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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아카데미 측에서 신변을 보호받으며 이후 상황을 전해 들었다.

어비스 펄 여펨아을은 이번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 거기에 더해 구속 수사 도중 도적단과의 거래 정황이 드러나 백작위와 영주 자리에서 실각하였다. 정식으로 형이 집행되기도 전에.

마리아가 예속의 목걸이를 해제하고부터, 이 과정에 소요된 시간은 단 사흘. 눈이 돌아간 귀족들의 단합 파워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여러분들께는 위로의 말씀을 드림이 우선이겠군요. 마음고생들이 심하셨을 테지요.”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됐을 즈음. 우리는 교장실에 소환되어 사건 경위를 진술하게 되었다.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이야말로, 때아닌 업무 부담으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겠죠.”

“허허. 이 늙은이를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국 제일의 명문, 어워드 아카데미의 교장. 오스카 더 그래미.

머리가 하얗게 센 노련한 대마법사의 눈은 상대를 꿰뚫어 보려 하나, 적대심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여론이 의도대로 잘 주물러졌다는 뜻이라. 부담 없이 입이 열렸다.

“···이상이, 저희 관점에서 바라본 이번 사건 경위입니다.”

“과연, 여펨아을 전 백작은 도적단과의 사업을 망친 주범인 모험가님께 앙심을 품고···”

어차피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결과가 사실상 확정된 셈.

해당 진술도 아예 안 할 수는 없어서 하는 보여주기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나마도 교장실에서 다소 가벼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는 거고.

겸사겸사 저택 테러도 단순 저항하다 생긴 해프닝으로 뒤덮었다.

“모험가님. 무거운 이야기는 끝났기도 하니, 혹시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아, 네. 얼마든지요.”

교장이 딴 얘기를 꺼냈음은, 더는 사건 관련으로 상관을 안 해도 된다는 일종의 보증.

하여 흔쾌히 받아들였다.

맡은 자리도 자리라 대화라곤 사무적인 것뿐일 적적한 어르신, 말동무 해드린다는 명분도 겸해서.

“최근 황궁에 방문하여 서고를 이용하셨다지요. 모험가님들께서 보시기에, 세피로트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더랍니까?”

세피로트, 역시 여기 출신이었구나. 그런데 어째 교장의 안색이 사건 경위 들을 때보다 더 어두워 보인다.

황궁 서고관이면 남 부러울 거 없는 인생 역전 수준의 출세지만.

딱 봐도 지금 행실이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 왔을 게 뻔하고. 학생을 자식처럼 대할 교장이라면 걱정할 법도 하다.

‘세피로트야 뭐···’

-“뿌에에에에에에엥. 흐웁, 후에에엥···!!”

음.

-“죄, 죄죄죄, 죄송해요···!! 부디 그것만은, 봐주세요···!! 바, 발, 발이라도···핥을 테니까···!!!”

으음.

-[죄송해요, 죄송해요···제가 잘못, 했어요···!! 제가, 갈게요···제발 가게 해, 주세요···!!]

으으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붙들어 매셔도 괜찮습니다.”

“세피로트 언니. 취미생활도 즐기면서 재밌게 살아.”

“남들의 존경도 한 몸에 받는 모양이더구나?”

사전에 약속한 것도 아닌데, 동료끼리 한 마음 되어 세피로트를 변호했다.

애 걱정하는 할아버지한테 ‘걔 야한 사진 찍는 거 들켜서 잡혀 살아요.’ 이럴 수는 없잖아? 이건 성녀인 헤라도 인정하며 박수 쳐 줄 사안이다. 두 손 다 멀쩡한 상태라면.

“가까이서 봐오신 분들이 그리 말씀해 주시니, 이 늙은이의 마음이 한결 놓이는군요. 요즘 그 아이 관련해서 흉흉한 소문이 들려와 말입니다···.”

“···유, 유명해지다 보면 원래 온갖 구설수가 따라붙는 법이죠. 하하.”

