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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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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1

     

   “하암…”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새벽.

   버스를 타고 있던 나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며 눈을 끔뻑거렸다.

     

   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의 사람들 대부분이 상당히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학생도, 내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아침 뉴스를 확인하는 아저씨도.

     

   물론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끼이익!

     

   내 하품이 전염된 것인지 늘어지게 한숨을 뱉던 버스 기사가 신호를 잘못 보고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어엇!”

     

   갑작스러운 관성에 침묵이 깨지며 곳곳에서 외마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놓친 건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기… 학생, 미안한데 그거 좀 주워줄 수 있을까요?”

     

   “아.”

     

   앞좌석으로 적당하게 굴러 들어가 줍기 애매한 위치.

   나는 아저씨의 스마트폰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적당히 기울였다.

     

   「세계 곳곳에 나타난 거대한 탑, 조용히 지나간 1년.」

     

   손을 뻗자 스마트폰의 액정을 통해 최근 1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탑에 대한 내용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스윽.

     

   “고마워요 학생.”

     

   나는 조용히 스마트폰을 건넨 뒤, 버스 창밖에 보이는 우뚝 솟은 탑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부턴가 세계에 나타난 의문의 탑.

   구름을 뚫고 올라가 어디가 끝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탑이었건만 신기하게도 탑이 나타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처음 탑을 발견한 사람은 경복궁을 관리하던 평범한 시설 관계자라고 했다.

     

   ‘그냥 청소하러 들어갔는데 거기에 있었다고 했던가?’

     

   그 이후 탑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물론 유명한 과학자들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망상가들, 자신이 예언자라 주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지만 그들이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흠.”

     

   나는 고개를 돌려 탑에서 눈을 땠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난데없이 솟아난 기둥이 아니었다.

     

   오늘은 스카이 게임즈의 신입사원 면접날.

   어떻게 입사한 대기업인데 말단 사원인 내가 지각을 한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

     

   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한 나는 족히 사오십 층은 거뜬히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빌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판타지 게임에서나 보던 신전을 연상케 하는 입구.

   사실 입구를 제외하면 1층 전체가 통유리로 된 벽이었기에 가까이서 보면 약간 싱거운 감도 있었다.

     

   위이잉.

     

   자동문이 열리고 건물에 들어서자 면접을 보러 온 정장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복작거리는 1층의 로비라… 벌써 어지럽네.

     

   “어서 오세요. 오늘 면접 보는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면…”

     

   안내데스크에 있던 여직원이 손을 뻗어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앞을 지나갈 쯤, 그녀는 똑같은 멘트를 던지려다 나의 사원증을 보고는 민망한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아, 들어가세요. 오랜만에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네요.”

   “그럴 수 있죠. 그나저나 꽤 이른 시간인데 벌써 이렇게 모였네요.”

   “대기업이니까요.”

     

   그녀가 웃으며 나의 말에 대꾸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업에 입사한다는 것.

     

   어쩌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를 기회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랬었고 이 안내데스크의 여직원도 분명히 그랬으리라.

     

   “저기… 서세영 씨?”

     

   나는 그녀의 사원증을 슬쩍 보고는 여직원의 이름을 어색하게 불렀다.

   1년간 매일 아침 보던 얼굴이지만 이름을 부른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았다.

     

   “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

     

   “혹시 계단 보수공사 끝났어요?”

     

   나의 물음에 서세영이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지만 엘리베이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면접 목걸이 군단을 보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전에 완료된 걸로 알아요. 이용하셔도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인사팀은 20층인 걸로 아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고말고.

   저 사이에 끼어서 엘리베이터를 탈 바에 40층이라도 걸어서 올라가는 게 편하다.

     

   “저기보단 괜찮아요.”

   “그…으래요?”

     

   서세영의 눈이 순식간에 나를 훑고 지나갔다.

   평소에 하체 운동을 좀 해 뒀어야 했나 싶기도 했지만 지금 아쉬워 해 봐야 변하는 건 없었다.

     

   “일단 저는 가 보겠습니다. 부장보다 늦으면 잔소리가 심해서.”

   “어, 저기…”

     

   서세영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나는 재빨리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젠장 엘리베이터 탈 걸.

     

   “면접 보러 오신 분들은 이쪽으로…… 어? 김시인 씨?”

     

   내가 비상계단 철문을 열어젖히고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은 반쯤 썩은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른 오금석 대리였다.

     

   “왜 계단으로 왔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갈굼을 장전하는 그의 말투에 나는 떨떠름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북적이는 걸 좀 싫어해서.”

   “우와, 시인 씨는 체력이 남나 봐? 부럽네. 누구는 아침부터 뺑이치느라 정신이 없는데 말이지.”

     

   오금석.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인사팀 부장의 낙하산 출신이자 윗선에 알랑방귀를 상당히 잘 뀌시는 내 직속상관이 되시겠다.

