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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25화. 두 가집니다.
     
     
     
     
     
     
     
   강호는 특별한 공격 없이 계속 방어막을 생성해 스스로 덧씌웠다.
     
   파직.
   휘잉.
     
   움직이는 반경도 최소로 하며 작은 원을 그리듯 빙빙 돌았다.
     
   크하악.
   쉭.
   꽈앙.
     
   예상대로 좀비형 언데드 무리는 강호에게 달라붙었고, 공격력 또한 지하에서 겪었던 좀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지능이 있으니, 진형을 갖춰 몰이도 하고, 기동력을 무력화하려고 방법도 찾는구나.’
     
   물론 그사이 많이 강해진 강호에게 좀비는 더 이상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별다른 위기 없이 계획대로 좀비 무리를 전부 자신에게 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빙빙 돌면서 시간을 끄는 동안 그들의 수가 꽤 줄어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살상력이 훌륭하다.’
     
   사토시는 은신 상태를 유지한 채로 공격도 할 수 있었다.
   그의 닌자 특성 중 ‘암습’ 때문이었다.
   대신 공격력이나 파괴력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기척을 숨기는 데 집중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그동안은 그랬다.
     
   [전문 기술]: 은신, 투척술. (신규)급소 참격.
     
   그의 전문 기술에 새롭게 추가된 급소 참격 때문인지, 이제는 소위 말하는 ‘원샷 원킬’이 됐다.
   덕분에 민첩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그가 이종족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능력치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즉, 새 기술이 특성인 암습과 찰떡궁합이 되어 딜러로서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슥.
   푹.
   털썩.
     
   정말 소리 없는 일격으로 하나씩 쓰러져갔다.
     
   ‘이 정도면 암살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는데.’
     
   최종적으로 강호를 포위한 언데드의 수는 절반 가까이가 줄어 20마리가 채 되지 않았다.
     
   강호는 움직임을 멈췄다.
   살짝 웅크린 자세로 적의 공격을 받아내기만 하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전격 방출. 썬더-퀘이크.”
     
   마법사가 주문을 영창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내뱉으면서도 오글거렸다.
   하지만 그건 사토시에게 신호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파츠츠츠.
   카징.
     
   한순간 강호의 몸 주위를 두르고 있던 방전 보호막이 훅 사라지고 대신 전류가 강한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그 세기가 빠르게 증폭되더니 딛고선 다리를 통해서 지면으로 일순간 쏟아져 나갔다.
     
   츠카카카캇.
     
   그리고 괴성이 터졌다.
     
   끄하아악!
   끼하아아앙!
     
   좀비들이 전부 고개를 쳐들고 만세를 부르듯 팔을 쭉 뻗고는 사지를 쉼 없이 떨어대기 시작했다.
     
   파직.
   크츠츠츠츠.
     
   약간의 기마자세였던 강호가 짧게 숨을 토해내고 바로 섰다.
     
   후우.
     
   그러자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사토시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스르륵.
     
   강호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고, 사토시도 마주 인사했다.
   어쩐지 그의 표정에서 약간의 흥분과 고양감이 느껴졌다.
     
   ‘좋은 경험이 됐길.’
     
   강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현장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사이, 사토시가 발로 바닥의 검은 흙을 흩으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 바닥의 흙에서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느낌도 좋지 않고요.”
     
   강호는 사토시를 돌아보며 대꾸했다.
     
   “아, 미리 말하지 못했군. 이곳이 죽은 자의 땅이기 때문이야.”
   “네? 죽은 자의 땅? 그런 게 있습니까?”
   “언데드가 발을 딛는 자리, 그곳이 곧 죽은 자의 땅이다. 블라이트라고 부르더군.”
     
   사실 강호도 이번에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물론 재난 매뉴얼에서 본 내용이었다.
     
   [블라이트]: 피를 먹은 채로 산화되어 검붉게 변색 된, 죽은 자의 원한이 깃든 저주받은 땅.
   언데드가 흘리는 죽음의 기운에 오염돼 생성되는 확산형 한정 지역(Area).
   [특징]: 생명력을 흡수한다. 식물이라면 시들고, 새가 앉으면 말라 죽는다. 흡수한 생명력은 범위를 넓히는 데 쓰인다.
     
   “으으, 빨리 말씀해 주시지. 내 생명력!”
     
