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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22화. 절대 공포.
     
     
     
     
     
     
     
     
   강호 일행의 반응을 본 인데르는 마을 중앙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음을 알았다.
     
   “왜 그러나?”
   “뭔가 강력한 힘이 느껴져서요.”
     
   레이나의 말에 리사가 설명을 조금 더 덧붙였다.
     
   “단순히 강하기만 한 느낌이 아니에요. 이런 존재감은 처음 느껴봐요.”
     
   잔뜩 굳은 레이나의 표정과 한기를 느끼듯 잘게 떠는 리사를 보며, 인데르는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들이 벌써 차원문을 넘어온 거라면, 이들만으로는 막기 힘들 텐데….’
     
   차마 강호 일행에게는 말해주지 못한 것이 바로 격의 차이였다.
   사실 그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들은 바가 있었다.
     
   인데르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는 중에도 강호의 고민은 계속됐다.
   가까이 가 볼 것인가, 이대로 돌아갈 것인가.
   판단이 쉽지 않았다.
     
   ‘돌아간다고 하면,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그런데 그때, 조금 멀기는 했지만,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생존자의 모습이 일행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
     
   아파트 공동현관을 나와 비틀거리듯 겨우 몸을 가누며 마을 중앙으로 걷는 사람들이었다.
   강호는 그 불안한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겨우 결정했다.
     
   “모두 여기에 있어. 내가 살펴보고 올 테니.”
     
   하지만 그러란다고 가만히 있을 동료들이 아니었다.
     
   “같이 가요.”
   “혼자는 위험해요.”
   “그럼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두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사토시를 돌아봤다.
     
   힉.
     
   사토시가 흠칫하며 얼른 말을 바꿨다.
     
   “저, 저도 가겠스므니다!”
     
   강호도 두 번 만류하지는 않았다.
   다만, 인데르가 문제였다.
     
   ‘괜찮을까?’
     
   자신을 바라보는 강호의 눈빛에서 그런 걱정을 읽었는지, 인데르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나 혼자 여기 남아있는 것보단 그래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그의 말에 강호도 픽 웃었다.
     
   “그러시죠.”
     
   강호와 일행은 사람들의 힘없는 걸음걸이에 맞춰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 보니 열려있는 거실 창으로 아파트 1층 세대 안쪽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안이 다 뒤집혀 엉망인 광경이었다.
   마치 도둑이라도 들었거나, 아니면 급하게 짐을 싸다만 느낌이었다.
   한 집만 그런 게 아니었다.
     
   ‘대피를 위한 흔적 같은데.’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위험을 느꼈단 얘기다.
   추측과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텅 빈 도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척도 없이 숨죽여 있던 이들이 왜 지금 저렇게 나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의문이 깊어질수록 두려움이 됐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가장 먼저 사토시가 이상을 감지했다.
     
   “피 냄샙니다.”
     
   그 말에 모두가 걸음을 멈췄다.
   멀리 아파트 중앙 공원에 분수대가 보였다.
   그곳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뭐 하는 걸까요?”
     
   레이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리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저….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 아니, 존재….”
     
   말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리사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다들 이해했다.
     
   ‘저거다. 감각을 어지럽히는 존재.’
     
   상대를 인식하는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꿀꺽.
     
   누군가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역시나 감각을 어지럽히는 목소리가 귓가를, 아니, 뒤통수 어디쯤을 울렸다.
     
   [바퀴벌레처럼 참 많기도 하구나. 하찮은 필멸자들이.]
     
   전율.
   아니, 공포.
     
   거친 어떤 감각이 피부로 스며들어 심장을 옥죄었다.
   그리고 강호는 존재의 이름을 알았다.
     
   “리치.”
     
   어째서 처음 보는 존재를 알고 있는 건지, 당장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위험하다고, 도망치라고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이 마비라도 된 것 같다.’
     
   사실은 몸이 아닌 마음이 얼어버린 걸 알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는 사이, 다시 한번 음성이 살갗을 쓸었다.
     
   [존재하려거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거라. 그러면 나를 추앙할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그 말과 함께, 아니, 그게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의미와 함께 기괴한 소리가 일대를 퍼져나갔다.
     
   스하아아아아.
   키히이이.
     
   이번에도 강호는 그 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밴시.”
     
   정신이라도 놓은 것 같은 연이은 강호의 혼잣말과 함께 모여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익.
   푹.
   푸우욱.
   썩.
     
   실로 끔찍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서로를 찌르고 쓰러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비명이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정신 지배!’
     
