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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17화. 신의 인도는 여기까지.
     
     
     
     
     
   강호는 울프의 변화에 의문이 들었다.
   성장의 개연성을 바로 조금 전에 나름대로 정리했는데, 지금 경우에는 너무 뜬금없었다.
     
   ‘뭘까.’
     
   그 사이, 사토시와 울프가 한쪽 면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하아아.
     
   그 둘은 사전에 약속한 대로 에너지 핵의 일정량을 흡수하고 무리로 돌아왔다.
   같은 방식으로 레이나와 리사, 그리고 강호가 각각 에너지 핵을 흡수했다.
     
   “인데르 박사님. 저 에너지 핵을 보통 사람이 흡수할 수 있나요?”
     
   레이나가 물었다.
   그러자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흡수 자체가 안 된다네. 오히려 생체 오염이 되거나 피부나 장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걸세.”
     
   곁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호는 인데르를 가만히 바라봤다.
     
   ‘저 사람이 알고 있는 정보들.’
     
   단지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상식과 질서를 벗어난 불확실성과 예외성 때문에 오히려 지식이 유연한 판단을 방해한다.
     
   그런데 인데르는 달랐다.
   지금까지 만나고 겪었던 어떤 박사들보다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줬다.
   마치 모든 걸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나처럼.’
     
   어쨌든, 그 덕분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일종의 역할 분담이 됐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그랬다.
   그리고 드디어 지하 1층으로 올라가는 승강장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인데르 박사님. 혹시, 재난 매뉴얼을…?”
     
   갑자기 멈춰서서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강호를 보며, 인데르가 잠깐 멈칫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아. 내가 집필진 중 한 명이네.”
     
   그 말에 일행 모두가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아아!”
   “어머.”
   “우와.”
     
   질문한 강호도 놀랐다.
     
   ‘혹시 나처럼 외운 건지 물으려던 건데, 집필자였다니.’
     
   의외의 대답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수긍 되는 말이었다.
   다만, 강호의 의문이 다 해소 된 건 아니었다.
     
   ‘아무리 집필진이라고 해도, 그 방대한 내용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더 깊이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그다지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혹시 저 같은 경우라면 공유할 수 있는 정보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긴. 상태창으로 확인한 정보를 보면 그는 온전한 인간 상태니까. 나랑은 다르겠지.’
     
   강호는 그만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마저 사람들을 인솔해 승강장에 태웠다.
     
   곧 승강장의 문이 닫히고 지하 1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이이잉.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고, 기대감과 두려움이 뒤섞여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무거운 분위기가 싫었는지, 레이나가 슬쩍 말을 꺼냈다.
     
   “와. 지금까지 중에 제일 편하게 올라가네요.”
     
   그 말에 사토시가 딴지를 걸었다.
     
   “왜요. 지하 6층이 더 편했죠. 휴머노이드 안내까지 받았는데.”
   “어, 그러네.”
     
   두 사람의 허튼소리 같은 대화가 그래도 사람들의 긴장을 조금은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드디어 지하 1층에 도착했다.
     
   띵.
   지이잉.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밖을 유심히 살피기만 할 뿐, 승강장 밖으로 발을 내딛지 못했다.
     
   “괜찮습니다. 내리셔도.”
     
   강호가 앞장서 내리며 말했고, 이후 하나둘 따라 내렸다.
     
   “와아.”
   “여긴, 멀쩡하네.”
     
   깨끗했다.
   부서지거나 상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다만, 인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도 뭔가 폭발했을까?’
     
   지하 10층에서 첫 폭발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발전 시설의 폭발이었고, 전자기장 피폭이 됐다.
   당시 발전소 쉘터만 폭파됐을 뿐, 다른 건물은 모두 온전했다.
     
   “모두 호흡기를 착용하세요.”
     
   강호는 혹시 모를 감염 등을 대비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지시가 이어졌다.
     
   “리사는 울프와 함께 대열의 중간에, 레이나는 지금까지처럼 후미를. 사토시는 은신 상태로 레이나를 호위.”
     
   그리고 앞서서 승강장 쉘터 문을 열었다.
     
   시이잉.
   텅.
     
   * * *
     
   아무것도 없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격납고 쉘터까지 오는 동안 개미 한 마리 마주치지 않았다.
     
   “지하 1층 전체가 텅 비어있을 줄이야.”
   “지상과 가까우니, 전부 대피한 게 아닐까요?”
     
   사람들의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사고가 있었다면, 시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조심스러운 생각이었다.
     
   여러 가능성을 내놓던 사람들은 급기야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설마, 격납고가 폐쇄돼 있는 거 아냐?”
     
   구우우웅.
   터엉.
     