   설명을 듣고 난 뒤, 사토시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허우적거리듯 검은 땅 위를 벗어났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을 보며 강호가 픽 웃었다.
     
   ‘전투에 임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야.’
     
     
   이후 두 사람은 공사 현장 같던 그곳을 전부 파괴해 버렸다.
   터를 파놓은 곳은 주변의 흙으로 메우고, 세워진 나무 기둥은 불태워버렸다.
   모아놓은 돌무더기도 전부 멀찌감치로 날려버렸다.
     
   “와, 전자기장이 무거운 짐 나르는 데도 쓰이는 힘이군요?”
     
   강호가 초전도력을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일 처리를 하는 걸 본 사토시가 놀라워했다.
   과학적 기초 지식이 부족한 편인 그이기에 가능한 일차원적인 감탄이었다.
     
   ‘아닌가. 제가 일하지 않아 좋아서 나름의 너스레를 떠는 걸지도.’
     
   강호는 자신이 정리한 곳을 둘러보며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그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었다.
   언데드를 못 본 척 그냥 두고 복귀하는 것과 그들을 처치하고 현장을 파괴하는 것.
     
   그중 후자를 선택한 이유는 리치 때문이었다.
   그의 시선을 잠깐 뒤로 잡아두기 위한 일종의 도발인 샘이었다.
     
   ‘내 의도대로 되어 준다면 좋겠는데.’
     
   * * *
     
   강호와 사토시는 순찰을 마치고 복귀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리사와 레이나가 깨어있었다.
     
   ‘숙취가 걱정될 정도였는데, 벌써 깼다고?’
     
   심지어 너무 멀쩡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강호의 의문을 느끼기라도 한 듯, 레이나가 묻지도 않은 걸 말했다.
     
   “강호씨는 이능력이 생긴 후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죠?”
   “음, 아마도.”
   “마셔보면 알 거예요.”
     
   레이나의 알 듯 말 듯한 말 뒤로 리사의 말이 보태졌다.
     
   “알콜 성분이 금방 분해돼 버리더라고요. 나도, 레이나도.”
   “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냥 이해됐다.
     
   강호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순찰 중 목격하고 겪었던 일을 그들에게 설명했다.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리사였다.
     
   “리치가 사람들을 계속 언데드로 만들면서 이동한 이유가, 결국 일꾼이 필요해서?”
   “꼭 그게 이유의 전부가 아니더라도, 겸사겸사 그럴 수 있겠네요.”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인데르는 굳은 표정으로 듣기만 하고 있었다.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호가 묻자 겨우 입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군. 차원문이 열리고 고작 한 달, 그런데 벌써 거점을 준비하다니.”
     
   역시 관련한 지식이나 정보가 있기에 할 수 있는 우려였다.
   그래서 더 그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지금 그들의 행보가 빠른 편인가요?”
   “난 그렇게 생각하네.”
     
   그는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수년 전, 미국 나사(NASA)가 해체된 직접적인 이유가 됐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화성 기지가 완전히 파괴되고, 그곳에 있던 연구진과 이주민 전부가 사라진 일이다.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해체했지만, 실은 연구와 탐사 등 기존의 업무는 계속하고 있다네.”
   “정말요?! 와, 감쪽같이 속았네요.”
     
   리사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놀랐다.
   레이나도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이었다.
     
   “자네는 알고 있었겠지.”
   “네.”
     
   인데르의 말마따나, 강호는 재난 매뉴얼의 새로운 버전이 업데이트되면서 해당 내용을 알았다.
   새 버전에는 세계 각국 주요 기관이나 단체 등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연대 할 수 있는 힘을 모으고 조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
     
   나중 일이지만 강호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인데르의 설명은 계속됐다.
     
   “비공식적인 자료를 본 적이 있네. 대외비의 내부 보고였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발표된 것과 달리 사실은 그곳에 소규모의 차원문이 생겼다네.”
   “…….!”
     
   이 얘기는 강호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귀를 쫑긋 세웠다.
     
   “습격이 있었고, 나사는 그것이 우연한 사고가 아닌 계획된 침략이라고 결론을 내렸더군.”
     
   충분한 조사 끝에 이루어진 판단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강호는 궁금한 걸 물었다.
     
   “언데드였습니까?”
     
   인데르는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보고서에 그 내용까지는 없었네만, 이후 관측되는 화성의 표면이 더는 붉은 색이 아닌 걸 보면….”
   “아, 회색, 아니, 검은색이에요!”
     
