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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5화. 제가 한번 해볼게요.
     
     
     
     
     
     
     
   리사가 녹색 구체에 손을 대자 물이 묻는 것처럼 그녀의 손에 스륵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탄성이 작게 터졌다.
     
   “와아. 이거 느낌이 되게 이상해요. 비타민 주사라도 맞은 것 같은 느낌?”
     
   리사는 호기심 가득한, 조금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강호를 돌아보며 제 손을 들어 보였다.
     
   “……”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하지만 강호는 놀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무슨, 왜 그렇게 겁이 없는 겁니까!”
     
   강호의 다그침에도 리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이게 뭔지 알 것 같았거든요.”
     
   궁금한 건 사토시도 마찬가지였는지, 냉큼 질문을 던졌다.
     
   “그게 뭡니까?”
     
   강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설명을 기다렸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꽤 복잡하고 너무 장황해지니까, 음, 뭐랄까, 에너지 핵? 그 정도 표현이면 적절할 것 같네요.”
     
   인간이었을 때의 심장이 급격한 유전자 변이를 겪으며 마치 액화나 기화처럼 일종의 상태 변화를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설명 후 눈치를 보니, 강호는 알아들은 게 분명했다.
   그래서 생선 눈깔을 하고 있는 사토시를 위해 조금 더 쉬운 예를 하나 더 들어주었다.
     
   “주술이나 마법 소재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좋아해요?”
   “네. 좋아합니다.”
   “그런데 나오는 정수 같은 거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아!”
     
   리사가 성공적으로 사토시를 이해시켰을 때, 강호의 눈에 달라진 그녀의 상태 변화가 나타났다.
     
   ‘음?’
     
   그 여러 항목 중, [등급] 아래에 조금 전까진 없던 항목 하나가 생긴 걸 볼 수 있었다.
     
   [이름]: 리사 아즈벨.
   […]: ……
   [등급]: Lv. 1
   [강화]: 2%
     
   강호는 생각할 것도 없이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등급과 연동된 강화라면, 저 퍼센트 수치가 100이 되면 등급이 LV.2로 승급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사토시의 말대로라면 울프도 같은 항목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강호는 곧장 옆의 울프를 살폈다.
     
   [이름]: 울프
   […]: ……
   [등급]: Lv. 1
   [강화]: 2%
     
   역시 예상대로 리사와 같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태가 궁금해졌다.
     
   ‘저게 정말 좀비가 죽고 남긴 거라면…’
     
   자신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좀비를 뚫고 달렸다.
   그 좀비들, 대부분이 다 터져 죽었다.
     
   ‘상태.’
     
   [이름]: 한강호
   […]: ……
   [등급]: Lv. 2
   [강화]: 12%
     
   추측은 확신이 됐다.
   그리고 에너지 핵을 흡수하면서 리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비타민 같다는 말. 내가 복도를 달리며 느꼈던 청량감이 그거였군.’
     
   좀비들을 처치하는 족족 저도 모르게 에너지 핵을 흡수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강호는 이해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계산이 맞지 않았다.
     
   ‘복도에 있던 좀비들. 못해도 30기는 넘었던 것 같은데.’
     
   리사와 울프가 각각 하나를 흡수했는데 2%였다.
   그 계산대로라면 자신은 적어도 60% 이상이 되어야 했다.
     
   ‘흡수가 안 될 수도 있나?’
     
   아니면, 병원 복도에 가면 미처 흡수하지 못한 구체가 있을까?
   그럴 리가.
   나오면서는 못 봤는데.
     
   하지만 강호는 곧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 용량 차이!’
     
   등급이 LV.1인 저 둘과 다르게, 자신은 LV.2다.
   즉, 똑같은 에너지 핵 하나라도 충족되는 수치가 다른 것이다.
     
   강호는 혼자 고개를 작게 저으며 긴 숨을 내뱉었다.
     
   흐으음.
     
   다 같이 생각을 공유했다면 별것 아닌 일이었을 테지만, 자신만 볼 수 있는 데이터다 보니 추측과 판단은 오롯이 강호의 몫이었다.
     
