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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4화. 잘못했으므니다!
     
     
     
     
     
     
     
   강호는 돌아보지도 않고 병원 복도를 내달렸다.
   짧은 시간, 한바탕 번개 폭풍이 몰아쳤다.
     
   파츠츠츠!
   쿠콰쾅!
     
   그가 지나간 자리엔 바닥이건 천장이건, 미약한 전기가 고여 간헐적으로 스파크를 일으켰다.
     
   치직.
     
   다행히 우려했던 신체 이상은 없었다.
   다만, 약간의 흥분 상태여서 그런지 신경은 더 날카로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기분 탓인가.’
     
   예상을 뛰어넘는 막강한 공격력 덕분에 큰 위기 없이 리사 박사의 진료실에 다다랐다.
   닫혀있는 문을 열기 전, 강호는 뒤를 돌아보며 사토시가 잘 따라붙었는지를 살폈다.
   그런데, 사토시가 보이지 않았다.
   울프도.
     
   “…….”
     
   잠깐 상황을 판단한 강호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 새끼. 혼자 살겠다고….’
     
   강호는 작게 고개를 젓고는 잠겨있는 문을 어깨로 밀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쾅!
     
   “리사 박사님!”
     
   잠긴 문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해 주위를 빠르게 살피는 일련의 동작은 아주 완벽했다.
   과거 대테러 진압 팀장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손님이 있었군.”
     
   흐으으으으.
     
   갑자기 나타난 강호를 보며 기괴한 소리를 흘리고 있는 건, 몇 번 본 적이 있는 매튜 박사였다.
   안타깝게도 이전에 봤던 모습은 아니었다.
     
   눈은 파충류처럼 세로였고, 연신 날름거리는 혀는 뱀의 그것이었다.
     
   ‘이건 좀비와는 다른 양상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젠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의문은 빠르게 다른 쪽으로 바뀌었다.
     
   ‘그보다, 저 흉측한 몰골로 뭘 하고 있던 거지?’
     
   책상 옆에는 리사 박사가 쓰러져 있었다.
   가운이 벗겨져 있었고, 셔츠 단추가 다 풀어져 있었다.
   풍만한 가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대한 크기의 하얀 속옷이 드러나 있었다.
   매튜는 그녀의 옆에 쭈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두 손은 각각 맨가슴과 속옷 끈을 쥐고 있었다.
     
   “괴물로 변했어도 성욕은 살아있는 건가?”
     
   강호는 망설일 것 없이 도마뱀 매튜에게 달려들었다.
     
   탓.
     
   “이런 한심한….”
     
   후욱.
   퍽.
     
   “크에엑!”
     
   변변한 저항 한번 못해보고 강호의 주먹에 맞은 그는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사지를 떨며 쓰러졌다.
     
   츠즈즈즈.
   털썩.
     
   역시나 이번에도 매튜의 몸에서는 잔상처럼 스파크가 일었다.
     
   파직.
   치지직.
     
   강호는 그 모습을 보다가 제 주먹을 살폈다.
     
   ‘그냥 일반적인 타격에도 전기력이 실리는군.’
     
   한번 능력이 각성 되니 속성 자체를 별도로 설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 이능력에 관한 건 이렇게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강호는 곧바로 리사에게 다가가 호흡이나 맥박 등을 살폈다.
   그리곤 혹시나 이 여자도 크리처 변이를 일으킨 건지, 동공과 입안도 살폈다.
     
   ‘다행히 이상 징후는 없다.’
     
   그 와중에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음. 대단하기는 하네.’
     
   그런 자신을 인식한 강호는 아직도 사지를 떨고 있는 매튜를 돌아봤다.
     
   남자의 본능.
     
   게다가 그는 정말로 짐승이 되어버렸지 않은가.
   그러니까 수컷의 본능, 그걸 인정해 주지 않은 게 조금 미안해졌다.
     
   “흠흠.”
     
   괜히 헛기침을 한 강호는 상태창을 통해 비상 구급함을 찾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한 해독제를 먹였다.
     
