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

슈퍼에고 온라인에는 숙련도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무언가를 다루거나 연구하면 그것이 속한 범주의 역량과 스탯이 오르는, 여러 RPG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

특이한 점이라면 유저의 편의성을 중시한 것인지. 한 손 검을 쓰든, 양손 검을 쓰든 검 하나로 퉁친다는 것.

그래서 대검의 버서커가 쌍검 닌자로 돌변하는 일이 은근 자주 벌어지곤 했다. 특히 길드전에서 랭커들이 양학할 때 자주 애용하는 컨셉이었지.

‘막상 쓰는 스킬은 거의 똑같았지만.’

아무튼, 여기서 더 나아가 이 게임만의 특색이라고 하면 역시 ‘성과’를 빼놓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숙련도가 오르는 과정에서 모종의 성과를 거두면 그 상승 폭이 대거 증가하는 기믹. 흔히들 말하는 영감 비슷한 거다.

근데 이게 어쩌다 한 번 반짝이는 정도로는 폭발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암만 자유도가 높다지만, 어디까지나 키보드로 한정된 조작을 하는 게임이란 한계를 어쩔 수가 없어서.

다들 뜨면 좋고, 아니면 그만인. 사실상 없는 기능 취급을 해왔다.

그러나 한 가지. 의도적으로 ‘성과’를 터뜨릴 수 있는 부류가 있으니.

서걱-

[‘농기구’의 숙련도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14 ▶︎ 15]

그것은 바로 농기구.

검술은 자세가 더 정확해진다거나, 마법은 어떠한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이런 추상적인 영역에 기대야 하는 반면.

수확은 농작물이라고 하는 분명한 결과물이 있다. 심지어 이건 눈에도 보인다.

그러면 다른 걸로 몬스터를 잡아도 매한가지 아니냐 할 수도 있겠는데. 그것과는 맥락이 다르다.

성과의 평가 기준은 그것의 ‘지향점’. 거기에 한 발짝 더 다가갔는가를 따진다.

검을 아무리 휘둘러봤자 되레 잘못된 습관을 굳히면, 마법 수련이랍시고 백날천날 파이어볼만 날리고 앉았으면. 숙련도는 오를지언정, 성과가 있겠느냔 말이다.

그에 반해, 농기구는? 그딴 거 없다.

트리플 악셀로 씨를 뿌리건, 경운기로 관성 드리프트를 조지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농사는 그냥 생산량만 많으면 장땡이다.

[‘농기구’의 숙련도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15 ▶ 16]

‘빠르긴 진짜 엄청 빠르네.’

그렇담 이 버그나 다름없는 걸. 나를 포함해서 랭커들이 왜 건들지를 않았는가.

고점이 낮기 때문이다.

게임인 이상 언젠가는 한계점에 도달하기 마련. 비교가 불가능한 성장 속도는, 비교가 불가능한 성능 차이로써 돌려받았다.

꼼수 발견했다고 신나서 해보다가, 배우는 스킬과 종결템 꼬라지 보고 당시에 실시간으로 절규하던 놈들 반응이 어찌나 맛깔나던지.

그리고 나는 이런 부분을.

[종족 특성 – 허수아비]

[‘농업’에 관한 모든 행동에 50% 보정을 받습니다.]

이걸로 커버해 볼 생각이다.

설명에는 어디까지나 농업이라고 적혀 있지만, 낫을 휘두르는 행동 자체를 거기에 포함시켜 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제작에 특화된 드워프도 망치로 공격하면 추가 데미지가 더해졌듯이.

애초에 혼자 크려면 선택지가 당장에 이거 뿐이기도 하다. 이 꼴로 남한테 찾아가서 배우기도 애매한 노릇이고.

뭐, 농민 봉기도 엄연히 농업의 일환이지 않을까?

[‘농기구’의 숙련도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16 ▶ 17]

그새 또 올라간 숙련도 레벨에 힘입어. 베는 즉시 금세 다시 돋아나는 광활한 황금빛 지대를 전체적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은 시자쿠마우르 변방에 위치한 밀밭으로. 원래는 일일퀘스트를 수행하는 장소다.

으레 게임이 그렇듯, 밀을 벤다고 해서 화면상으론 딱히 줄어든 티가 나지 않고 그랬던 게. 여기선 이런 식으로 반영된 모양.

덕분에 다음 추수일을 기약할 필요 없이, 마음 놓고 숙련도작을 하는 게 가능했다

‘정말로. 너무나도 여유롭게 말이야.’

시선에는 어느덧 경계가 서렸다. 쥐 새끼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 이유에서였다.

말했다시피 이 밀밭은 일일퀘스트 장소. 여기서 밀 10개를 얻어다가 NPC에게 갖다줘야 한다.

그런데 내가 농기구 숙련도를 몇 차례고 올릴 동안, 유저는 나타나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일일퀘스트라는 게 매일 랜덤하게 배정되는 거고, 귀찮아서 안 하는 사람을 감안한들. 서버별 하루 유동 인구가 최소 수천은 될 터.

