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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튜토리얼 존을 통해 만들어진 치료제는 단순 세뇌를 해제하는 거에서 그치지 않고. 일종의 면역체계를 형성해 주었다.

그렇게 감기도 못 고치는 성녀는 특정 세뇌를 고치는 광범위 항생제가 되어. 마리아부터 해서 성국 젠더 전역을 치료하였다.

그녀로서는 생애 처음 해보는 겉과 속 모두 성녀스런 행실 아니었을까.

“저 성녀 헤라가 트랜스 대성당과 성국 젠더를 대표하여 죄송하다는 말씀과, 또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우선 팔부터 재생하시고 얘기를 마저 할까요, 우리?”

물론 기껏 쌓은 성녀틱한 이미지는 당사자가 곧장 깎아 먹었다.

구호 활동도 저러고 다니더라.

“마침, 곧이랍니다.”

“곧이요?”

삐비빕- 삐비빕-

헤라가 곧이라 말하며 무언가를 기다리는가 싶더니. 알람이 울리자 방긋 웃으며 팔을 재생하였다.

‘설마 세뇌됐을 때도 시간 덜 지나서 재생 안 한 건 아니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저쯤 되면 이미 신념의 탈을 쓴 광기다.

황제와의 또라이력 서열은 살짝 더 고민을 해봐야 쓰겠다. 황제 놈도 시간을 정해두고 기사단장들을 희롱하지는 않을 테니. ···아마도.

“사건 진상에 관해선 추가로 들어온 정보가 있나요?”

사건 해결 직후 전해 듣기를. 대부분의 사제, 심지어 교황까지 세뇌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작질도 처음엔 우려했지만, 교황청 꼭대기에서 웃통 벗고 난동을 피웠다는 증언에 의심을 거뒀다.

설령 범인이어도 그만치 정성을 보였으면 속아주는 게 예의다.

‘진실됨이 미덕인 종교라고 성녀가 교황의 치부까지 다 고백하네.’

유리가 이즈리 징계 소식 떠벌린 것도 그렇고. 사실 이게 보통인 걸지도 모르겠다.

“말씀드리기 부끄럽게도, 범인이 완전한 제삼자로 추정되는 것 외엔···.”

아무튼간. 제작이나 유통업자 중에서도 수상한 인물이나 정황은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리도 아니다. 아직 수사 초반인 데다. 성국을 작정하고 노린 놈 꼬리가 그리 쉽게 밟힐 리가.

“이게 다···”

“내부자의 소행이 아니라니. 이게 다 성녀님과 교황 예하, 더 나아가서는 어니스트께서 사랑과 정성으로 굽어살피신 덕분이겠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막 재생해 놓고선 그새 손이 단검으로 가려 하길래, 벌써 학습을 마친 파블로프의 마리아가 일찍이 입을 아 벌리길래. 말재간으로 우주 방어에 나섰다.

제아무리 자해로 사죄하기에 미친 광, 아니 성녀인들. 자기네 신까지 들먹이며 띄워줬는데 이건 무시 못 하겠지.

마리아가 성장하는 거야 대환영이지만. 제어를 안 하면 이번에도 꼬박 하루를 지새우고 말 거다.

“다음으로, 저희 트랜스 대성당에서는 아이 형제님 일행의 은혜에 대하여. 원하시는 그 어떠한 사례도 해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 세뇌에 걸려 침울해한 마리아를 배려해, 활약한 ‘일행’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해 주는 저런 때는 또 세심하고 번듯한 사람이거늘.

다행히 본 주제로 가닥을 잡은 참이니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사후 처리와 피해 복구로 다들 바쁘실 테죠. 일단은 나중을 기약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려 깊은 배려, 감희로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저희는 언제든 내키실 때 편히 말씀해 주시길 잠자코 기다리겠습니다.”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면 너네 마땅히 줄 것도 없지 않냐는 뜻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걸 떠나서 당장 딱히 뭐가 필요하지가 않다. 기껏해야 성녀 자유이용권 정도겠는데, 이건 더더욱 급히 쓸 게 못 되고.

“그러면 아이 형제님. 바로 신께 물음을 청하시겠나요.”