   강호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존재의 이름도 그렇고, 어떻게 현상에 대해서까지 아는 건지 알았다.
     
   [재난 매뉴얼 동기화 제한 해제]
   [이전 패치(Ver.3) 적용.]
   [이종족 도감 열람 확인]
   […]: ……
   [코드명]: 언데드.
   [종류]: 리치.
   [기본 효과]: 정신 지배.
   […]: ……
   [종류]: 밴시.
   [기본 효과]: 공포. 심력 마비.
   […]: ……
     
   상태창에 주르륵 스쳐 지나가는 내용들과 함께 쥐어짠 듯한 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 막아야, 막아야 해요.”
     
   그녀도 조금 전의 강호와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몽롱한 상태를 인식한 강호는 뒤늦게 인데르가 걱정돼 돌아봤다.
     
   “난, 괜찮네.”
     
   심한 두통이라도 앓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정신이 온전하단 걸 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강호는 고개를 돌려 다시 끔찍한 살육의 순간을 바라봤다.
   피가 튀고 있었다.
   낭자한 선혈 위로 사람들이 쓰러져갔다.
     
   그걸 보고만 있는 자신이 너무도 아팠다.
   인질이 죽어가는 걸 보고도 그저 명령을 기다려야만 했던 과거의 경험과도 같았다.
   그건, 괴로움이었다.
     
   막아야 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미 많은 수의 사람이 죽어있는 걸 그제야 봤다.
     
   – 바퀴벌레처럼 참 많기도 하구나.
     
   리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됐다.’
     
   인식과 함께 덜덜 떨리는 제 손이 보였다.
   결박이라도 된 것처럼 내디뎌지지 않는 다리가 보였다.
   그런 강호 옆에서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레이나가 보였다.
     
   그 순간, 강호는 깨달았다.
     
   ‘절대 공포.’
     
   지금의 자신은 대항할 수 없음을.
     
   [너희의 찢어진 육신도, 피로 붉게 물든 대지도 실로 아름답구나.]
     
   끄크크크크.
     
   웃음소린지 로브가 바닥을 끄는 소린지, 리치가 일렁거리듯 천천히 돌아섰다.
   그러고는 스르륵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구나. 흐으음. 산 자의 숨결이 느껴져.]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중력의 몇백 배나 되는 것 같던 억눌림도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그의 존재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광경은 계속됐다.
     
   크르르르르.
   끄하아아.
     
   조금 전까지 서로를 찌르고 베고 죽어갔던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고오오오.
     
   생각보다 수가 많았다.
   마을 중앙이 죽은 자들로 빼곡해졌다.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금세 짙어지며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그들이 딛고 선 땅이 검게 물들었다.
   강호는 이번에도 그 현상을 알아봤다.
     
   ‘언데드의 땅, 블라이트.’
     
   아주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되살아난 자들의 움직임이 그랬고, 강호의 감각이 그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시간이 흘렀다.
     
   사아아아.
     
   리치에 의해 죽고, 그의 명령으로 다시 일어선 자들이 그가 사라진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호와 일행은 여전히 같은 상태로 그 거짓말 같은 장면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죽은 자의 행렬은 마치, 레퀴엠처럼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행렬 맨 뒤에 있던 죽은 자 하나가 스윽 뒤를 돌아봤다.
   강호와, 리사와, 레이나와, 사토시와 눈이 마주쳤다.
     
   “……!”
     
   이미 굳은 몸이 더 바짝 굳는 것 같았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본 건가? 어쩌지?’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강호였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좀비 같은 언데드 하나가 문제가 아니었다.
     
   ‘리치, 지금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아.’
     
   스하아아아.
     
   볼살이 다 찢어져 너덜너덜한 턱이 크게 벌어졌다가 닫혔다.
   그리곤 다시 행렬을 따라 몸을 돌려 가버렸다.
     
   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하아, 아아아, 흐윽!”
     
   털썩.
     
   리사가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울음을 토했다.
   그리고 뒤이어 레이나도 두 무릎을 바닥에 차례대로 꿇었다.
     
   툭.
   쿠욱.
     
   리사와 다른 게 있다면, 울음 대신 욕설을 내질렀다는 정도.
     
   “쉣, 뻑!”
     
   강호도 자신이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걸 인식하고서야 숨이 거칠게 토해졌다.
     
   하아아!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온몸에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어지럽던 머리가 조금 차분해지고서야 뒤를 돌아봤다.
     
