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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7화. 좀비 웨이브.
     
     
     
     
     
     
     
     
   넌지시 물어온 강호의 말에, 사토시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역시, 그가 군침을 흘렸던 건 에너지 핵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리사는 그 결정을 거부했다.
     
   “단지 회복 때문에 저걸 흡수하는 거라면, 강호 씨가 가져가는 게 맞아요.”
     
   에너지 핵의 쓸모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물론 지금은 그녀의 회복을 돕는 게 중요한 건 맞았다.
     
   “휴식 없이 곧바로 움직여야 한다. 다음 쉘터에서는 또 어떤 괴물이 나타날지도 모르고.”
     
   널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는 일종의 설득이었다.
   다행히 리사는 그 정도 상식적인 판단은 할 줄 알았다.
     
   “알겠어요. 민폐를 끼칠 순 없으니.”
     
   그녀는 여전히 힘겨운 움직임으로 에너지 핵에 손을 가져다 댔다.
     
   스르르르.
     
   “흐음.”
     
   리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의외로 시간이 필요했다.
   흡수가 잘 이루어졌는지, 마지막엔 짙은 숨결을 토해냈다.
     
   “하아아.”
     
   동시에 사토시는 흠칫 몸을 떨었고, 강호는 그녀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 리사 아즈벨.
   […]: …….
   [등급]: (상승)Lv. 2
   [강화]: 2%
   [속성]: …….
   [전문기술]: …….
   [기본효과]: (신규)절연막(絶緣膜).
   [보조기술]: …….
     
   강호는 속으로 움찔 놀랐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에너지 핵 하나에 등급이 하나가 올랐다.’
     
   좀비를 죽이고 얻은 에너지 핵은 개당 2%의 증가가 이루진 걸 생각하면, 그 격차가 너무 컸다.
   강호는 자연히 그 원인을 고민해 봤다.
     
   ‘에너지 핵의 가치, 경험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뭘까.’
     
   대략 두 가지 정도를 추측했다.
   가지고 있는 이능의 특성 차이, 그리고 그 이능의 강화 상태.
     
   하지만 두루뭉술한 지금의 추측이 정확한 정보가 되려면 더 많은 표본과 다양한 분석이 필요했다.
     
   ‘괜한 생각을. 더는 저런 괴물을 마주칠 일이 없길 바랄 뿐.’
     
   강호가 놀란 또 하나는, 그녀에게 새롭게 생긴 항목과 능력이다.
   마침 조금 전 업데이트 된 재난 매뉴얼의 새로운 장에 그 설명이 있었다.
     
   – 절연막(絶緣膜:Insulation).
     
   전기 또는 열을 통하지 않게 하는 막이다.
   전기 및 열전도성은 동질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 부도체는 또한 열 부도체이기도 하다.
     
   즉, 누더기 골렘이 어떻게 맨몸으로 리사의 그 열화를 버텨냈고, 또 자신의 자기장막을 무력화했는지 자연히 이해됐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에너지 핵에 그 속성이 그대로 보존되는 거군.’
     
   본체의 에너지 핵에는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고, 그것을 흡수하게 되면 그 성질을 전승하게 되는 것이다.
     
   강호는 리사를 가만히 바라봤다.
   정보 외에 다른 현상이나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기본효과라면, 역시 절연막은 패시브 계열의 특성인가 본데.’
     
   그러고 보니, 지쳐 보이던 기색이 사라졌다.
   확실히 에너지 핵에는 회복 기능도 있는 모양이었다.
     
   “둘 다, 괜찮아?”
     
   리사가 에너지 핵을 흡수하고 몸을 추스르는 사이, 강호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통로 중간쯤에서 비상 보급 상자를 찾아 열었다.
   그 안에 있던 생수를 가져와 리사와 사토시에게 건네주었다.
     
   “오, 통로 중간에 저런 상자가 있는지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침 목이 말랐는지, 사토시가 반색하며 물을 받아 들이킨 후 물었다.
     
