하지만 안도는 잠시였다.

[이름]: 사토시 한조.

[소속]: 보안청

[직급]: 2급 보안요원

[종]: 인간 / 퓨어

[등급]: 비각성.

[특성]: 비각성.

사내와 자신의 시야 사이에 떠 있는 상대방의 정보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후우. 한동안 안 보이더니. 확실히 이건 심리적인 문제는 아니야.’

스카우트 고글이나 헬멧 등 아무런 장비도 없이 투명한 상태창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처음에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환청처럼 이것도 환각이 아닐까 걱정됐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앙 통제실과 기술지원팀에 문의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최첨단 과학 시설의 집약체인 세계 종 보관소라고 해도 그런 기능은 없었다.

‘말이라도 해볼 걸 그랬나.’

조금 전에도 리사 박사에게 이 증상에 관해 말할까 말까 망설였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의사의 반응이 뻔히 예상돼 입을 다물었다.

정작 본인 스스로도 환각을 의심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내 추측이 맞는 것 같아.’

한 달 전, 재난 매뉴얼을 다 외웠을 때 갑자기 이명이 들려왔었다.

– 정보 동기화가 완료됐습니다.

당시엔 이것도 환청인가? 싶었지만, 환청과는 확연히 다른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이후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해당 정보가 떠올랐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 추측이 가능했다.

‘이거, 재난 매뉴얼에서 봤던 정보들이다.’

그렇다면 동기화라는 말은 이해됐다.

본의 아니게 내용을 모조리 외워버렸고, 그래서 그 내용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왜 그런 현상이 자신에게만 나타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편의성만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아. 직관적이고 명확해서 오히려 좋은 게 사실이야.’

사소한 의문은 있었다.

몇몇 항목이 그랬다.

‘종, 등급, 특성, 이게 다 뭐야?’

그런데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 프로토타입 동기화 및 패치 완료.

– 프로토타입 이능 확장과 강화 프로세스가 시작됐습니다.

상태창 현상에 대해서는 재난 매뉴얼이라는 개연성이라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뜬금없는 소리였다.

추측은커녕 무슨 소린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프로토타입이라는 게 대체 뭔데? 프로세스 시작은 또 뭐고?’

하지만 의문은 의외로 빨리 풀렸다.

갈피를 잡지 못해서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을 다 시도해 볼 때였다.

문득 재활훈련과 병행했던 특별 훈련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아무런 특이점을 찾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걸 다시 해 봤더니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피시잇.

손바닥 위에 빛 구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른 건,

‘혹시, 나노 칩?!’

담당 의사의 설명 중,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였다.

특수 혈청과 나노 칩.

재활 과정에서 특수 혈청의 효과는 확인했다.

인간의 한계를 가뿐히 넘어서 버린 신체 능력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연구진이 기대했던 게 이런 현상이었을까?’

한강호는 손바닥 위에서 빛나고 있는 광옥(光玉)을 한참이나 황당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 후,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자신의 환각 증세를 의심하면서도 틈나는 대로 연구하고 연습했다.

관련한 현상이나 그에 관한 논문, 각종 자료 등도 꾸준히 찾아봤다.

그래서 설명할 만한 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플라즈마.’

자유자재로 플라즈마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인류 역사에 청동기, 철기, 화약, 그리고 핵 다음으로 기록될 일이다.

그래서 그 활용의 예로 찾은 것이 아이언맨의 플라즈마였다.

앞으로 더 연구해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정도가 상상력의 한계였다.

‘백번 양보해서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한강호는 사토시의 정보를 보다가 떠오른 상념을 그만 털어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남다른 크기를 자랑하는 잘생긴 허스키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늑대야, 개야?’

[이름]: 울프

[소속]: 보안청

[직급]: 1급 보안요원 / 탐지견

[종]: 늑대개 / 1차 변이체.

[…]: ……

‘아, 어쩐지, 늑대개였구나.’

강호는 울프가 사토시보다 상관인 걸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피식.

그런데 그 웃음이 보안요원의 오해를 사버렸다.

“웃어? 사람 말이 우스워?!”

강호는 발끈하는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 타들어 간 담배꽁초를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잘잘못을 떠나 처음부터 고압적인 그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래서 적당히 상대하고 넘길 생각이었다.

“그래요. 미안해요.”

“……”

전혀 미안하지 않은 강호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태도에 사토시는 더 화가 뻗쳤다.

“… 신분 확인.”

강호는 별다른 거부 없이 상대가 내민 팬 스캐너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경비원이야? 하!”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뀐 사토시는 홀로그램 패드를 꺼내 강호의 신상을 조회했다.

“응? 이거 뭐야?”

그는 미간을 잔뜩 구기고서 경비원과 패드를 번갈아 봤다.