조심히 물어보려던 걸. 헤라가 다 안다는 듯 먼저 물꼬를 틀어주었다.

그래. 사례고 자시고, 나는 이걸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거다.

“네. 부탁드립니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헤라가 제 양손을 마주 잡았다.

하마터면 손목만 맞댔을 수도 있었단 사실이 떠올라 몰입이 깨지다가도. 그녀 주위로 피어오르는 산뜻한 신성력에 그런 태도도 싹 가셨다.

‘신성력이 이렇게나 넘쳐나는데, 이전과 달리 위협적이지가 않아. 오히려···포근해.’

헤라의 머리 위로 어니스트를 상징하는 십자 모양 헤일로가 떠 올랐다.

이는 신과 이어졌다는 표시. 이를 마저 증명하듯 그녀는 자애로운 미소를 띠었다.

“신께선 모든 말씀을 듣고 계십니다. 무엇을 묻고 싶으신가요?”

몇 번이고 정리하고 재고했던 말임에도. 잠시 물러서 마지막 점검의 시간을 가졌다.

성녀는 이런 행색을 긴장했다 판단했는지. 이해한다는 양 싱긋 웃었다.

“···저는 여기에 어떻게, 왜 오게 됐나요?”

추천장까지 들고 자기 발로 왔으면서, 이게 뭔 말인가 싶을 질문.

실제로 마리아와 아스트레아, 심지어는 헤라까지 놀란 투였다.

그러나 어니스트, 댁이라면 내가 뭘 말하고픈 건지 잘 알 거다. 하물며 이 세계로 데려온 게 정녕 당신이라면.

자, 바른대로 답해라. 애지중지하는 딸이 보는 자리에서 모른다고 둘러대거나, 답변을 회피하지는 않겠지?

“어, 음···. ‘내가 너를 인도하였다.’···라고 하시네요?”

“···그렇군요.”

자칫하면 비웃음이 나올 뻔하였다.

언뜻 보기엔 성경의 전형적인 구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식의 문답. 일행에게 자세한 사정을 밝히기를 꺼리는 내 입장을 나름대로 배려한 것일 터였다.

지가 멋대로 데려온 거 맞다고 인정하는 주제에, 꼴에 자비로운 신이랍시고. 저 자식이 내 념글도 날려 먹은 거 아냐.

“내가 아는 너라면 이유도 충분히 유추 가능할 거다···라고도 하시네요.”

‘저건 또 뭔 소리야.’

그거까지 정성스레 돌려 말할 필요는 없는데.

상황이 분간은 안 되지만 전해주기는 해야겠고, 결국에 들은 곧이곧대로 읊는 네 딸내미 곤란해하는 거 안 보이냐.

“너무 당황하지 마라 딸···아, 이건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시네요.···”

이 세계의 정상인 비율이 왜 이리 처참한가 했더니만. 흡사 체증에 준하던 미스터리가 마침내 풀렸다.

창조자부터가 저 모냥이니까 피조물들도 나사들이 하나씩 다 빠지지. 그런 거였어.

“저···형제님? 단서를 줄 터이니 비난은 그쯤 하거라···라고 하시네요.”

이제는 딸한테 꼰지르기까지. 정말 가지가지 한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순수 광녀에서 사연 있는 광녀로 진화한 헤라가 다가와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파앗-

방금의 포근한 신성력이 가슴을 시작으로 온몸에 퍼져나갔다.

전에 없던 새로운 힘을 하사받는 기분도 들고, 속속들이 파헤쳐지는 느낌도 든다.

[개인 특성을 개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정확했다.

‘개인 특성이라고?’

혼자만의 고유한 능력이자, 슈퍼에고 온라인과 여타 게임들의 차별점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던 요소. 개인 특성.

유저들은 수많은 갈래의 직업군과 이 개인 특성의 조합이 이룬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하나같이 기염을 토했다.

‘이걸 60렙을 찍기도 전에 받다니···.’

원래라면 100레벨을 달성해야 개척 가능한 영역.

생색을 내더니만, 힌트라는 부분을 제하고도 값진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특성은?’

[당신의 개인 특성은 ‘플레이어’입니다.]

···플레이어?

“형제님, 음유시인이셨나요···?”

