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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EP.8

     

   “어…”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는 첫인상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학창 시절이라면 친구들 앞에서 보인 바보 같은 행동 하나가 향후 몇 년간의 별명을 결정짓기도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인사를 하는 순간부터 상대를 가늠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심적인 안정이나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1층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감정은 확실한 당황이었으니 말이다.

     

   “분위기가 말이 아니군요.”

     

   사내 비상전력만 남은 것인지 어두컴컴한 1층을 훑어본 남궁천호의 한마디에 나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아포칼립스 상황이라 하면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을 하지 않던가.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그건 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허구… 그러니까 작품적 허용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압도적인 절망감.

     

   분명 건물 대부분의 사람들이 1층에 모인 것으로 판단이 되건만 이 공허함과 적막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우리가 특이 케이스였네.’

     

   빠른 납득이라는 스킬을 얻은 탓인지 나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세 사람 또한 나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이제는 어느 정도 긴장을 다스릴 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나는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사람을 찾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의 상태가 다 최악이라고 해도 조금 전 방송을 했던 그 사람까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헛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의 예상이 적중한 듯, 나는 우리의 앞으로 걸어오는 한 명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안녕하세요.”

     

   분명 방송에서 들렸던 그 목소리가 분명했다.

   하지만 나를 당황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그녀의 외모였다.

     

   내 어깨보다 조금 더 아래에 위치한 작은 키와 아무리 봐도 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외모.

   탈색과 염색을 반복한 듯 금발에 가까운 머리카락과 어깨 쪽에 찢어진 소매로 드러나는 분홍색 꽃 문신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가민이라고 해요. 아까 방송했던 사람이에요.”

     

   비명을 많이 지르지 않았던 듯, 아직 생기가 남아 있는 목소리.

   그녀가 작은 손으로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나는 어정쩡하게 그 악수를 받았다.

     

   “어… 김시인입니다. 여기 인사팀 사원이고요.”

     

   내가 인사를 하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나의 옆구리에 고정된 검을 스쳐지나갔다.

   분명 1층에 도착했을 때, 기선제압을 하려고 눈에 띄게 착용한 것은 맞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든다.

     

   내 계획은 아포칼립스에 클리셰로 꼭 등장하는 양아치의 기를 죽이는 것이었지 이런 꼬마를 상대로 위협을 가할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이 칼은 튜토리얼 보상으로 받은 겁니다. 일단 저는 위험한 사람은 아니고 그러니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그녀가 묻지도 않은 정보를 주절거리며 나를 변호하고 있었다.

   나중에 박조철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이때 내 모습은 그 말을 내뱉은 이후로 훨씬 위험한 사람으로 보였더랬다.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부터 봤는데 별로 위험한 사람들 같진 않아서 인사한 거니까.”

     

   하지만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자신을 한가민이라 소개한 이 아이가 검을 바라본 이유는 나를 경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괴물을 잡았다는 메시지…… 아저씨가 하신 건가요?”

     

   핵심을 찌르는 질문.

   나는 그녀의 질문에 긍정하며 뒤에 있던 세 사람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다 같이 잡은 거지만요.”

   “역시.”

     

   그녀가 나의 답변을 들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생각이 깊어지는 듯, 말이 없어진 그녀.

     

   대화가 끊어지자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층의 난리 통에 곳곳에 뿌려진 소화분말과 여기저기 쓰러져 차갑게 식어 버린 무수한 시체들.

   이곳은 가장 많은 희생이 발생한 장소였고 같은 이유로 가장 꺼림칙한 장소였다.

     

   하지만 많아봐야 스무 살 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가만히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주변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쪽은 무슨 일로 회사에 계셨던 겁니까?”

     

   나는 묵묵히 있던 그녀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녀는 별게 아니라는 듯,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엉뚱한 답변을 툭 하고 내놓았다.

     

   “학교 과제 때문에요.”

   “예?”