무슨 소문인지는 애써 묻지 않았다. 어떤 내용인지, 퍼트린 시발점이 누구인지조차 왠지 모르게 예측이 돼서.

마리아와 아스트레아가 등 뒤로 몰래 토닥여왔다.

아니 너네도 아주 약간은 공범이잖아. 왜 나만 몰고 가.

“명예 졸업 도장을 찍을 당시에도 손이 움직여지지를 않덥니다. 그 아이의 재능이 전임 서고관님 눈에 든 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여린 것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런 걱정에···흡.”

아이고 어르신. 왜 우십니까.

탁상 위에 놓인 휴지 몇 장을 뽑아 건네드렸다. 한 장, 두 장. 휴지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양심의 삼각형이 마음을 쿡쿡 찔러댔다.

모든 건 세피로트가 초래한 자업자득이라는 진실도 당장은 밀려 저지되었다.

“후우···손님분들께 못 보여드릴 꼴을 보였군요.”

“아뇨. 오히려 학생을 진심으로 아끼는, 교육자의 귀감이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충 갈무리하고 빠져나갈 생각 만만에, 최대한 포장하고 띄워주는 말로 무장했다.

교육의 장인 아카데미에서 표창 이외에 물적인 보상을 줄 수 없을 거기도 하니. 입지 기반 마련에 도움을 받은 정도면 충분하다.

“저희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바쁘실 테니까요.”

“예. 조심히 가십시오.”

막판의 살 떨리는 감각이 아직 죽지 않은 채 교장실을 나섰다.

이 나이에도 교장실은 여전히 불편한 장소구나 싶었다.

오히려 마리아가 내내 과자나 먹으며 태평하게 있더라. 나올 때는 아예 한 움큼 챙겨오는 여유까지. 가끔은 부러울 지경이다.

“여기서 만나네요. 아이 님.”

“···황녀 전하?”

그런 내게로 돌연 황녀의 기습 방문이 떨어졌다.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네요.”

1황녀 릴리시스 페 도로리콘. 그녀가 뒤늦게 차리는 예의에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아카데미에 다닌다 그랬었지. 인지는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런데, 장소를 옮겨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전하.”

다만 황녀가 직접 행차하여 문 앞에서 기다리기까지 했으니만큼. 용건이 있음은 짐작하여 냉큼 수락했다.

의향도 묻지 않은 건 일행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지만. 이해해 줄 거다.

인권을 되찾았다고 황녀의 콜에 거부권을 행사 가능할 리가 없잖아. 말이 수락이지, 명에 따르는 격이다.

‘또 료나 관련 주제는 아니겠지···.’

뭐, 성장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된 마당에 황실은 바라 마지않을 거대 스폰서.

작은 불안은 삼켰기로서니, 불만은 없이. 나도 그녀들도 황녀를 뒤따랐다.

* * *

릴리시스 황녀는 각종 마법적 처리가 된, 비밀 접선에나 어울릴 장소로 이끌었다.

“여기라면 적당하겠네요.”

그래 놓고 짜장면이라도 배달시킨 듯한 투로 말하니. 이후 나올 주제의 경중이 예측이 안 된다.

미리 각오했다. 장소에 어울리는 용건이 나와도, 료나랑 다퉈서 상담받으려는 거여도 놀라지 않게끔.

“뭐 암살 의뢰라도 시킬 것이더냐?”

아스트레아도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다 못해, 마리아도 안 하는 황족 상대 반말을 시원하게 때려 갈겼다.

금쪽이 천마 쪽으로 고개가 휙 돌아갔다가, 재차 릴리시스 황녀 쪽으로 뻣뻣이 움직였다.

“후훗. 그런 무거운 안건은 아니에요.”

다행히 웃으며 쿨하게 넘어가 줬다.

하여간에. 이미 머리가 좀 아픈 애로 알려져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저 암살 대상이 우리가 될 뻔했다.

호들갑이 아니라, 황녀랑 동행한 호위무사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해가는 걸 똑똑히 봤다.

“···송구합니다. 돌아가면 예절 교육은 똑바로 시키겠습니다.”

