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

   EP.9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덩그러니 1층에 남겨진 사람들은 갑자기 김시인이 뛰어 들어간 비상구를 바라보며 적잖게 당황하던 중이었다.

     

   “그, 그분 갑자기 어디로 가신 겁니까?”

   “다시 오시는 거죠? 그렇죠?”

     

   튜토리얼에서 괴물에게 대항하고 심지어 사냥까지 성공한 유일한 사람.

   현재 1층은 김시인의 존재 하나로 버텨가고 있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갑자기 사라질 거면 말이라도 하고 가던가.’

     

   무너지던 모래성을 겨우겨우 붙잡아둔 하나뿐인 장치가 사라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부재에 당황한 것은 김시인의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금방 돌아오실 겁니다.”

     

   박조철은 사람들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도대체 김시인이 무슨 연유로 저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의 동요가 발생하는 건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조철의 말에도 사람들의 눈빛은 쉬지 않고 흔들렸다.

   한국인에게 ‘금방 돌아온다’는 말은 ‘거의 다 도착했다’와 거의 동급으로 취급되는 유명한 구라가 아니던가.

     

   “이봐 당신.”

     

   그런데 그때 사람들의 앞으로 나선 누군가가 단호한 어조로 말하며 박조철에게 다가왔다.

   볼록한 배와 함께 반쯤 벗겨진 머리가 두드러지는 중년인.

     

   “김시인이라는 저 직원. 금방 돌아오는 거 확실해?”

     

   그는 초장부터 박조철에게 반말을 시전했다. 누가 봐도 무례한 그의 언행에 사람들의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 누구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 살려고 도망간 거 아니냐 이 말이야.”

     

   중년인의 말에 박조철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봤다.

   말도 안 되는 억측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김시인의 이탈에 당황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른 채, 중년인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마, 맞아요! 들어 보니까 그 말도 안 되는 괴물을 잡은 게 그 사람이라며? 그럼 보상으로 받은 것도 많을 텐데 나누지도 않았어!”

     

   “그래! 지금도 그래! 무슨 일인지, 어디에 갔는지 설명은 해 줘야…!”

     

   순식간에 시장바닥이 되어 버린 1층 로비. 사람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의 틈을 뚫고 나온 한 사람이 있었으니.

     

   “아! 시끄러우니까 좀 닥쳐!”

     

   한가민이 자신의 금발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사람들을 향해 일갈했다.

   웅성거림을 뚫고 나온 그녀의 카랑카랑한 외침이 로비를 메아리쳤다.

     

   침묵.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잠자코 있던 한가민이 중년인의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화장실 간다고 했어요. 됐죠? 그러니까 좀 기다리라고, 시간 많이 남았잖아.”

     

   [남은 시간 00:03:21]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따라 올라가 보시던가. 응?”

     

   주변 곳곳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분위기가 반전되고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진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녀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입을 열지 못 하는 이유는 그들이 지금 아무리 떠들어봐야 바뀌는 게 없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

     

   “조금만 기다려 봐요. 혼자 도망갈 거였으면 1층에 오지도 않았겠죠.”

     

   “…젠장.”

     

   한가민의 말에 중년인은 ‘안 돌아오면 두고 보자’는 되지도 않는 으름장을 놓으며 뒤를 돌아섰다.

     

   중년인을 보며 짧은 메롱을 선사한 한가민.

   그녀는 상황이 일단락되자 서세영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언니, 그 아저씨는 어디 갔데요?”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조금 전에 멋있더라. 남자였으면 아주 반할 뻔했어.”

     

   서세영이 떨리는 한가민의 어깨를 살며시 잡아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스무 살의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벅찼을 상황. 서세영은 그 와중에도 대단한 기지와 용기를 보여 준 한가민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으음. 저 방향이면 위층으로 올라가신 건 분명한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박조철의 의문에 남궁천호가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옆을 스쳐지나갔던 김시인의 모습.

   그는 1층에서 서세영을 구하던 그때와 비슷한 긴장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확한 김시인의 심정을 유추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감정이 그때와 비슷하다면 그가 뛰어올라간 것이 그리 좋은 이유는 아닐 것 같았다.

     

   “괜찮을 거예요. 우리 그렇게 믿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봐요.”

     

   서세영의 말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우미가 허락한 남은 휴식 시간은 이제 3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우리는 그저 김시인이 자신의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다음 임무가 순탄히 진행되도록 준비하면 될 뿐이었다.

     

   ***

     

   ‘미치겠네.’

