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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16화. 정말 강해졌다.
        
     
     
     
     
     
     
     
   집단의 행동에 있어서 단합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필수 요소다.
   두 번째 쉘터를 나오기 직전에 서로 나누었던 짧은 교감과 독려가 강호 일행을 완벽한 한 팀으로 만들었다.
     
   “모두 고생했습니다. 잠깐 쉬도록 하죠.”
     
   강호는 여섯 번째 쉘터의 출구에 도착해 잠깐의 휴식을 허락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시에 잘 따라준 일행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오히려 모두가 강호에게 환호를 보냈다.
     
   “고맙습니다!”
   “소령님 덕분입니다!”
     
   세 번째 쉘터부터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지금의 여섯 번째 쉘터까지 쉼 없이 내리 달렸다.
   그 모든 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그때마다 한강호의 지휘와 통솔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그들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군대 경험이 없어도, 전략 전술을 몰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단연 돋보였다.
   물론 감사의 대상은 강호만이 아니었다.
     
   “리사 박사님, 고맙습니다.”
   “레이나 팀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울프! 너 정말 대단하다!”
     
   태어나 처음 보는 이능력자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굉장한 힘을 갖게 됐는지,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
     
   무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토시가 입을 삐쭉거리며 시무룩하게 있었다.
   똑같이 고생했는데, 자신의 이름만 연호에서 빠진 게 못내 서운했다.
     
   “당신은 숨어서 움직였잖아.”
     
   언제 다가왔는지, 강호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저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그리 완벽한 은신을. 하지만 얼마나 많은 순간 저들을 구했는지, 내가 다 안다.”
     
   그깟 인정이라는 게 뭐라고.
   사토시는 괜히 울컥했다.
   그래도 얼굴은 금세 밝아졌다.
     
   “하하, 뭐, 서운하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지만, 강호가 알아준다고 하니 거짓말처럼 서운함이 싹 가신 건 사실이었다.
   그는 리더 아니던가.
   그럼 된 거였다.
     
     
   짧은 시간 동안 손발을 맞춰가며 사지를 건너와서인지, 생존자들 사이에는 전우애라는 게 생겼다.
   아주 끈끈했다.
   그 모습이나 현상을 지켜보던 강호가 속으로 짧게 한숨을 삼켰다.
     
   ‘전우라.’
     
   자신의 과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특수한 유대감이 갖는 단점이 먼저 떠올랐다.
     
   소중한 이를 잃게 됐을 때의 상실감.
   특히 지금처럼 죽음이 내 일이 될 수 있는 재난 상황이라면, 그 허무와 괴로움은 배가 될 것이다.
     
   그건 경험에서 나온 우려였다.
   그럼에도 강호는 장점으로 단점을 밀어냈다.
     
   ‘서로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심보다는 전우애가 백번 낫지.’
     
   그렇게 긍정으로 생각을 마무리 지은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런 강호를 보며 레이나가 먼저 나섰다.
     
   “여러분. 힘드시겠지만, 다시 움직여야 해요. 조금만 더 힘내죠!”
     
   강호는 그런 레이나가 무척 든든하게 느껴졌다.
     
   ‘대위라니.’
     
   그녀가 미 해군 항공대 출신이라는 이력은 알고 있었지만, 작전 지휘부 정도로 생각했었다.
   컴퓨터 공학 박사니, 그게 자연스러운 추측이었다.
     
   그런데 얘길 들어보니, 의외로 야전 장교였다.
   심지어 전투기를 몰던 파일럿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지 않게 놀랐었다.
     
   ‘그래서인지, 덕분에 큰 힘이 됐다.’
     
   이동 내내 그녀에게 후위를 맡겼다.
   그리고 그녀는 완벽하게 수행했다.
   일행에 사망자나 낙오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데는 그녀의 공이 무척 컸다.
     
   [이름]: 레이나 디아즈.
   […]: ……
   [특성]: 집행자. (신규)레인저.
   [등급]: Lv. 7
   [강화]: 20%
   [속성]: 투명화. 가속화. 피부 경질화(硬質化/Hardening).
   [전문 기술]: 소멸. 양손 특화.
   [보조 기술]: 원소 추출. (신규)경계.
     
   등급이 높아졌고, 새로운 특성과 보조 기술이 눈에 들어왔다.
     
