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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EP.10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폭소합니다.]

   [소수의 성좌들이 재밌는 장면을 봤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의 눈앞에 떠오른 익숙한 시스템 창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성좌들의 대화도 변화한 상태창도 아니었다.

     

   – 이이익! 땅에 떨어진 걸 왜 빨아먹어!

     

   바닥에 흘린 정체불명의 포션을 향한 나의 추태에 토끼가 기함을 토하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 아니, 입에 안 들어간 거 같아서 몇 방울 더 줬더니 그걸 기어코…! 위생 관념은 어따 팔아먹은 거야? 자존심은? 인간의 존엄성으으은?!

     

   토끼가 쉬지 않고 따박따박 잔소리를 해댄다.

   하지만 나는 놈의 말을 들으며 귀가 따갑기 이전에 머릿속 깊은 곳에서 원초적인 의문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왜… 말로만 떠들지?’

     

   저 토끼는 인간의 상식을 확연히 벗어난 존재였다.

   허공에 불을 일으키고 그 안에서 괴물들을 소환해내던 무자비한 존재.

     

   그런데 그런 도우미가 바닥에 떨어진 포션을 좀 빨아먹었다고 말로만 노발대발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수로 능력을 줬으면 다시 뺏으면 될 일 아닌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직접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나의 말을 듣고 놈이 정말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지.’

     

   나는 놈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토끼는 나를 향해 걱정이 가득 담긴 말투로 운을 띄웠다. 물론 내 건강 걱정은 아니었지만.

     

   – 당신 혹시 그거 다시 토해주시면 안 됩니까? 지금 그 상태면 밸런스가 좀… 그런……

     

   놈이 진심으로 억울해하며 나를 향해 중얼거린다.

     

   한숨과 한숨. 그리고 또 한숨.

     

   하지만 내가 한참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녀석은 이내 체념한 듯, 양손을 들어 올리고는 나를 노려봤다.

     

   – 하아, 이번 건은 제 실수가 맞으니 그냥 넘어갈게요. 원래 도우미들은 시나리오를 제외하고는 플레이어들에게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거든요.

     

   녀석의 마지막 말에 나의 의문은 더더욱 가중됐다.

   관여를 해서는 안 되지만 죽을 것 같으니 약은 먹여줬다?

   완벽히 모순되는 말과 행동이다. 하지만 이어서 중얼거린 토끼의 말에 나의 의문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었다.

     

   – 쳇, 큰손 후원만 아니었어도……!

     

   나에게 비약을 먹인 것이 토끼의 의도가 아닌 모양.

     

   성좌라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유추하건데 나를 죽일 뻔한 것도 그들이었고 나를 살리고자한 것도 그들의 선택인 것 같았다.

     

   ‘아주 가지고 노는군.’

     

   초등학생이 길에 나열된 개미를 관찰하고 가지고 놀 듯, 놈들 또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니, 그저 나를 바라본다는 압박감 하나만으로 장기가 뒤틀리고 피가 토해지는 경험을 했으니, 놈들은 개미 위의 초등학생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까.

     

   – 이거 히든 미션 클리어 보상은 당신이 먹은 그 엘릭서로 퉁칠 겁니다! 그리고 슬슬 1층으로 내려가시죠? 휴식 시간 끝나면 아주 난리 날 건데?

     

   토끼가 심술궂은 말투로 빈정거렸다. 그런데 휴식 시간이라니 무슨… 아?

     

   [튜토리얼 #2-0 (준비)의 종료까지 남은 시간]

   [00:00:20]

     

   와 돌겠네.

     

   – 안녀어엉!

     

   나는 나를 향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토끼를 뒤로한 채, 곧장 강당을 빠져나왔다.

   길게 늘어진 복도의 끝. 이제 길을 알고 있었기에 비상구 입구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늦어…!’

     

   비상구 앞에 도착한 나는 남은 시간을 확인한 뒤, 비상구 옆에 보이는 엘리베이터로 시선을 옮겼다.

     

   [남은 시간]

   [00:00:10]

     

   올라올 때, 사용했던 계단을 여유롭게 뛰어 내려갈 시간은 없다.

   나는 달리던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그대로 꽉 닫혀 있던 엘리베이터 입구를 발로 힘껏 밀어 찼다.

     

   터어어엉!!!

     

   미닫이문이 여닫이문으로 되는 것은 한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시원하게 열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

     

   순간 머릿속에 주마등이 스쳐가며 나의 시선이 총 3회의 급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비상구를 한 번.

   이제 9초가 되어버린 타이머를 한 번.