“이 몸이 뭘 어쨌다고 그러느냐.”

“언닌 이거나 먹고 있어.”

입은 재앙의 문이랬던가. 과연 천마가 불러들이는 재앙은 이다지도 파멸적이라, 마리아가 챙겨온 과자를 모조리 제물로 바쳤다.

적어도 다 먹을 때까진 조용히 있겠지.

“우선, 이번 사건에 황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사과를. 더불어 황실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임에도 부름에 응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릴게요.”

“황녀 전하. 부디 고개를 들어주시죠.”

그래도 덕분에 분위기는 얼추 풀린바. 릴리시스가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은밀한 장소를 찾은 이유는 고개를 숙이기 위함이었나. 공개적인 데서 이랬다간 정중함은 오를지언정 피차 곤란해졌을 테니.

“예. 말뿐이어서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죠. 아이 님, 이걸.”

의례적인 서론은 빠르게 넘기고. 황실 인장이 돋보이는 문서 하나를 건네받았다.

말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투의 발언에 순간 얘도 자해하나 싶었다. 성녀 쇼크가 워낙 크긴 컸나 보다.

“이건···”

대략적으로나마 앞서 파악하고자 묻는 말에, 릴리시스는 손을 내밀어 직접 읽어보란 식의 제스처를 취했다.

더 묻거나 질질 끄는 건 무례겠다 싶어, 묶인 줄을 풀고 들여다본 안의 내용은. 역시 배경 설명부터가 필요할 것 같았다.

“황실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하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이를 계기로 아이 님, 더 나아가 모험가 전체의 인식 개선을 위해 힘쓰고자 해요”

문서 전반은 저 말마따나 모험가를 일반 대중에게 적극 홍보하고, 그 필요성과 사회에 공헌하는 부분을 알리는 행사 계획서였다.

겉은 그러했고. 진짜 속내는 내 신분을 일개 몬스터 한 마리가 아닌, 모험가라는 소속으로 묶어주려는 일종의 정치 전략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 님, 이 행사의 상징이자 주인공이 되어주세요.”

“이런 중책을 정말 제가 맡아도 되겠습니까? 자질을 떠나서 모험가들이 반발하지 않을지···.”

“아마 대놓고 반발하시는 분은 극히 적을 거예요. 아카데미 교수를 때려눕혔다니까 많이들 통쾌해했다 그러더라고요.”

100년 전부터 귀족이나 아카데미 교수가 모험가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그런 게 있었지.

마리아가 서열 정리했다 어쨌다 하더니만. 애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그럴 목적으로 팬 건 아닌데, 아무튼 다들 좋아해 준다니 그걸로 됐다.

그 교수도 본인이 평화의 사절단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 걸 알면 기뻐하지 않을까?

“알겠습니다. 맡도록 하죠.”

황실에서 먼저 물리적으로도 입지적으로도 숙이고 들어온 제안.

거기에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 터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러면서도 받아들여 줘 다행이라는 기색의 릴리시스가 말을 덧붙였다.

“아이 님의 모험가 자격은 황실의 권한으로서 복권되었습니다.”

모험가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해도 되는 걸.

쥔 권력이 압도적이라고,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까지 압권이다.

“여태 보여주신 행적과 앞으로의 장래까지 고려. 아이 님과 아스트레아 님의 등급은 A로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기왕 올릴 거면 S를 주든가, 이 몸의 진가를 아직도 모르겠···우웁! 우브븝···!!”

우리 금쪽이의 뻔뻔함은 못 당해냈지만.

‘이 기회에 스탯 한번 양껏 벌어 보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잠자는 독자님 3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살림에 보태 소중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회차 소제목들이 각각 어떤 패러디인지, 공지로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때쯤이면 태풍은 아마 이미 지나갔을 테죠. 저는 태풍 하니까 잉태와 풍요, 줄여서 태풍을 관장하는 바람의 여신이라는 캐릭터는 어떨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독자님들도 태풍을 갖고 이런 가벼운 농담을 할 수 있을 만치, 아무런 일도 없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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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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