‘뭐가 이래? 왜 다 정보 접근 불가야?’

다시 한번 강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사토시가 통신을 통해 기본 정보를 요청했다.

–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추천하고 대통령 재가로 온 사람이야. 특수부대 소령 출신이란 것까지는 확인된다.

– 괜히 실수하지 말고 보내드려.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너 퇴소다.

“아, 네. 알겠습니다.”

통신을 종료한 사토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무슨… 그런 대단한 사람이 왜 경비원이야? 아니, 애초에 지하 10층엔 왜 와 있어?’

그의 의문과 당혹감은 일면 타당했다.

세계 종 보관소에서 경비원은 놀고먹는 자리였다.

모든 시설이 자동화되어 있고, 보안 및 경비 시설 또한 최첨단 무인 시스템이기에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낮기 때문이다.

즉, 아무나 갖다 놔도 되는 직군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정체불명의 남자는 뭔가?

세계 종 보관소가 위치한 국가의 대통령이 왜 나와?

어쩐지 그에게서 권력의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이거 뭐, 언더커버, 그런 거 아냐?’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회생활의 절반은 줄서기라는 게 평소 지론이다.

어쩌면 일생일대의 출세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촉이 왔다.

그러니 일단 수습 먼저.

“실례했습니다! 우선 여기, 신분증…”

그가 절도 있는 태도로 강호에게 신분증을 돌려줄 때였다.

왜애애앵-

갑자기 사방에서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무, 뭐야?”

사토시가 놀라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토시, 뭐 하고 있어.”

“네? 뭐, 뭘요?”

“당신, 병원 쉘터 보안요원 아냐? 1차 사이렌이 울리면 뭘 해야 하냐고.”

“아. 어, 음.”

한강호가 짧게 한숨을 뱉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허공을 살폈다.

마치 모니터의 글자라도 읽는 것처럼, 눈동자가 좌에서 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다시 사토시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날 따라와. 이동 중에 교신해. 당장 병원 비상 전력 가동하고 전 보안요원은 의사 신변 보호와 환자들 이동 통제.”

사토시는 얼떨결에 그의 명을 따랐다.

직전까지 정체불명의 얼빵한 씹새끼였는데, 순간적으로 카리스마에 압도됐다.

그리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특수부대 소령 출신!’

달리는 것만 봐도 그의 운동능력이 얼마나 뛰어날지 가늠됐다.

뚱뚱한 체형에 뒤뚱거리며 걷는 다른 백인 경비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두 남자는 어느새 공원을 가로질러 전력 시설이 있는 쉘터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때, 다시 한번 요란한 경보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삐비비비비-

강호는 이어진 경보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내 뒤로 와!”

“네? 아, 네!”

사토시는 군말 없이 울프와 함께 강호의 뒤로 바짝 붙어 섰다.

무슨 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이 남자, 믿음이 갔다.

그사이 강호는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짧게 고민했다.

‘아직 플라즈마를 변형해 써본 적은 없는데.’

하지만 더 고민하거나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해보는 수밖에.’

그는 굴러오는 바위라도 막을 것처럼 살짝 자세를 낮췄다.

그리곤 왼손을 쫙 펼쳐 앞으로 뻗고, 오른손은 하늘을 향했다.

이어서 빠르게 생각했다.

‘초고밀도 방어막’

그러자 몸 주위로 얇고 푸른 수증기 막 같은 게 일렁이더니, 이내 생경한 공간감이 느껴졌다.

스으윽.

반구 형태의 반투명한 막이 강호를 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쿠우웅.

뭔가 터졌다.

화염이 일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식의 폭발은 아니었다.

마치 EMP라도 맞은 것 같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역시나, 폭발음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보이지 않는 공기의 파도가 밀려와 덮쳤다.

“으윽!”

쿠우우우.

거센 풍압이 주위를 휩쓸었다.

보기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몇이 쓰러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도 피해를 다 막아내진 못한 것 같았다.

“웁!”

멀미가 심하게 올라왔다.

매스껍고 어지러웠다.

결국 그는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어야 했다.

털썩.

“하아, 하아.”

잠시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증세가 나아졌다.

크르르. 컹.

울프가 짖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사토시가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뭔가 새로운 메시지라도 있다는 듯 눈 주위가 밝게 깜빡이더니 사토시의 정보가 다시 떠올랐다.

[이름]: 사토시 한조.

[…]: ……

[종]: 인간 / 1종 변이체.

[특성]: 닌자.

[등급]: Lv. 1

[전문 기술]: 은신, 투척.

[보조 기술]: 탐색, 추적.

달라진 항목들이 시선을 끌었다.

황당한 항목도 추가됐다.

이게 대체 뭔가 싶다가,

‘혹시 나도?’

그래서 상태를 확인했다.

‘상태.’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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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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