   “그리고 이건, 정신을 들게 하는 각성 스프레이.”
     
   치이익.
     
   호흡기 쪽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잠시 상태가 호전되는지를 지켜봤다.
     
   “외상은 없어 다행이다.”
     
   기다리는 잠깐 사이, 그녀의 상태 정보를 확인했다.
   역시나, 그녀에게도 없던 이능력이 생겼다.
     
   [이름]: 리사 아즈벨.
   […]: ……
   [종]: 인간 / 1차 변이체.
   [특성]: 원소 융합.
   [등급]: Lv. 1
   [속성]: 4대 원소.
   [전문 기술]: 기본 속성 활용.
   [보조 기술]: 응급치료. 마취. 신체 절단 및 봉합. 무두질. 가죽세공. 재봉술.
     
   능력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녀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전공]: 화학. 생물학. 의학.
     
   문득 엉뚱한 장면이 보였다.
   리사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봤는데도 그녀의 상징적인 어떤 이미지가 공중에 떠 있던 것이다.
     
   강호는 잠깐 그 환각을 즐기듯 바라봤다.
     
   “…….”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것도 피폭 증상인가?’
     
   민망하니 일단 옷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매튜가 속옷을 잡고 있던 것은 봤지만, 후크가 풀려있을 줄은 몰랐다.
     
   “난감하네.”
     
   그래도 어쩌겠나.
   그렇다고 벗길 수는 없으니, 정신을 잃고 있을 때 얼른 입혀야겠다고 생각했다.
     
   “휴우. 이거야 원. 내가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강호는 괜히 긴장을 느꼈다.
   주섬주섬 그녀의 상체를 들어 안고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크기가 워낙 커 후크 위치가 잘 닿지 않았다.
   또다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못해도 G컵은 되겠는데.’
     
   그런데 하필 그때 여자의 눈이 떠졌다.
     
   “으음.”
     
   강호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
   
   리사는 눈을 끔뻑이며 강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이내 그가 자신의 속옷을 벗기고(?) 있는 상황을 눈에 담았다.
   강호는 그저 마른침만 삼킬 뿐이었다.
     
   꿀꺽.
     
   잠깐의 정적 끝에 리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음. 이런 상황에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오해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
     
   강호는 여전히 굳은 채 겨우 시선으로 옆을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저 매튜 박사가….”
     
   버벅거림은 없었지만, 말이 장황하게 길어졌다.
     
   “그런가요?”
     
   말투나 눈빛이 어쩐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의심을 살만한 상황이라는 걸 알기에, 강호는 빠르고 정확하게 대답했다.
     
   “네.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반응이 의외였다.
     
   “좋다 말았네요. 흠.”
   “… 네?”
     
   강호는 긴장이 풀어지며 긴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후아아.
     
   정말 여자들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리사는 금방 정신이 들어 몸을 가눌 수 있게 됐고, 강호는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병동 밖으로 나왔다.
   습관적으로 사주경계를 하듯 주변을 살피다 보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 울프가 있었다.
     
   ‘사토시는 어디 갔지? 먼저 승강장으로 갔나?’
     
   강호는 리사와 함께 울프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도 울프를 보고 늑대라고 생각했고, 강호는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피폭 이후 더 늑대 같아지기는 했지. 크기도 더 커지고.’
     
   그런 생각을 하며 울프에게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울프 옆에 그림자가 스륵 나타났다.
     
   “……!”
     
   강호는 본능적으로 가드를 올리며 리사를 보호했고, 그녀도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꺅!”
     
   모습을 드러낸 건 다행히 좀비나 크리처가 아닌 사토시였다.
   강호는 리사와 다르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사토시.”
     
   오히려 사토시가 더 당황했다.
     
   “어, 죄송합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게 아직 마음대로 제어가 안 되네요.”
     
   강호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소령님이 병원으로 들어가시자마자 좀비 한 무더기가 나타났어요.”
     