   그리고 지름길인지 황천길인지 구분되지 않는 나락을 한 번.

     

   탓-!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문을 향해 뛰어들었다.

     

   박살난 엘리베이터의 문짝이 좌우로 덜렁거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였을 뿐. 순식간에 나의 시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직 터널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흐으읍!”

     

   어제의 나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미친 짓거리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신체가 비약적으로 강해진 상태였고 나는 이번 한 번만 강화된 몸을 맹신해 보기로 했다.

     

   콰아앙!

     

   발돋움을 하며 정면의 벽을 걷어찼다.

   힘의 방향은 대각선 아래. 나름의 효과가 있었던지 속도를 받기 시작하던 몸에 조금이나마 제동이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나는 엘리베이터 양쪽의 벽을 반복적으로 걷어차며 중력에 의한 가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점차 가까워지는 1층과의 거리.

   피부를 스치는 공기의 저항에 눈이 시려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마지막 포인트를 향해 힘차게 도약했다.

     

   ***

     

   그로부터 약 1분 전.

     

   “거 봐! 내가 안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역시 혼자 도망간 게 맞았어!”

     

   구석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중년인이 벌떡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한가민이 아무 말도 않은 채,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기세가 오른 중년인이 신나게 입을 털기 시작한다.

     

   “당신들도 속은 거야! 괴물을 같이 사냥했다고?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지금 옆에 없잖아!”

     

   비릿한 미소를 짓는 중년인.

   짜증이 돋은 박조철의 이마에 순간 실핏줄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박조철은 고민했다. 저놈의 아구창을 지금 날리는 게 맞을까, 아니면 경고를 한 번쯤은 하고 날리는 게 맞을까.

   하지만 박조철이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낌새를 보이자 그것을 확인한 남궁천호가 슬그머니 그를 중재했다.

     

   “우선 저희끼리라도 준비를 합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도주로도 확인하고 괴물이 나타나면 서로 도와줄 수 있게 각자 위치로 이동해 있으시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부정적인 인간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남궁천호도 짜증이 몰려왔다.

     

   허나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법.

   애초에 이 튜토리얼은 개개인에게 주어진 임무였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라고 설계된 것이 아니었으니 저런 쭉정이는 빠르게 쳐내는 게 옳다.

     

   하지만 이 답답한 겁쟁이 빌런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고 이전에 김시인이 언급했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위치를 잡아? 싫다면 어쩔 건데, 내 옆에 괴물이 나타나면 구해줄 거야? 그놈처럼 도망이나 칠 줄 어떻게 알고! 나는 당신들 안 믿어!”

     

   그가 성큼성큼 계단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명의 이탈. 하지만 그건 그저 한 사람이 빠졌다 정도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저, 저도 그냥 다른 층에 숨으면 안 될까요?”

   “저, 저도요!”

     

   중년인 가까이 있던 사람이 몸을 움찔거리며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휴식이 고작 10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

     

   투웅…

     

   하지만 그들이 돌아서는 순간 지금까지 들린 적이 없었던 낯선 소리가 건물을 울렸다.

     

   “…방금 그 소리 들었어요?”

     

   남궁천호의 날이 선 한마디에 박조철이 귀를 쫑긋 세웠다.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파열음. 그리고 이어지는 날카로운…

     

   피이이……

     

   파공음이었다.

     

   도우미가 허락한 시간이 다 되어가니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괴물이 나타나는 걸까?

   아니면 건물이 무너지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사람들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몸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00:00:05]…

   [00:00:04]…

   [00:00:03]…

     

   그리고 그때.

     

   콰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앙!!!

     

   엘리베이터에서 엄청난 흙먼지가 뿜어져 나오며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쿠웅!

     

   “으허, 으허헉, 으헉!”

     

   한순간에 박살난 엘리베이터의 문짝과 함께 중년인이 공중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그는 허리디스크가 터진 건지 뭔지 굉장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땅바닥을 열심히 구르기 시작했다.

     

   솨아아…

     

   갑작스러운 엘리베이터의 폭발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어지럽게 일어난 먼지 구름이 걷힌다. 그리고 한 사람의 걸음 소리가 뚜벅뚜벅 1층을 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온 하나의 인영.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묵묵히 흙먼지를 헤쳐 나오고 있었다.

     

   ***

     

   ‘미, 미친…’

     

   정말 죽을 뻔했다.

   과장 하나 보테지 않고 진심으로 생을 마감할 뻔했다.

     

   “시, 시인 씨! 괜찮아요?!”