   ‘레인저라.’
     
   적과 근접한 거리에서 엄청난 몸놀림으로 적의 공격은 모두 피하고 천천히 데미지를 누적시켜가는 전투 스타일 덕분에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야도 넓어 척후나 감시에 탁월한 재능을 가져 레인저라는 특성이 왜 이제 생겼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신규 항목의 추가나 기존 능력의 강화에 일정한 규칙이 보였다.
     
   ‘역시, 이능력 또한 개인 역량이기 때문인지 경험과 활약이 성장에 반영되는 것 같아.’
     
   레이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자신의 이능력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게다가 강호보다 더 상위 등급이었고.
     
   ‘틀은 이미 완성형. 이제 강해지기만 하면 되겠군.’
     
   그녀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성장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강호에게는 여러모로 큰 힘이 되는 동료였다.
     
   그는 레이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레이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좋지만, 사명감까지는 필요 없어.”
     
   강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 말이었다.
   레이나는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미소 지었다.
     
   “물론이죠. 난 누구보다 내가 소중해요.”
     
   강호도 말없이 마주 웃어주는 것으로 짧은 당부를 마무리했다.
   그때 마침 뒤에서 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호씨가 다른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돌아보니 그녀는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노려보고 있는데, 조금도 무섭다거나 차가운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곤란했다.
   특히 팔짱을 껴 한껏 모아진….
     
   “흠, 무슨 말인지….”
     
   리사는 시선으로 강호의 어깨를 가리켰다.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다.
     
   “알다시피 이런 상황에서 부상은 당연한…”
     
   어깨와 팔, 손목, 그리고 허벅지까지.
   그 험난했던 길을 뚫고 나오는 동안 자잘한 부상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치료는 의사인 리사의 몫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부상이 당연하다고 했으니, 잔소리는 마땅한 일이었다.
     
   “뭐라고요?”
     
   강호는 입을 다물었다.
   사토시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도 여자를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조금 날이 선 것 같은데.’
     
   그런 그들 모습 뒤로 레이나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옮겼다.
     
   잠깐의 휴식과 정비가 끝났다.
   모순되는 얘기지만, 살기 위해 사지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이동 대형은 이전과 같다. 출발.”
     
   지하 2층의 스무 개 쉘터 중 1/3을 지나왔다.
   전부 오염되어 있었다.
   각각의 연구소에서 실험에 쓰이던 미생물이나 배양균 등, 오염의 종류나 방식도 각양각색이었다.
     
   ‘승강장 쉘터까지 최단 거리로 갈 수 있다면, 앞으로 세 개.’
     
   그곳들도 앞선 쉘터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어느 정도의 대비는 가능하다.
   강호의 머릿속에 있는 재난 매뉴얼 덕분이다.
     
   ‘최대한 빠르게 통과한다.’
     
   지하 1층이 멀지 않았다.
     
   * * *
     
   “지금!”
     
   강호의 신호와 동시에 리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자세를 잡았다.
     
   “네.”
     
   이젠 익숙하게 화학식을 몇 가지 조합해 읊조렸다.
   그러자 이내 그녀의 등 뒤에서 시작된 불길이 어깨를 넘어 두 팔을 타고 내려와 손끝에 모이기 시작했다.
     
   후우웅.
   콰르르.
     
   “발화.”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전부 쫙 펼치자, 손안에 갇혀있던 시뻘건 화염이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후와아앙!
   푸콰아아아아!
     
   정글과 같은 크리처 군락이 한순간에 불바다가 됐다.
     
   끄아아아악!
   끼하아아!
     
   감염 전엔 사람이었을, 혹은 시체였던 존재들의 귀곡성이 귀청을 찢었다.
     
   “으윽.”
   “악!”
     
   사람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도 괴로워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 고통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화륵, 화르르르.
     
   마치 장갑차에 탑재한 대전차용 화염 방사포처럼 불길을 뿜어내는 리사를 보며, 강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짧은 시간에 정말 강해졌다.’
     
   단지 느낌만이 아니었다.
     