   “탈진한 것 같습니다.”
     
   사토시가 인데르를 부축하고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궁금증도 일었다.
     
   ‘어떻게 버틴 걸까.’
     
   하지만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다들 힘들겠지만, 빠르게 이동한다. 다음 마을로.”
     
   리치가 움직인 곳.
   그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그가 말했다.
   산 자들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대항할 힘이 없다면, 그 전에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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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절대 공포.

강호 일행의 반응을 본 인데르는 마을 중앙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음을 알았다.

“왜 그러나?”

“뭔가 강력한 힘이 느껴져서요.”

레이나의 말에 리사가 설명을 조금 더 덧붙였다.

“단순히 강하기만 한 느낌이 아니에요. 이런 존재감은 처음 느껴봐요.”

잔뜩 굳은 레이나의 표정과 한기를 느끼듯 잘게 떠는 리사를 보며, 인데르는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들이 벌써 차원문을 넘어온 거라면, 이들만으로는 막기 힘들 텐데….’

차마 강호 일행에게는 말해주지 못한 것이 바로 격의 차이였다.

사실 그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들은 바가 있었다.

인데르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는 중에도 강호의 고민은 계속됐다.

가까이 가 볼 것인가, 이대로 돌아갈 것인가.

판단이 쉽지 않았다.

‘돌아간다고 하면,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그런데 그때, 조금 멀기는 했지만,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생존자의 모습이 일행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

아파트 공동현관을 나와 비틀거리듯 겨우 몸을 가누며 마을 중앙으로 걷는 사람들이었다.

강호는 그 불안한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겨우 결정했다.

“모두 여기에 있어. 내가 살펴보고 올 테니.”

하지만 그러란다고 가만히 있을 동료들이 아니었다.

“같이 가요.”

“혼자는 위험해요.”

“그럼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두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사토시를 돌아봤다.

힉.

사토시가 흠칫하며 얼른 말을 바꿨다.

“저, 저도 가겠스므니다!”

강호도 두 번 만류하지는 않았다.

다만, 인데르가 문제였다.

‘괜찮을까?’

자신을 바라보는 강호의 눈빛에서 그런 걱정을 읽었는지, 인데르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나 혼자 여기 남아있는 것보단 그래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그의 말에 강호도 픽 웃었다.

“그러시죠.”

강호와 일행은 사람들의 힘없는 걸음걸이에 맞춰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 보니 열려있는 거실 창으로 아파트 1층 세대 안쪽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안이 다 뒤집혀 엉망인 광경이었다.

마치 도둑이라도 들었거나, 아니면 급하게 짐을 싸다만 느낌이었다.

한 집만 그런 게 아니었다.

‘대피를 위한 흔적 같은데.’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위험을 느꼈단 얘기다.

추측과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텅 빈 도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척도 없이 숨죽여 있던 이들이 왜 지금 저렇게 나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의문이 깊어질수록 두려움이 됐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가장 먼저 사토시가 이상을 감지했다.

“피 냄샙니다.”

그 말에 모두가 걸음을 멈췄다.

멀리 아파트 중앙 공원에 분수대가 보였다.

그곳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뭐 하는 걸까요?”

레이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리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저….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 아니, 존재….”

말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리사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다들 이해했다.

‘저거다. 감각을 어지럽히는 존재.’

상대를 인식하는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꿀꺽.

누군가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역시나 감각을 어지럽히는 목소리가 귓가를, 아니, 뒤통수 어디쯤을 울렸다.

[바퀴벌레처럼 참 많기도 하구나. 하찮은 필멸자들이.]

전율.

아니, 공포.

거친 어떤 감각이 피부로 스며들어 심장을 옥죄었다.

그리고 강호는 존재의 이름을 알았다.

“리치.”

어째서 처음 보는 존재를 알고 있는 건지, 당장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위험하다고, 도망치라고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이 마비라도 된 것 같다.’

사실은 몸이 아닌 마음이 얼어버린 걸 알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는 사이, 다시 한번 음성이 살갗을 쓸었다.

[존재하려거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거라. 그러면 나를 추앙할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그 말과 함께, 아니, 그게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의미와 함께 기괴한 소리가 일대를 퍼져나갔다.

스하아아아아.

키히이이.

이번에도 강호는 그 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밴시.”

정신이라도 놓은 것 같은 연이은 강호의 혼잣말과 함께 모여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익.

푹.

푸우욱.

썩.

실로 끔찍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서로를 찌르고 쓰러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비명이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정신 지배!’