   레이나가 놀라 목소리가 높아졌다.
   본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강호를 비롯한 모두의 머릿속에는 죽은 자의 땅, 블라이트가 떠올라 있었다.
     
   잠깐의 정적 뒤로 인데르가 이어 말했다.
     
   “내가 그 사건을 예로 든 것은…”
     
   침략의 목적이 단순한 약탈이 아닌, 화성 자체를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작정하고 습격해 화성을 차지했음에도, 아직 그곳을 거점화 하지 않았다는 게 인데르의 설명이었다.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이던가.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한 달 만에 거점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하니, 어쩐지 걱정되는군.”
   “…….”
     
   강호는 잠시 침묵했다.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떠올려 볼 수 있는 가능성, 혹은 경우의 수가 확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잠깐 생각에 몰두한 그에게 인데르가 물었다.
     
   “자넨 무얼 생각하는 건가?”
     
   모두 강호를 바라봤다.
   궁금증과 기대감이 그들의 시선에 깃들어 있었다.
     
   후우.
     
   짧게 한숨을 토한 강호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두 가집니다.”
     
   하나는 당장 급한 목표였다.
   리치보다 먼저 큰 도시로 가 대량의 학살을 막는 것.
   무고한 시민이 학살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죽음이 곧 침략자들의 세력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장기적인 목표로, 아군 세력의 결집과 확장이었다.
     
   “전에 언뜻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 다섯으로는 저들을 막는 데 역부족입니다. 게다가 열려있는 차원문이 무려 일곱 개.”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쪽도 거점을 확보하고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이능력자들을 찾아 동료를 늘리고 조직화해야 한다는 복안이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을 압니다. 하지만 해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강호의 말에 인데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토시는 뭔가 경외감이 느껴지는 눈으로 강호를 보고 있었다.
     
   “강호씨, 제가 도울게요. 뭐든 필요한 걸 시키세요.”
     
   레이나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리사도 강호를 보는 시선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하지만 들뜨는 대신 차분히 마음을 보태며 응원을 대신했다.
     
   “그래요. 우린 아직 세상이 왜 이렇게 황폐화된 건지도 정확히 몰라요. 하나씩 해나가자고요.”
     
   강호는 그들의 시선에서, 목소리에서 따뜻한 격려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동료 아니던가. 이젠 당신들이 내 전우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다음 날 일정을 꺼내는 것으로 분위기를 정리했다.
     
   
   “자, 내일은 평양에 도착하게 될 거다. 지금까지처럼,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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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두 가집니다.

강호는 특별한 공격 없이 계속 방어막을 생성해 스스로 덧씌웠다.

파직.

휘잉.

움직이는 반경도 최소로 하며 작은 원을 그리듯 빙빙 돌았다.

크하악.

쉭.

꽈앙.

예상대로 좀비형 언데드 무리는 강호에게 달라붙었고, 공격력 또한 지하에서 겪었던 좀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지능이 있으니, 진형을 갖춰 몰이도 하고, 기동력을 무력화하려고 방법도 찾는구나.’

물론 그사이 많이 강해진 강호에게 좀비는 더 이상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별다른 위기 없이 계획대로 좀비 무리를 전부 자신에게 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빙빙 돌면서 시간을 끄는 동안 그들의 수가 꽤 줄어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살상력이 훌륭하다.’

사토시는 은신 상태를 유지한 채로 공격도 할 수 있었다.

그의 닌자 특성 중 ‘암습’ 때문이었다.

대신 공격력이나 파괴력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기척을 숨기는 데 집중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그동안은 그랬다.

[전문 기술]: 은신, 투척술. (신규)급소 참격.

그의 전문 기술에 새롭게 추가된 급소 참격 때문인지, 이제는 소위 말하는 ‘원샷 원킬’이 됐다.

덕분에 민첩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그가 이종족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능력치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즉, 새 기술이 특성인 암습과 찰떡궁합이 되어 딜러로서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슥.

푹.

털썩.

정말 소리 없는 일격으로 하나씩 쓰러져갔다.

‘이 정도면 암살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는데.’

최종적으로 강호를 포위한 언데드의 수는 절반 가까이가 줄어 20마리가 채 되지 않았다.

강호는 움직임을 멈췄다.

살짝 웅크린 자세로 적의 공격을 받아내기만 하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전격 방출. 썬더-퀘이크.”

