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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EP.4

     

   진퇴양난.

     

   지금 우리의 상황을 이것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미, 미안해요… 정말, 정말……미안…”

     

   비상통로 앞에서 카드키를 수차례 찍어본 서세영이 새하얗게 질린 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미 극한의 공포 상태에 도달해 모든 의지가 꺾인 상황.

   옆에 있던 박조철 마저 더 이상 가망이 없다 느꼈는지 자신의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떨리는 숨을 내뱉는다.

     

   ‘진짜 이렇게 끝이라고?’

     

   정말로?

     

   나는 괴물들의 그림자가 서성이는 소화 분말 안을 가만히 응시했다.

   놈들이 쉬지 않고 어슬렁거린 덕분인지 박조철이 소화기로 만들어 낸 인공 안개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

     

   나는 손을 들어 굳은살이 깊게 박힌 나의 양손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

   그 어느 한순간이라도 저 뿌연 소화 분말보다 흐리지 않았던 미래가 있었던가?

     

   고아로 태어나 평생 따돌림을 당하고 가까스로 독립에 성공해 하루하루를 빌어먹던 쓰라린 인생이다.

     

   나를 위협했던 괴물들?

   지금 내 눈앞에서 썩은 내를 풀풀 풍기며 나를 찾고 있는 저놈들이 아니어도 나의 앞길에는 수많은 역경들이 존재해왔다.

     

   “아직.”

     

   나는 마음속 다짐을 아무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거칠고 힘든 삶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만 살아왔다.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을 위기라 부른다면 나는 단연코 지금보다 더 한 위기도 극복해낸 인간이라 당당히 외칠 수 있었다.

     

   “아직 안 끝났어.”

     

   그것은 하나의 발악과도 같았다.

     

   포기를 선택하는 것. 주저앉아 버린다면 그걸로 끝이다.

   어쩌면 존재했을지도 모를 돌파구와 선택지를 버리는 행동은 나의 지난날들을 모두 부정하는 꼴.

     

   “후우우……”

     

   핏기가 가신 입술과 함께 호흡이 떨려왔다.

   심장이 발광하고 평생 나의 것이라 여겼던 팔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요동친다.

     

   으득.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혀를 통해 씁쓸한 피 맛이 올라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두근.

     

   말에는 힘이 있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힘.

   끝나지 않았다고 중얼거린 그 순간, 가슴속 응어리가 폭발하며 아득한 어둠을 밝히는 하찮은 용기가 피어올랐다.

     

   언제 꺼질지 알 수 없는 빈약한 불꽃.

   허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띠링]

     

   그리고 나의 눈앞에 낯설기만 한 알림창이 새롭게 떠올랐다.

     

   [다수의 성좌들이 즐거워합니다.]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정신력에 감탄합니다.]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을 오랫동안 보고 싶어 합니다.]

   [한 성좌가 당신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좌우로 떠오르는 알림 따위는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주변의 사물과 상황을 파악하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해당 의견에 대한 찬반 토론이 진행됩니다.]

     

   서서히 옅어지는 소화 분말과 차분해진 괴물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지금 나의 앞에 주어진 선택지는 한정적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투표결과……]

   [과반수의 성좌가 찬성에 투표했습니다.]

   [당신에게 특전이 주어집니다.]

     

   ‘비상통로를 열 수 있는 카드키를 찾는다.’

     

   [당신에게 잠재력이 주어집니다.]

   [잠재력은 당신의 행동에 따라 필요한 스킬로 변화합니다.]

     

   [띠링]

   [잠재력이 변화합니다.]

   [빠른 납득(D+)을 획득합니다.]

     

   —

   [빠른 납득]

   랭크 : D+

   분류 : 패시브

   설명 : 당신은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이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침착해집니다.

   – 판단이 빨라집니다.

     

   ※ 해당 스킬은 잠재력이 각성한 스킬입니다. 성장의 여지가 있습니다.