   [이름]: 리사 아즈벨.
   […]: ……….
   [특성]: 원소 술사.
   [등급]: Lv. 5
   [강화]: 75%
   [속성]: 4대 원소(화염 특화).
   [전문 기술]: 원소 형질 변환.
   [기본효과]: 절연막. (신규)인화점(引火點.Flash Point) 제어.
   [보조 기술]: ……….
   […]:
     
   어느새 LV.5가 됐다.
   그리고 기본효과가 하나 더 추가됐다.
     
   – 인화점 제어.
     
   절연막과 같은 패시브 효과로, 이젠 어떤 경우라도 불을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의 화염 특화 속성이 더욱 강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전투를 거듭할수록 파괴력이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힘을 분배하는 요령이 생겼다.’
     
   강호가 생각하기에 아주 바람직한 진화였다.
     
   리사는 힘을 갈무리하고 돌아섰다.
   자신을 빤히 보는 강호의 시선이 어쩐지 부끄러웠지만, 싫지 않았다.
   그가 레이나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얹던 괘씸함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애썼다. 이제 힘을 회복하는 요령을 빨리 찾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름의 조언과 함께 살짝 떨리는 리사의 양 팔을 가만히 감싸주었다.
     
   “……!”
     
   리사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저만치 뒤에 있던 레이나가 입을 비쭉 내밀고 있는 게 강호의 어깨 너머로 보였다.
     
   ‘1 대 1.’
     
   리사는 속으로 한 번 더 픽 웃었다.
     
   “에너지 핵의 색과 형태가 조금 다른데요?”
     
   사토시가 초토화된 바닥을 보며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였다.
   지금 것은 빛을 발하는 씨앗, 그런 느낌이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바닥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푸른색 알갱이들이 마치 밤하늘 별처럼 반짝였다.
     
   “와. 예뻐라.”
   “아름다워요.”
   “그러게. 은하수 보는 것 같아.”
     
   사람들이 그 반짝임에 홀려있는 사이, 사토시가 앞으로 나섰다.
     
   스윽.
     
   ‘아름답다고? 우리를 죽이려고 했던 괴수들의 잔재일 뿐인데, 그걸 그새 잊다니.’
     
   뭐가 못마땅한지, 그는 사람들의 감성을 파괴하고 싶은 심술이 났다.
     
   “가자. 울프.”
     
   컹.
     
   그때, 강호는 달라진 울프의 항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속성]: (신규)영혼 감지(감화). (신규)비물질 흡수.
     
   
   ‘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안녕하세요.
[재난 매뉴얼~] 쓰고 있는 로스티플입니다.

플러스 전환되고 첫 화인데, 사전 공지 없이 연재 시간이 늦었습니다.

– 기준 am 8:10 / 오늘만, pm 12:10 –

이후로는 약속 된 날짜, 시간에 정확히 업로드 하겠습니다.

작품 읽어주시는 Ilham Senjaya님, 항상 고맙습니다.다음화 보기

16화. 정말 강해졌다.

집단의 행동에 있어서 단합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필수 요소다.

두 번째 쉘터를 나오기 직전에 서로 나누었던 짧은 교감과 독려가 강호 일행을 완벽한 한 팀으로 만들었다.

“모두 고생했습니다. 잠깐 쉬도록 하죠.”

강호는 여섯 번째 쉘터의 출구에 도착해 잠깐의 휴식을 허락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시에 잘 따라준 일행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오히려 모두가 강호에게 환호를 보냈다.

“고맙습니다!”

“소령님 덕분입니다!”

세 번째 쉘터부터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지금의 여섯 번째 쉘터까지 쉼 없이 내리 달렸다.

그 모든 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그때마다 한강호의 지휘와 통솔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그들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군대 경험이 없어도, 전략 전술을 몰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단연 돋보였다.

물론 감사의 대상은 강호만이 아니었다.

“리사 박사님, 고맙습니다.”

“레이나 팀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울프! 너 정말 대단하다!”

태어나 처음 보는 이능력자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굉장한 힘을 갖게 됐는지,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

무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토시가 입을 삐쭉거리며 시무룩하게 있었다.

똑같이 고생했는데, 자신의 이름만 연호에서 빠진 게 못내 서운했다.

“당신은 숨어서 움직였잖아.”

언제 다가왔는지, 강호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저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그리 완벽한 은신을. 하지만 얼마나 많은 순간 저들을 구했는지, 내가 다 안다.”