마법사가 주문을 영창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내뱉으면서도 오글거렸다.

하지만 그건 사토시에게 신호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파츠츠츠.

카징.

한순간 강호의 몸 주위를 두르고 있던 방전 보호막이 훅 사라지고 대신 전류가 강한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그 세기가 빠르게 증폭되더니 딛고선 다리를 통해서 지면으로 일순간 쏟아져 나갔다.

츠카카카캇.

그리고 괴성이 터졌다.

끄하아악!

끼하아아앙!

좀비들이 전부 고개를 쳐들고 만세를 부르듯 팔을 쭉 뻗고는 사지를 쉼 없이 떨어대기 시작했다.

파직.

크츠츠츠츠.

약간의 기마자세였던 강호가 짧게 숨을 토해내고 바로 섰다.

후우.

그러자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사토시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스르륵.

강호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고, 사토시도 마주 인사했다.

어쩐지 그의 표정에서 약간의 흥분과 고양감이 느껴졌다.

‘좋은 경험이 됐길.’

강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현장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사이, 사토시가 발로 바닥의 검은 흙을 흩으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 바닥의 흙에서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느낌도 좋지 않고요.”

강호는 사토시를 돌아보며 대꾸했다.

“아, 미리 말하지 못했군. 이곳이 죽은 자의 땅이기 때문이야.”

“네? 죽은 자의 땅? 그런 게 있습니까?”

“언데드가 발을 딛는 자리, 그곳이 곧 죽은 자의 땅이다. 블라이트라고 부르더군.”

사실 강호도 이번에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물론 재난 매뉴얼에서 본 내용이었다.

[블라이트]: 피를 먹은 채로 산화되어 검붉게 변색 된, 죽은 자의 원한이 깃든 저주받은 땅.

언데드가 흘리는 죽음의 기운에 오염돼 생성되는 확산형 한정 지역(Area).

[특징]: 생명력을 흡수한다. 식물이라면 시들고, 새가 앉으면 말라 죽는다. 흡수한 생명력은 범위를 넓히는 데 쓰인다.

“으으, 빨리 말씀해 주시지. 내 생명력!”

설명을 듣고 난 뒤, 사토시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허우적거리듯 검은 땅 위를 벗어났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을 보며 강호가 픽 웃었다.

‘전투에 임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야.’

이후 두 사람은 공사 현장 같던 그곳을 전부 파괴해 버렸다.

터를 파놓은 곳은 주변의 흙으로 메우고, 세워진 나무 기둥은 불태워버렸다.

모아놓은 돌무더기도 전부 멀찌감치로 날려버렸다.

“와, 전자기장이 무거운 짐 나르는 데도 쓰이는 힘이군요?”

강호가 초전도력을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일 처리를 하는 걸 본 사토시가 놀라워했다.

과학적 기초 지식이 부족한 편인 그이기에 가능한 일차원적인 감탄이었다.

‘아닌가. 제가 일하지 않아 좋아서 나름의 너스레를 떠는 걸지도.’

강호는 자신이 정리한 곳을 둘러보며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그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었다.

언데드를 못 본 척 그냥 두고 복귀하는 것과 그들을 처치하고 현장을 파괴하는 것.

그중 후자를 선택한 이유는 리치 때문이었다.

그의 시선을 잠깐 뒤로 잡아두기 위한 일종의 도발인 샘이었다.

‘내 의도대로 되어 준다면 좋겠는데.’

* * *

강호와 사토시는 순찰을 마치고 복귀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리사와 레이나가 깨어있었다.

‘숙취가 걱정될 정도였는데, 벌써 깼다고?’

심지어 너무 멀쩡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강호의 의문을 느끼기라도 한 듯, 레이나가 묻지도 않은 걸 말했다.

“강호씨는 이능력이 생긴 후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죠?”

“음, 아마도.”

“마셔보면 알 거예요.”

레이나의 알 듯 말 듯한 말 뒤로 리사의 말이 보태졌다.

“알콜 성분이 금방 분해돼 버리더라고요. 나도, 레이나도.”

“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냥 이해됐다.

강호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순찰 중 목격하고 겪었던 일을 그들에게 설명했다.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리사였다.

“리치가 사람들을 계속 언데드로 만들면서 이동한 이유가, 결국 일꾼이 필요해서?”