     

   예상치 못한 그녀의 대답에 나는 나도 모르게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교 과제 때문에 왔다고요. 저 이래 봬도 대학생이거든요. 뭐, 아직 1학년이지만.”

     

   오늘… 아니 정확히는 어제였던 스카이 게임즈의 신입사원 면접날.

   황당하게도 갓 스무 살이 된 눈앞의 여자아이는 사람이 득실거리는 대기업에 들어와 임원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썰을 풀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서로 궁금한 게 꽤 많은 모양인데 우리 앉아서 이야기 나누죠. 다리아파요.”

     

   그렇게 말한 한가민은 앞장서서 비상등이 주변을 비추는 밝은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대화.

   떠들다 보니 천천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아이… 침착한 것과는 별개로 좀 특이한 성격을 가진 것 같았다.

     

   ***

     

   째깍. 째깍.

     

   [남은 시간 : 01:00:00]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우리의 대화가 무르익을 쯤,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고 싶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금 부담스럽네.’

     

   어쩌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생존자들의 중심에 서게 됐다.

   아마도 괴물을 잡은 게 우리라는 소문을 한가민이 은근슬쩍 퍼트린 게 원인이 된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구심점이라고 했던가.

   나는 이참에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이끌고 1층 로비에 있는 시체들을 다른 방으로 옮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저 1층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사람들이 떠올리는 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작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 명씩 옮겨지자 그것은 죽은 자를 애도하는 하나의 장례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

     

   주변 정리를 마친 나는 안내데스크에 앉아 사람들을 한 명씩 불러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추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뭘 하실 수 있다고요?”

     

   세상은 넓고 능력자는 많다.

   특히 스카이 게임즈를 다니는 직원들은 꽤 많은 인원이 자신의 꿈을 진로와 현실에 빼앗긴 것이 아닐까 싶을 지경이기도 했다.

     

   “어릴 때 검도를 오래 배워서 검을 좀 다룰 줄 압니다.”

   “오, 얼마나 하셨는데요?”

   “15년 정도 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이거 다 마무리되면 저 좀 가르쳐 주세요.”

   “네.”

     

   운동을 전문적으로 배운 준프로급 선수도 있었고.

     

   “화염병 제작법을 알고 있습니다.”

   “와! 이건 진짜 대박인데요.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찾아볼게요.”

   “아, 그럼 혹시 염소산이랑 질산염이랑 니트로글리세린…”

   “패스.”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

     

   “장난감 총을 살상력 있게 개조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총 비슷한 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요. 그런데 그거 불법 아닙니까?”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사제 폭탄도 만들 줄 알아요.”

   “…왜요?”

   “취미입니다.”

     

   어, 그냥 좀 위험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특기를 가진 사람들을 분류해냈다.

   게임 회사라는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잘나가는 대기업이라 엘리트 들을 모아놔서 그런지 이곳에는 정말 다양하고 특이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도우미가 말한 휴식이 끝나기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건물 안에 남아 있는 식량들을 한 곳에 모았고 그 외에 필요한 물품들의 정리를 마쳤다.

     

   “이 정도면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죠?”

     

   한가민이 생존자들의 기술과 물건을 정리한 종이를 나에게 넘겼다. 내가 교수라면 A+를 주고 싶어질 정도의 보고서.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를 보고 있자니 이 아이의 능력이 꽤 뛰어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한가민 씨?”

   “저기요. 저 오글거리니까 저기 언니 오빠들처럼 그냥 편하게 부르면 안돼요?”

     

   나의 딱딱한 호명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응수했다.

   대충 그녀의 감정이 이해는 됐다. 작년 까지만 했어도 급식을 먹던 학생이었을 테니 어른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듣는 게 상당히 어색할 테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우선 수긍하기로 하며 말을 편하게 놨다.

     

   “너 진짜 스무 살 맞아?”

   “누가 그래요. 저 스무 살이라고?”

   “어? 아니야?”

   “아닌데요?”

     

   그녀의 대답에 나의 고개가 삐딱하게 꺾였다.