   뭐가 어찌 됐든, 대충 이것저것이 맞아떨어지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리사 박사의 진료실까지 가면서 좀비를 많이 죽였는데, 에너지 핵이 남아 있을까요?”
     
   처음 가졌던 추측을 확인해 보고 싶어 물었더니, 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없을 거예요.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으면.”
   “왜죠?”
   “질소에 급속히 산화돼요.”
     
   공기 중에 노출되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에너지 핵이라…’
     
   강호는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10층 폐쇄까지 17:32:30 남았습니다. 벌써 일곱 시간 가까이 지났어요.”
     
   서둘러야 한다는 말이었고, 그 뜻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울프도.
     
   컹.
     
   “승강장까지는 어떻게 가죠?
     
   리사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물었다.
     
   원래 쉘터 간 이동은 구간별로 반복 운행하는 셔틀이나 개인 모빌리티를 이용했다.
   하지만 전력이 차단된 지금은 사용 불가능한 이동 수단이기에 꺼낸 질문이었다.
   그 대답은 사토시가 했다.
     
   “걷거나 뛰는 수밖에 없습니다.”
   “……”
     
   리사의 굳은 표정이 그녀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물은 걸까?’
     
   그 눈빛에 위축된 사토시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므니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렇게까지 쩔쩔매는 거지?’
     
   사실 아무도 모르는 사토시만의 약점이자 비밀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운동과 훈련만 반복했던 탓에 예쁜 백인 여자만 보면 이상하게 위축이 됐다.
     
   강호는 잠깐의 번잡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단호하게 계획을 말했다.
     
   “쉘터 벽을 뚫고 직선거리로 가지 않는 한 촉박한 시간이야. 어쩔 수 없이 여러 쉘터를 거쳐야 하고, 우리는 최단 거리로 움직일 거야.”
     
   갑자기 반말이었지만,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작전 투입 전 개요를 설명하듯, 정확한 목표를 상기시켰다.
     
   “목적지는 쉘터 집합의 중심에 있는 승강장. 그곳에 가기까지 최소 5개의 쉘터를 거쳐야 해.”
     
   층마다 다르지만, 지하 10층은 각각의 기능을 가진 총 12개 쉘터로 구성되어 있다.
   3기가 하나씩 묶음이고, 이 묶음은 허브 쉘터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절반의 쉘터를 통과해야 한다는 거네.’
     
   리사는 강호의 설명을 들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리더 감이라는 생각이 들며 의지가 됐다.
     
   그렇게 강호 일행이 탈출을 위한 이동을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간간이 죽은 시체들이 보였다.
   어째서 그들은 좀비가 되지 않았는지가 궁금했지만, 이동이 급했기에 일단 의문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두 개의 쉘터는 무사히 잘 넘겼지만, 다들 봤다시피 시체나 혈흔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어. 긴장 놓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강호의 당부와 함께 쉘터 간 연결 통로 문이 열렸다.
     
   지이잉.
   철컹.
     
   통로로 들어서는 순간, 선두의 강호가 멈췄다.
   뒤따르던 두 사람도 이상을 감지했다.
     
   “윽! 이게 무슨 냄새죠?”
     
   사토시의 코 막힌 소리에 리사가 차분히 답해 주었다.
     
   “피비린내네요.”
   “헙!”
     
   사토시도 당연히 피 냄새는 구분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지나쳐온 많은 혈흔과는 냄새가 달랐다.
     
   사토시가 헛숨을 삼키며 놀라는 사이, 울프가 으르렁거리며 강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크르르르.
     
   울프의 귀가 사방으로 빠르게 움직였고, 코는 쉼 없이 씰룩댔다.
   그걸 보며 강호는 직감했다.
     
   ‘저 건너에 뭔가 있다.’
     
   혹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단서가 있을까, 다시 한번 자세히 주위를 살폈다.
     
   쉘터와 쉘터를 연결한 통로 가득 피가 고여 있었다.
   특히 건너편 쪽의 닫힌 문 앞에 집중되어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시간도, 길도 없었다.
     