설마 세계적으로 잘 나가던 게임이 하루아침에 망해버렸을 리는 없고. 여기가 단순 게임 속에 불과한 게 아니라, 별개의 비슷한 세계라는 추론이 타당할 듯싶었다.

‘어쩐지 퀘스트 받는 NPC도 없더라니만.’

이걸로 냅다 사냥당할 걸 감수하고 도움을 청해본다는 선택지는 아예 배제당했다.

온갖 분탕의 리스크를 고려하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게다가 별개의 세상이라는 건. 게임에선 습득 불가였던 스킬이나 장비를 얻을 가능성이 열렸단 게 된다.

즉 내 예상이 맞다면 게임의 지식을 바탕으로 챙길 이득은 챙기면서, 역설적으로 게임이 아니기에 생기는 이점까지 누리는. 이론상 최적의 상황인 셈.

[‘농기구’의 숙련도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17 ▶ 18]

막막했던 향후 진로가 얼추 정해지니 낫질에도 활기가 붙었다. 과거 게임을 갓 시작했을 시절의 두근거림이 되살아난 기분.

허수아비라서의 영향인지 배고프지도, 지치지도 않으면서. 스펙업의 기쁨만이 남아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 * *

농기구 숙련도를 최고 레벨인 50을 달성하고. 곧장 사냥에 돌입했다.

가장 기초적인 사냥터인 이곳의 몹 평균 레벨은 7 언저리. 배경 스토리 보고 나서 5렙에 투입되는 캐릭터들에겐 딱 알맞는 장소라고 할 수 있겠다.

그에 비교해서 연줄이라곤 없는 허수아비인 나는 레벨 1에. 마땅한 장비나 스킬도 갖추지 못한 채 맨몸으로 들이박아야 하는 실정.

여기서 만반의 준비와 허수아비의 특성이 빛을 발했다.

크르륵-

시자쿠마우르 뒷산의 대표 몹 중 하나. 잿빛 늑대가 이를 드러내어 으르렁댔다.

놈은 이미 상처를 입은 상태. 몬스터들은 먼저 공격당하기 전까지는 나를 적으로 인식하지를 못했다.

같은 몬스터라서 그런 거겠지. 덕택에 기습 걱정에서 벗어나 확정 선빵까지 보장받았다.

갸오오-!!

기회를 엿보던 잿빛 늑대가 마침내 달려들었다.

빈틈투성이라 판단해서겠지만, 그건 이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륵-?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발톱에 낫을 걸어, 힘을 역이용해 바닥에 내리꽂았다.

쿠웅-!

몸길이가 족히 2미터는 될 법한 덩치가 맥아리 없이 나자빠진다.

포기를 모르는 녀석은 재빠르게 아가리를 앞세워보지만. 도리어 입천장을 꿰뚫려 깨갱일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숙련도 만렙의 재간. 게임으로 할 땐 왜 방어력이나 회피 스탯까지 오르는 건가 했는데, 몸소 체험해 보니 납득이 간다.

[허수아비류 – 모내기]

콰앙-!!

마무리는 임의로 만들어 본 스킬로 지었다.

모내기 자세를 모티브 삼아, 상대방을 붙잡고 그대로 땅에 내리꽂는 격투 계열 스킬.

체내에 감도는 마나의 흐름에 익숙해지니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재현하는 게 얼추 가능해지더라.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끝내기 기술만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인 사냥 패턴이었다.

“방랑사신님- 거기 계십니까??”

‘이크. 스킬 소리가 들렸나 보네.’

장갑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음에 후회했다. 빙의되고 나서의 첫 골칫거리였다.

목소리의 정체는 보나 마나 마을 이장.

최대한 사람을 피한다고 피했건만. 눈앞에서 몬스터한테 공격당하는 것까지 외면할 순 없어서 구해줬다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나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구경을 오고, 위험에 처하고, 내가 구해준다는 웃기지도 않는 악순환을 거쳐. 어느샌가 방랑사신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마을 단위로 추종하게 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저 양반은 가장 열성적인 1호 팬 되시겠다.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한편으로는 고맙긴 한데. 정체가 탄로 날까 걱정되는 나로선 제발 좀 안 왔으면 좋겠다.

“기다려주십시오, 방랑사신님-!!”

평소처럼 자리를 피하려다가. 유독 간절한 목소리에 일단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정수리가 휑해서는. 머리카락 몇 가닥이 땀에 짓눌린 채 중앙을 침범하여 부산스럽고, 육중한 몸에 산을 올라 숨을 헉헉대는 게. 안쓰러운 아저씨의 표본 그 자체.

그런데도 견적 상 도망치면 따라올 기세다. 잃기만 할 추격전을 벌일 바에는 빠르게 만족시키고 돌려보내는 게 서로 편하지.

“허억···. 허억···.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방랑사신님.”

“···뭔데.”

목 밑까지 차오르는 한숨을 참아내고서 용건을 물었다.

지난번처럼 마을 명물 황금 사과라도 드셔보시라고 온 거면 이번 기회에 접근 못 하게끔 경고하는 본보기로 세울 테다.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희 마을을 습격하는 참새를 토벌해 주십시오···!”

