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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EP. 11

     

   – 흠흠! 아무튼!

     

   나를 바라보며 방실거리던 토끼가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 다들 한 자리에 모였으니 이제 새로운 임무를 시작해야겠죠?

     

   띠링!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합니다.]

     

   —

   『튜토리얼 #2-1 – 탑으로』

     

   주제 : 생존

   난이도 : 튜토리얼

     

   설명 : 이 세상은 멸망할 것입니다. 죽음, 그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탑을 찾아 그곳에 도달하십시오. – [가장 가까운 탑 : ??? (3.0km)]

     

   임무 : 제한 시간 안에 가장 가까운 탑의 영역으로 이동하십시오.

     

   보상 : 탑의 도전권

   실패 페널티 : 사망

   —

     

   전광판 같은 시스템 알림이 토끼의 머리 위로 띄워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튜토리얼 임무.

   사람들은 처음 튜토리얼을 마주했을 때와는 달리 침착하게 반응했고 그 모습을 본 토끼가 장하다는 듯 감탄을 터트렸다.

     

   – 오오, 이제 놀라는 사람이 없네요? 처음에는 막 신기해하고 쫑알거려서 보는 맛이 있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말한 토끼가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손을 번쩍 든다.

     

   – 혹시 질문 있는 플레이어 있나요?

     

   당연하다는 듯 사람들은 침묵했다.

   이 위험한 게임의 진행자인 가장 위험해 보이는 놈이 질문을 하라는데 입을 다무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

     

   “탑의 영역으로 이동하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지?”

     

   하지만 나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허업!”

   “무, 무슨…”

     

   토끼의 물음에 내가 손을 들고 반문하자 몇몇 사람들이 기함을 토하며 나를 바라봤다.

   심지어 내가 선택한 어휘가 반말이다 보니 얼굴이 창백해지는 사람도 곳곳에 보였다.

     

   – 말 그대로죠. 탑으로 가시면 됩니다.

     

   허나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는 정보가 하나 있었다.

   저 도우미라는 놈은 플레이어라 불리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못한다는 사실.

     

   – 여러분들도 지금 머릿속에 뭔가 확! 하고 떠오르지 않았나요?

     

   토끼가 슬쩍 뒷짐을 지며 허공을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의 말마따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탑’이 그려지고 있었다.

     

   “경복궁에…… 그거 말하는 건가?”

   “그, 그런 것 같은데요?”

     

   웅성웅성-

     

   사람들의 반응에 토끼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 그들의 생각이 맞았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보다 정확한 정보와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탑의 영역이라는 건 뭐지? 근처에 가면 임무가 완료되는 식인가?”

     

   임무의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었다.

   ‘탑’이라는 단어가 1년 전부터 경복궁에 솟아오른 그 흉물이라면 ‘탑의 영역’이라는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 인가?

     

   탑의 일정 반경에 도달하면 임무가 클리어되는 식?

   그게 아니라면 탑에 우리가 몰랐던 입구가 있었다는 전개?

   모르긴 몰라도 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한 건 확실했다.

     

   하지만 놈의 대답은…

     

   – 가보면 압니다.

     

   “그게 끝?”

     

   – 그럼 뭘 더 바래요? 이 밸런스 파괴범아.

     

   뭔가 불만이 많은 듯한 띠꺼운 말투.

   하지만 그 붕-떠버린 대답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나뿐 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도우미님, 혹시 육안으로 보면 그 영역이라는 게 구분이 될까요?”

     

   사람들 사이에 있던 한가민이 손을 들며 토끼에게 물었다.

   한가민의 물음에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는 토끼. 분위기를 보아하니 딱히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취합해서 유추라도 해 봐야……

     

   – 오! 맞아요! 그 근처에 가보면 파란색으로 영역이 보이거든요?

     

   응?

     

   – 거기까지만 제한 시간 안에 들어가면 클리어랍니다! 혹시 더 궁금한 건 없으세요? 플레이어 씨?

     

   왜 친절하지?

     

   “감사합니다. 저 또 궁금한 게 있는데요.”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토끼는 한가민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며 묻지 않은 정보까지 떠벌리기 시작했다.

     

   – 아, 제한 시간 말이죠? 그건 알려줄 수 없답니다! 다른 좌표 사람들은 모르는 정보를 따로 말해주면 안 되거든요!