   설명은 간단했다.
     
   활보하던 대부분의 좀비는 사토시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지만, 그중 둘이 사토시 쪽으로 향했다.
   다급한 사토시는 안절부절못하며 숨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순간 몸이 가까이에 있던 나무 그늘 속으로 스륵 사라졌다고 했다.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황당한 말이었지만, 강호는 곧바로 짚이는 게 있었다.
     
   ‘은신이라는 게 이런 능력이었군.’
     
   이해와 동시에 또 다른 궁금증을 물었다.
     
   “그럼 그 좀비 둘은?”
     
   사토시는 대답 대신 울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명이 없었음에도 강호 또한 상황이 그려졌다.
     
   “음.”
     
   사토시는 은신하고, 다가온 좀비는 울프가 물어뜯고.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정색했다.
     
   “그건 그렇고. 엄호하라고 했더니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쳐?”
   “잘못했으므니다!”
     
   일변한 사토시의 말투에 강호는 잠깐 멍해졌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는 뭐지?”
     
   그런 강호의 반응에 사토시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제가 일본인이라, 당황하거나 놀라면 저도 모르게 발음이….”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해도, 어쩐지 사토시의 처세술이 새삼 다시 보였다.
   고압적인 태도에서 한순간에 존대하며 자신을 따르는 것만 봐도 남다른 적응력을 가진 것 같았다.
     
   ‘닌자라… 잘 어울리는 것도 같고.’
     
   혼자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바닥에 녹색 빛이 나는 구체가 눈에 들어왔다.
     
   “응? 저건 뭐지?”
     
   강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구체로 쏠렸다.
     
   “아, 저도 소령님 오시기 전까지 계속 그 생각을 했습니다.”
     
   사토시도 녹색 구체가 그곳에 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나름대로 추측해 본 결과, 좀비가 죽으면서 남긴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을 들은 강호가 의문점을 물었다.
     
   “좀비가 둘이었다고 했는데, 구체는 하나군.”
   “아, 그게, 다른 하나는 울프가 먹은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리사가 구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되게 영롱해요. 액체 같기도 하고, 기체 같기도 한 게….”
     
   그녀가 녹색 구체로 손을 천천히 뻗었다.
     
   “위험하니 손대지 마요!”
     
   강호의 만류보다 그녀의 동작이 더 빨랐다.
     
   스으으으.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플러스 전환 때까지 당분간 연참 예정입니다.

고맙습니다.^^다음화 보기

4화. 잘못했으므니다!

강호는 돌아보지도 않고 병원 복도를 내달렸다.

짧은 시간, 한바탕 번개 폭풍이 몰아쳤다.

파츠츠츠!

쿠콰쾅!

그가 지나간 자리엔 바닥이건 천장이건, 미약한 전기가 고여 간헐적으로 스파크를 일으켰다.

치직.

다행히 우려했던 신체 이상은 없었다.

다만, 약간의 흥분 상태여서 그런지 신경은 더 날카로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기분 탓인가.’

예상을 뛰어넘는 막강한 공격력 덕분에 큰 위기 없이 리사 박사의 진료실에 다다랐다.

닫혀있는 문을 열기 전, 강호는 뒤를 돌아보며 사토시가 잘 따라붙었는지를 살폈다.

그런데, 사토시가 보이지 않았다.

울프도.

“…….”

잠깐 상황을 판단한 강호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 새끼. 혼자 살겠다고….’

강호는 작게 고개를 젓고는 잠겨있는 문을 어깨로 밀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쾅!

“리사 박사님!”

잠긴 문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해 주위를 빠르게 살피는 일련의 동작은 아주 완벽했다.

과거 대테러 진압 팀장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손님이 있었군.”

흐으으으으.

갑자기 나타난 강호를 보며 기괴한 소리를 흘리고 있는 건, 몇 번 본 적이 있는 매튜 박사였다.

안타깝게도 이전에 봤던 모습은 아니었다.