   “두 사람은 여기 있어.”
     
   강호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방어막을 둘렀다.
     
   위이잉.
     
   곧 차단문 앞에 도착한 그는 초합금으로 된 문 건너편의 기척을 잠시 살폈다.
   당연히 아무런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강호는 곧바로 해치 레버를 당겼다.
     
   지이이잉.
   철컹.
     
   문이 열리는 순간, 강호의 바로 뒤에 있던 울프가 짖기 시작했다.
     
   컹!
   크하앙!
   크르르르.
     
   뒤이어 사토시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헉! 저건 또 뭔가요?!”
     
   사실 티를 내지 않았을 뿐, 그 침착한 강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키하아아악.
   쓰압.
     
   그것이 숨소리인지, 기괴한 소리를 흘리고 서 있는 건 3m는 족히 될 것 같은 거인이었다.
   커다란 바위 같은 손에 들려있는 둔기에는 살점이 붙어있었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시체 산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오금 저리게 만드는 공포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사이코? 아닌가, 그냥 괴물인 건가?’
     
   처음엔 맨몸뚱이에 문신이 가득한 걸로 봤는데, 아니었다.
   몸 전체에 마치 패치처럼 사람 얼굴 가죽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한마디로 끔찍했다.
     
   조금은 걱정돼 돌아보니, 사토시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울프는 당장 달려들지 않은 게 기특했고, 리사는 오히려 차분했다.
     
   ‘아, 의사지.’
     
   그런 리사를 바라보고 있자,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제가 한번 해볼게요.”
   “……?”
     
   강호가 제 말뜻을 이해 못 했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있는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이 강호의 눈에 들어왔다.
     
   “응?”
     
   리사의 양손 주위에 아지랑이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열기에 의한 공간 왜곡 현상을 유심히 보다 보니, 그녀의 손이 용광로의 쇳물처럼 붉고 노랗게 물들어 갔다.
     
   스아아아.
     
   강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능력을 떠올렸다.
     
   – 4대 원소를 다루는 능력.
     
   그녀의 변화는 점차 확대되며 몸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아니, 그녀가 화염 그 자체다. 마치 생체 발화하는 불꽃 같아.’
     
   리사가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화학식을 읊었다.
   그러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광포하던 불길이 누더기 골렘 같은 거인을 향해 쭉 뻗어나갔다.
     
   콰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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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제가 한번 해볼게요.

리사가 녹색 구체에 손을 대자 물이 묻는 것처럼 그녀의 손에 스륵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탄성이 작게 터졌다.

“와아. 이거 느낌이 되게 이상해요. 비타민 주사라도 맞은 것 같은 느낌?”

리사는 호기심 가득한, 조금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강호를 돌아보며 제 손을 들어 보였다.

“……”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하지만 강호는 놀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무슨, 왜 그렇게 겁이 없는 겁니까!”

강호의 다그침에도 리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이게 뭔지 알 것 같았거든요.”

궁금한 건 사토시도 마찬가지였는지, 냉큼 질문을 던졌다.

“그게 뭡니까?”

강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설명을 기다렸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꽤 복잡하고 너무 장황해지니까, 음, 뭐랄까, 에너지 핵? 그 정도 표현이면 적절할 것 같네요.”

인간이었을 때의 심장이 급격한 유전자 변이를 겪으며 마치 액화나 기화처럼 일종의 상태 변화를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설명 후 눈치를 보니, 강호는 알아들은 게 분명했다.

그래서 생선 눈깔을 하고 있는 사토시를 위해 조금 더 쉬운 예를 하나 더 들어주었다.

“주술이나 마법 소재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좋아해요?”

“네. 좋아합니다.”

“그런데 나오는 정수 같은 거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아!”

리사가 성공적으로 사토시를 이해시켰을 때, 강호의 눈에 달라진 그녀의 상태 변화가 나타났다.

‘음?’

그 여러 항목 중, [등급] 아래에 조금 전까진 없던 항목 하나가 생긴 걸 볼 수 있었다.