   “재난 매뉴얼.”
     
   그 짧은 대답에 리사가 탄성을 흘렸다.
     
   “아.”
     
   그렇게 보고 또 보더니, 그 정보나 지식이 이렇게 쓰이는구나, 싶었다.
     
   ‘지금이 재난 상황이니, 꼭 필요한 정보들이겠지.’
     
   그때 한강호가 자신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어디서 구했는지 항공 점퍼를 걸쳐주었다.
     
   “아, 고마워요.”
     
   리사도 제 앞섶이 다 열려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가슴이 노출된 것도 아니고, 속옷도 옷인데.
     
   그런데, 지금 강호의 행동에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괜히 얼굴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왜 이래. 미쳤나 봐.’
     
   그녀는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시선을 돌리다 보니, 사토시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어쩐지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이후 세 사람은 잠시 숨을 돌리며 서로의 상태나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가볍게 주고받았다.
   또한 이후 남은 세 개 쉘터를 대비하기 위한 의견을 나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대화 마무리쯤에 사토시가 한 질문이었다.
   누더기 골렘 같은 거인과 그 많던 시체를 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있던 모양이었다.
   리사도 다르지 않았다.
     
   ‘사실 나도 그게 궁금해.’
     
   병원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좀비가 됐다.
   하지만 그건 일부일 거로 생각했다.
   경보가 울리고 안내가 있었으니, 전부 승강장으로 갔겠거니 했다.
     
   그런데, 허브 쉘터 앞에서 시체 산을 봤다.
   그 거인은 대체 정체가 뭔지, 왜 그곳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그렇게 죽였는지, 의문만 남았다.
   지금까지 그들에겐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사이렌이 울리고 15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계속 이동했고, 크고 작은 전투도 치러왔어.”
     
   지금 얼마나 힘든지 공감하는 것으로 운을 뗀 강호는 쉽지 않은 현실을 짚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봐 알겠지만, 당장 승강장까지 살아 가는 것만도 힘든 상황이야.”
     
   긍정 회로를 돌릴 수 있도록 동기부여도 빼놓지 않았다.
     
   “다행히 우린 부상도 없고, 좀비가 되는 대신 특별한 능력을 얻었어. 그게 우리가 가진 희망이야.”
     
   그러고는 목적을 단순화해 상기시켰다.
     
   “마음이 복잡하다는 걸 알지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10층 폐쇄까지 남은 시간은 9시간. 일단 승강장까지만 가자.”
     
   말을 마친 강호는 두 사람의 눈을 차례대로 마주쳤다.
   그리고 주먹을 내밀었다.
     
   툭.
     
   그렇게 주먹인사까지 마친 후, 강호가 몸을 일으켰다.
     
    ‘후우. 옛날 생각 나는군.’
     
   특수부대 시절, 그 많은 목숨 건 작전들이 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경험과 자부심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다.
     
   * * *
     
   우려와 다르게 허브 쉘터에는 별다른 위험이 없었다.
   사람이 죽은 흔적도 찾지 못했다.
     
   아마도 거인은 허브 쉘터로 들어가는 통로를 틀어막고 몰려드는 대피 인파를 도륙한 모양이었다.
   물론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강호는 재난 매뉴얼에서 제공하는 쉘터의 구조와 지도를 통해 헤매지 않고 곧장 승강장으로 갈 수 있었다.
   덕분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2시간이 남은 시점에서 중앙 승강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지하 10층에 있던 사람들, 전부 좀비가 됐나 봐요.”
     
   사토시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살았구나 싶던 순간에 절망적인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지금 나온 쉘터 입구에 등을 두고, 나란히 펼쳐 서.”
     
   빠르게 지시를 내린 강호는 수백이 넘는 수의 좀비 떼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그저 기가 찼다.
   정말 개미 떼처럼 시커먼 게 다 사람, 아니, 좀비였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강호 일행을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파도 같았다.
     