강호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존재의 이름도 그렇고, 어떻게 현상에 대해서까지 아는 건지 알았다.

[재난 매뉴얼 동기화 제한 해제]

[이전 패치(Ver.3) 적용.]

[이종족 도감 열람 확인]

[…]: ……

[코드명]: 언데드.

[종류]: 리치.

[기본 효과]: 정신 지배.

[…]: ……

[종류]: 밴시.

[기본 효과]: 공포. 심력 마비.

[…]: ……

상태창에 주르륵 스쳐 지나가는 내용들과 함께 쥐어짠 듯한 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 막아야, 막아야 해요.”

그녀도 조금 전의 강호와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몽롱한 상태를 인식한 강호는 뒤늦게 인데르가 걱정돼 돌아봤다.

“난, 괜찮네.”

심한 두통이라도 앓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정신이 온전하단 걸 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강호는 고개를 돌려 다시 끔찍한 살육의 순간을 바라봤다.

피가 튀고 있었다.

낭자한 선혈 위로 사람들이 쓰러져갔다.

그걸 보고만 있는 자신이 너무도 아팠다.

인질이 죽어가는 걸 보고도 그저 명령을 기다려야만 했던 과거의 경험과도 같았다.

그건, 괴로움이었다.

막아야 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미 많은 수의 사람이 죽어있는 걸 그제야 봤다.

– 바퀴벌레처럼 참 많기도 하구나.

리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됐다.’

인식과 함께 덜덜 떨리는 제 손이 보였다.

결박이라도 된 것처럼 내디뎌지지 않는 다리가 보였다.

그런 강호 옆에서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레이나가 보였다.

그 순간, 강호는 깨달았다.

‘절대 공포.’

지금의 자신은 대항할 수 없음을.

[너희의 찢어진 육신도, 피로 붉게 물든 대지도 실로 아름답구나.]

끄크크크크.

웃음소린지 로브가 바닥을 끄는 소린지, 리치가 일렁거리듯 천천히 돌아섰다.

그러고는 스르륵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구나. 흐으음. 산 자의 숨결이 느껴져.]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중력의 몇백 배나 되는 것 같던 억눌림도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그의 존재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광경은 계속됐다.

크르르르르.

끄하아아.

조금 전까지 서로를 찌르고 베고 죽어갔던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고오오오.

생각보다 수가 많았다.

마을 중앙이 죽은 자들로 빼곡해졌다.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금세 짙어지며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그들이 딛고 선 땅이 검게 물들었다.

강호는 이번에도 그 현상을 알아봤다.

‘언데드의 땅, 블라이트.’

아주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되살아난 자들의 움직임이 그랬고, 강호의 감각이 그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시간이 흘렀다.

사아아아.

리치에 의해 죽고, 그의 명령으로 다시 일어선 자들이 그가 사라진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호와 일행은 여전히 같은 상태로 그 거짓말 같은 장면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죽은 자의 행렬은 마치, 레퀴엠처럼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행렬 맨 뒤에 있던 죽은 자 하나가 스윽 뒤를 돌아봤다.

강호와, 리사와, 레이나와, 사토시와 눈이 마주쳤다.

“……!”

이미 굳은 몸이 더 바짝 굳는 것 같았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본 건가? 어쩌지?’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강호였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좀비 같은 언데드 하나가 문제가 아니었다.

‘리치, 지금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아.’

스하아아아.

볼살이 다 찢어져 너덜너덜한 턱이 크게 벌어졌다가 닫혔다.

그리곤 다시 행렬을 따라 몸을 돌려 가버렸다.

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하아, 아아아, 흐윽!”

털썩.

리사가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울음을 토했다.

그리고 뒤이어 레이나도 두 무릎을 바닥에 차례대로 꿇었다.

툭.

쿠욱.

리사와 다른 게 있다면, 울음 대신 욕설을 내질렀다는 정도.

“쉣, 뻑!”

강호도 자신이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걸 인식하고서야 숨이 거칠게 토해졌다.

하아아!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온몸에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어지럽던 머리가 조금 차분해지고서야 뒤를 돌아봤다.

“탈진한 것 같습니다.”

사토시가 인데르를 부축하고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궁금증도 일었다.

‘어떻게 버틴 걸까.’

하지만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다들 힘들겠지만, 빠르게 이동한다. 다음 마을로.”

리치가 움직인 곳.

그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그가 말했다.

산 자들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대항할 힘이 없다면, 그 전에 막아야 한다.’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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