   “어어, 삼도천이 보였던 것 같기도…”

     

   나는 나에게 달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질어질한 머리를 좌우로 털어냈다.

     

   “우왁! 이 피는 뭡니까? 아니, 아니지, 이 높이에서 뛰어내렸으니 당연한… 어? 이게 아닌가?”

     

   나에게 다가온 남궁천호가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시야에 잡힌다.

   진심으로 놀란 표정. 경악과 경외심, 공포와 환희가 동시에 박혀 있는 그의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순간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음… 확실히 지금 내가 제정신은 아니구나.

     

   “아저씨 괜찮아요? 이 피는 다 뭐고요? 아저씨 피예요?”

     

   피?

     

   나는 눈을 아래로 깔아 내가 입고 있던 옷을 찬찬히 살폈다.

   그나마 멀쩡한 건 바지뿐. 내가 오늘 집에서부터 입고 나왔던 와이셔츠는 원래가 빨간 옷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붉게 염색이 되어 있었다.

     

   “아아…”

     

   나는 피의 정체를 깨달았다.

   처음 20층에 도착했을 때, 성좌라는 것들이 나를 바라보고 칠공에서 피를 쏟았을 때 묻은 피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미 치료는 완료된 상태라. 그나저나 사람들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뛰어내린 엘리베이터 맞은편에 누워 있던 중년인 한 명이 보인다.

     

   “저기, 괜찮으십…”

   “히이익! 어,억!”

     

   내가 손을 내밀자 곱등이마냥 펄떡거리던 중년인이 뒷목이 결렸는지 바닥을 뒹굴며 고통을 호소한다.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괜히 찝찝하다.

     

   턱.

     

   “응?”

     

   중년인에게 다가가려고 하니 누군가가 나의 어깨에 지그시 손을 올렸다.

   눈을 찡그리고 있던 한가민. 그녀가 ‘저 사람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라는 뉘앙스를 품은 채,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는다.

     

   “븅신.”

     

   고통받는 중년인을 향해 한마디를 던진 한가민.

     

   그렇게 짧은 시간이 지난 후, 조용하던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기 시작하며 엘리베이터가 있던 방향에서 익숙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츠츠츳.

     

   허공에 작은 스파크가 튀며 우리가 어제 봤었던 그 푸른 불꽃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틈에서 서서히 크기를 키워가는 불꽃.

   이후, 불꽃이 사람의 몸통 만해졌을 때, 그 작은 포탈을 통해 토끼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 콜록, 콜록!

     

   뿌연 먼지구름을 휘저으며 등장한 토끼.

   연신 기침을 하던 놈이 이윽고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 ……성좌님들이 눈독들일 만하네요. 생각보다 훨씬 미친놈이었네.

     

   20층에서 봤던 것보다 조금 큰 사이즈다. 사람의 팔뚝만 한 모습으로 등장한 녀석.

   안 어울리는 턱시도를 입은 놈이 공중에 둥둥 뜬 채, 주위를 둘러본다.

     

   – 크흠흠! 늦어서 죄송합니다. 두 번째 임무를 주기 위해 등장한 도우미 ■■■ 입니다! 흐음…

     

   녀석이 고개를 몇 번 까딱거리더니 이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완전히 틀었다.

   그리고 나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씰룩.

     

   놈의 입꼬리가 깔짝거렸다.

     

   “……?”

     

   놀라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나를 향해 조소를 머금는 녀석.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했던 만큼 놈도 내가 웃음의 의미를 알아주기를 바랐던 듯싶다.

     

   – 와, 제가 미션을 따로 드리지도 않았는데 다들 한 자리에 모여 있다니 굉장한데요? 근데 이분은 왜 이렇게 피투성이래?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하셨나? 어휴, 이 나라 사람들이 빨리빨리를 선호한다지만 이건 좀 무모한 거어어얼?

     

   나를 보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한 토끼.

   놈의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진 발언은 가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아이구, 제가 집합 시간은 따로 내주려고 했는데 말이죠! 저 플레이어는 아주 장하네요! 역시 해당 좌표 랭킹 1위답습니다! 으헤헤헷! 1층에 꿀이라도 발라놨나? 계단도 있는데 왜 엘리베이터를…

     

   저 말인 즉, 내가 시간에 쫓겨 목숨을 걸고 엘리베이터를 뛰어내릴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

     

   “허허.”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놈을 바라봤다.

     

   “이 개새끼가…”

     

   사건이 일어나고 처음…

   나는 토끼를 향해 공포가 아닌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 헤헷, 나는 토낀데에

     

   아주 강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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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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