   ‘괜히 좀비 웨이브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
     
   강호는 이전까지와 다르게 울프를 자신의 옆에 세웠다.
     
   크르르르. 컹! 컹컹!
     
   몸집이 커져서 그런지 짖는 울림이 좋았다.
   충분히 적을 도발하거나 위협하는 데 도움이 됐다.
     
   ‘최대한 밀도를 높인다.’
     
   지금까지 좀비들을 상대해 본 결과, 위력적이지는 않았다.
   가끔 조금은 다르거나 특별한 능력을 기진 좀비들도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 한강호와 리사, 울프와 사토시가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바글바글한 수는 어떻게 감당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퀴벌레라도 되는 듯 징그럽기까지 했다.
     
   ‘인해전술이 왜 무서운 건지 실감이 되는군.’
     
   강호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생각해 둔 바를 공유했다.
     
   “리사. 나와 울프가 달려 나가고 첫 격돌이 벌어지면, 놈들의 뒤로 광역 공격을 퍼부어. 단, 적당한 위력을 유지해야 해.”
     
   이전처럼 전력을 쏟아붓지는 말라는 뜻이었다.
     
   “알겠어요.”
     
   리사의 대답과 동시에 사토시에게도 임무를 줬다.
     
   “어떤 경우라도 여기서 벗어나지 마. 철저하게 리사를 보호해. 그리고 신호를 주면, 바로 내 뒤로 따라붙어.”
   “알겠습니다.”
     
   빠르게 역할 분담을 끝내고 나니, 좀비들이 그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가보자.’
     
   강호의 양쪽 어깨에서 작은 진동이 일더니, 은백색의 번쩍이는 번개가 두 팔을 타고 내려왔다.
     
   파지지직.
   지이잉.
     
   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전기력이 그의 몸을 순식간에 둘렀다.
   그러더니 이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번쩍!
     
   이미 전도체나 마찬가지인 강호와 벼락이 이어진 순간, 수만 갈래의 번개가 바닥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갔다.
     
   쩌저저저적!
     
   사방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쿠르르르릉!
     
   강호는 좀비 웨이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파파팟.
     
   울프도 강호를 따라 내달렸다.
     
   크르릉. 컹!
     
   그리고 머지않은 시간에 첫 열과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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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좀비 웨이브.

넌지시 물어온 강호의 말에, 사토시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역시, 그가 군침을 흘렸던 건 에너지 핵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리사는 그 결정을 거부했다.

“단지 회복 때문에 저걸 흡수하는 거라면, 강호 씨가 가져가는 게 맞아요.”

에너지 핵의 쓸모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물론 지금은 그녀의 회복을 돕는 게 중요한 건 맞았다.

“휴식 없이 곧바로 움직여야 한다. 다음 쉘터에서는 또 어떤 괴물이 나타날지도 모르고.”

널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는 일종의 설득이었다.

다행히 리사는 그 정도 상식적인 판단은 할 줄 알았다.

“알겠어요. 민폐를 끼칠 순 없으니.”

그녀는 여전히 힘겨운 움직임으로 에너지 핵에 손을 가져다 댔다.

스르르르.

“흐음.”

리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의외로 시간이 필요했다.

흡수가 잘 이루어졌는지, 마지막엔 짙은 숨결을 토해냈다.

“하아아.”

동시에 사토시는 흠칫 몸을 떨었고, 강호는 그녀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 리사 아즈벨.

[…]: …….

[등급]: (상승)Lv. 2

[강화]: 2%

[속성]: …….

[전문기술]: …….

[기본효과]: (신규)절연막(絶緣膜).

[보조기술]: …….

강호는 속으로 움찔 놀랐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에너지 핵 하나에 등급이 하나가 올랐다.’

좀비를 죽이고 얻은 에너지 핵은 개당 2%의 증가가 이루진 걸 생각하면, 그 격차가 너무 컸다.

