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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일점을 향해 몰려드는 인형 무리를 점프로 피해내고, 머리나 등을 밟으며 포위진의 바깥을 향해 달렸다.

인형을 다 부수니 어쩌니 했지만. 마법사, 특히 소환수를 부리는 이들과의 전투는 본체를 노리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

마구 간지럽히든가 해서 빠르게 무력화시키는 게 이상적이었다.

우르르르-!!

그리고 이걸 마리아라고 해서 모를 리가.

인형이 서로를 받치고 쌓아,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다.

‘무슨 좀비도 아니고···!’

쉽게 보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벽으로써 형상화된 것만 같다.

주춤하며 물러서려고 하면, 지나쳤던 후발주자들이 이미 뒤를 잡은 형세.

‘어쩔 수 없지.’

인형의 파도로 몸을 던졌다.

[허수아비류 – 물레방아(開) 범람하는 물결]

파앙-! 콰과과과-!!

하늘을 가렸던 인형들이 한꺼번에 반대쪽으로 곤두박질쳤다. 물 흐르는 듯한 그 과정은, 정녕 파도라 할 만했다.

그렇게 넘어간 인형들은 형태를 이루고자 엮었던 팔다리가 부러졌고. 깔린 쪽 역시 그닥 무사하지는 못했다.

“후우, 어때? 지금 항복하고 애교부리면 겨드랑이랑 발바닥은 안 간지럽힐게.”

다시 뻥 뚫린 시야.

만난 이래 어쩌면 처음 정면으로 마주한 소녀는 놀란 듯 보였다. 그러나, 이내 미소 지었다.

‘그렇다는 건···’

척-

우리 사이로 특수 개체 네 기가 당도했다. 하얀 망치 소녀를 제외한 전원 출격.

“아직 안 끝났어.”

순간 설마 싶었지만, 마리아가 엄포를 놓았다. 이 승부,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고.

‘이렇게까지 한다 이거지···?’

망치녀라도 안 써주는 게 다행일까.

아무래도 다른 인형들과 달리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라 일부러 배제한 모양이다. 거 참 기특하기도 하지.

“마리아, 분명 다칠 일은 없게 할 거라고···”

“응. 최대한 조심할 거야. 안심해.”

저기요 마리아 씨. 곱추 양반 입에서 떨어진 산성액에 땅바닥이 그대로 녹고 있는데 말이죠.

“이거랑 이거 받아. 독이랑 불 면역제.“

“···고맙다.”

뻘쭘하게 면역제들을 건네받았다. 표정이라도 읽혔는지, 마리아가 철두철미한 건지.

속성 공격으로 패려는 사람이 거기에 맞는 면역제를 미리 던져주는 건 또 신선한 경험이다.

이는 곧 ‘너의 로브를 벗겨 먹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 그 굳은 의지에는 작게 감탄마저 나왔다.

‘···고맙긴 한데.’

나 이거 못 마신다.

입도 없고, 인벤토리는 보관만 되지 더블 클릭을 해도 사용하겠냐는 창은 안 떴다.

[‘화염’에 면역이 생겼습니다. (지속시간:10분)]

[‘독’에 면역이 생겼습니다. (지속시간:10분)]

“···?”

어쩌지도 못한 채 얼타고 있으니 답답했는지, 마리아가 아예 버프 마법을 걸어왔다.

“그런 뻔한 수작 안 통해.”

아무래도 ‘면역제를 안 마시고 버팅기면 마리아도 공격 못 하겠지’, 이런 의도로 보였나 보다.

애가 좀 심통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마시라고 준 걸 몸에 뿌려라도 보는 불상사는 피했다.

A급 모험가라도 내성이 아니라 면역을, 그것도 둘이나 겸비한 건 흔치 않은데.

화아아아-

면역도 생겼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다는 듯. 노인의 양손에서 뿜어진 불길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자유자재로 꺾이고, 서로의 빈틈을 상호 보완하는 것이. 흡사 두 마리의 용을 상대하는 기분이다. 그것도 직접 맞설 수조차 없는 용.

불똥만 튀어도 로브가 타들어 가니 움직임도, 이동 경로도 제한적. 그런 식으로 몰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정한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상대가 땅에만 붙어있으면 재앙이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그게 내가 될 줄이야···.”

포위망의 위로는 산성비가, 퇴로 루트들에서는 각각 갑옷 덩치와 사무라이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 망설임 끝에 기다리는 것은 확정적 패배.

본능이 가리킨 방향은 탱커 루트였다. 녀석은 다른 거 다 포기한, 전형적인 방어 올인캐. 수단 자체가 적을 터다.

끼이이-···

실제로 굼떴다. 학창 시절 언제나 골키퍼 담당이었던 아이의 모습, 딱 그 꼴이다.

그러나 상대하는 입장에선 고려해 줄 사항이 아니었기에.

둘이 맞물려 타오르는 불길과, 이에 아울러 녹아내리는 산성액을 뒤로 하고. 등 위에 올라타 갑옷의 틈새로 장갑을 밀어 넣었다.

[허수아비류 – 씨뿌리기]

팡- 파바바방-

참새 때와 마찬가지로. 안으로 침투한 씨앗들이 나약한 내부를 차근차근 파괴해 나갔다.

갑옷을 벗지도 못하고, 몸부림치던 탱커는 이내 중심을 잃고 고꾸라졌다. 일단 하나. 망치녀를 제외한다 치면 셋 남았다.

‘이걸로 똑같은 전술은 못 써먹을 거고.’