   드디어,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출입구, 격납고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환호성 대신 비명에 가까운 경악이 끊이지 않았다.
     
   “… 아.”
   “오, 신이시여.”
   “맙소사!”
     
   격납고 중앙에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대충 봐도 온전한 사람은 없었다.
     
   잿빛 비늘이 덮인 몸뚱이.
   팔과 등에 깃털이 잔뜩 붙어있는 시체.
   마이클이라는 이름의 명찰을 단 연구원 가운을 입고 있는 개구리.
     
   “거, 거짓말.”
   “말도 안 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두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에 한 백인 남자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케, 케이트?!”
     
   그는 뭔가에 홀린 듯 주춤주춤 다가가더니, 나무처럼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선 채로 죽어있는 여자를 와락 안았다.
     
   “여보! 크흑!”
     
   그는 이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두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또는 눈을 질끈 감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 어느 때보다 참혹했다.
   이 순간만큼은 강호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러운 정적을 깨뜨린 건 인데르였다.
     
   “아무래도 사고가 아니었던 것 같네.”
     
   누구에게 한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이었다.
   하지만 강호는 알아들었다.
   리사도, 레이나도 그랬다.
   하지만 누구도 되묻지 못했다.
     
   “내가 차마 말하지 못한 게 있다네.”
     
   마치 죽음을 앞두고 고해성사라도 하듯, 인데르의 목소리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세계 종(種) 보관소.
     
   최초 설립은 북극해에 있는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제도에서였다.
   초기에는 다양한 식물 종자 등을 보관하는, 말 그대로 보관 창고였다.
   지구에 대재난이 발생해 인류가 소멸했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노아의 방주였다.
     
   그랬던 것이 인베이젼이 설립한 국제 환경 거버넌스의 투자로 최대 규모, 최첨단 연구소로 거듭나게 됐다.
   세계 각국에서 호응했기에 가능한 초대형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모두 경험했으니까요. 필요성을 절감했고, 가능성을 봤으니까 너도나도 참여한 거죠.”
     
   인데르의 설명 중에 리사가 추임새처럼 말을 받았다.
     
   “맞네. 다들 알다시피 2031년에 인류는 멸종될뻔했지. 백악기, 팔레오기의 공룡처럼.”
     
   그의 설명은 다시 이어졌다.
     
   “그런데 그걸 과학으로 극복했어. 그러니, 자네 말처럼 팔 걷어붙이고 나설 수밖에”
     
   지구 온난화로 촉발된 절대 빙하기를 과학의 힘으로 극복한 후, 사화산이 된 백두산 지하에 돈과 인력을 쏟아부어 만든 것이 지금의 세계 종 보관소였다.
     
   그때의 설립 목적은 역시 지구 재난에 대비한 연구와 대체 환경 개발이었다.
   즉, 영구적인 친환경 에너지 개발과 각종 바이러스 백신 연구가 주요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많은 것이 달라지고 변질됐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각종 이권이 개입하고 꼬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종 보관소에는 여러 나라와 세계 굴지 기업들의 리베이트가 끊이지 않았다.
   이유는, 이곳이 과학의 성역이었기 때문이다.
     
   종 보관소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배아줄기 세포 연구 하나만 해도 인간 존엄과 윤리 문제로 한 걸음 나아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종 보관소에서만큼은 그런 과학 윤리, 의학윤리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비밀리에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대표적인 예로, 생체실험도 공공연하게 자행됐다.
     
   “그중 내가 아는 건 두 가지네.”
     
   다 아는, 길었던 종 보관소의 연혁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그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이었다.
     
   “하나는 바로 자네들 같은 뮤턴트 양산 프로젝트네.”
   “박사님!”
   “네?”
     
   리사와 레이나가 동시에 소리쳤다.
   하지만 인데르는 그에 대해 별다른 설명 없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는 새로운 지구 찾기 프로젝트네.”
     
   이번엔 강호가 반응했다.
     
   “새로운 지구… 찾기?”
     
   인데르는 강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라포밍. 우리은하와 그 외 은하를 뒤지고 발굴해 열두 개 적합한 행성을 찾았다는 게 내가 확인한 마지막 정보였네.”
   “…….”
     
   강호는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변이체에 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의심하고 예상했던 범주의 이야기였다.
   그걸 밝히기 위해 이곳에 발을 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테라포밍이라니.
   게다가 실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는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강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다 연구자들이고 과학자들이다.
     
   “저, 인데르 박사님. 그게 무슨…?”
   “그렇다면, 지금까지 저층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갑자기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사토시의 목소리가 소란스러움을 한순간에 잠재웠다.
     
