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8

원래는 대진표가 나오면 상대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전략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특별한 비법이랄 것도 없이, 애초에 다들 똑같이 행할 정석 중의 정석.

그런데 하도 얍삽이로 나댄 탓에 벌이라도 받는 것일까. 나만 혼자 난이도가 훌쩍 뛰어버렸다.

‘현역 S급 모험가···총지부장 소버린.’

같은 S급이라도 정상과 최하위의 실력 차이는 극명하다. A급과의 격차보다도 크다는 의견이 주를 이룰 정도로.

비록 요즘은 많이 휘청이고, 기사단에 비해 밀리는 추세라지만. 그런 바닥에서 현시대 최고라고 손꼽히는 사내와 대뜸 겨루게 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치밀한 작전이라도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법.

예선전 전부터 이리될 걸 알고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겠으나. 시간 여유는 당장 오늘 하루가 고작이었다.

‘이거 난감하네.’

솔직히 S급 달성만을 목표로 둔다면 굳이 이기려 들지 않아도 괜찮다.

상대가 상대기도 하고, 이미 보여준 모습들이 여럿 있으니까. 아마 우리 셋 모두 승급은 거즘 확정이리라.

하지만···

‘막판에 지면 모냥 빠지는데.’

차라리 다 이겨놓고 승급에 실패하는 걸 상정했지. 승급할지언정 패배하는 미래는 그리지 않았다.

이를 지켜볼 대중들도 전례가 없는 특이 사항, 모험가 길드 총지부장이 직접 나선다는 점이 더해져 기대감이 절정에 치달았을 텐데.

그런 마당에 아무것도 못 하고 지거나, 기권을 해버리면. 역치에 이전 행적은 잊히고 찝찝한 아쉬움만 남을 것이다. 그들도, 나도.

최악의 경우엔 속임수를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긴다. 설령 지더라도 최소한 접전은 펼쳐야 한다.

‘그래서···그건 뭐였을까.’

소버린이 폭탄선언을 내뱉을 당시. 나를 향했던 그 시선.

거기 담긴 감정을, 나는 기대라고 결론 내렸다.

이상한 일이다. 좀 튀는 행동을 몰아서 하긴 했다만, 그게 어디 ‘오랜만에 피가 끓어오르는군. 직접 부딪혀 봐야겠어.’ 이럴 수준인가?

나는 그저 수십 년 넘게 악명을 떨치던 철옹성을 격파하고, 그로 인해 식었던 세간의 관심을 다시 불러 모았으며. 전례 없는 사건에 휘말렸을 뿐이다.

‘그럴만···한가? ’

어쨌든 그놈이 이상한 거다. 아무리 신선한 충격이었어도 그렇지, 싸움닭 놀이터에 티라노가 끼면 쓰나.

생태계 교란종 짓을 한 마리아도 하다못해 참가 자격은 만족했다.

“휴우···”

본격적인 구상을 위해 소파에 몸을 뉘었다.

마리아가 내 위에 그대로 올라타 누웠고.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양 뺨을 번갈아 가며 콕콕 찔렀다.

“마리아, 총지부장 그 사람 직업군이 어떻게 돼?”

“배틀메이지.”

근접형 전투 마법사인가. 그 덩치면 무조건 격투가 아니면 대검 내지 도끼 쪽일 줄 알았는데.

그래도 양심상(?) 자기 발로는 뛰는구나.

“주요 능력은?”

“우으음···주먹으로 상대 스킬을 깨부숴.”

‘정직하게 공격을 뚫고 돌진하는 타입인 건가.’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여 상대도 파악하기 쉽지만, 그만큼 단순하게 강력하다.

특히 컨트롤 좋은 녀석들은 웬만한 건 다 피해버리고, 그나마 적중할 것도 파훼하는. 그야말로 마법사들의 악몽이었지.

‘배틀메이지도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마리아도 그 이상의 세세한 영역까지는 알지 못했다. 역시 눈과 귀를 통해 전해 듣는 거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샐리한테서 정보를 뜯어내려고 했는데, 마리아랑 아스트레아가 극구 말리더라. 저 둘이 이토록 합이 맞는 건 또 드물어서 적잖게 놀랐다.

근데 샐리가 파견 가서 없는 건 알겠는데, 왜 잠잠해지기 전까지는 모험가 길드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라는 거지.

“마, 만나는 사람마다 그대를 붙잡아서 괜히 시간만 허비하면 큰일이지 않겠더냐.”

“으, 응. 오빠 지금 완전 인기쟁이.”

“음. 그건 그렇네.”

아직 그렇게까지 흥분해서들 말린 이유는 해명이 안 된 것 같지만. 그런 사소한 걸 따지는 건 그녀들의 갸륵한 마음씨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넘겼다.

그보다도, 저게 마침 고민 중 하나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최근에 얻은 무기 조합 패시브인 농민 봉기. 이게 효과 자체는 출중한데, 단숨에 급부상한 내 명성 탓에 입지가 상당히 애매해졌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할 판국에 기존에 있던 것까지 사실상 봉인되고 만 것.

다른 것도 영 시원찮았다. 튜토리얼 존이나 PVP 신청을 그 상황에서 순순히 받아줄 리가 없고.

그나마 제 역할을 할 게 아군 보정이겠는데, 체급 차이가 뭐 보통 심각해야지. 막말로 데미지의 90%가 감소해도 주먹 한 방 한 방이 결정타일 거다.