     

   “아무튼, 저어어기, 저 사람들 따라서 강당에 가 있어. 굳이 사무실가서 뺀질거릴 생각 말고.”

   “넵.”

     

   제일 뺀질거리는 놈한테 뺀질거린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가 찼다.

   하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생각은 없었기에 일단 넘어가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오대리의 지시에 맞춰 눈치껏 앞서간 직원들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말단 사원이 할 만한 업무는 사람들의 안내를 맡는 잡일 정도였으니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건물의 크기만큼 길게 늘어진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를 인도한 직원이 공지를 하달했다.

     

   “9시부터 면접을 시작할 겁니다. 면접자들 번호랑 자리 맞춰서 앉혀주시고 혹시나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경비실로 연락 바랍니다.”

     

   직원의 안내가 끝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을 통과했다.

     

   ‘근데 썩 바쁘진 않아 보이는데?’

     

   넓은 강당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굳은 얼굴로 면접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오대리의 호들갑 넘치는 갈굼을 들을 만큼 나의 업무가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기… 선생님?”

   

   “엇. 네?”

     

   바로 옆에서 들려온 갑작스러운 중저음에 나는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하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여기 직원이시죠?”

     

   신경을 깨나 쓴 듯 짧고 깔끔한 포마드에 뚜렷한 이목구비.

   정장에 살짝 가려졌지만 열심히 관리한 것인지 운동한 태가 나는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무슨 일 이시죠?”

   

   “실례지만 통화 3분만 빌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가 휴대폰을 제출한 상태라…”

   

   “아… 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나의 폰을 받더니 전화번호를 빠르게 눌러 자신의 귀에 가져다댔다.

   하지만 잠시 후,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인지 민망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안 받으시네요…. 그나저나 고생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고생이라고 하기에는 저도 아까 막 출근해서.”

     

   남자가 자신이 차고 있는 면접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면접 보러 온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게임 관련 분야 일을 하고 싶었는데 경쟁자가 이렇게 많아서야…”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장래 희망을 따라서 직업을 찾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

   

   “대단하긴요. 원래 교육계 쪽에서 일을 했었는데 최근에 그만 뒀어요. 영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하하.”

     

   어쩐지.

   아까 나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하던 게 직업적으로 생긴 습관인 모양이었다.

     

   “전화 잘 썼습니다.”

     

   남자가 통화는 하지 못한 채 씁쓸한 표정으로 나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필요하시면 조금 더 쓰셔도 됩니다. 연락 못하신 것 같던데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급한 전화는 아니라서.”

     

   찝찝한 기분에 폰을 더 빌려줄까 싶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을 보니 통화에는 딱히 미련이 있는 것 같지 않아 그만두기로 했다.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남자.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가 먼저 손을 내밀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저는 박조철 이라고 합니다.”

     

   박조철.

   어감이 그의 외모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김시인입니다.”

   

   “오, 성함이 시인입니까? 포엣(Poet)이라… 독특하네요.”

   

   “많이 듣습니다. 흔하지는 않은 이름이라.”

     

   박조철이라는 이 남자는 과묵할 줄 알았던 첫 인상과 달리 꽤나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화 자체가 그 나름의 긴장을 푸는 방법이었는지 그는 질문을 많이 했고 어쩌다 보니 대화는 끝도 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평화로운 대화.

   매번 업무에 파묻혀 지내던 나에게 이런 평범한 대화는 스트레스를 푸는 꽤 좋은 방편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저는 이만 일하러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눈치 주는 꼰대들이 많아서요.”

     

   꽤 즐거운 대화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뭐, 나중에 제가 입사하면 그때 또……”

     

   하지만 그렇게 박조철의 인사가 이어지려는 그때.

     

   삐이이이-!

     

   “응?”

     

   오른손에 들려 있던 나의 휴대폰이 무식한 진동과 함께 기분 나쁜 소음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분산되며 소음의 발생지를 찾으려 했지만 곧, 그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삐이이이-!

     

   나의 휴대폰에서 시작된 것과 똑같은 소음이 강당의 모든 직원들에게서 울리기 시작했다.

     

   위험을 알리는 익숙한 경고.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던 박조철이 전화를 받지 않았던 누군가가 떠오른 듯 불안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봤다.

     

   “지진인가요?”

   “지진은 아닌 것 같은데….”

     

   회사 내부에서 따로 피난 방송이 없자 나는 방금 받았던 문자를 재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국가재난사태(4단계 심각)』

   – 현 시간부로 국가 재난 위기 경보를 심각으로 격상합니다.

   – 시민들께서는 상황이 완전히 파악될 때까지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하시기를 바랍니다.

     

   “국가재난…?”

     

   안전 안내 문자가 아닌 국가 재난 문자.

   일반적인 자연재해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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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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