[이름]: 리사 아즈벨.

[…]: ……

[등급]: Lv. 1

[강화]: 2%

강호는 생각할 것도 없이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등급과 연동된 강화라면, 저 퍼센트 수치가 100이 되면 등급이 LV.2로 승급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사토시의 말대로라면 울프도 같은 항목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강호는 곧장 옆의 울프를 살폈다.

[이름]: 울프

[…]: ……

[등급]: Lv. 1

[강화]: 2%

역시 예상대로 리사와 같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태가 궁금해졌다.

‘저게 정말 좀비가 죽고 남긴 거라면…’

자신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좀비를 뚫고 달렸다.

그 좀비들, 대부분이 다 터져 죽었다.

‘상태.’

[이름]: 한강호

[…]: ……

[등급]: Lv. 2

[강화]: 12%

추측은 확신이 됐다.

그리고 에너지 핵을 흡수하면서 리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비타민 같다는 말. 내가 복도를 달리며 느꼈던 청량감이 그거였군.’

좀비들을 처치하는 족족 저도 모르게 에너지 핵을 흡수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강호는 이해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계산이 맞지 않았다.

‘복도에 있던 좀비들. 못해도 30기는 넘었던 것 같은데.’

리사와 울프가 각각 하나를 흡수했는데 2%였다.

그 계산대로라면 자신은 적어도 60% 이상이 되어야 했다.

‘흡수가 안 될 수도 있나?’

아니면, 병원 복도에 가면 미처 흡수하지 못한 구체가 있을까?

그럴 리가.

나오면서는 못 봤는데.

하지만 강호는 곧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 용량 차이!’

등급이 LV.1인 저 둘과 다르게, 자신은 LV.2다.

즉, 똑같은 에너지 핵 하나라도 충족되는 수치가 다른 것이다.

강호는 혼자 고개를 작게 저으며 긴 숨을 내뱉었다.

흐으음.

다 같이 생각을 공유했다면 별것 아닌 일이었을 테지만, 자신만 볼 수 있는 데이터다 보니 추측과 판단은 오롯이 강호의 몫이었다.

뭐가 어찌 됐든, 대충 이것저것이 맞아떨어지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리사 박사의 진료실까지 가면서 좀비를 많이 죽였는데, 에너지 핵이 남아 있을까요?”

처음 가졌던 추측을 확인해 보고 싶어 물었더니, 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없을 거예요.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으면.”

“왜죠?”

“질소에 급속히 산화돼요.”

공기 중에 노출되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에너지 핵이라…’

강호는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10층 폐쇄까지 17:32:30 남았습니다. 벌써 일곱 시간 가까이 지났어요.”

서둘러야 한다는 말이었고, 그 뜻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울프도.

컹.

“승강장까지는 어떻게 가죠?

리사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물었다.

원래 쉘터 간 이동은 구간별로 반복 운행하는 셔틀이나 개인 모빌리티를 이용했다.

하지만 전력이 차단된 지금은 사용 불가능한 이동 수단이기에 꺼낸 질문이었다.

그 대답은 사토시가 했다.

“걷거나 뛰는 수밖에 없습니다.”

“……”

리사의 굳은 표정이 그녀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물은 걸까?’

그 눈빛에 위축된 사토시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므니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렇게까지 쩔쩔매는 거지?’

사실 아무도 모르는 사토시만의 약점이자 비밀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운동과 훈련만 반복했던 탓에 예쁜 백인 여자만 보면 이상하게 위축이 됐다.

강호는 잠깐의 번잡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단호하게 계획을 말했다.

“쉘터 벽을 뚫고 직선거리로 가지 않는 한 촉박한 시간이야. 어쩔 수 없이 여러 쉘터를 거쳐야 하고, 우리는 최단 거리로 움직일 거야.”

갑자기 반말이었지만,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작전 투입 전 개요를 설명하듯, 정확한 목표를 상기시켰다.

“목적지는 쉘터 집합의 중심에 있는 승강장. 그곳에 가기까지 최소 5개의 쉘터를 거쳐야 해.”