강호는 자연히 그 원인을 고민해 봤다.

‘에너지 핵의 가치, 경험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뭘까.’

대략 두 가지 정도를 추측했다.

가지고 있는 이능의 특성 차이, 그리고 그 이능의 강화 상태.

하지만 두루뭉술한 지금의 추측이 정확한 정보가 되려면 더 많은 표본과 다양한 분석이 필요했다.

‘괜한 생각을. 더는 저런 괴물을 마주칠 일이 없길 바랄 뿐.’

강호가 놀란 또 하나는, 그녀에게 새롭게 생긴 항목과 능력이다.

마침 조금 전 업데이트 된 재난 매뉴얼의 새로운 장에 그 설명이 있었다.

– 절연막(絶緣膜:Insulation).

전기 또는 열을 통하지 않게 하는 막이다.

전기 및 열전도성은 동질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 부도체는 또한 열 부도체이기도 하다.

즉, 누더기 골렘이 어떻게 맨몸으로 리사의 그 열화를 버텨냈고, 또 자신의 자기장막을 무력화했는지 자연히 이해됐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에너지 핵에 그 속성이 그대로 보존되는 거군.’

본체의 에너지 핵에는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고, 그것을 흡수하게 되면 그 성질을 전승하게 되는 것이다.

강호는 리사를 가만히 바라봤다.

정보 외에 다른 현상이나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기본효과라면, 역시 절연막은 패시브 계열의 특성인가 본데.’

그러고 보니, 지쳐 보이던 기색이 사라졌다.

확실히 에너지 핵에는 회복 기능도 있는 모양이었다.

“둘 다, 괜찮아?”

리사가 에너지 핵을 흡수하고 몸을 추스르는 사이, 강호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통로 중간쯤에서 비상 보급 상자를 찾아 열었다.

그 안에 있던 생수를 가져와 리사와 사토시에게 건네주었다.

“오, 통로 중간에 저런 상자가 있는지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침 목이 말랐는지, 사토시가 반색하며 물을 받아 들이킨 후 물었다.

“재난 매뉴얼.”

그 짧은 대답에 리사가 탄성을 흘렸다.

“아.”

그렇게 보고 또 보더니, 그 정보나 지식이 이렇게 쓰이는구나, 싶었다.

‘지금이 재난 상황이니, 꼭 필요한 정보들이겠지.’

그때 한강호가 자신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어디서 구했는지 항공 점퍼를 걸쳐주었다.

“아, 고마워요.”

리사도 제 앞섶이 다 열려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가슴이 노출된 것도 아니고, 속옷도 옷인데.

그런데, 지금 강호의 행동에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괜히 얼굴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왜 이래. 미쳤나 봐.’

그녀는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시선을 돌리다 보니, 사토시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어쩐지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이후 세 사람은 잠시 숨을 돌리며 서로의 상태나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가볍게 주고받았다.

또한 이후 남은 세 개 쉘터를 대비하기 위한 의견을 나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대화 마무리쯤에 사토시가 한 질문이었다.

누더기 골렘 같은 거인과 그 많던 시체를 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있던 모양이었다.

리사도 다르지 않았다.

‘사실 나도 그게 궁금해.’

병원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좀비가 됐다.

하지만 그건 일부일 거로 생각했다.

경보가 울리고 안내가 있었으니, 전부 승강장으로 갔겠거니 했다.

그런데, 허브 쉘터 앞에서 시체 산을 봤다.

그 거인은 대체 정체가 뭔지, 왜 그곳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그렇게 죽였는지, 의문만 남았다.

지금까지 그들에겐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사이렌이 울리고 15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계속 이동했고, 크고 작은 전투도 치러왔어.”

지금 얼마나 힘든지 공감하는 것으로 운을 뗀 강호는 쉽지 않은 현실을 짚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봐 알겠지만, 당장 승강장까지 살아 가는 것만도 힘든 상황이야.”