     

   – 이번에도 괴물이 등장하냐고요? 흐음… 아, 이것도 알려주면 안 되는데 흠흠! 나오기는 한답니다! 뭔지는 비밀이에용. 홍홍!

     

   – 아! 그리고 튜토리얼 #2 상점이 생겼을 거예요! 사용 방법은… 뭐, 저기 있는 저 사람이 알고 있으니까 물어보시죠.

     

   녀석이 나를 가리키며 쫑알거린다.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그리고 나는 조금 적극적이게 바뀌어 가는 녀석의 반응을 보며 다시 한 번 손을 들었다.

     

   “그럼 탑까지 가는 데…”

   – 어, 알아서 가세요.

     

   어.

     

   – 벌써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인간이 욕심은 아주 그득그득하셔 정말!

     

   음, 확실히 알았다.

     

   – 흥. 별꼴이야.

     

   삐친 것 같다.

   아니, 삐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를 썩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놈에게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 오오.

     

   마치 노린 듯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토끼가 새로운 공지를 띄웠기 때문.

     

   – 다른 좌표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준비가 완료된 모양입니다! 다들 기대되시죠?

     

   토끼가 양손을 번쩍 들어 곧장 박수를 칠 듯,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씨익 웃음을 지은 녀석이 이내 새로운 임무의 시작을 알렸다.

     

   – 자! 그럼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토끼가 손뼉을 쳤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그리고 그 박수와 동시에 유리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례차례 터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열리지 않았던 그 유리벽이 고작 토끼의 손뼉 한 번으로 완파된다.

     

   “꺄아악!”

   “으악!”

     

   갑작스러운 소음에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보호했다.

     

   사방으로 튕겨지는 유리 파편들.

   토끼의 공지를 듣기 위해 모두가 중앙에 모인 상태였기에 다행히도 파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었다.

     

   – 그럼 플레이어 여러분들! 행운을 빌겠습니다!

     

   토끼가 푸른 불꽃 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유리벽이 만든 소음에 귀에서 짧게 이명이 들렸지만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다들 새로 생긴 튜토리얼#2 상점 확인 가능하십니까?”

     

   튜토리얼#2의 상점.

     

   “그거부터 까고 시작하죠.”

     

   내가 지난 튜토리얼에서 구매했던 ‘튜토리얼 아이템 박스’를 소개할 시간이었다.

     

   ***

     

   삐빅.

     

   [남은 시간]

   [00:57:31]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한 시간.

   처음 우리가 빌딩을 벗어났을 때, 느낀 것은 감히 감당해 본 적이 없는 압도적인 절망감이었다.

     

   “이게 대체……”

   “미친……”

     

   빌딩 밖 풍경을 바라본 박조철이 튜토리얼 상자에서 얻은 평범한 검을 늘어뜨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멸망. 그 두 글자가 이다지도 잘 어울리는 광경이 또 있을까?

     

   원래는 푸르러야했던 하늘이 붉기만 하다.

   불꽃의 밝은 광채가 아닌 핏물처럼 검붉은 하늘.

     

   출퇴근 시간마다 우리의 시야에 잡혔던 수많은 빌딩들이 무너져 있었고 땅은 당연하다는 듯이 뒤집어져 크고 작은 콘크리트의 언덕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아까 안에서는 이렇지 않았잖아!”

     

   옆에 있던 중년인이 이럴 수는 없다며 반복해서 소리쳤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광경.

   분명 우리가 스카이 게임즈의 빌딩에 있었을 때 보았던 바깥 풍경은 평소 우리가 봐 왔던 퇴근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랬기에 길에 인기척이 없어도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아, 이 상황만 정리되면 저 평화로운 도시로 돌아갈 수 있겠지.

   이 지옥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헛된 희망이었고 그 희망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자기가 품었던 희망의 크기만큼 거대한 절망을 대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오오오……

     

   그저 눈을 한 번 깜빡인 것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환경.

     

   [빠른 납득(D+)이 발동됩니다.]

     

   “다들 뭐 해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멍청히 서서 풍경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움직이죠. 지금 멍 때릴 시간 없습니다.”

     

   나의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박조철이. 이어서 남궁천호와 한가민이.

   그리고 나의 시선이 서세영에게 닿자 그녀가 움찔거리며 입을 벙긋거렸다.

     

   “……시인 씨는…”

     

   떨리는 목소리.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다음 말을 이었다.