   “저기요! 저기, 저게 뭔가요?”
     
   사람들은 동시에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집중했다.
     
   “저, 저게…?”
   “나만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니지?”
   “착시 같기는 한데, 뭐지?”
     
   시체 더미 때문에 보지 못했던 흑염의 구체가 공중에 걸려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홀로그램처럼 핏빛 글자가 떠 있었다.
     
   [신의 인도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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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신의 인도는 여기까지.

강호는 울프의 변화에 의문이 들었다.

성장의 개연성을 바로 조금 전에 나름대로 정리했는데, 지금 경우에는 너무 뜬금없었다.

‘뭘까.’

그 사이, 사토시와 울프가 한쪽 면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하아아.

그 둘은 사전에 약속한 대로 에너지 핵의 일정량을 흡수하고 무리로 돌아왔다.

같은 방식으로 레이나와 리사, 그리고 강호가 각각 에너지 핵을 흡수했다.

“인데르 박사님. 저 에너지 핵을 보통 사람이 흡수할 수 있나요?”

레이나가 물었다.

그러자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흡수 자체가 안 된다네. 오히려 생체 오염이 되거나 피부나 장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걸세.”

곁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호는 인데르를 가만히 바라봤다.

‘저 사람이 알고 있는 정보들.’

단지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상식과 질서를 벗어난 불확실성과 예외성 때문에 오히려 지식이 유연한 판단을 방해한다.

그런데 인데르는 달랐다.

지금까지 만나고 겪었던 어떤 박사들보다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줬다.

마치 모든 걸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나처럼.’

어쨌든, 그 덕분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일종의 역할 분담이 됐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그랬다.

그리고 드디어 지하 1층으로 올라가는 승강장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인데르 박사님. 혹시, 재난 매뉴얼을…?”

갑자기 멈춰서서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강호를 보며, 인데르가 잠깐 멈칫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아. 내가 집필진 중 한 명이네.”

그 말에 일행 모두가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아아!”

“어머.”

“우와.”

질문한 강호도 놀랐다.

‘혹시 나처럼 외운 건지 물으려던 건데, 집필자였다니.’

의외의 대답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수긍 되는 말이었다.

다만, 강호의 의문이 다 해소 된 건 아니었다.

‘아무리 집필진이라고 해도, 그 방대한 내용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더 깊이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그다지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혹시 저 같은 경우라면 공유할 수 있는 정보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긴. 상태창으로 확인한 정보를 보면 그는 온전한 인간 상태니까. 나랑은 다르겠지.’

강호는 그만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마저 사람들을 인솔해 승강장에 태웠다.

곧 승강장의 문이 닫히고 지하 1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이이잉.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고, 기대감과 두려움이 뒤섞여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무거운 분위기가 싫었는지, 레이나가 슬쩍 말을 꺼냈다.

“와. 지금까지 중에 제일 편하게 올라가네요.”

그 말에 사토시가 딴지를 걸었다.

“왜요. 지하 6층이 더 편했죠. 휴머노이드 안내까지 받았는데.”

“어, 그러네.”

두 사람의 허튼소리 같은 대화가 그래도 사람들의 긴장을 조금은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드디어 지하 1층에 도착했다.

띵.

지이잉.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밖을 유심히 살피기만 할 뿐, 승강장 밖으로 발을 내딛지 못했다.

“괜찮습니다. 내리셔도.”

강호가 앞장서 내리며 말했고, 이후 하나둘 따라 내렸다.

“와아.”

“여긴, 멀쩡하네.”

깨끗했다.

부서지거나 상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다만, 인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도 뭔가 폭발했을까?’

지하 10층에서 첫 폭발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발전 시설의 폭발이었고, 전자기장 피폭이 됐다.

당시 발전소 쉘터만 폭파됐을 뿐, 다른 건물은 모두 온전했다.

“모두 호흡기를 착용하세요.”

강호는 혹시 모를 감염 등을 대비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지시가 이어졌다.

“리사는 울프와 함께 대열의 중간에, 레이나는 지금까지처럼 후미를. 사토시는 은신 상태로 레이나를 호위.”

그리고 앞서서 승강장 쉘터 문을 열었다.

시이잉.

텅.

* * *

아무것도 없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격납고 쉘터까지 오는 동안 개미 한 마리 마주치지 않았다.

“지하 1층 전체가 텅 비어있을 줄이야.”

“지상과 가까우니, 전부 대피한 게 아닐까요?”

사람들의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사고가 있었다면, 시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조심스러운 생각이었다.

여러 가능성을 내놓던 사람들은 급기야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설마, 격납고가 폐쇄돼 있는 거 아냐?”

구우우웅.

터엉.