층마다 다르지만, 지하 10층은 각각의 기능을 가진 총 12개 쉘터로 구성되어 있다.

3기가 하나씩 묶음이고, 이 묶음은 허브 쉘터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절반의 쉘터를 통과해야 한다는 거네.’

리사는 강호의 설명을 들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리더 감이라는 생각이 들며 의지가 됐다.

그렇게 강호 일행이 탈출을 위한 이동을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간간이 죽은 시체들이 보였다.

어째서 그들은 좀비가 되지 않았는지가 궁금했지만, 이동이 급했기에 일단 의문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두 개의 쉘터는 무사히 잘 넘겼지만, 다들 봤다시피 시체나 혈흔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어. 긴장 놓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강호의 당부와 함께 쉘터 간 연결 통로 문이 열렸다.

지이잉.

철컹.

통로로 들어서는 순간, 선두의 강호가 멈췄다.

뒤따르던 두 사람도 이상을 감지했다.

“윽! 이게 무슨 냄새죠?”

사토시의 코 막힌 소리에 리사가 차분히 답해 주었다.

“피비린내네요.”

“헙!”

사토시도 당연히 피 냄새는 구분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지나쳐온 많은 혈흔과는 냄새가 달랐다.

사토시가 헛숨을 삼키며 놀라는 사이, 울프가 으르렁거리며 강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크르르르.

울프의 귀가 사방으로 빠르게 움직였고, 코는 쉼 없이 씰룩댔다.

그걸 보며 강호는 직감했다.

‘저 건너에 뭔가 있다.’

혹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단서가 있을까, 다시 한번 자세히 주위를 살폈다.

쉘터와 쉘터를 연결한 통로 가득 피가 고여 있었다.

특히 건너편 쪽의 닫힌 문 앞에 집중되어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시간도, 길도 없었다.

“두 사람은 여기 있어.”

강호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방어막을 둘렀다.

위이잉.

곧 차단문 앞에 도착한 그는 초합금으로 된 문 건너편의 기척을 잠시 살폈다.

당연히 아무런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강호는 곧바로 해치 레버를 당겼다.

지이이잉.

철컹.

문이 열리는 순간, 강호의 바로 뒤에 있던 울프가 짖기 시작했다.

컹!

크하앙!

크르르르.

뒤이어 사토시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헉! 저건 또 뭔가요?!”

사실 티를 내지 않았을 뿐, 그 침착한 강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키하아아악.

쓰압.

그것이 숨소리인지, 기괴한 소리를 흘리고 서 있는 건 3m는 족히 될 것 같은 거인이었다.

커다란 바위 같은 손에 들려있는 둔기에는 살점이 붙어있었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시체 산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오금 저리게 만드는 공포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사이코? 아닌가, 그냥 괴물인 건가?’

처음엔 맨몸뚱이에 문신이 가득한 걸로 봤는데, 아니었다.

몸 전체에 마치 패치처럼 사람 얼굴 가죽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한마디로 끔찍했다.

조금은 걱정돼 돌아보니, 사토시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울프는 당장 달려들지 않은 게 기특했고, 리사는 오히려 차분했다.

‘아, 의사지.’

그런 리사를 바라보고 있자,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제가 한번 해볼게요.”

“……?”

강호가 제 말뜻을 이해 못 했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있는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이 강호의 눈에 들어왔다.

“응?”

리사의 양손 주위에 아지랑이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열기에 의한 공간 왜곡 현상을 유심히 보다 보니, 그녀의 손이 용광로의 쇳물처럼 붉고 노랗게 물들어 갔다.

스아아아.

강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능력을 떠올렸다.

– 4대 원소를 다루는 능력.

그녀의 변화는 점차 확대되며 몸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아니, 그녀가 화염 그 자체다. 마치 생체 발화하는 불꽃 같아.’

리사가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화학식을 읊었다.

그러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광포하던 불길이 누더기 골렘 같은 거인을 향해 쭉 뻗어나갔다.

콰아아아아!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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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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