     

   갑작스러운 임무 알림이 떠오른 게 벌써 30초 전.

   지금의 나는 새로운 알림을 읽으며 허비한 그 몇 초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미친 듯이 20층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후욱, 후욱.”

     

   거칠어진 숨소리가 나의 귓가를 울렸다.

   이건 거의 반쯤 날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

   눈앞이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지만 정신을 바로잡을 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

   『등단 – 登壇』

     

   주제 : 이동

   난이도 : 히든

   임무 : 제한 시간 내에 튜토리얼이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가라.

   내용 : 당신에 대해 궁금해하는 성좌들이 당신을 불렀다. 그들의 부름에 응할지 응하지 않을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보상 : ???

   실패 페널티 : 제공받은 모든 능력 압수 / 해당 좌표의 처분

   —

     

   [제한 시간 : 00:01:00]

     

   ‘미친 새끼들…!’

     

   나는 임무의 내용에 떡하니 적힌 뻔뻔한 선택권에 실컷 욕설을 퍼부었다.

     

   내가 1분 내로 20층에 가지 않으면 우리가 있는 이 건물을 처분하겠다는 말.

   그 이전에 있는 능력의 몰수만 해도 기가 찰 노릇이었건만 처분이라는 단어 하나만큼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남은 시간 00:00:26]

     

   나는 거의 2초에 한 층을 오르는 괴랄한 속도를 유지하며 미친 듯이 계단을 올랐다.

   각성 이후로 비약적으로 강화된 몸의 상태에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비상구의 문부터 거칠게 열어젖혔다.

     

   콰아앙!

     

   분명 아침에도 봤던 익숙한 장면이다.

   물론 이번에는 계단으로 올라온 나를 갈굴 오금석 대리가 없었지만 같은 이유로 나에게 강당의 방향을 안내해 줄 오금석 대리가 이 자리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디였지?’

     

   아침에는 지각하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만 급급해서 강당의 정확한 방향을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 이후로 괴물이 나타났을 때는 그저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고 달렸으니 내가 길을 기억할 리가 만무했다.

     

   “후우…”

     

   나는 생각했다.

   물론 생각이라는 게 귀한 시간을 잡아먹을 수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에게는 성좌라는 관음증 환자들이 허락한 사기적인 능력이 하나 있었으니까.

     

   [빠른 납득(D+)이 발동됩니다.]

     

   한순간 나의 눈앞이 맑아졌다.

   지금 남은 시간은 고작 20초.

   나는 나의 본능에 따라 가장 익숙하다 생각되는 복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면 정면으로 달리다가 샹들리에가 보이는 위치에서…

     

   ‘저기다…!’

     

   그렇게 소비된 10초.

   멀지 않은 곳에 강당의 문이 보였다.

   임무의 알림창에 나온 내용은 튜토리얼이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가라는 것.

     

   나의 튜토리얼이 시작된 지점은 분명히 20층의 강당이었고 나는 아슬아슬한 시간을 남기고 강당의 문손잡이를 부여잡을 수 있었다.

     

   [남은 시간 00:00:05]

     

   나는 심호흡 대신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이 문을 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벌컥!

     

   나는 살기 위해 강당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완벽한 무無의 공간이었다.

     

   “어?”

     

   끔뻑.

     

   나는 눈을 수차례 감았다 떴다.

   분명 강당의 문을 열었을 뿐인데 지금 내가 서 있는 장소는 문이 열린 강당이 입구 따위가 아니었다.

     

   완벽한 백색의 공간.

     

   “이게 도대체 무슨…]

     

   [어?]

     

   순간 나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묵음처리 되며 머릿속을 울렸다.

   사위가 고요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나의 목소리는 알 수 없는 힘에 막혀 나의 달팽이관을 자극하지 못했다.

     

   [……]

     

   하지만.

     

   우웅.

     

   나의 눈앞에 익숙한 불꽃 하나가 살며시 피어올랐다.

   주먹보다 조금 더 큰 푸른 빛깔의 불꽃.

     

   츠츠츳.

     

   그리고 이내 그 불꽃이 일렁거리며 당연하다는 듯이 턱시도를 입은 이족보행의 토끼가 등장했다.

     

   – 여어.

     

   하지만 토끼의 외견이 지난번에 봤을 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이즈가 되어 버린 토끼.

   놈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면 같은 존재라는 생각은 못했을 것 같았다.

     

   – 랭킹 1등 플레이어 씨, 용케도 늦지 않고 도착하셨… 아, 아니지. 아니지. 제때 도착하실 거라 믿고 있었답니다! 휴우! 컨셉 깨질 뻔했네!