일단은 오케이. 저 부실한 머리카락은 살려주기로 하자.

“참새?”

“어제부터 마수화한 참새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서는,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참새가 그러는 경우는 또 처음이네.’

평범한 짐승의 마수화나 몬스터의 돌연변이 원인은 크게 두 케이스다.

광신도의 실험. 아니면 농도 짙은 마나가 담긴 무언가와의 접촉.

광신도들 짓이면 굳이 이 시골까지 내려와서, 그것도 하필이면 참새에다 그랬을 리는 없으니 패스.

이장이 내가 알던 인물과는 다른 것도 그렇고, 게임이랑 약간씩은 다른 거 같기는 한데. 관련 퀘스트에서도 레벨 좀 되는 애들만 건드린 거 보면 아마 아닐 거다.

그나마 말이 되는 쪽은 참새가 뭘 잘못 주워 먹었다는 시나리오.

“하지만 이 근방에는 마땅한 매개체가 없을 텐데?”

설마 어떤 미친놈이 이상한 거 반입해 와서 참새 먹이로라도 줬나?

“그것이···아무래도 저주받은 밀밭의 밀을 먹은 것 같습니다.”

“저주받은 밀밭?”

“대지에 가공할 양의 마나를 품어, 베어도 베어도 끝없이 바로 자라나는 밀밭입니다.”

“어···음···.”

“확인된 바로는 누군가 그곳의 밀을 대량으로 베어냈고, 이를 방치하여. 참새가 그것을 먹고 마수화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그리 사료됩니다.”

“···안 벤 거는 안 먹어?”

“그렇습니다. 거두지 않은 상태론 짙어도 너무 짙은지라.”

씨발 그 어떤 미친놈이 나였다고?

진짜 이딴 설정은 난생처음 듣는다. 아니 유저들한테서 밀 수급한 NPC 그놈은 대체 정체가 뭔데 그럼?

“···그래. 내가 처리할게. 밀들은 다 처분했어?”

“양이 하도 많았습니다만···마을 전체가 거들어서 어떻게든 해결했습니다.”

지금은 달려있지도 않은 심장이 콕콕 쑤셔지는 느낌이었다.

그치만···나도 몰랐다고. 내가 처리하기엔 인벤 칸이 한참 모자랐단 말이야···.

“잘했네···가능하면 마탑에 연락해서 밭 자체를 없애도록 해. 그럴 여건이 안 돼서 여태 방치한 거겠지만.”

“예에···.”

아무것도 모르는 이장이 고개 숙여 무안함을 표했다. 자기 과실이라면서 자책하는 중이겠지, 이거.

“···안내해 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실대로 말할 용기는 없지만, 적어도 싼 똥은 직접 치울 정도의 양심은 탑재했다.

좋게 생각하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니만큼, 예상치 못한 보상이 따를 수도 있는 거니까.

이장을 안내역으로 세워 괴물 참새가 자주 목격된다는 장소로 움직였다.

“저 녀석인가 보네.”

5분이 채 안 걸렸을 즈음. 수풀을 마저 거두기도 전에 비대한 갈색 덩어리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참새를 동그랗게 부풀려다가, 거기서 크기를 키워놓으면 딱 저렇겠다. 마수화의 전형적인 특징.

“그보다, 아까부터 신경 쓰인 건데. 그 망치는 뭐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진 않을까 해서요···하하.”

“됐으니까 떨어져 있어.”

“방랑사신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무운을 빌겠습니다.”

이장은 대략적인 전황은 보일 법한 위치까지로만 거리를 벌렸다.

지켜볼 작정인가. 보니까 레벨도 그리 높지 않고, 자기 눈으로 직접 경과를 파악하는 건 중요하니 그 정돈 내버려두기로 했다.

타앗-

괴물 참새를 향해 내달렸다. 놈은 그러거나 말거나 일절 무관심.

주변 몬스터보다는 그래도 레벨이 높던데, 적의를 기준으로 사리 분별할 급은 안 되는 듯하다. 단숨에 끝내자.

캉-!

목 부근으로 낫을 찔러넣었다. 그러나 살갗을 뚫지 못하는 걸 넘어, 아예 튕겨져 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뭐야, 왜 이렇게 단단해···?’

재액-?

참새가 이쪽을 바라봤다.

종이 다른데도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라는 걸 알겠다.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뭐지. 나, 떨고 있나? 지금 저 참새를 상대로 무서워하고 있는 거야···?’

이건, 기억에 익은 감각이다.

골목길에서 웬 덩치 큰 형들이 나를 불러세웠을 때. 기세에서부터 눌려, 뭔가를 당하기도 전에 두려움에 떠는. 그런.

‘스탯은 분명 내가 앞설 텐데? 그런데 어째서···??’

[※︎유전자에 각인된 공포※︎]

[허수아비는 참새를 상대로 무력해집니다.]

뭣?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렸을 때 참새는 영어로 jack이라는 농담을 실제로 믿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잭 스패로우 선장은 저한테 있어 참새 참새였다죠. 참으로 정답지 않은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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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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