시야를 넓혀 전체적인 상황을 살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성싶은 건 곱추. 그는 굽은 자세에서 허리를 더 낮춰, 지면에 산성액을 쏟다시피 하며 주변을 빙 돌았다.

‘이건 설마.’

캉-!

심상치 않음에 자리를 벗어나려는 걸, 사무라이가 저지하고 나섰다.

상대하지 않고 우회하려거든 노인의 불길이. 활로가 열렸다 싶으면 그 너머론 산성액이 장악한 원의 가장자리였다.

“아까 산성비를 뿌린 건, 여기까지 내다본 수였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늪을 피해 발을 디딜 곳의 중심부에서 불길이 일 뿐이었다.

나를 붙들어 놓음으로써 역할을 다한 사무라이를 시원하게 장작으로 써버리며.

늪 건너 맞은편, 싱긋 미소 짓는 마리아가 보였다. 어디 빠져나올 테면 빠져나와 보라는 투.

“브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완벽하게 궁지로 몰아넣어졌다.

뒤에선 실시간으로 화재가 번지는 중이지, 늪 너비도 아슬아슬하게 못 뛰어넘을 거리.

‘이것도 어쩔 수 없이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빠지게끔 유도하는 철저한 설계겠지···.’

면역제라도 먼저 주지 않았더라면 나를 아주 골로 보내려 작정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주지 않았더라면.

풍덩-!

“···어?”

독 늪 안으로 순순히 몸을 맡겼다.

산성액의 출렁임 사이로 마리아의 힘 빠진 목소리가 섞여 들었다.

[‘허름한 로브’를 장착 해제하였습니다.]

이 싸움의 승패는 언뜻 보기에 ‘로브’에 달린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해선 아니다.

관건은 내 정체를 마리아에게 들켰는가. 즉, 들키지만 않는다면 로브를 벗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 이거다.

“오, 오빠···! 곧 있으면 면역 시간 끝나. 어서 나와···!!”

완전히 태세가 전환된 마리아에 이번에는 내가 싱긋 웃었다. 저런 무기력한 톤으로 어쩜 저리 다급함이 묻어나는지.

아마 자포자기 심정으로 뛰어들었다고 여겨서 저러는 걸 거다.

푸와아-!

유난스럽게 늪에서 빠져나오며 재빨리 로브를 다시 장착했다.

원래는 좀 더 경과를 지켜볼까 했는데, 진짜 울 거 같아서 뜸 들일 수가 있나.

“어, 어?”

웃다가, 울다가. 이제는 로브까지 멀쩡히 가지고 올라온 나 때문에 인지부조화가 온 마리아.

면역인 상태에서 해당 속성에 노출되면 그건 평범한 물 내지 공기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변모한다. 물론 정화가 되고 그런 경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순간적인 착탈의만 가능하면 이런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 그런 판단이 설 법도 한데.

“어떻, 게?”

많이 당황한 걸 감안해도 A급 모험가가 저런 반응이라면, 분명하겠지.

이 세상 사람들한텐 인벤토리를 비롯한 유저 편의 기능이 없다.

[허수아비류 – 수확]

파삭-

이 중요한 사실은 인형 하나를 추가로 처리할 정도의 빈틈을 만들어 주었다. 실로 쏠쏠한 나만의 특권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불 뿜는 영감님뿐. 마리아도 그제서야 뒤늦게 정신을 다잡았다.

“···우으.”

발악과도 같은 불길이 쏘아졌다.

이는 그야말로 전투 개막 시점부터 고대한 전제 조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화륵- 파아아-!!

화염이 낫과 망치에 스며들었다. 아무리 화력을 더 퍼부어대도, 상황은 매한가지.

조금도 뜨겁지 아니했다. 이건 나의 불, 곧 나의 스킬이나 다름없었으니.

붕붕붕- 양손의 무기를 능숙히 돌려 어느 겨울날에 보았던 붉은 원을 그렸다. 당시의 나도 눈앞의 소녀처럼 그저 넋을 잃고 쳐다봤더랬다.

[허수아비류 – 쥐불놀이]

콰아앙-!!!

불을 뿜는 것도 멈춘 노인에게 최후의 일격이 떨어졌다.

탱커는 퍼블(First Blood), 사무라이는 팀킬, 곱추는 어리바리사, 노인은 자기 불에 자기가.

어떻게 된 게 죄다 굴욕이라고 할만한 것뿐인지. 그럴진대, 마리아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환했다.

‘뭐지? 기어코 망치녀까지 써먹을 셈인가?’

마리아가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한창 경계 중인 하얀 망치 소녀는 연결 자체를 끊은 것인지 축 늘어진 상태. 더불어 그녀의 기세가 너무나도 호의적이어서, 뒷걸음질치는 보폭은 점차 좁아져만 갔다.

“역시. 마리아의 감은 정확해.”

마침내 코앞에 다다르고. 마리아가 위로 손을 뻗어 내 뺨을 어루만졌다.

당신의 모든 걸 다 이해하고, 또한 긍정한다고 말해주는 듯한. 무척이나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잠깐, 뺨을···만졌다고?’

덩달아 손을 들어 옷매무새를 살폈다. 아니, 그러기도 전에 먼지 가득한 목장갑이 눈에 들었다.

“마리아, 오빠한테 뭐 부탁할지 정했어.”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마나 실에 매달린 로브가 하늘을 나부꼈다.

전투에선 이겼으나, 전쟁에서는 졌는가.

여태 한 걱정 전반을 쓸어내리는 소녀의 상냥함만이 소소한 위안거리였다.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마리아의 인형이 되어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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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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