눈은 파충류처럼 세로였고, 연신 날름거리는 혀는 뱀의 그것이었다.

‘이건 좀비와는 다른 양상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젠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의문은 빠르게 다른 쪽으로 바뀌었다.

‘그보다, 저 흉측한 몰골로 뭘 하고 있던 거지?’

책상 옆에는 리사 박사가 쓰러져 있었다.

가운이 벗겨져 있었고, 셔츠 단추가 다 풀어져 있었다.

풍만한 가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대한 크기의 하얀 속옷이 드러나 있었다.

매튜는 그녀의 옆에 쭈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두 손은 각각 맨가슴과 속옷 끈을 쥐고 있었다.

“괴물로 변했어도 성욕은 살아있는 건가?”

강호는 망설일 것 없이 도마뱀 매튜에게 달려들었다.

탓.

“이런 한심한….”

후욱.

퍽.

“크에엑!”

변변한 저항 한번 못해보고 강호의 주먹에 맞은 그는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사지를 떨며 쓰러졌다.

츠즈즈즈.

털썩.

역시나 이번에도 매튜의 몸에서는 잔상처럼 스파크가 일었다.

파직.

치지직.

강호는 그 모습을 보다가 제 주먹을 살폈다.

‘그냥 일반적인 타격에도 전기력이 실리는군.’

한번 능력이 각성 되니 속성 자체를 별도로 설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 이능력에 관한 건 이렇게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강호는 곧바로 리사에게 다가가 호흡이나 맥박 등을 살폈다.

그리곤 혹시나 이 여자도 크리처 변이를 일으킨 건지, 동공과 입안도 살폈다.

‘다행히 이상 징후는 없다.’

그 와중에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음. 대단하기는 하네.’

그런 자신을 인식한 강호는 아직도 사지를 떨고 있는 매튜를 돌아봤다.

남자의 본능.

게다가 그는 정말로 짐승이 되어버렸지 않은가.

그러니까 수컷의 본능, 그걸 인정해 주지 않은 게 조금 미안해졌다.

“흠흠.”

괜히 헛기침을 한 강호는 상태창을 통해 비상 구급함을 찾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한 해독제를 먹였다.

“그리고 이건, 정신을 들게 하는 각성 스프레이.”

치이익.

호흡기 쪽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잠시 상태가 호전되는지를 지켜봤다.

“외상은 없어 다행이다.”

기다리는 잠깐 사이, 그녀의 상태 정보를 확인했다.

역시나, 그녀에게도 없던 이능력이 생겼다.

[이름]: 리사 아즈벨.

[…]: ……

[종]: 인간 / 1차 변이체.

[특성]: 원소 융합.

[등급]: Lv. 1

[속성]: 4대 원소.

[전문 기술]: 기본 속성 활용.

[보조 기술]: 응급치료. 마취. 신체 절단 및 봉합. 무두질. 가죽세공. 재봉술.

능력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녀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전공]: 화학. 생물학. 의학.

문득 엉뚱한 장면이 보였다.

리사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봤는데도 그녀의 상징적인 어떤 이미지가 공중에 떠 있던 것이다.

강호는 잠깐 그 환각을 즐기듯 바라봤다.

“…….”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것도 피폭 증상인가?’

민망하니 일단 옷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매튜가 속옷을 잡고 있던 것은 봤지만, 후크가 풀려있을 줄은 몰랐다.

“난감하네.”

그래도 어쩌겠나.

그렇다고 벗길 수는 없으니, 정신을 잃고 있을 때 얼른 입혀야겠다고 생각했다.

“휴우. 이거야 원. 내가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강호는 괜히 긴장을 느꼈다.

주섬주섬 그녀의 상체를 들어 안고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크기가 워낙 커 후크 위치가 잘 닿지 않았다.

또다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못해도 G컵은 되겠는데.’

그런데 하필 그때 여자의 눈이 떠졌다.

“으음.”

강호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

리사는 눈을 끔뻑이며 강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이내 그가 자신의 속옷을 벗기고(?) 있는 상황을 눈에 담았다.

