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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13화. 살기 위해서는 지상으로.
     
     
     
     
     
     
     
     
   괴수가 울부짖으며 몸을 크게 흔들었다.
   마치 자신의 등에 있는 벌레를 털어내려는 듯이.
     
   하지만 레이나는 발바닥에 접착제라도 붙은 듯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태로 괴수의 등 위를 내달렸다.
     
   타다닷.
     
   검을 꽂은 채로 달리니, 그 단단해 보이던 등이 그녀의 동선을 따라 갈라지며 진녹색 혈액이 솟구쳤다.
     
   촤아아!
     
   그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음에도 괴수는 몸부림쳤다.
     
   “끄아아아아악!”
     
   전갈과 꼭 닮은 꼬리가 위로 치솟았다.
   꼬리 끝에는 날카로운 침이 있었고, 독처럼 느껴지는 시커먼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그 독침이 레이나를 향해 쏟아졌다.
     
   쐐애액!
     
   누구도 괴수의 꼬리는 신경 쓰지 못했다.
   레이나 자신도.
     
   “아.”
     
   워낙 찰나였기에 레이나가 몸을 피할 틈은 없었다.
     
   “위험해!”
     
   누군가의 경악과 동시에 독침이 레이나의 몸을 뚫었다.
     
   푸욱.
     
   아주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원래부터 한 팀이었던 것처럼 강호와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 레이나의 모습은 너무도 강렬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본 누구보다 강했다.
   그런데, 그런 레이나가 저렇게 허무하게?
     
   “꺄아악!”
     
   전광석화처럼 눈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공방을 지켜보던 리사가 비명을 질렀다.
   사토시도, 심지어 울프도 다르지 않았다.
     
   “아아아!”
   컹!
     
   강력한 전투력으로 보는 이를 전율케 했던 레이나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터진 강호의 외침에 금방 정신이 들었다.
     
   “정신 차려! 뭣들 하는 거야! 지시한 대로 움직여!”
     
   한강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큼 위기의 순간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스륵.
     
   괴수의 꼬리 바늘에 꿰뚫렸어야 할 레이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어! 없다?”
     
   뒤늦게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또다시 괴수의 괴성이 울렸다.
     
   “크카악!”
     
   동시에 바닥으로 녹색 혈액과 내장이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아.
   철퍽.
     
   “와!”
   “아아아! 레이나!”
     
   순간이동 마술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분명 꼬리 침에 찔리는 걸 봤는데, 그녀는 어느 틈에 아래로 내려와 등에서 했던 것과 같이 괴수의 배를 갈랐다.
     
   촤아아아!
     
   모두의 탄성과 탄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레이나는 달리던 방향으로 쭉 미끄러져 괴수를 벗어났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에 맞춰 강호의 주먹이 괴수의 안면에 꽂혔다.
     
   푸콱!
     
   지금까지처럼 화려하게 번개가 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타격음이 거의 나지 않는 초고압 전류 주먹질이었다.
   물론 그의 기본 속성이 플라즈마였기에 묵직한 전격이 실려있었다.
     
   쩌저저적.
     
   몸통이 갈라진 괴수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에는 충분한 일격이었다.
     
   쿠오오오오.
     
   쿠우웅.
     
   사토시는 반으로 갈라져 쓰러지는 괴수의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그 움직임이 마치 연출된 슬로우 모션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어쩐지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몸길이만 족히 6m는 되는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을, 저 두 사람만으로 해치웠다.’
     
   한강호 하나만 해도 저에게는 가슴 벅찬 존재인데, 또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
     
   하아아.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설명할 길 없는 감격은 곧 겁 많은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오오오옷!”
     
   사토시는 두 손을 가슴께에서 크로스했다가 힘껏 아래로 뻗어 내렸다.
     
   훅.
   팟.
     
   그러자 그의 비어있던 두 손에 흑빛 비도가 각각 들렸다.
     
   촤악.
     
   “으랴아!”
     
   그는 몸을 빙글 돌리며 헨리를 씹어 삼킨 괴수를 향해 비도를 뿌렸다.
     
   슉!
   퓨퓨퓩!
     
   두 번, 세 번 손을 뿌리더니 갑자기 잔 스텝을 밟으며 달려나갔다.
     
   타타타탓!
     
   그대로 멋지게 날아올라 놈의 목과 가슴, 그리고 배에 구멍을 내어줄 생각이었다.
     
   “죽어!”
     
   팟.
     
   그런데 그때, 뒤에서 리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안 돼! 조심해요!”
   “응? 아!”
     
   날카롭던 사토시의 눈이 금세 동그래졌다.
     
   왜 저놈이 쓰러져 있는 걸까.
   아니, 그보다, 바닥에는 왜 또 용암이 끓고 있는 걸까.
     
   ‘리사. 어느 틈에.’
     