드디어,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출입구, 격납고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환호성 대신 비명에 가까운 경악이 끊이지 않았다.

“… 아.”

“오, 신이시여.”

“맙소사!”

격납고 중앙에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대충 봐도 온전한 사람은 없었다.

잿빛 비늘이 덮인 몸뚱이.

팔과 등에 깃털이 잔뜩 붙어있는 시체.

마이클이라는 이름의 명찰을 단 연구원 가운을 입고 있는 개구리.

“거, 거짓말.”

“말도 안 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두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에 한 백인 남자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케, 케이트?!”

그는 뭔가에 홀린 듯 주춤주춤 다가가더니, 나무처럼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선 채로 죽어있는 여자를 와락 안았다.

“여보! 크흑!”

그는 이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두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또는 눈을 질끈 감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 어느 때보다 참혹했다.

이 순간만큼은 강호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러운 정적을 깨뜨린 건 인데르였다.

“아무래도 사고가 아니었던 것 같네.”

누구에게 한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이었다.

하지만 강호는 알아들었다.

리사도, 레이나도 그랬다.

하지만 누구도 되묻지 못했다.

“내가 차마 말하지 못한 게 있다네.”

마치 죽음을 앞두고 고해성사라도 하듯, 인데르의 목소리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세계 종(種) 보관소.

최초 설립은 북극해에 있는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제도에서였다.

초기에는 다양한 식물 종자 등을 보관하는, 말 그대로 보관 창고였다.

지구에 대재난이 발생해 인류가 소멸했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노아의 방주였다.

그랬던 것이 인베이젼이 설립한 국제 환경 거버넌스의 투자로 최대 규모, 최첨단 연구소로 거듭나게 됐다.

세계 각국에서 호응했기에 가능한 초대형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모두 경험했으니까요. 필요성을 절감했고, 가능성을 봤으니까 너도나도 참여한 거죠.”

인데르의 설명 중에 리사가 추임새처럼 말을 받았다.

“맞네. 다들 알다시피 2031년에 인류는 멸종될뻔했지. 백악기, 팔레오기의 공룡처럼.”

그의 설명은 다시 이어졌다.

“그런데 그걸 과학으로 극복했어. 그러니, 자네 말처럼 팔 걷어붙이고 나설 수밖에”

지구 온난화로 촉발된 절대 빙하기를 과학의 힘으로 극복한 후, 사화산이 된 백두산 지하에 돈과 인력을 쏟아부어 만든 것이 지금의 세계 종 보관소였다.

그때의 설립 목적은 역시 지구 재난에 대비한 연구와 대체 환경 개발이었다.

즉, 영구적인 친환경 에너지 개발과 각종 바이러스 백신 연구가 주요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많은 것이 달라지고 변질됐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각종 이권이 개입하고 꼬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종 보관소에는 여러 나라와 세계 굴지 기업들의 리베이트가 끊이지 않았다.

이유는, 이곳이 과학의 성역이었기 때문이다.

종 보관소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배아줄기 세포 연구 하나만 해도 인간 존엄과 윤리 문제로 한 걸음 나아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종 보관소에서만큼은 그런 과학 윤리, 의학윤리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비밀리에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대표적인 예로, 생체실험도 공공연하게 자행됐다.

“그중 내가 아는 건 두 가지네.”

다 아는, 길었던 종 보관소의 연혁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그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이었다.

“하나는 바로 자네들 같은 뮤턴트 양산 프로젝트네.”

“박사님!”

“네?”

리사와 레이나가 동시에 소리쳤다.

하지만 인데르는 그에 대해 별다른 설명 없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는 새로운 지구 찾기 프로젝트네.”

이번엔 강호가 반응했다.

“새로운 지구… 찾기?”

인데르는 강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라포밍. 우리은하와 그 외 은하를 뒤지고 발굴해 열두 개 적합한 행성을 찾았다는 게 내가 확인한 마지막 정보였네.”

“…….”

강호는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변이체에 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의심하고 예상했던 범주의 이야기였다.

그걸 밝히기 위해 이곳에 발을 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테라포밍이라니.

게다가 실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는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강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다 연구자들이고 과학자들이다.

“저, 인데르 박사님. 그게 무슨…?”

“그렇다면, 지금까지 저층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갑자기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사토시의 목소리가 소란스러움을 한순간에 잠재웠다.

“저기요! 저기, 저게 뭔가요?”

사람들은 동시에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집중했다.

“저, 저게…?”

“나만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니지?”

“착시 같기는 한데, 뭐지?”

시체 더미 때문에 보지 못했던 흑염의 구체가 공중에 걸려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홀로그램처럼 핏빛 글자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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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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