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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제압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고. 어찌저찌 성공해도 자폭 후 재생해서 다시 덤벼올 게 뻔한 성녀와의 전투는 단번에 포기했다.

“용케도 이런 장소를 찾은 것이니라. 전에 와본 적이 있더냐?”

“뭐···그런 셈이지.”

지금 나와 아스트레아는 대성당의 숨겨진 장소로 피신한 상태.

100년 전의 성녀가 일을 땡땡이칠 때 자주 애용하던 명당이었다.

“그대, 손길이 많이 응큼하니라.”

“나라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고···.”

서지도, 눕지도 못하게 딱 쪼그려 앉는 것만 허락되는 좁은 공간. 

화면상으로 봤을 때도 농땡이 하나 피우자고 뭐 저런 데에까지 숨나 싶었는데.

두 사람이 들어와 버리니까 몸을 구겨 밀착해도 굉장히 협소하다. 특히 가슴 높이 부근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후우. 일단, 상황 정리부터 해보자.”

성녀를 비롯한, 대성당 주변 일대 사람들이 죄다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있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서인지는. 아마도 헤라가 말한 어니스트와의 신호 불량이 원인으로 유추되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런 규모의···게다가 성녀까지 세뇌를 건 거지?”

“뭐 저주라도 건 것 아니겠더냐? 그 처자, 그쪽 방면으론 영 젬병이라 하였으니.”

“어디까지나 이미 걸린 걸 고치는 게 그런 거지. 육체의 저항 능력 자체는 뛰어날 거야.”

쉽게 말해 철벽의 골키퍼와 비슷하다.

웬만해서는 절대 뚫리지 않지만, 어떻게 골이 들어가면 그건 어쩔 방도가 없기에. 상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는 식으로 우회해서 대처해야만 하는 것.

“무엇보다 그런 성녀까지 함락시킬 술수를 썼다면 우리만 무사한 것도 설명이 안 돼.”

“훗. 그거야 이 몸은 천하에서 제일로 존귀한···”

“섭취를 통한 감염일 확률이 높겠어.”

“흥···.”

마리아한테도 영향을 끼친 걸 보면 상당히 최근에까지 마수를 뻗친 것일 터.

최근에 대성당 관련해서, 마리아만 먹은 게 뭐가 있지?

“···초코빵?”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그거밖에 없다.

젠더에 입국하기 전부터 항상 붙어 다녔고, 식사 자리에도 늘 함께였으니까.

“음. 확실히 우리 중 아해만 먹었기도 하고, 예배 인원 전원에게 나눠줬으니 이 규모도 설명이 되느니라.”

아스트레아가 단 걸 안 먹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나 홀로 좀비 생존극 찍을 뻔했어.

“분명 하나 남은 건 그대가 보관하고 있는댔지. 그걸 분석해서 해독제를 만들 이만 찾으면 되겠구나.”

“적임자라면 당연 교황이겠지만···”

그가 이번 사건의 흑막으로 가장 먼저 의심되는 인물이었다.

성녀의 약점을 제대로 파고든 점이나, 손님들 나눠줄 간식에 장난질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따져본다면.

물론 내가 초코빵의 제작이나 유통 과정을 모르니, 그 사이에 껴있을 수도 있겠는데. 그러면 어차피 교황도 당했을 거다.

“어느 쪽이든 써먹진 못하겠지.”

“그렇다면 어찌하겠느냐? 이 몸은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하느니라.”

“도망···친다고?”

“현재 확인된 것만 하더라도 최소한 성녀와 A급 모험가를 상대해야 하느니라. 하물며 그대나 이 몸이나, 둘을 죽일 작정으로 나설 수도 없는 노릇 아니더냐.”

도망쳐도 황실이 나설 것이다.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아스트레아는 평소의 장난기도 버리고, 진지하게 그리 조언해 왔다. 어둠 속에서 의지 충만한 두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충고는 고맙지만, 난 그렇게 못 해.”