“꼭 그게 이유의 전부가 아니더라도, 겸사겸사 그럴 수 있겠네요.”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인데르는 굳은 표정으로 듣기만 하고 있었다.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호가 묻자 겨우 입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군. 차원문이 열리고 고작 한 달, 그런데 벌써 거점을 준비하다니.”

역시 관련한 지식이나 정보가 있기에 할 수 있는 우려였다.

그래서 더 그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지금 그들의 행보가 빠른 편인가요?”

“난 그렇게 생각하네.”

그는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수년 전, 미국 나사(NASA)가 해체된 직접적인 이유가 됐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화성 기지가 완전히 파괴되고, 그곳에 있던 연구진과 이주민 전부가 사라진 일이다.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해체했지만, 실은 연구와 탐사 등 기존의 업무는 계속하고 있다네.”

“정말요?! 와, 감쪽같이 속았네요.”

리사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놀랐다.

레이나도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이었다.

“자네는 알고 있었겠지.”

“네.”

인데르의 말마따나, 강호는 재난 매뉴얼의 새로운 버전이 업데이트되면서 해당 내용을 알았다.

새 버전에는 세계 각국 주요 기관이나 단체 등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연대 할 수 있는 힘을 모으고 조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

나중 일이지만 강호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인데르의 설명은 계속됐다.

“비공식적인 자료를 본 적이 있네. 대외비의 내부 보고였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발표된 것과 달리 사실은 그곳에 소규모의 차원문이 생겼다네.”

“…….!”

이 얘기는 강호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귀를 쫑긋 세웠다.

“습격이 있었고, 나사는 그것이 우연한 사고가 아닌 계획된 침략이라고 결론을 내렸더군.”

충분한 조사 끝에 이루어진 판단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강호는 궁금한 걸 물었다.

“언데드였습니까?”

인데르는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보고서에 그 내용까지는 없었네만, 이후 관측되는 화성의 표면이 더는 붉은 색이 아닌 걸 보면….”

“아, 회색, 아니, 검은색이에요!”

레이나가 놀라 목소리가 높아졌다.

본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강호를 비롯한 모두의 머릿속에는 죽은 자의 땅, 블라이트가 떠올라 있었다.

잠깐의 정적 뒤로 인데르가 이어 말했다.

“내가 그 사건을 예로 든 것은…”

침략의 목적이 단순한 약탈이 아닌, 화성 자체를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작정하고 습격해 화성을 차지했음에도, 아직 그곳을 거점화 하지 않았다는 게 인데르의 설명이었다.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이던가.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한 달 만에 거점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하니, 어쩐지 걱정되는군.”

“…….”

강호는 잠시 침묵했다.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떠올려 볼 수 있는 가능성, 혹은 경우의 수가 확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잠깐 생각에 몰두한 그에게 인데르가 물었다.

“자넨 무얼 생각하는 건가?”

모두 강호를 바라봤다.

궁금증과 기대감이 그들의 시선에 깃들어 있었다.

후우.

짧게 한숨을 토한 강호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두 가집니다.”

하나는 당장 급한 목표였다.

리치보다 먼저 큰 도시로 가 대량의 학살을 막는 것.

무고한 시민이 학살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죽음이 곧 침략자들의 세력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장기적인 목표로, 아군 세력의 결집과 확장이었다.

“전에 언뜻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 다섯으로는 저들을 막는 데 역부족입니다. 게다가 열려있는 차원문이 무려 일곱 개.”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쪽도 거점을 확보하고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이능력자들을 찾아 동료를 늘리고 조직화해야 한다는 복안이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을 압니다. 하지만 해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강호의 말에 인데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토시는 뭔가 경외감이 느껴지는 눈으로 강호를 보고 있었다.

“강호씨, 제가 도울게요. 뭐든 필요한 걸 시키세요.”

레이나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리사도 강호를 보는 시선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하지만 들뜨는 대신 차분히 마음을 보태며 응원을 대신했다.

“그래요. 우린 아직 세상이 왜 이렇게 황폐화된 건지도 정확히 몰라요. 하나씩 해나가자고요.”

강호는 그들의 시선에서, 목소리에서 따뜻한 격려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동료 아니던가. 이젠 당신들이 내 전우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다음 날 일정을 꺼내는 것으로 분위기를 정리했다.

“자, 내일은 평양에 도착하게 될 거다. 지금까지처럼, 잘 부탁한다.”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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