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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계속해서 시선이 집중된바. 아스트레아의 주도하에 일단 저택으로 피신했다.

A급 모험가가 동행하는 덕택인지 도중에 괜한 시비가 붙지는 않았다.

“오빠···”

언제까지고 대중에 정체를 숨길 수는 없을 거라 생각은 했는데.

하필 타이밍이 타이밍이라, 짐작했던 것보다도 느끼는 허탈감이 더 컸다.

“이젠, 진짜 인형이 됐네.”

“우으···”

웃자고 꺼내본 말에, 되려 애를 울리고야 말았다.

지지리 되는 일도 없지. 방금의 문장이 그녀에게 어떻게 들렸을지를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오빠가 미안해. 진심으로 한 말 아니니까. 자, 이만 뚝.”

“그대.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건 아니겠지?”

마리아를 달래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방식이 하도 상정 외라서 대비도 못 하고 얻어맞았을 뿐이지. 영주의 견제 자체는 일찍이 염두에 두지 않았던가.

내가 선수를 양보한 거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대처 가능하다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영주는 실수했어.”

법의 악용이 판치던 세상에서 살다 온 나를, 감히 법으로 건들다니.

마침 개인 특성도 개방했겠다. 테스트나 할 겸 한 수 가르쳐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토록 좋아하시는 법을 곁들여서.

“마리아.”

“···응?”

나만 건드렸더라면 조금은 원만한 방법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는 우리 애까지 울려버렸다. 남을 위해 진심으로 슬퍼할 줄 아는, 그런 상냥한 소녀를.

“나의 인형술사가 되어줘.”

미리 애도를 표한다.

* * *

“흐흐흐···.”

멈추지 않는 웃음을 애써 참지 않으며 홍차를 들이켰다. 예의 허수아비가 모험가 길드에서 진실을 마주하고, 실성하며 도망쳤다는 보고를 방금 막 전해 들은 참이다.

이름이 아이라고 했던가, 감히 내 처신을 위협하는 가증스러운 몬스터.

주요 거래처인 도적단이 궤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여겼다. 기사단이 개입했다면야, 이상하지도 않다 못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나 놈은 마을에 조용히 숨어든 스파이마저 전원 잡아냈다. 손도 쓰지 못하게 확실한 물증까지 가져다.

다행히 그것들과는 일절 엮이지 않아 당장은 무사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뒀다간 언제 여기까지 마수를 뻗칠지 모르는 일.

위험을 무릅쓰고 황궁과 접촉해 본 게 묘수였다. 그쪽에서도 몬스터가 사람 행세를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는지, 정보는 어렵지 않게 입수됐다.

‘거기에 성국에 가서 소동에 휘말려주기까지 하다니. 신께서 나를 도우시는 게 분명하다.’

성국 젠더의 단체 세뇌 사건.

녀석은 오히려 사건 해결의 공로자라고 하나. 세상은 진실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성국은 피해 복구에 힘써야 하는 상황이고. 성녀에 교황까지 세뇌됐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여기에 어린 시절부터 심어졌을 몬스터에 대한 인식을 자극한다면. 공로자를 흑막으로 둔갑시키는 거야 일도 아니다.

사냥하는 입장인 모험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시민 중에 본인이나 가족·친지가 피해를 입은 경우가 허다하니.

‘굳이 선동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런 여론으로 흘러가겠지.’

완벽하다. 

눈엣가시던 허수아비는 기다리기만 해도 대중의 혐오 속에 자연히 산화할 것이고. 잘만 하면 그런 존재를 감싸줬다는 명분으로 황권 약화도 기대해 볼 법하다.

‘그러게, 진작에 주제를 알고 우리 근처에 알짱대지 말았어야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줬으니, 뭐 그건 고맙게 생각한다.

이를 높게 사, 즉각 토벌 대상으로 지정하는 게 아닌 사물로 규정하는 거에 그쳤으니. 친하게 지내는 모양인 마리아와 작별 인사나 잘 나누길 바란다.

앞으로 그런 족속과는 마주칠 일도···

콰앙-!!

“푸우웁-! 뭐, 뭐야. 갑자기 웬 폭발이??”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바깥에서···허수아비가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뭐, 뭐라···?”

기껏 자비를 베풀어줬더니만. 그 은혜도 모르고, 뭔 짓을 했다고?

콰앙-!!

이게 미쳤나?

* * *

나는 사물로 지정됐다.

그리고 사물에는 실형이 적용되지 않는다.

[밸류 익스플로전]

콰앙-!!

고로 책임 없는 쾌락을 즐기기로 했다.

요지부동인 길드 건물들을 가입 후 해산 노가다로 처분해 주고, 유리의 빚을 다 갚고도 한참 남은 대금화와 금화들.

이 짓 하려고 은화로 왕창 환전해 왔다. 실제로 고생해 준 건 마리아지만.

“자, 잡아라-!!”

어딘가에 숨은 마리아의 마나 실에 연결된 채. 경비병들의 추적을 여유롭게 회피했다.

백작가 자택을 지키는 나름 베테랑들일지 몰라도 A급 모험가의 손재간은 못 당해낸다.

“젠장, 거기 서라-!!”

그래서 따돌리는 것보다, 누구 안 다치게끔 잘 봐가면서 은화를 뿌리는 게 더 고역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서 깽판 치는 거라지만 인명 피해는 안 될 말이지. 쟤들이 나한테 잘못한 것도 아니고.

“지금 순순히 투항한다면 좋은 품질의 최고급 지푸라기를 지급하겠···끄아악-!!”