황실기사단이 파견되면 필연적으로 해결되기는 하겠지.

하지만 마리아는 높은 확률로 처분당할 거다. 항복 의사도 없이 덤벼들 그녀는, 천하의 기사단장이라도 충분히 성가실 테니까.

“아해가 그리도 소중하더냐? 본인의 목숨보다도?”

“너야말로 마리아를 기습해서 죽이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선택지만 제시했잖아. 그새 정든 게 있으니까, 일말의 살 가능성을 고려한 거 아냐?”

“···허면, 달리 방법은 있더냐?”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고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마리아를 싸고 돌기만 하지는 않는다.

“세피로트를 불러내자.”

“그 여러모로 안쓰러운 처자를 말이더냐···?”

“여태 보인 행동거지가 좀 못 미더워서 그렇지. 엄연히 황궁의 서고관, 손에 꼽을 경지의 대마법사야.”

그것도 단순히 강력한 마법을 펑펑 쏠 줄만 아는 놈들과는 달리. 서고관인즉슨 서고의 모든 지식마저 통달했다는 증거.

역대 서고관들이 괜히 황궁의, 대륙의 서고 그 자체라 불리는 게 아니다. 감염체 샘플까지 건네준다면 어렵지 않게 해독제를 만들어내리라.

“그렇다면야 뭐···가까운 통신구가 있는 데까지 가면 되더냐?”

“추기경실 쪽으로 가자. 안내할게”

아스트레아도 이게 최선이라 판단했는지 따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러는 동안에도 피해는 늘어가는 중일 터. 신속하면서도 조용하게···

“···아스트레아. 먼저 일어나 볼래?”

“흠. 꿈쩍도 안 하는구나.”

가지는 못하고.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급히 자리를 떴다.

오히려 어그로가 끌려서 이쪽으론 안 오기를. 초장부터 아슬아슬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 막을 올렸다.

* * *

“그래도 어찌저찌 안 들키고 왔네.”

추기경실로 향하는 복도 부근. 길목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려 엉망이라, 서두르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웠다.

견적상 통신구는 고사하고. 방의 형태라도 유지한 곳이 남긴 했을까 의심스러운 몰골.

그래도 이 복도는 추기경 말고도 여러 고위 사제가 밀집한 지대. 굳이 이곳을 고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한 줄씩 맡아서 찾아보자. 멀쩡한 통신구를 발견하면 알려줘.”

“알겠느니라.”

우리는 분담하여 방을 차례로 뒤졌다

대부분이 입구부터가 틀어막혔고, 문이라도 열어보면 어김없이 잔해로 가득 찬 광경이 맞이해준다.

막다른 벽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조급해져만 갔다.

“그대, 찾았느니라!”

다행히 방이 고갈되기 전에 소식이 들렸다.

아니었더라면 성녀실이나 대주교실. 그마저도 아니면 대성당 밖으로 나가야 했을 텐데.

즉시 몸을 돌려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도 확인했느니라.”

위치가 잘 얻어걸렸는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모양새.

통신구는 내가 거쳐 간 여타 방들이 무색하게. 멀쩡히 거치대 위에 놓인 채 영롱한 빛을 뽐냈다.

“수고했어. 바로 걸어볼게.”

곧장 코드를 입력했다.

연락하기에 예의가 아닌 걸 넘어, 보통은 받지도 못할 시간대지만. 받을 거다.

대마법사의 감각은 예민하고. 이미 신호음 두 번을 안 넘기는 모습을 보여준 세피로트 아닌가.

걔도 내심 누군가와의 교류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 모-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쾅-!!

“세피로트 이 새끼 이거, 잠수탔어!”

아무리 연락할 사람이 마땅찮다고 해도. 막말로 갑자기 황제가 걸 수도 있는 거를, 쿨하게 전원까지 꺼버린다고?