   —

     

   타앙!

     

   “아…!”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튕겨지듯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에서 박조철과 서세영이 경악하며 외마디 탄성을 터트렸지만 돌아볼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히 있었다.’

     

   [빠른 납득(D+)이 발동합니다.]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지금 내가 찾는 것은 저 비상통로를 열 수 있는 알맞은 카드키.

     

   그리고 지금 나의 기억 속에는 그런 카드키를 가진 사람이 이곳 1층에 있었다.

     

   ‘여기쯤이었는데.’

     

   괴물이 나타나기 전의 상황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유리문을 깨려다가 소화기로 자신의 손을 찍었던 배나온 중년인.

     

   분명히 그는 임원들만 착용할 수 있는 붉은색의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괴물이 휘두른 팔에 의해 벽에 처박히는 장면 또한 생생하게 떠오른다.

     

   -크르륵…?

     

   흐릿한 시야의 너머로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허나, 놈들이 안개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보다 내가 중년인의 시신을 발견하는 게 조금 더 빨랐다.

     

   ‘미안합니다.’

     

   공포에 질린 눈을 부릅뜬 채로 로비의 입구에 죽어 있는 남자.

   나는 그의 명찰을 거침없이 뜯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두 사람을 향해 질주했다.

     

   -키야아아악!

     

   시간이 지나며 시야를 가리던 소화 분말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슬슬 초점이 잡히기 시작하는 괴물들이 고개를 들었고 나는 비상통로 앞에 서 있던 박조철을 향해 있는 힘껏 명찰을 집어던졌다.

     

   “조철 씨! 카드키!”

     

   박조철의 그림자가 나의 목소리에 움찔하더니 내가 있던 방향으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이내.

     

   [삐빅!]

     

   – 문이 열렸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시인 씨 빨리!”

   -키에에에엑!

     

   박조철의 다급한 외침과 괴물의 괴성이 동시에 로비를 메아리쳤다.

   그 순간 모든 괴물들의 고개가 비상통로로 꺾였고 나는 안내데스크를 뛰어넘어 곧장 문을 통과했다.

     

   괴물들이 달려든다.

   문은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

     

   “으아아!”

     

   박조철이 들고 있던 소화기를 가장 선두에서 달려들던 괴물에게 집어던졌다.

     

   터엉-!

     

   빈 소화기의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는 닫히는 철문 틈 사이로 균형을 잃은 괴물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우리는 괴물들이 비상통로의 문을 박살내기 전, 계단을 통해 상층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딘가 가장 조용한 층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안전한 장소를 물색했고 아직 사고의 흔적이 없는 복도 끝의 방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나갔어요?”

     

   평소였다면 알아듣기도 힘들었을 작은 목소리.

   하지만 감각이 예민해진 지금은 이런 속삭임마저 생생하게 들려왔다.

     

   끼……익……

     

   나는 박조철의 말에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복도를 살폈다.

   적막한 복도를 지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비명만이 짧게 메아리친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흐아아…….”

     

   박조철이 뒷골이 당기는지 참아왔던 숨을 한꺼번에 내뱉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아니,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으니 마른세수가 아닌가?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자 천천히 주변의 시야가 잡히기 시작한다.

     

   방의 구석에 놓인 작은 냉장고와 티 테이블.

   커피포트와 입가심용 사탕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탕비실인가…?’

     

   불행 중 다행.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일수록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식량이다.

   얼마나 버텨야 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체력의 안배를 위해…… 음?

     

   ‘근데 나 왜 이렇게 침착하지?’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삼도천의 뱃사공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 너머 저승사자가 이름을 세 번 부르기 직전에 도주한 게 조금 전.

   내가 심장이 뛰고 감정이 살아 있는 이상 지금은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괜찮아요?”

     

   하지만 갑작스러운 박조철의 물음에 나는 복잡한 생각을 접어두기로 했다.