‘마검사였던 나도 칼이 아니고 주먹만으로 일반 드래곤을 때려잡았던 실정이니···’

새로운 길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3일 이내에 로그인하지 않을 시 휴면 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 계정?’

아이디어가 영 안 떠올라 마리아의 뺨을 괴롭히고 있으려니.

여태와는 살짝 다른 배경과 폰트의 상태창이 눈앞을 장식했다.

뭐지. 나 그럼 3일 후에 영원한 잠에라도 빠지는 거야? 휴면 계정은 3달 동안 접속을 안 해야···

‘잠깐.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세계에 오고 슬슬 3달쯤 됐던가?’

그렇다면 이 상태창이 가리키는 휴면 계정 전환은 내가 아니라, 마검사 계정이라 보는 게 타당했다.

100년의 세월을 넘어 이곳에 왔건만. 이건 또 나를 기준으로 계산해 줬구나. 매번 느끼는 거지만 묘한 부분에서 성실하다.

상태창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나를 마리아와 아스트레아가 각각 쳐다봤다.

‘···이거 어쩌면?’

될지도 모르겠다. 앞선 두 행보와는 비교도 안 될 화려한 클라이맥스가.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파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마리아가 철푸덕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다.

“우우우···! 오빠가 마리아를 잊어 먹었어···!!”

“아니야 마리아,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솜주먹 응징형에 처해야만 했다.

* * *

S급 승급 시험. 본선 2라운드, 개인무투전 당일.

근래 들어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이날, 이 행사는. 역설적이게도 다소 저조한 반응을 끌어냈다.

아스트레아가 차력 쇼를 벌이든, 마리아가 상대방을 속박해서 즉석 간이 인형극을 열든. 다들 무언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기에.

척-

와아아아아아-

만석을 채운 관중석. 공간을 마저 메우려는 듯한 기세의 함성.

마치 이 순간을 위해 다들 여력을 남겨둔 것만 같았다.

“왔군.”

결투장에 막 들어서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소버린이 가볍게 맞이해왔다.

승급 시험 제도가 생긴 이래, 최초로 이루어지는 개인무투전 5번째 경기. 그 대전자들이 마침내 자리했다.

“그래도 같은 모험가인데, 필드 보스를 맡겨서 레이드 당하게 만들다니. 이거 엄연한 종족 차별 아닙니까?”

“라기에는 자네가 압도적인 우세이지 않았나.”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토벌전에서의 이변은 그가 행한 것이 맞다는 인정을 지나치듯 받아내며.

뭐,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작게나마 고마워는 하고 있다. 이런 좋은 무대를 만들어 준 장본인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 전력으로 하시렵니까?”

“그럴 생각이네. 선수는 양보하지.”

내 능력에 모종의 조건이나 예열이 필요하다고 본 걸까. 적어도 지금으로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잠시 후. 상호작용하는 긴장과 기대의 분위기 속.

삐이익-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로그인]

예고한 대로 팔짱을 낀 채 대기하는 소버린의 양해를 사양 없이 받아.

로그인 창을 불러내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했다.

[접속을 환영합니다.]

파아앗-!

빛에 휩싸여, 몸이 재구성 되어감을 느꼈다.

지푸라기는 머리카락으로, 쇠는 뼈와 근육으로, 헝겊은 피부로.

그 겉에는 어느덧 아련해진 장비들이 덧씌워졌다.

츠츠츠-···

소버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관중석에는 일동 침묵이 감돌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아이 님···!”

개중에는 짐작이 들어맞아 환호성을 내지르는 여인.

“저게, 오빠···”

진심으로 감탄하며 얼굴을 붉히는 어린 소녀.

“호오···”

나중에 한 판 붙어보자고 하기로 마음먹은 천마가 있었다.

“···그렇군. 그게 자네의 본모습인가.”

“글쎄요. 이걸 맞다고 해야 할지.”

이제는 다른 이유로 움직임이 멈춘 소버린의 질문에는 가벼이 대꾸해 준 뒤.

주객이 전도 돼, 괴리감이 드는 사람의 육체를 이리저리 살폈다.

하여 적응이 잘 안될까 싶다가도. 검을 손에 쥐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감각이 곤두섰다.

[현재 국외 IP로 접속 중입니다.]

쓴웃음이 지어졌다. 각오했던 부분이다.

이걸 단순 외국···으로 쳐야 할지는 고개가 갸웃해지지만. 확실한 건 국내 IP는 아니기에.

이걸로는 휴면 계정 전환을 무를 수가 없다.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죠.”

“···.”

검을 들어, 마나를 담았다.

“전력으로 가겠다고.”

이는 마검사 아이가 지피는 마지막 불꽃이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은 게임 계정을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비밀번호로 영어랑 숫자 조합만 쓰고 싶은데 자꾸 특수부호를 넣으라고 하지를 않나, 심하면 영어 대소문자를 다 넣으라고 하는 데도 있단 말이죠. 그래서 뭐였는지 까먹거나 첫 시도를 틀리는 경우가 잦아지고요. 이런 건 좀 균일화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비밀번호 조금 복잡해진다고 보안이 막 뛰어나지는 것도 아니고. 특히 대소문자 이거 떠올린 사람은 제 소설에 빙의시키고 싶어요.
다음화 보기


           


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