내가 그렇게 심했나? 아니, 따지고 보면 다 지 잘못으로 비롯된 거잖아.

세피로트···조만간 귀족들 연회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릴 가십거리는 기대하는 게 좋을 거다. 그래도 내가 사진 유출까지는 봐 준다.

“이제 어찌하겠느냐.”

“···그러게.”

이마에 손을 짚고선, 벽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성당 근방 전역을 돌며 통신구 순회를 도는 것. 다시 말해 세피로트가 잠수타는 건 애당초 상정하지도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느니라.”

물러나자는 말. 아스트레아는 표정도, 말투도, 썩 유쾌하진 않은 투였다. 이를 재차 언급해야 하는 게 괴롭다는 듯.

다만 타당한 제안이다. 처음 얘기했을 적에도 그랬고. 되려 지금 이게 외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할 시점을 늦추는 아집일지도 모른다.

‘···이건 포기하고 빠져나가는 게 맞겠지.’

해독제를 만들 여력은 방금 사라졌다. 그리고 인근에는 공방일체의 성녀, 곧 S급도 내다볼 최연소 A급 모험가가 돌아다닌다.

덤으로 추기경에 고위 사제, 죄 없는 시민들까지.

이런 악조건을 모두 타파하려면. 치트 수준의 무언가가 돌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고서야···

“···아스트레아.”

“듣고 있느니라.”

“마지막,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렇담 떨어뜨리면 된다. 어찌 떨어지기만 기다리겠나.

인간이 하늘에 뭔가를 빌기 위해선, 그에 준하는 대비가 앞서 밑받침돼야 하는 법이다.

“말해보거라.”

아스트레아가 못 말린다면서도, 또한 믿고 있었다는 얼굴로 의중을 물어왔다.

내 대답이 그녀의 기대를 충족하길 바랄 따름이다.

* * *

다소 허탈한 심정으로 뒤편을 바라봤다.

그러면 일전에 보았던, 직사각형의 회색 건물이 묵묵히 시선에 닿는다.

-“튜토리얼 존으로 내가 직접 해독제를 만들어 볼게.”

방금 나눈 대화가 다시금 떠올랐다.

천하에서 제일로 존귀한 이 몸조차도 절망적이라 여겼거늘. 그는 찰나의 시간에 보란 듯이 다음 돌파구를 찾아냈다.

-“그때까지···나를 지켜줄래?”

물론 그런 사내조차 의지하는 이 몸은 더욱 대단하다.

빚까지 져가며 이 몸을 산 것도 그렇고. 안목이 보통 좋은 게 아니지 않던가.

“거, 사이좋게도 둘이서 함께 왔더냐.”

세뇌된 무리의 핵심 전력. 성녀와 아해가 노골적이리만치 동시에 나타났다.

힘을 대부분 잃은 현재로선, 게다가 죽여서도 안 되는 전제에선 설령 이 몸일지라도 까다로우나.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까닭이 존재했다.

-“만약 위험하다 싶으면 거리낄 거 없이 바로 도망쳐. 늦은 내 잘못이니까.”

정말이지, 그렇게까지 말해버리면 없던 나약함도 식어버리지 않더냐.

사람을 부려 먹는 데에도 도가 튼 사내로다. 이러다간 장난스레 정한 기한보다도 빠르게 반해버릴지 모르겠다.

“운 좋은 줄 알거라. 왕년에 비해선 힘 조절을 제법 잘하는 편이니 말이다.”

최대 30분이라고 했나. 이리 긴 싸움은 얼마 만이던지.

기왕 이리된 거, 마음껏 즐겨주겠다. 마침 성녀나 인형은 아무리 두들겨 패도 괜찮으니.

“자, 오너라.”

언제나 그랬듯 선수는 양보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닉네임 비공개 독자님 5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이라니, 과분한 영광이네요! 부족한 살림에 보태 소중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우리 독자님들을 위해서라면 1일 1연재쯤은 할 수 있을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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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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