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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EP. 18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상태이상 ‘혼란(D)’에 저항합니다.]

   [상태이상 ‘지배(E+)’에 저항합니다.]

   [상태이상 ‘환각(D-)’에 저항합니다.]

     

   정신이 제법 맑아지니 눈앞의 알림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한가민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아까보다 미묘하게 멍한 얼굴이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 나는 급히 스킬창을 열어 [빠른 납득(C-)]의 설명을 읽어 내려갔다.

     

   —

   [빠른 납득]

   랭크 : C-

   분류 : 패시브

   설명 : 당신은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이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침착해집니다.

   – 판단이 빨라집니다.

   – 약한 정신계 공격에 저항합니다.

     

   ※ 해당 스킬은 잠재력이 각성한 스킬입니다. 성장의 여지가 있습니다.

   —

     

   [약한 정신계 공격에 저항합니다.]

     

   튜토리얼의 막바지에 좀비를 피해 달리며 성장한 ‘빠른 납득’ 스킬.

   그땐 경황이 없어 스킬에 대한 설명을 읽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그때 성장한 ‘빠른 납득’에 추가 효과가 생긴 모양이었다.

     

   ‘정신계 공격이라…’

     

   이제야 지금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들떠 보였던 사람들과 성에 도착한 이후로 줄곧 편안함을 느꼈던 나까지.

     

   지금 이곳은 괴물이 수두룩하게 나오던 ‘그 튜토리얼’의 연장선상에 있는 탑의 1층이었다.

   눈에 보이는 위험은 없었지만 내가 그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니 소름이 돋았다.

     

   “저기 박조…”

   뚝.

     

   나는 나의 옆에 함께 있던 사람들을 부르려다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에?”

     

   박조철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며 대꾸했다. 하지만 이미 눈은 풀려 버린 상태였고 그것은 남궁천호도 서세영도 한가민도 마찬가지였다.

     

   “…아닙니다.”

     

   우선 말을 아끼기로 마음먹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본인을 ‘노야’라 칭한 1층의 주인을 바라봤다.

     

   이제는 흐릿해 보이는 검버섯과 주름살들이 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여전히 등은 굽어 있었지만 이제 보니 그것도 왕이라는 작자가 노인을 연기하느라 허리를 굽히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많아봐야 40대로 추정되는 남자.

   게다가 정신계 공격이 풀리며 서서히 시야가 넓어지자 나는 조금 전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던 물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팡이?’

     

   남자의 손에 쥐어진 투박한 나무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외관상 그저 기다란 나무 몽둥이를 하나 쥐고 있다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 끝에 박힌 푸른색 보석을 보고 있자니 저걸 어떻게 알아채지 못했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저것 때문인가?’

     

   끝에 박힌 주먹만 한 보석이 흐릿한 빛을 내며 나의 정신을 앗아간다.

   마치 토끼가 탑의 1층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열었던 포탈과 흡사한 색.

     

   [‘빠른 납득(C-)’을 발동합니다.]

   [‘약한 정신계 공격’에 저항합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다시 스킬이 발동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다시 의식이 잠식되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그러니 남은 시간 걱정 없이 푹 쉬시면 되오.”

     

   내가 알 수 없는 힘에 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때쯤. 노야라 불린 노인의 일장 연설이 끝났다. 그리고 그가 퇴장함과 동시에 파티장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

     

   열린 문을 통해 종종걸음으로 입장하는 어린아이들. 이제 열 살쯤 되었을까?

   깔끔한 흰옷을 차려입은 단발머리의 아이들은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한 명씩 붙었고 이내 그들을 어디론가 안내해 파티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담당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금색 단발머리에 핏빛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신비로운 아이.

   하지만 나는 아이의 아름다운 외형을 보고도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아이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새파랗게 어린 꼬마가 가질 눈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런 호기심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 그 자체.

     

   심지어 나는 옷을 갈아입지 못해 온몸에 피가 덕지덕지 굳어 있는 상태였음에도 아이는 내게 일말의 두려움이나 불편해 하는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세뇌라……’

     

   탑 1층의 임무는 오직 탑의 2층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 것뿐.

   처음에는 그저 시간이 문제일 것이라 여겼던 임무에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

     

   나는 정신 공격에 저항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순순히 아이를 따라 움직였다.

     

   파티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방.

   방에 배치된 가구들을 보니 그곳은 탑에 오르는 플레이어들을 위해 마련된 숙소인 것 같았다.

     

   “이곳이 플레이어님께서 당분간 머무르실 방입니다.”

     

   아이의 안내에 나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을 눈으로 스윽 훑었다.

   넓고 푹신한 침대가 포함된 오직 휴식을 위한 방. 호화로운 장식들과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니 호텔 스위트룸 저리 가라 싶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내가 방에 감탄을 하려 하자마자 ‘빠른 납득’이 다시 한 번 발동됐다.

     

   [상태이상 ‘세뇌(D-)’’에 저항합니다.]

   [상태이상 ‘환각(E+)’’에 저항합니다.]

     

   “허…”

     

   이번에는 또 뭘까.

   나는 방에 들어오며 둘러봤던 내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침대가 있었다.

   가벼운 조식을 위해 배치한 것인지 작은 티테이블이 있었고 방이 밋밋할 것을 우려해 다양한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가장 화려한 그림의 바로 아래에는…

     

   ‘조각…상?’