물론 잘못을 하면 응징한다.

발밑에서 동화만 찔끔 타닥여도 오두방정을 떨 거면서 괜히 시비는.

“네 이놈! 그만두지 못할까!”

노크가 워낙 크고 요란해서였을까.

엉덩이 무거우신 우리 고위 귀족 영주님께서 친히 행차하셨다.

“이런다고 네놈한텐 득이 되는 게 없을 텐데?”

설령 인권을 되찾아도 영주 테러범으로 낙인 찍힐까 걱정해 주는 건가.

그 마음 씀씀이는 황송하기 그지없는데, 괜찮다. 나중에 그런 말 안 나올 정도로 널 나락에 보내줄 테니까.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세요? 한낱 사물이 벌인 짓에.”

“멍청하긴. 너한테는 죄를 안 물을지 몰라도, 네 주인이 책임을 지게 될 거다.”

“저 주인 없는데요?”

한 방 먹었지? 그런 비웃음을 목소리에 한껏 담는다.

저 작자가 나의 이런 태도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했을 때, 기분이 최대한 업될 수 있게.

“동료 둘이서 제 소유권을 누가 가질지 다투다가 끝내 결론이 안 났거든요.”

“하. 그러시단 말이지?”

영주가 두툼한 갈색 눈썹을 씰룩이며 일순 비릿하게 웃었다.

내 논리를, 마찬가지로 논리로서 파훼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 모습.

어떻게 된 게 말싸움에 지고 못사는 사람의 본성은 세계와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다.

“예속의 목걸이를 가져와라.”

“예속의 목걸이···?”

주로 제압한 마수를 병력으로 만들 때 사용되는 물건. 예속된 자는 계약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고, 명령에 절대복종하게 된다.

이를 알고서 놀란 듯이. 영주의 말을 그대로 따라 읊으며 작은 떨림을 자아냈다.

대화에서 맞장구치기에 애매하면 그냥 앵무새처럼 따라만 하라더니. 딱 그렇다.

실제로 영주는 내 반응에 아주 좋아 죽으려 그랬다.

“뭔가 단단히 착각했나 본데. 제아무리 사물일지라도, 피해와 혼란을 야기한다면 이는 곧 제거의 대상이다.”

그가 경비병이 가져온 예속의 목걸이를 앞세우며 고했다.

본인의 소유물로서 예속될 것인지, 영지를 위협하는 공적으로서 처분될 것인지.

“···.”

마리아의 마나 실도 풀고, 천천히 영주에게로 다가갔다.

주변 인원들이 경계심을 키우는 와중에도 영주는 혼자만의 확신에 차선, 그저 한가로울 뿐이었다.

찰칵-

“그래, 그래야지.”

예속의 목걸이가 채워지는 동시에 겉면에 새겨진 문자가 환하게 빛을 냈다.

이는 영주를 만족시킬 한 폭의 그림이 되어. 혼자 보긴 아깝다는 판단마저 들게 했다.

“이거 아카데미에 검술 연습용으로 기증해 버려.”

“네, 넵!”

끌려가는 길에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행들과 시선을 맞췄다.

눈빛으로 보내는 계획대로란 사인. 목에는 구속구가 채워졌건만, 여느 때처럼 평온하였다.

* * *

플레이어라고 하는 개인 특성은 다른 게 아니었다.

간단하게 설명해서 유저 편의 시스템의 심화 버전.

다만 지금까지는 게임상의 기능만 정직하게 이용해 왔다면, 개인 특성으로 인해 재량껏 응용이 가능해졌다.

-“마리아. 나의 인형술사가 되어줘.”

-“오빠가 마리아한테 드디어 청혼을···”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알겠다고 해주지 않을래?”

“···치. 마리아, 오빠의 인형술사가 될래.”

-[‘마리아’의 펫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펫은 드랍템을 대신 주워주거나 전투를 보조해 주거나 하는 제2의 동료다.

슈퍼에고 온라인에서는 단순히 현질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마수를 직접 생포해서 일정 수치 이상 친밀도를 올리면 펫으로 삼을 수 있었다.

나랑 마리아야 둘도 없는 단짝이니 친밀도는 장애물이랄 게 못 되고. 개인 특성을 활용해 역으로 펫이 주도하여 관계를 형성하는 결과를 이뤄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인권을 박탈당한 마당에 펫까지 자처한 이유가 뭐냐면.

“이게 새로 들어온 연습용 허수아비인가? 거 멍청하게도 생겼···”

[밸류 익스플로전]

콰앙-!!

“뭐, 뭐야?!! 설마 지금 이 폭발, 저 허수아비가 한 거야?!!”

“지금부터 나는 여펨아을령 영주 어비스 펄 여펨아을 백작님의 뜻에 따라, 아카데미 정복 작전을 실행한다.”

먼저 펫이 돼 있으면 예속을 무시할 수 있거든.

쾅-!! 콰앙-!!

“꺄아아-!!”

“허, 허수아비가 미쳤어!! 누가 가서 교수님 모셔 와-!!”

이제 내가 벌이는 모든 만행은 여펨아을 영주의 뜻이다.

그럼 우리 영주님은 수많은 귀족 자제와 그 학부모들의 성원을 감당할 수 있나, 어디 한번 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거 쓰다가, 새로 로봇청소기를 들였는데 그 청소기가 갑자기 ‘우리 회사 사장님의 뜻으로 이곳을 점거한다.’라고 하면 어떨지 상상해 봤습니다. 일단 그 로봇청소기가 만일 아리스라면 저는 흔쾌히 머리를 조아릴 자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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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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