그깟 인정이라는 게 뭐라고.

사토시는 괜히 울컥했다.

그래도 얼굴은 금세 밝아졌다.

“하하, 뭐, 서운하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지만, 강호가 알아준다고 하니 거짓말처럼 서운함이 싹 가신 건 사실이었다.

그는 리더 아니던가.

그럼 된 거였다.

짧은 시간 동안 손발을 맞춰가며 사지를 건너와서인지, 생존자들 사이에는 전우애라는 게 생겼다.

아주 끈끈했다.

그 모습이나 현상을 지켜보던 강호가 속으로 짧게 한숨을 삼켰다.

‘전우라.’

자신의 과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특수한 유대감이 갖는 단점이 먼저 떠올랐다.

소중한 이를 잃게 됐을 때의 상실감.

특히 지금처럼 죽음이 내 일이 될 수 있는 재난 상황이라면, 그 허무와 괴로움은 배가 될 것이다.

그건 경험에서 나온 우려였다.

그럼에도 강호는 장점으로 단점을 밀어냈다.

‘서로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심보다는 전우애가 백번 낫지.’

그렇게 긍정으로 생각을 마무리 지은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런 강호를 보며 레이나가 먼저 나섰다.

“여러분. 힘드시겠지만, 다시 움직여야 해요. 조금만 더 힘내죠!”

강호는 그런 레이나가 무척 든든하게 느껴졌다.

‘대위라니.’

그녀가 미 해군 항공대 출신이라는 이력은 알고 있었지만, 작전 지휘부 정도로 생각했었다.

컴퓨터 공학 박사니, 그게 자연스러운 추측이었다.

그런데 얘길 들어보니, 의외로 야전 장교였다.

심지어 전투기를 몰던 파일럿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지 않게 놀랐었다.

‘그래서인지, 덕분에 큰 힘이 됐다.’

이동 내내 그녀에게 후위를 맡겼다.

그리고 그녀는 완벽하게 수행했다.

일행에 사망자나 낙오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데는 그녀의 공이 무척 컸다.

[이름]: 레이나 디아즈.

[…]: ……

[특성]: 집행자. (신규)레인저.

[등급]: Lv. 7

[강화]: 20%

[속성]: 투명화. 가속화. 피부 경질화(硬質化/Hardening).

[전문 기술]: 소멸. 양손 특화.

[보조 기술]: 원소 추출. (신규)경계.

등급이 높아졌고, 새로운 특성과 보조 기술이 눈에 들어왔다.

‘레인저라.’

적과 근접한 거리에서 엄청난 몸놀림으로 적의 공격은 모두 피하고 천천히 데미지를 누적시켜가는 전투 스타일 덕분에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야도 넓어 척후나 감시에 탁월한 재능을 가져 레인저라는 특성이 왜 이제 생겼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신규 항목의 추가나 기존 능력의 강화에 일정한 규칙이 보였다.

‘역시, 이능력 또한 개인 역량이기 때문인지 경험과 활약이 성장에 반영되는 것 같아.’

레이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자신의 이능력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게다가 강호보다 더 상위 등급이었고.

‘틀은 이미 완성형. 이제 강해지기만 하면 되겠군.’

그녀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성장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강호에게는 여러모로 큰 힘이 되는 동료였다.

그는 레이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레이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좋지만, 사명감까지는 필요 없어.”

강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 말이었다.

레이나는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미소 지었다.

“물론이죠. 난 누구보다 내가 소중해요.”

강호도 말없이 마주 웃어주는 것으로 짧은 당부를 마무리했다.

그때 마침 뒤에서 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호씨가 다른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돌아보니 그녀는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노려보고 있는데, 조금도 무섭다거나 차가운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곤란했다.

특히 팔짱을 껴 한껏 모아진….

“흠, 무슨 말인지….”

리사는 시선으로 강호의 어깨를 가리켰다.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다.

“알다시피 이런 상황에서 부상은 당연한…”

어깨와 팔, 손목, 그리고 허벅지까지.

그 험난했던 길을 뚫고 나오는 동안 자잘한 부상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치료는 의사인 리사의 몫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부상이 당연하다고 했으니, 잔소리는 마땅한 일이었다.

“뭐라고요?”

강호는 입을 다물었다.