   그러고 보니, 몸이 떠 있는 중 그 아래에 있던 울프의 입에 괴수의 팔 하나가 물려있는 게 보였다.
     
   ‘아, 이미 끝났구나.’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아마도 강호의 외침 이후 리사와 울프는 괴수와 일전을 치른 모양이었다.
     
   상황 파악과 함께 그의 낮고 짧았던 비행은 끝이 났다.
     
   철퍽.
   출렁.
     
   “으앗! 핫! 뜨! 하!”
     
   * * *
     
   결국 대피소가 있던 쉘터는 파괴됐다.
   강호 일행과 새로 합류한 레이나의 가공할 만한 공격이 집중되니 버티지 못한 것이다.
     
   “당신들, 대체 정체가 뭐죠?”
     
   레이나는 진심으로 놀라 물었다.
   한강호의 능력이야 이미 본 바 있어 이해라도 되지만, 나머지 다른 일행까지 이능력자라니,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 이능력도 결코 자신에게 뒤지지 않아 보였다.
     
   리사도 대답이 아닌 질문으로 응수했다.
     
   “레이나, 그러는 당신은요?”
     
   사이렌이 울리는 위급 상황에서 대피소에서 처음 만났고, 겨우 이름을 주고받은 후에 끔찍한 괴수의 습격을 받았다.
   처음 느꼈던 공포, 그리고 우려와 다르게 강력한 크리처 둘을 특별히 위험한 상황 없이 제거하고 난 후였다.
     
   서로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없었던 탓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 중에 이미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있던 오직 한 사람.
   한강호만이 조용히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
     
   놀라움, 반가움,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리사와 한바탕 수다를 떨고 있는 레이나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강호의 눈에 이채가 들어찼다.
     
   ‘하프 엘프라.’
     
   리사와 사토시는 지하 10층에서 전력 시설 폭발로 인해 자기장에 피폭됐다.
   그 영향으로 이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한강호 자신과 울프는 이미 변이체였다.
   하지만 그들 또한 자기장 피폭 이후 이능력에 변화가 생겼다.
   엄밀히 말해 능력이 강화됐다.
     
   그렇다면, 피폭 없이, 에너지 핵 흡수 없이 Lv. 5인 이 여자는 어떤 경우일까?
   아니, 조금 전 전투로 이제 Lv. 6이 됐다.
     
   직접 묻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녀를 귀찮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나라도 그건 싫을 것 같거든.’
     
   그럼에도 강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강력한 동료를 얻게 된 것에 대한 기쁜 마음이 저도 모르게 표정에 드러난 것이다.
   왜 기쁘지 않겠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재난 상황에서, 강한 동료는 생존 확률을 높인다.’
     
   군 시절의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 *
     
   강호 일행은 곧장 허브 게이트로 넘어왔다.
   그리고 연결 통로를 수동으로 차단했다.
     
   쉬이이익.
     
   유압식 차폐 장치가 닫히고 두 번째 철문이 떨어져 입구를 막았다.
     
   쿠우웅.
     
   이어서 고압 수증기가 빠져나가며 세 번째 차단벽이 좌우에서 회전해 들어와 맞물렸다.
     
   치이이이익.
   철커덩.
     
   그렇게 허브 게이트와 파괴된 대피소 쉘터의 통로가 완전히 차단됐다.
     
   ‘이게 자동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왜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 걸까.’
     
   강호는 쉘터 폐쇄를 확인하고서야 의문 하나를 품은 채로 돌아섰다.
     
   “레이나. 대부분의 운영 시스템은 상층부에 집중되어 있어. 당신이 여기까지 내려온 이유는 뭐지?”
     
   막 이동을 시작하면서 물은 질문이었다.
   레이나는 걸음을 따라 옮기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나, 한강호, 이 남자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그에게라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감찰이라고 보면 돼요. 한발 늦기는 했지만.”
     
   1년 전, 생화학 연구소에서 금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했다.
   레이나는 조사 임무를 맡게 됐고, 일종의 잠입 임무를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단서를 찾았다.
     
   “증거 확보를 계획했던 게 오늘이었어요. 그리고 결과는 보시다시피.”
     
   이후로도 레이나의 설명은 비교적 간략하면서도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그런 반인륜적 실험이 연구진의 독단적 판단은 아닐 것 같은데, 아는 바가 있나?”
   “솔직히 어느 선까지 이 일에 연루됐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해요. 당장 내 동료도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인걸요.”
     
   강호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레이나의 설명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심각했다.
     
   – 각층의 연구실에서 인간의 개량된 DNA를 이식해 배양되고 만들어진 생명체.
     
   게다가 레이나는 뮤턴트나 크리처 외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몬스터를 예상했다.
     
   결론은, 한 층을 올라가 대피하는 것으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여덟 개나 일곱 개 층을 거쳐 지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점차 더 무서운 미지의 존재를 마주칠 일이 고스란히 두려움이 된 것이다.
     