   분명 대학 과제 때문에 회사를 방문했던 거라고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 나의 눈앞에서 살짝 웃음을 짓는 한가민이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주위의 눈치를 보더니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사실 서른이에요. 그러니까 둘이 있을 때는 누나라고 부르세요.”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한가민.

   하지만 내가 그 말에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물품 정리를 맡았던 남궁천호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시인 씨, 물품 정리는 대충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나는 남궁천호가 가져온 종이를 건네받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천호는 무슨 궁금한 게 있었던지 나를 보며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정확히 뭘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조금 뜬금없는 질문. 나는 그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아뇨, 사람들한테 특기는 물어보셨는데 검도하시는 분 말고는 특별한 지시가 없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제야 남궁천호의 질문을 이해한 나는 듣는 사람이 없나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는 그에게 가까이 오라는 의미로 손짓했다.

     

   “사실 저도 모릅니다.”

   “…네?”

   “저도 저 사람들 데리고 뭘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요.”

     

   나의 말에 남궁천호가 멍하니 입을 벌렸고 한가민이 슬금슬금 다가와 귀를 쫑긋거린다.

     

   “천호 씨, 사람들이 조직에서 소속감을 느끼려면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그게 무슨?”

     

   나의 말에 천호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예상했던 반응, 그렇게 나는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할 일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일이라도 상관없어요.”

     

   나는 손을 들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쭈그리고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리켰다.

     

   언제부턴가 청테이프를 감은 둔기를 들고 검도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

   로비 입구에 앉아 대화하며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은 사람들도.

     

   공포를 뒤로 밀어두고 작은 희망을 품은 그들의 모습에는 미묘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져 있었다.

     

   “뭐, 사람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뭐라도 하지 않았으면 아마 저 사람 중에 한둘쯤은 지금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을 걸요?”

     

   로비 1층은 한가민이 생존자들을 집합시키고 ‘우리’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진 순간부터 통제가 필요한 집단이 되었다.

     

   남은 시간 동안 이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분명히 패닉에 빠진 누군가가 사고를 쳤을 것이라는 게 나의 예측이고 판단이었다.

     

   “저… 그런데 저한테는 알려 줘도 되는 겁니까?”

   “괜찮아요. 천호 대리님은 딱히 피해 끼칠 캐릭터 같지는 않았거든요.”

   “왜죠?”

   “대충 보면 알아요.”

     

   나는 탕비실에서 있었던 상황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자신의 코인을 사용해 구매한 포션을 곧장 박조철에게 먹인 남궁천호.

     

   박조철 본인도 하지 못한 생각을 떠올린 그는 겁이 난다고 멍청한 행동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

     

   “슬슬 시간이 되어가는군요.”

     

   [남은 시간 : 00:05:00]

     

   여전히 로비의 유리창 밖은 평화로웠다.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이 역력했다.

     

   조금 전에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다 함께 식사를 했지만 당연하게도 음식을 편안히 챙겨 먹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후우…”

     

   어느새 1층 로비의 분위기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순간 괴물을 물리치고 모두를 구원한 구원자.

     

   내 생각에는 그저 거창하고 부담스러운 표현뿐이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인 씨, 뭔가 한마디 하실래요?”

   “……훈화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뭐, 그런 분위기 인 것 같아서.”

     

   서세영의 말에 나는 안내데스크에 기대어 앉은 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눈을 반짝이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그때 나는 그들에게 어떤 훈화도, 훈시도 전달할 수가 없었다.

     

   띠링.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응?”

   갑작스럽게 들려온 알림.

   나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돌아봤다.

   가만히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의 시야에 잡혔지만 나는 이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도저히 떨쳐 낼 수 없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나를 걱정하는 서세영의 목소리.

   그리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박조철을 보니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임무를 확인하십시오.]

     

   나에게만 떨어진 개인 임무다.

   그리고 그 내용의 끝자락을 확인한 순간.

     

   나는 그 어떤 설명도 하지 못한 채, 비상계단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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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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