세부 내용까지는 아니지만, 특성의 이름 정도는 엿본 헤라가 의문을 표했다.

이에 잠자코 구경만 하던 마리아와 아스트레아도 눈빛으로 설명을 요구해왔다.

이걸 설명해···말아.

* * *

성국을 벗어나, 여펨아을로 돌아오는 길. 개인 특성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내내 고심했다.

[<개인 특성 – 플레이어>:반갑습니다, 플레이어. 이 세계를 마음껏 즐겨주세요!]

천차만별이던 각종 개인 특성과 비교하여도 독보적인 특이함을 자랑하는 설명. 처음에는 상태창이 말이라도 건 줄 알았다.

개인 특성이라고 함은 주로 ~를 할 수 있다, 이런 형태가 보통인데. 저거에도 이 공식이 적용된다 치면···나는 이 세계를 게임으로서 즐길 수 있다는 뜻인가?

여긴 현실이라 계속해서 머리에 때려 박아도 자꾸 까먹는 게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플레이어란 특성이 내가 여기 불려 온 이유와 연관돼 있다라···’

플레이어로서, 이 세계를 클리어해달라는 건가? 그렇다면 십중팔구 그 기준은 마왕을 쓰러뜨리는 걸 테고.

‘그런 목적이면 진짜 왜 하필 허수아비인데.’

-“플레이어라는 게 기계 같은 걸 작동하는 그런 특성이야. 내가 사람보단 그쪽에 가깝잖아···?”

‘···하아.’

일행들에겐 거짓말로 둘러댔다. 설명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이세계 출신임도 밝혀야 하니까.

두 사람 다 입으로는 알겠다 말하곤. 마리아는 다소 기죽은 채 내 팔을 안았고, 아스트레아는 어깨를 툭툭 토닥였다.

그녀들도 아는 거다. 내가 아직은, 어쩌면 쭉. 이 주제에 관해선 숨기고 싶어 한다는 걸.

“성녀의 피는 무슨 맛이었더냐?”

“딸기 맛. 좀 덩어리진 건 딸기잼.”

거기에 분위기가 딱딱해지기라도 할까, 평소의 모습들을 그려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우리 관계는 여전하다고 목청 높여 일러주듯이.

“마리아 천마의 피 맛도 궁금해.”

“호오. 이 몸의 피를 맛보는 값은 꽤나 비쌀 것이니라?”

···최소한,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진실을 알려주는 건. 그것만은 피하자.

그녀들이 믿고 기다려줌을 단지 유용하다 치부하는 허수아비가 아닌, 보답할 줄 아는 인간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모험가 길드에 오신 것을 환, 영···”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갖자.

최종목표를 마왕으로 잡고 불렀다면 성장 기간도 그에 걸맞을 터.

마음을 추스르기엔, 충분하리라.

“저어···아이, 님.”

“네. 왜 그러시죠?”

의뢰 게시판으로 향하려던 중, 접수처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배신자를 잡을 당시 이상하리만치 협조적이었던 붉은 머리 접수원, 이름이 분명 샐리···였던가?

‘지명 의뢰 제안이라도 하려 그러나.’

등급은 최근에 E급을 겨우 달았지만. 그녀의 왠지 모를 신뢰와, 보여준 활약상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죄송합니다. 아이 님은, 모험가 길드에서 퇴출되셨습니다···.”

“···? 네?”

“이, 이걸···”

“우리 사이에 몰래 섞여 든 악의 축에 대한 규탄···.”

샐리가 건넨, 첫 문장부터 서늘함을 한껏 풍기는 신규 법안 문서.

심상치 않음을 단번에 깨닫고 빠르게 훑어 중심 내용을 추적했다.

“정체를 숨기고 인간 사회에 숨어든 가증스러운 허수아비 마수, 아이. 그를 여펨아을령 영주의 권한으로 사물로서 규정하여 모험가 직위와 부정하게 취해온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박탈한다?”

“···죄송합니다.”

“하, 하하. 하하하···.”

애써 무시하던 주변의 시선이 비로소 선명해졌다.

그런데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빠, 이제 인권···없네?”

“마, 마리아? 이것 좀 풀어줄래···?”

– 작가의 뇌리 어딘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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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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