   ‘강호 씨가 서두르는 이유가 그래서였구나.’
     
   리사뿐 아니라 다른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10층에서 9층으로 올라올 때만 해도 이젠 살았구나, 했는데, 이제 안전한 곳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지상으로 올라가야 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곧바로 서부 승강장으로 이동한다.”
     
   
   최대한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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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살기 위해서는 지상으로.

괴수가 울부짖으며 몸을 크게 흔들었다.

마치 자신의 등에 있는 벌레를 털어내려는 듯이.

하지만 레이나는 발바닥에 접착제라도 붙은 듯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태로 괴수의 등 위를 내달렸다.

타다닷.

검을 꽂은 채로 달리니, 그 단단해 보이던 등이 그녀의 동선을 따라 갈라지며 진녹색 혈액이 솟구쳤다.

촤아아!

그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음에도 괴수는 몸부림쳤다.

“끄아아아아악!”

전갈과 꼭 닮은 꼬리가 위로 치솟았다.

꼬리 끝에는 날카로운 침이 있었고, 독처럼 느껴지는 시커먼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그 독침이 레이나를 향해 쏟아졌다.

쐐애액!

누구도 괴수의 꼬리는 신경 쓰지 못했다.

레이나 자신도.

“아.”

워낙 찰나였기에 레이나가 몸을 피할 틈은 없었다.

“위험해!”

누군가의 경악과 동시에 독침이 레이나의 몸을 뚫었다.

푸욱.

아주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원래부터 한 팀이었던 것처럼 강호와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 레이나의 모습은 너무도 강렬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본 누구보다 강했다.

그런데, 그런 레이나가 저렇게 허무하게?

“꺄아악!”

전광석화처럼 눈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공방을 지켜보던 리사가 비명을 질렀다.

사토시도, 심지어 울프도 다르지 않았다.

“아아아!”

컹!

강력한 전투력으로 보는 이를 전율케 했던 레이나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터진 강호의 외침에 금방 정신이 들었다.

“정신 차려! 뭣들 하는 거야! 지시한 대로 움직여!”

한강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큼 위기의 순간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스륵.

괴수의 꼬리 바늘에 꿰뚫렸어야 할 레이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어! 없다?”

뒤늦게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또다시 괴수의 괴성이 울렸다.

“크카악!”

동시에 바닥으로 녹색 혈액과 내장이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아.

철퍽.

“와!”

“아아아! 레이나!”

순간이동 마술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분명 꼬리 침에 찔리는 걸 봤는데, 그녀는 어느 틈에 아래로 내려와 등에서 했던 것과 같이 괴수의 배를 갈랐다.

촤아아아!

모두의 탄성과 탄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레이나는 달리던 방향으로 쭉 미끄러져 괴수를 벗어났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에 맞춰 강호의 주먹이 괴수의 안면에 꽂혔다.

푸콱!

지금까지처럼 화려하게 번개가 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타격음이 거의 나지 않는 초고압 전류 주먹질이었다.

물론 그의 기본 속성이 플라즈마였기에 묵직한 전격이 실려있었다.

쩌저저적.

몸통이 갈라진 괴수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에는 충분한 일격이었다.

쿠오오오오.

쿠우웅.

사토시는 반으로 갈라져 쓰러지는 괴수의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그 움직임이 마치 연출된 슬로우 모션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어쩐지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몸길이만 족히 6m는 되는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을, 저 두 사람만으로 해치웠다.’

한강호 하나만 해도 저에게는 가슴 벅찬 존재인데, 또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

하아아.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설명할 길 없는 감격은 곧 겁 많은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오오오옷!”

사토시는 두 손을 가슴께에서 크로스했다가 힘껏 아래로 뻗어 내렸다.

훅.

팟.

그러자 그의 비어있던 두 손에 흑빛 비도가 각각 들렸다.

촤악.

“으랴아!”

그는 몸을 빙글 돌리며 헨리를 씹어 삼킨 괴수를 향해 비도를 뿌렸다.

슉!

퓨퓨퓩!

두 번, 세 번 손을 뿌리더니 갑자기 잔 스텝을 밟으며 달려나갔다.

타타타탓!

그대로 멋지게 날아올라 놈의 목과 가슴, 그리고 배에 구멍을 내어줄 생각이었다.

“죽어!”

팟.

그런데 그때, 뒤에서 리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안 돼! 조심해요!”

“응? 아!”

날카롭던 사토시의 눈이 금세 동그래졌다.

왜 저놈이 쓰러져 있는 걸까.

아니, 그보다, 바닥에는 왜 또 용암이 끓고 있는 걸까.

‘리사. 어느 틈에.’

그러고 보니, 몸이 떠 있는 중 그 아래에 있던 울프의 입에 괴수의 팔 하나가 물려있는 게 보였다.

