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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현재 확인된 참새의 수는 다섯 마리. 걔들을 사냥하고, 그 사체까지 처리하는 게 의뢰 내용이야.”

관심을 다른 데로 두고자. 일 얘기를 꺼내며 화제를 돌렸다.

어린애들은 흥미가 생기는 만큼이나, 식는 속도도 빠른 법이니까.

기왕이면 시야에서 사라지는 쪽이 효과적이었겠지만. 안내역을 맡을 인물이 마땅찮았다.

“응. 그건 마리아도 확인했어.”

그건 잘 알겠고, 내 현 관심사는 순전히 너라고 말하는 표정과 반응. 나를 향해 대각선으로 치켜든 고개는 줄곧 고정인 상태다.

미소녀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나날을 꿈꿔왔기는 한데. 애 나이도 나이고, 생사가 걸린 문제라 영 씁쓸하기만 했다.

‘인형술사라고 했지···.’

얼굴이 뚫릴 듯한 시선을 감내해 가며 마리아를 드문드문 살폈다.

보라색 단발머리. 눈에 띄는 장비 없이 밋밋한 복장에, 머리색과 깔맞춤한 로브. 솔직히 A급 모험가라기 보다는 코스프레한 여자아이 같다.

하지만 여러 게임을 섭렵한 나는 안다. 오히려 저런, 인형을 안고 있으니 인형술사라고 호소하는 듯한 겉모습이야말로 강함의 상징.

그리고 그만큼 수준이 높다는 건, 이미 내 정체를 거즘 확신했다고 쳐도 이상할 게 없다는 거였다. 허수아비는 ‘인형’이라는 키워드에 아슬아슬하게 걸칠 테니까.

“오빠는 이름이 뭐야. 혹시 방랑사신이 본명?”

‘오빠···라.’

일단 마음속 가산점은 1점 추가. 애가 참 예의가 바르네.

어른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를 아주 잘 꿰고 있다.

“오빠는 아이라고 해.”

“마리아는 마리아. 8살. 인형 좋아해.”

잘 꿰는 정도가 아니라. 영악하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말을 특히 강조하는 것이, 의도가 다분히 노골적이다.

이건 단순히 떠보는 건지. 아니면 다 알면서 갖고 노는 건지.

나긋나긋하고 감정 변화가 적은 얼굴은 읽어보려는 시도조차 허무하게 만들었다.

“잘 부탁해.”

“미안···지금 손이 많이 더러워서.”

뒤이어 악수를 청하는 손길에는 바람맞힐 수밖에 없었다.

장갑은 악력이 있다 뿐이지, 속은 텅 비었으니.

“어쩐지. 냄새나.”

미안하다. 이 레벨에 물가에라도 들어갔다간 썩은 나무가 되고 말 거야.

마리아가 코를 꾹 부여잡은 채 장난스레 이쪽을 째려보았다.

‘그래도 어떻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거에는 성공한 것 같네.’

이후로도 우리는 여러 잡담을 나누었다.

타인과 다시는 맘 편히 얘기할 수 없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서. 의외로 제법 즐거웠던 거 같다.

* * *

이장으로부터 보고받은 예상 출몰 포인트, 우리는 그 세 번째에서 참새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 맡길게.”

“응.”

마리아를 앞세우고 뒤로 빠졌다.

도와주겠답시고 공산주의라도 켰다간 저 참새 전부를 마리아 스펙으로 끌어올리는 꼴이 될 거다.

‘그렇다고 애 혼자 싸움판으로 내보내는 건 좀 거부감이 들긴 하네···.’

익숙해져야 할 상황이었다.

이 바닥은 나이로 수준을 가늠하는 게 불가능한 세계. 실력만 된다면 어린애도 기사단장을 하는 곳이니까.

“새는, 싫어.”

그 사이 마리아가 인형을 전개했다.

꼭두각시 다섯. 딱 상대 머릿수에 맞춘 모습이다.

‘그렇게 됐으니. 어디 실력 구경이나 해볼까.’

나무에 적당히 기대 자리를 잡았다.

A급 모험가는 우리 서버 기준 평균적으로 대략 2~300위대의 하위권 랭커 수준.