강호는 그저 마른침만 삼킬 뿐이었다.

꿀꺽.

잠깐의 정적 끝에 리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음. 이런 상황에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오해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

강호는 여전히 굳은 채 겨우 시선으로 옆을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저 매튜 박사가….”

버벅거림은 없었지만, 말이 장황하게 길어졌다.

“그런가요?”

말투나 눈빛이 어쩐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의심을 살만한 상황이라는 걸 알기에, 강호는 빠르고 정확하게 대답했다.

“네.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반응이 의외였다.

“좋다 말았네요. 흠.”

“… 네?”

강호는 긴장이 풀어지며 긴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후아아.

정말 여자들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리사는 금방 정신이 들어 몸을 가눌 수 있게 됐고, 강호는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병동 밖으로 나왔다.

습관적으로 사주경계를 하듯 주변을 살피다 보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 울프가 있었다.

‘사토시는 어디 갔지? 먼저 승강장으로 갔나?’

강호는 리사와 함께 울프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도 울프를 보고 늑대라고 생각했고, 강호는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피폭 이후 더 늑대 같아지기는 했지. 크기도 더 커지고.’

그런 생각을 하며 울프에게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울프 옆에 그림자가 스륵 나타났다.

“……!”

강호는 본능적으로 가드를 올리며 리사를 보호했고, 그녀도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꺅!”

모습을 드러낸 건 다행히 좀비나 크리처가 아닌 사토시였다.

강호는 리사와 다르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사토시.”

오히려 사토시가 더 당황했다.

“어, 죄송합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게 아직 마음대로 제어가 안 되네요.”

강호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소령님이 병원으로 들어가시자마자 좀비 한 무더기가 나타났어요.”

설명은 간단했다.

활보하던 대부분의 좀비는 사토시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지만, 그중 둘이 사토시 쪽으로 향했다.

다급한 사토시는 안절부절못하며 숨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순간 몸이 가까이에 있던 나무 그늘 속으로 스륵 사라졌다고 했다.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황당한 말이었지만, 강호는 곧바로 짚이는 게 있었다.

‘은신이라는 게 이런 능력이었군.’

이해와 동시에 또 다른 궁금증을 물었다.

“그럼 그 좀비 둘은?”

사토시는 대답 대신 울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명이 없었음에도 강호 또한 상황이 그려졌다.

“음.”

사토시는 은신하고, 다가온 좀비는 울프가 물어뜯고.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정색했다.

“그건 그렇고. 엄호하라고 했더니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쳐?”

“잘못했으므니다!”

일변한 사토시의 말투에 강호는 잠깐 멍해졌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는 뭐지?”

그런 강호의 반응에 사토시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제가 일본인이라, 당황하거나 놀라면 저도 모르게 발음이….”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해도, 어쩐지 사토시의 처세술이 새삼 다시 보였다.

고압적인 태도에서 한순간에 존대하며 자신을 따르는 것만 봐도 남다른 적응력을 가진 것 같았다.

‘닌자라… 잘 어울리는 것도 같고.’

혼자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바닥에 녹색 빛이 나는 구체가 눈에 들어왔다.

“응? 저건 뭐지?”

강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구체로 쏠렸다.

“아, 저도 소령님 오시기 전까지 계속 그 생각을 했습니다.”

사토시도 녹색 구체가 그곳에 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나름대로 추측해 본 결과, 좀비가 죽으면서 남긴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을 들은 강호가 의문점을 물었다.

“좀비가 둘이었다고 했는데, 구체는 하나군.”

“아, 그게, 다른 하나는 울프가 먹은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리사가 구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되게 영롱해요. 액체 같기도 하고, 기체 같기도 한 게….”

그녀가 녹색 구체로 손을 천천히 뻗었다.

“위험하니 손대지 마요!”

강호의 만류보다 그녀의 동작이 더 빨랐다.

스으으으.

“……!”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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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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