‘아, 이미 끝났구나.’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아마도 강호의 외침 이후 리사와 울프는 괴수와 일전을 치른 모양이었다.

상황 파악과 함께 그의 낮고 짧았던 비행은 끝이 났다.

철퍽.

출렁.

“으앗! 핫! 뜨! 하!”

* * *

결국 대피소가 있던 쉘터는 파괴됐다.

강호 일행과 새로 합류한 레이나의 가공할 만한 공격이 집중되니 버티지 못한 것이다.

“당신들, 대체 정체가 뭐죠?”

레이나는 진심으로 놀라 물었다.

한강호의 능력이야 이미 본 바 있어 이해라도 되지만, 나머지 다른 일행까지 이능력자라니,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 이능력도 결코 자신에게 뒤지지 않아 보였다.

리사도 대답이 아닌 질문으로 응수했다.

“레이나, 그러는 당신은요?”

사이렌이 울리는 위급 상황에서 대피소에서 처음 만났고, 겨우 이름을 주고받은 후에 끔찍한 괴수의 습격을 받았다.

처음 느꼈던 공포, 그리고 우려와 다르게 강력한 크리처 둘을 특별히 위험한 상황 없이 제거하고 난 후였다.

서로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없었던 탓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 중에 이미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있던 오직 한 사람.

한강호만이 조용히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

놀라움, 반가움,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리사와 한바탕 수다를 떨고 있는 레이나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강호의 눈에 이채가 들어찼다.

‘하프 엘프라.’

리사와 사토시는 지하 10층에서 전력 시설 폭발로 인해 자기장에 피폭됐다.

그 영향으로 이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한강호 자신과 울프는 이미 변이체였다.

하지만 그들 또한 자기장 피폭 이후 이능력에 변화가 생겼다.

엄밀히 말해 능력이 강화됐다.

그렇다면, 피폭 없이, 에너지 핵 흡수 없이 Lv. 5인 이 여자는 어떤 경우일까?

아니, 조금 전 전투로 이제 Lv. 6이 됐다.

직접 묻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녀를 귀찮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나라도 그건 싫을 것 같거든.’

그럼에도 강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강력한 동료를 얻게 된 것에 대한 기쁜 마음이 저도 모르게 표정에 드러난 것이다.

왜 기쁘지 않겠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재난 상황에서, 강한 동료는 생존 확률을 높인다.’

군 시절의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 *

강호 일행은 곧장 허브 게이트로 넘어왔다.

그리고 연결 통로를 수동으로 차단했다.

쉬이이익.

유압식 차폐 장치가 닫히고 두 번째 철문이 떨어져 입구를 막았다.

쿠우웅.

이어서 고압 수증기가 빠져나가며 세 번째 차단벽이 좌우에서 회전해 들어와 맞물렸다.

치이이이익.

철커덩.

그렇게 허브 게이트와 파괴된 대피소 쉘터의 통로가 완전히 차단됐다.

‘이게 자동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왜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 걸까.’

강호는 쉘터 폐쇄를 확인하고서야 의문 하나를 품은 채로 돌아섰다.

“레이나. 대부분의 운영 시스템은 상층부에 집중되어 있어. 당신이 여기까지 내려온 이유는 뭐지?”

막 이동을 시작하면서 물은 질문이었다.

레이나는 걸음을 따라 옮기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나, 한강호, 이 남자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그에게라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감찰이라고 보면 돼요. 한발 늦기는 했지만.”

1년 전, 생화학 연구소에서 금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했다.

레이나는 조사 임무를 맡게 됐고, 일종의 잠입 임무를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단서를 찾았다.

“증거 확보를 계획했던 게 오늘이었어요. 그리고 결과는 보시다시피.”

이후로도 레이나의 설명은 비교적 간략하면서도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그런 반인륜적 실험이 연구진의 독단적 판단은 아닐 것 같은데, 아는 바가 있나?”

“솔직히 어느 선까지 이 일에 연루됐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해요. 당장 내 동료도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인걸요.”

강호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레이나의 설명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심각했다.

– 각층의 연구실에서 인간의 개량된 DNA를 이식해 배양되고 만들어진 생명체.

게다가 레이나는 뮤턴트나 크리처 외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몬스터를 예상했다.

결론은, 한 층을 올라가 대피하는 것으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여덟 개나 일곱 개 층을 거쳐 지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점차 더 무서운 미지의 존재를 마주칠 일이 고스란히 두려움이 된 것이다.

‘강호 씨가 서두르는 이유가 그래서였구나.’

리사뿐 아니라 다른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10층에서 9층으로 올라올 때만 해도 이젠 살았구나, 했는데, 이제 안전한 곳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지상으로 올라가야 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곧바로 서부 승강장으로 이동한다.”

최대한 빠르게.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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