긍정 회로를 돌릴 수 있도록 동기부여도 빼놓지 않았다.

“다행히 우린 부상도 없고, 좀비가 되는 대신 특별한 능력을 얻었어. 그게 우리가 가진 희망이야.”

그러고는 목적을 단순화해 상기시켰다.

“마음이 복잡하다는 걸 알지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10층 폐쇄까지 남은 시간은 9시간. 일단 승강장까지만 가자.”

말을 마친 강호는 두 사람의 눈을 차례대로 마주쳤다.

그리고 주먹을 내밀었다.

툭.

그렇게 주먹인사까지 마친 후, 강호가 몸을 일으켰다.

‘후우. 옛날 생각 나는군.’

특수부대 시절, 그 많은 목숨 건 작전들이 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경험과 자부심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다.

* * *

우려와 다르게 허브 쉘터에는 별다른 위험이 없었다.

사람이 죽은 흔적도 찾지 못했다.

아마도 거인은 허브 쉘터로 들어가는 통로를 틀어막고 몰려드는 대피 인파를 도륙한 모양이었다.

물론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강호는 재난 매뉴얼에서 제공하는 쉘터의 구조와 지도를 통해 헤매지 않고 곧장 승강장으로 갈 수 있었다.

덕분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2시간이 남은 시점에서 중앙 승강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지하 10층에 있던 사람들, 전부 좀비가 됐나 봐요.”

사토시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살았구나 싶던 순간에 절망적인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지금 나온 쉘터 입구에 등을 두고, 나란히 펼쳐 서.”

빠르게 지시를 내린 강호는 수백이 넘는 수의 좀비 떼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그저 기가 찼다.

정말 개미 떼처럼 시커먼 게 다 사람, 아니, 좀비였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강호 일행을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파도 같았다.

‘괜히 좀비 웨이브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

강호는 이전까지와 다르게 울프를 자신의 옆에 세웠다.

크르르르. 컹! 컹컹!

몸집이 커져서 그런지 짖는 울림이 좋았다.

충분히 적을 도발하거나 위협하는 데 도움이 됐다.

‘최대한 밀도를 높인다.’

지금까지 좀비들을 상대해 본 결과, 위력적이지는 않았다.

가끔 조금은 다르거나 특별한 능력을 기진 좀비들도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 한강호와 리사, 울프와 사토시가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바글바글한 수는 어떻게 감당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퀴벌레라도 되는 듯 징그럽기까지 했다.

‘인해전술이 왜 무서운 건지 실감이 되는군.’

강호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생각해 둔 바를 공유했다.

“리사. 나와 울프가 달려 나가고 첫 격돌이 벌어지면, 놈들의 뒤로 광역 공격을 퍼부어. 단, 적당한 위력을 유지해야 해.”

이전처럼 전력을 쏟아붓지는 말라는 뜻이었다.

“알겠어요.”

리사의 대답과 동시에 사토시에게도 임무를 줬다.

“어떤 경우라도 여기서 벗어나지 마. 철저하게 리사를 보호해. 그리고 신호를 주면, 바로 내 뒤로 따라붙어.”

“알겠습니다.”

빠르게 역할 분담을 끝내고 나니, 좀비들이 그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가보자.’

강호의 양쪽 어깨에서 작은 진동이 일더니, 은백색의 번쩍이는 번개가 두 팔을 타고 내려왔다.

파지지직.

지이잉.

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전기력이 그의 몸을 순식간에 둘렀다.

그러더니 이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번쩍!

이미 전도체나 마찬가지인 강호와 벼락이 이어진 순간, 수만 갈래의 번개가 바닥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갔다.

쩌저저저적!

사방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쿠르르르릉!

강호는 좀비 웨이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파파팟.

울프도 강호를 따라 내달렸다.

크르릉. 컹!

그리고 머지않은 시간에 첫 열과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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