사토시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도 여자를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조금 날이 선 것 같은데.’

그런 그들 모습 뒤로 레이나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옮겼다.

잠깐의 휴식과 정비가 끝났다.

모순되는 얘기지만, 살기 위해 사지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이동 대형은 이전과 같다. 출발.”

지하 2층의 스무 개 쉘터 중 1/3을 지나왔다.

전부 오염되어 있었다.

각각의 연구소에서 실험에 쓰이던 미생물이나 배양균 등, 오염의 종류나 방식도 각양각색이었다.

‘승강장 쉘터까지 최단 거리로 갈 수 있다면, 앞으로 세 개.’

그곳들도 앞선 쉘터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어느 정도의 대비는 가능하다.

강호의 머릿속에 있는 재난 매뉴얼 덕분이다.

‘최대한 빠르게 통과한다.’

지하 1층이 멀지 않았다.

* * *

“지금!”

강호의 신호와 동시에 리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자세를 잡았다.

“네.”

이젠 익숙하게 화학식을 몇 가지 조합해 읊조렸다.

그러자 이내 그녀의 등 뒤에서 시작된 불길이 어깨를 넘어 두 팔을 타고 내려와 손끝에 모이기 시작했다.

후우웅.

콰르르.

“발화.”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전부 쫙 펼치자, 손안에 갇혀있던 시뻘건 화염이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후와아앙!

푸콰아아아아!

정글과 같은 크리처 군락이 한순간에 불바다가 됐다.

끄아아아악!

끼하아아!

감염 전엔 사람이었을, 혹은 시체였던 존재들의 귀곡성이 귀청을 찢었다.

“으윽.”

“악!”

사람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도 괴로워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 고통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화륵, 화르르르.

마치 장갑차에 탑재한 대전차용 화염 방사포처럼 불길을 뿜어내는 리사를 보며, 강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짧은 시간에 정말 강해졌다.’

단지 느낌만이 아니었다.

[이름]: 리사 아즈벨.

[…]: ……….

[특성]: 원소 술사.

[등급]: Lv. 5

[강화]: 75%

[속성]: 4대 원소(화염 특화).

[전문 기술]: 원소 형질 변환.

[기본효과]: 절연막. (신규)인화점(引火點.Flash Point) 제어.

[보조 기술]: ……….

[…]:

어느새 LV.5가 됐다.

그리고 기본효과가 하나 더 추가됐다.

– 인화점 제어.

절연막과 같은 패시브 효과로, 이젠 어떤 경우라도 불을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의 화염 특화 속성이 더욱 강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전투를 거듭할수록 파괴력이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힘을 분배하는 요령이 생겼다.’

강호가 생각하기에 아주 바람직한 진화였다.

리사는 힘을 갈무리하고 돌아섰다.

자신을 빤히 보는 강호의 시선이 어쩐지 부끄러웠지만, 싫지 않았다.

그가 레이나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얹던 괘씸함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애썼다. 이제 힘을 회복하는 요령을 빨리 찾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름의 조언과 함께 살짝 떨리는 리사의 양 팔을 가만히 감싸주었다.

“……!”

리사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저만치 뒤에 있던 레이나가 입을 비쭉 내밀고 있는 게 강호의 어깨 너머로 보였다.

‘1 대 1.’

리사는 속으로 한 번 더 픽 웃었다.

“에너지 핵의 색과 형태가 조금 다른데요?”

사토시가 초토화된 바닥을 보며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였다.

지금 것은 빛을 발하는 씨앗, 그런 느낌이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바닥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푸른색 알갱이들이 마치 밤하늘 별처럼 반짝였다.

“와. 예뻐라.”

“아름다워요.”

“그러게. 은하수 보는 것 같아.”

사람들이 그 반짝임에 홀려있는 사이, 사토시가 앞으로 나섰다.

스윽.

‘아름답다고? 우리를 죽이려고 했던 괴수들의 잔재일 뿐인데, 그걸 그새 잊다니.’

뭐가 못마땅한지, 그는 사람들의 감성을 파괴하고 싶은 심술이 났다.

“가자. 울프.”

컹.

그때, 강호는 달라진 울프의 항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속성]: (신규)영혼 감지(감화). (신규)비물질 흡수.

‘응?’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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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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