     

   왕의 지팡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와 똑같이 나무 조각품이 나의 시선에 서서히 잡히기 시작한다.

     

   나는 시선을 돌려 아이를 바라봤다.

   여전히 멍한 얼굴. 하지만 아이는 멍하니 품을 뒤적이며 작은 종 하나를 꺼낼 뿐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이 종을 세 번 흔들어 주세요.”

     

   뚜벅뚜벅-

     

   작은 핸드 벨을 건네고 유유히 숙소를 빠져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가지고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 똑 떨어져서 오아시스를 찾아야 하는 조난자의 심정이 이러할까?

     

   1층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적으로 분류가 되는지, 아니면 그 왕이라는 존재만이 임무를 위한 어떤 열쇠로 작용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

     

   하지만 사막에 떨어진 상황에서 나에게 보이는 신기루 하나가 있었기에 나는 그나마 희망을 가져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화려한 액자 아래에 고이 모셔놓은 사람 형태의 조각상으로 천천히 다가 갔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단서… 팔뚝만 한 크기의 작은 조각상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만져 보니 촉감은 석고처럼 거친 질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조각상의 머리와 몸통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손끝에 힘을 더해 조각상을 천천히 분지르기 시작했다.

     

   빠지직!

     

   보기보다 쉽게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무 조각상. 그리고 그 조각상이 그저 나무 파편이 되기 시작하자 나의 귓가에 익숙한 알림 하나가 들려왔다.

     

   띠링.

     

   [저주의 매개체가 파괴되었습니다.]

     

   [상태이상 ‘세뇌(D-)’가 무력화됩니다.]

   [상태이상 ‘환각(E+)’가 무력화됩니다.]

     

   조각상이 부서지는 동시에 속을 매스껍게 하던 감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부서진 조각상은 나의 손안에서 강풍을 맞은 모래성처럼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내 손안에 남은 것은 푸른빛을 띠는 작은 구슬 하나뿐이었다.

     

   “이건……”

     

   지팡이 위의 보석과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

   비록 그 크기는 작았지만 이 보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확실히 그것과 흡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쯤.

     

   띠링.

     

   [스토리 : 메모리얼 피스를 획득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다는 익숙한 알림과 함께 기다란 설명 하나가 나의 눈앞에 떠올랐다.

     

   —

   [메모리얼 피스]

   종류 : 보석

   랭크 : 스토리

   설명 : 마력전도율이 높으며 적은 양의 마력을 품고 있는 보석이다. 단일 저주나 마법을 고정시킬 수 있다. 단, 저주나 마법을 고정시켰을 경우 해당 매개체가 파괴되면 기능을 상실한다.

     

   ※ 모든 마력이 증발된 마력석입니다. 재활용은 불가합니다.

   ※ ???

   —

     

   매개체가 파괴되면 기능을 상실한다는 마법의 구슬. ‘메모리얼 피스’에 대한 정보 확인이 끝나니 나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원래 1층의 임무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스킬 하나가 존재했으니까.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지금도 무슨 철옹성마냥 나의 정신을 단단히 지켜 주고 있는 자그마치 튜토리얼에서 얻은 스킬.

     

   언제나 정신계 공격에 면역인 말도 안 되는 상태가 유지되니 날먹도 이런 날먹이 또 있을까 싶었다.

     

   ‘문제라면…’

     

   그 혜택을 나만 열심히 맛보고 있다는 것.

     

   나는 적당히 나의 검을 챙겨 방을 나설 준비를 마쳤다.

   지금부터 들러야할 장소. 우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방에 들러 세뇌의 매개체를 하나씩 박살 낼 예정이었다.

     

   ***

     

   나는 조심스럽게 숙소를 빠져나와 적막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종을 3번 울려라’ 라는 안내가 있었기에 당연히 복도에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복도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나는 나의 방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방까지 아무런 방해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첫 방의 문고리를 잡는 순간.

     

   – 꺄악!

     

   숙소에서 들린 ‘한가민’의 비명 소리에 나는 긴장하며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댔다.

     

   콰앙!

     

   나는 돌발 상황에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내부로 재빨리 진입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나를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아… 한가민. 넌 도대체 왜 이렇게 예쁜 거야?”

     

   나는 사람이 본인의 이름을 3인칭으로 부르는 걸 이날 실제로 처음 봤다.

   

   거울 앞에는 드레스를 입고 입술을 삐죽 내민 한가민이 있었다.

   그리고 해당 숙소에는 한가민 뿐. 당연하게도 그녀가 하는 짓은 대단한 추태였다.

    

   “어머머? 이 년! 머릿결 고운 것 좀 봐! 피부는 또 어떻고!”

     

   본인을 ‘이 년’이라며 떠드는 광녀를 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고

     

   “푸흡! 아, 난 멋져! 난 최고야! 난 쩔어! 꺄르륵! 꺄르……”

   “……”

   “딸꾹.”

     

   누군가의 흑역사 제조를 라이브로 직관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한가민의 시선이 자신의 숙소에 난입한 나를 향한다.

   헤실헤실 웃고 있던 얼굴이 굳으며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어… 다음에 다시 올까?”

     

   당황스러움과 수치스러움이 공존하는 이곳.

     

   탑의 1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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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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