그래픽이 아닌 실물로, 랭커급의 전투를 볼 기회였다.

짹-!!

선공은 참새 무리.

다섯 마리의 참새가 일제히, 나도 겪은 바 있는 U자 자유 낙하를 선보였다.

패턴을 이미 전해 들은 마리아는 가볍게 피하며. 동시에 인형들의 위치를 조정하여 각 1대1의 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보기 좋게 걸려들어. 참새들은 입력이라도 된 듯 각자 최단 거리의 인형에게로 향했다.

부웅-

그중 한 인형. 머리도 옷도 온통 하얀 소녀가, 자기 몸보다도 거대한 망치를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콰앙-!!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직격당한 참새는 그대로 요절. 투수가 아니라 타자한테 터진 최초의 새가 되었다.

‘역시 A급 모험가. 땅바닥에서들 놀았으면 진즉에 끝났겠어.’

기세가 등등해진 마리아는 여유로이 다음을 기다렸다. 단순 계산으론 똑같이 네 번만 더 반복하면 됐다.

그렇게 숨죽이길 1분, 2분.

길어져만 가는 대치 시간에 전투는 묘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참새들이, 내려오질 않아.’

동료가 한 방에 먼저 간 놈 상봉하러 간 탓일까.

공중에서 서로 빙빙 돌기만 하고, 내려올 기미들이 안 보였다. 먹잇감이 지쳐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처럼.

여기에 마리아의 무대응이 지금의 전황을 유지시켰다.

‘대응 방법이 따로 없는 건가?’

하얀 망치 소녀 이외의 인형 구성을 쭉 훑었다.

입에서 독가스를 뿌리는 곱추, 손에서 불을 뿜는 노인, 갑옷으로 꽁꽁 싸맨 양손 방패 탱커, 사도류 사무라이.

확실히 원거리형은 딱히 없는 모양새다.

‘A급 승단 시험은 정직하게 파괴력으로 승부 본 타입인 건가.’

이대로라면 참새들이 도망치거나, 마리아가 먼저 지쳐 포기하거나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매한가지.

기회야 다시 노리면 되지만. 그러기 전까지 마을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마리아는 A급 모험가로서의 자존심을 구기게 되겠지.

어린 인형술사의 몸으로, 차츰 분함의 감정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붙으면, 내려오기만 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 것들을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놓치면 나라도 분하겠다.

“마리아, 인형은 그게 다야?”

가만히 지켜만 볼 수가 없었다. 여긴 경험 많은 어른이 나설 차례.

마리아는 울먹이기 직전이었다. 아무리 강하고, 의젓해도. 결국 애는 애다.

“특별한 인형은 저게 전부···. 근데 평범한 인형은 100개 있어. 다 꺼낼까···?”

“아니, 넣어둬. 그랬다간 저것들 진짜로 도망쳐버릴 거야.”

인형 100개를 무슨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꺼내 먹어도 되냐는 투로 묻는구나.

이러니까 일부 상황에선 아예 답이 없는데도 A급을 달았지. 개인이서 기사단 중대급 전투력은 나오지 않을까.

“일단 저 망치를, 못 맞춰도 되니까 참새들한테 날려.”

“응? 그렇게 하면···”

“맞추면 한 마리 잡는 거고. 빗나가면 무기를 잃은 저 인형은 무방비 상태가 되겠지.”

“으음···아.”

저의를 알아챈 마리아가 순간 눈을 번뜩였다. 편차가 워낙 작아서 그렇지, 기분도 살짝 업 돼 보였다.

“바로 해볼게.”

부웅- 망치가 허공을 날랐다.

인형 중에서도 망치녀를 가장 주시하고 있던 참새들은 이를 가볍게 피해내고선. 노골적으로 눈길을 한 곳에 집중했다.

빈손이 된 하얀 소녀.

“저쪽으로 보내. 쟤만 도망치는 것처럼.”

“응.”

슈퍼에고 온라인의 몬스터들은 간혹 스탯 차이가 너무 심하면 도망을 우선하는 기믹이 존재한다.