   물론 그의 질문이 향한 곳이 내가 아닌 서세영이긴 했지만 말이다.

     

   “……네”

     

   서세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애써 아닌 척하고 있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

   여전히 몸을 벌벌 떨고 있는 그녀를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후우…”

     

   나는 긴장을 풀고 체력도 채울 겸, 탕비실의 냉장고를 열어 작은 보라색 캔 음료를 꺼냈다.

   약간의 탄산이 섞인 작은 포도음료 한 캔. 과도한 체력소모와 스트레스에는 당분만한 게 없다.

     

   “마셔요.”

     

   하지만 그녀는 내가 건넨 음료를 받아들 힘도 없는지 멍하니 내 손을 응시했다.

   아직도 패닉 상태인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도와줘야… 흠.

     

   치익. 딸칵.

     

   “포도주스나 오렌지 주스가 운동하고 마시기 좋데요.”

     

   나는 캔을 조심스럽게 열어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어차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다.

     

   “…고마워요.”

     

   이내 그녀는 조심스럽게 음료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박조철 또한 슬쩍 냉장고 앞으로 가더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저도 하나 마셔도 돼요?”

     

   예상치 못한 질문.

     

   “……그걸 왜 물어봐요?”

   “저는 여기 직원이 아니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절도죄가 성립될까 고민하는 듯한 저 표정을 보니 어이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실 거면 제 것도 하나 꺼내줘요.”

   “옙.”

     

   나의 말이 끝나자 박조철은 음료를 포함해 찬장을 뒤져 몇 가지 과자들을 꺼내왔다.

   그렇게 말도 없이 시작된 식사 아닌 식사.

     

   우리는 한참 동안 과자와 음료를 입에 욱여넣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서세영을 시작으로 우리는 대화의 장을 열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말씀을 못 드렸는데 두 분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아.”

     

   서세영의 말에 나는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서세영을 살린 건 내가 맞지만 그녀에게 뛰어든 이유는 사람을 구하겠다는 심리 따위가 아닌 내가 살기 위함이었다.

     

   VIP의 비상통로 카드키를 그녀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 바로 그녀였을 뿐이다.

     

   하지만.

     

   “아닙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만약 내가 서세영과의 거리가 조금만 더 멀었었다면 그녀를 구한다는 판단을 내렸을까?

   그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불편한 죄책감이 올라오려는 그때.

     

   띠링.

     

   “음?”

     

   [생존 1시간이 경과했습니다.]

   [생존자들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또 다른 알림이 우리의 귓가를 울렸다.

     

   [남은 생존자들이 ‘소량’ 회복합니다.]

   [남은 생존자 : 158/401]

     

   우리의 머리 위로 작은 별빛이 반짝인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알림이 사라지며 그동안 쌓였던 피로 또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저, 갑자기 몸이 좀 개운해진 것 같은데요.”

   “저도… 시인 씨는 어떠세요?”

     

   당황한 박조철과 서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의 이목을 끈 건 두 사람이 아닌 또 다른 알림이었다.

     

   [절반 이상의 플레이어가 사망한 상태입니다.]

   [밸런스를 위해 현재까지의 튜토리얼 업적을 집계합니다.]

     

   [튜토리얼에서 ‘가장 용감했던 자’를 획득합니다.]

   [튜토리얼에서 ‘가장 침착했던 자’를 획득합니다.]

     

   [현재 생존자들의 랭킹을 확인합니다.]

   [……]

   [업적 중간집계 결과. 당신은 현 좌표의 랭킹 ‘1’위 입니다.]

     

   띠링.

     

   [ 1,000 코인을 획득합니다. ]

     

   랭킹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어진 알림까지…

     

   나는 난데없이 나타난 게임 같은 시스템에 겨우 붙잡았던 현실감이 다시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랭킹 1위를 달성한 당신에게 특전이 주어집니다.]

     

   [튜토리얼#2 코인 상점의 이용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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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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