     

   “…무섭지 않으세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긴장과 불안감이 뒤섞인 그녀의 눈빛. 나는 그녀를 향해 당장 떠오른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바보 같은 질문이네요.”

     

   “……네?”

     

   “어떻게 안 무서워요 까딱하면 죽게 생겼는데.”

     

   굳이 숨길 이유도 없거니와 지금 그들을 북돋아줄 멋들어진 훈시를 떠들 시간도 없었다.

     

   “지금 저도 세영 씨랑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저도 사람이니까요.”

     

   나를 바라보는 생존자들의 표정을 나의 눈에 들어온다.

   같은 감정. 그나마 괴물과 맞서봤던 세 사람이 아닌 이상, 불안이 가득 담긴 저 표정을 쉽게 버리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의 말을 들은 몇몇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작은 용기가 피어올랐다는 것을.

     

   “생각이 많으실 거라는 거 알아요. 그래도 일단 움직입시다. 생각은 탑에 도착한 다음에 하셔도 늦지 않아요.”

     

   탑까지 남은 거리는 3km.

   남은 시간은 56분 남짓.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

     

   이동해야 할 거리가 애매하게 멀었다.

   평소였다면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도로가 붕괴됐기에 사람들의 걸음이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은 시간 00:21:58]

     

   1분 1초가 줄어갈수록 목이 타들어 갔다.

   사람들 모두가 ‘튜토리얼 아이템 상자’에서 나온 ‘각성의 샘물’을 통해 신체가 강화되었지만 아직은 그저 체력이 좀 좋은 사람일 뿐.

     

   ‘상태창’

     

   띠링.

     

   —

   이름 : 김시인

   성좌 : 없음

   능력치 : [근력 Lv.12], [민첩 Lv.10], [체력 Lv.13], [마력 Lv.3]

   스킬 : [빠른 납득(D+)]

   특성 : [잠재력(??)]

     

   잔여 코인 : 4,000 C

   —

     

   내가 전해 들었던 박조철의 능력치가 평균 Lv.8.

   심지어 그의 능력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뒤처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조금만 더 빨리요!”

     

   가장 선두를 달리던 나의 외침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꾸역꾸역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허억, 허억……”

   “흐읍… 꿀꺽.”

     

   익숙하지 않은 길.

   거의 등산에 가까운 콘크리트 언덕을 오르내리다보니 사람들의 체력을 빠르게 고갈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쉬지 않고 걸은 덕분이었을까.

   마지막 콘크리트 언덕을 넘어가자 익숙하게 보이는 초록색 간판 하나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세종대로사거리]

   [광화문]

     

   “아!”

     

   저 멀리 경복궁과 그 위로 솟아오른 탑이 보였다.

   그리고 전방에 세워진 위인들의 동상까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허억… 아저씨는……. 허억. 안 힘들어요?”

   “아직, 괜찮아.”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따라온 한가민의 말에 나는 주위를 살피며 간단히 대꾸했다.

     

   쿠구구구…

     

   바람이 거칠다. 하지만 그뿐.

   사람들의 체력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만, 이 페이스라면 시간을 넉넉하게 남기며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기분은 뭐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걷기만 하는 게 전부였다.

   첫 번째 튜토리얼에서 생존자의 90퍼센트가 넘게 죽었는데 그 다음으로 이어진 임무가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일찍 도착했다는 기쁨보다 튜토리얼의 난이도에 대해 의심만 커지는 와중.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남궁천호가 나를 불렀다.

     

   “시인 씨 저기 앞에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광화문 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

   건물 잔해에 올라 광장을 바라보니 그곳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 아, 아아악!

   – 누가 저 좀 도와주…… 꺄악!

     

   불안한 예감은 왜 항상 빗나가질 않는 걸까.

   우리가 아닌 다른 무리의 생존자들. 그리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며 나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다들 조용히 하고 자세 낮추세요.”

   “어어?”

     

   나의 말과 손짓에 사람들이 잔뜩 긴장하며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서로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시야에 잡힌다. 그리고 그곳을 보던 누군가의 비명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됐다.

     

   – 으아악!

     

   그리고 그 사람을 물어뜯는 또 다른 사람.

     

   마지막으로 그것을 본 박조철의 감상은 짧고 명료했다.

     

   “씨벌…… 저거 설마 좀비야?”

     

   토끼가 말한 이번 임무의 괴물은 다름 아닌 ‘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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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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