어느 레벨대에 하든 상관없는 퀘스트, 얼추 지성을 갖춘 개체들한테서 주로 볼 수 있는 현상.

의도는 추격과 사냥의 재미였겠지만. 게이머들에게 있어선 클리어를 방해하는 한낱 귀찮은 요소일 뿐.

그리하여 고안된 대처법이 바로 장비 탈착을 통한 스탯 내려치기다.

재잭-!!

잭-!!

재액-!!

째액-!!

무기와 무리를 잃은 인형에게 달려드는 네 참새.

게임으로 할 때는 허술한 꼼수라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 또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돌아서, 지금!”

거리가 코앞까지 다다랐을 때. 인형의 태세를 바꿔 기습 라이트 훅.

망치를 뭐로 휘둘렀는지를 고려하지 못한 참새가 또 한 마리 세상을 하직했다.

남은 건 셋. 그중에 복서로 돌변한 망치녀가 둘의 부리를 잡아 붙들었다.

잭-??

재잭-?!!

째액-!!!

정말 애가 탔다는 걸 입증하려는 듯. 거의 틈을 주지 않고 자르고 녹이는 마무리가 이어졌다.

최후의 하나. 그 위에는 내가 올라탔다. 바로 다시 이러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마리아, 망치를 이쪽으로!”

날아오르는 반동을 한 손으로 견뎌내며. 손을 위로 뻗었다.

뭘 원하는지를 파악한 마리아가 곧장 인형을 통해 망치를 불러들였다.

저 멀리서 되돌아오는 망치를, 참새는 아래로 피해냈고. 녀석에게 있어선 그것이 최악의 선택이었다.

[공산주의]

[주변 모든 존재의 스탯이 동일해집니다.]

[일시적으로 ‘해머’의 숙련도가 ‘농기구’의 숙련도를 공유합니다.]

[장비 고유 스킬:‘천지무용’을 일시적으로 습득하였습니다.]

“이걸로 마석 하나는 내 거다!”

[천지무용]

쿠과와아앙-

공중에서 그대로 몸을 회전해 참새의 등허리를 내리쳤다. 하늘과 땅을 뒤집을 기세의 굉음이 숲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이는 시자쿠마우르에까지 퍼져 듣지 못한 이가 없었으매. 그날을 ‘개벽의 날’이라 부르며 기념하였다고 한다.

“와아···.”

A급 모험가 소녀의 진심 어린 감탄은 오락실에 구경꾼을 줄 세우던 어릴 적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다른 것보다도, 이게 최근 들어 제일 기뻤던 거 같다.

* * *

사체까지 말끔하게 소각하고. 순찰을 돌아 추가적인 문제가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사태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사냥 루틴도 정상 궤도로 복귀하였다.

사실 원래 같았으면 이미 졸업하고 다음 사냥터로 가고도 남았을 레벨이지만.

[아이] Lv. 34 – 튜토리얼 허수아비

[HP:935]

[MP:170]

[STR:34]

[VIT:75]

지금의 나는 플레이어일 때와 달리 전직시켜 줄 전직관이 없다. 즉 별도의 전직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러기 전까지는 깡 스탯으로 냅다 메꿔야 하는 것.

무엇보다 외부로 나가면 본격적으로 타인과 접촉해야 하기에. 효율이 살짝 떨어질지언정 당분간은 여기서 좀 더 신세를 져야만 했다.

“···음?”

샤샥-

경손실을 매꾸기 위해 열심히 노가다하던 중.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가 나무 뒤로 숨었다.

빼꼼-

아니, 이제는 고개를 슬쩍 내밀고서 대놓고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다.

나오기 전에도 머리카락은 튀어나와 있긴 했다만.

(빠안~히)

감시자의 정체는 보라 머리 소녀, 마리아.

압도, 랑은 조금 결이 다르게. 묘하게 움직임을 봉하는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저럴 거면 아까는 왜 숨은 건지.

(빠안~히)

“···.”

뭘까, 이 시추에이션. 할 말이라도 있으면 시원하게 해줬으면 한다.

아니 그보다, 쟤는 왜 안 돌아가고 여깄는 건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래서 작가야 튜토리얼 허수아비 이거 언제부터 재밌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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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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