     

   여전히 장난스러운 말투가 가득 담긴 녀석의 말.

   이 공간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만히 마음 놓고 있을 장소는 아닌 것 같았다.

     

   [……]

     

   나는 허공을 밟고 서 있는 토끼를 보며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토끼는 나의 의도를 눈치챈 듯, 나름 친절한 설명을 이어갔다.

     

   – 아, 목소리는 안 나올 겁니다! 애초에 이곳은 당신들처럼 격이 낮은 존재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니까요.

     

   완벽한 백색의 공간.

   벽도, 천장도, 그 무엇도 없는 공간에 나는 덩그러니 ‘존재’만 하고 있었다.

     

   – 아무튼, 성좌님들! 시간이 없으니 슬슬 이 인간 쫓아내야 돼요. 안 그러면 미치든가 펑! 하고 터져 버릴지도 몰라요!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토끼.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나를 짓누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커헉!]

     

   인간에게는 감각이라는 게 존재한다.

   보통 오감으로 나눠 미각, 후각, 촉각, 시각, 청각을 말하는데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압박감은 그런 감각을 떠난 육감의 영역 그 자체였다.

     

   혹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볼 때, 그 시선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것에 대해 영적인 감각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초능력에 가까운 미지의 영역이라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선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격을 초월한 물리력의 행사]

     

   광활한 대자연을 바라볼 때 느끼는 압도감의 수천, 수만 배에 달하는 기운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 저, 저기요! 성좌님들! 잠깐만요! 그렇게 자세하게 보시면 이 인간 죽어요!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토끼가 허공에 손사래를 치며 상황을 중재했다.

   그리고 나를 짓누르던 감각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윽고 역겨운 구토감이 나의 정신을 뒤틀기 시작했다.

     

   – 아놔, 미치겠네. 아무리 궁금해도 그렇지 영혼까지 다 훑어보면 어쩌자는 거야.

     

   토끼가 짧게 짜증을 내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지팡이를 휘적거린다.

   그리고 잠시 후, 나의 시야를 장악하던 무의 공간이 옅어지며 그곳은 천천히 20층의 강당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쿨럭!”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갑갑한 기분이 들어 크게 기침을 했다.

     

   후두둑.

     

   “씨…이발…”

     

   그와 동시에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는 다량의 피.

   도대체 그놈의 성좌라는 놈들이 뭔 짓거리를 해 놓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를 제대로 헤집어 놨다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했던 것 같다.

     

   – 에휴…

     

   눈에도 피가 흘러나왔던지 나의 앞에 선 토끼가 불그스름하게 보였다.

   분명 사이즈는 손바닥만 한데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의 눈빛을 보니 내가 언제부턴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당신 잘 들어요. 원래 플레이어한테는 이런 혜택 같은 거 안 돌아가요. 그러니까 영광인 줄 알라고요.

     

   말을 마친 토끼가 턱시도의 소매에 앙증맞은 손을 집어넣더니 박조철이 마셨던 하급 포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포션병을 꺼내 들었다.

     

   퐁!

     

   뚜껑이 열린 포션병을 토끼가 슬쩍 기울인다.

   한 줄기가 되어 떨어지는 포션이 나의 입가를 청량하게 적셨고 나는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액체를 받아 마셨다.

     

   꼴깍… 꼴깍…

     

   포션이 식도를 넘어갈수록 어지럽던 정신이 맑아지고 뒤집어졌던 장기가 제기능을 시작한다.

   고작 열 방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양이었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 흠, 이만하면 됐겠… 너무 처절한 거 아니에요? 그만 좀 빨아 먹어 이 양반아.

     

   쬽쬽!

     

   한 방울도 아깝다.

   이걸 먹고 체력이 즉각 회복된다는 감각이 생기니 도저히 남길 수가 없었다.

     

   쬽쬽쬽쬽!!

     

   – 어어? 자, 잠시만! 그만! 그만 먹어! 야 임마!

     

   나는 처음에 입가에서 흘러 바닥을 적신 포션까지 남김없이 섭취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이런 좋은 약을 버려서야 나중에 후회할 일밖에 남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띠링!

     

   그 포션은 내가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만한 자양강장제 수준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급 엘릭서를 섭취했습니다.]

     

   [보유한 모든 능력치가 Lv.2 만큼 상승합니다.]

   [잠재력을 획득합니다.]

     

   빠른 납득(D+)의 베이스가 되었던 그 특성.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잠재력을 획득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