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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EP.22

     

   연무장에서 열심히 헛소리를 떠든 내가 걸음을 옮긴 곳은 다름 아닌 남궁천호의 방이었다.

     

   “……근데 왜 남궁 아저씨는 멀쩡한 거죠?”

   “응?”

   “아니, 왜 정상이냐고요! 억울하게!”

   “이게 정상으로 보여?”

     

   하지만 의외였던 점은 남궁천호는 한가민과 달리 얌전하게 잠만 자고 있었다는 것.

     

   한가민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투덜거리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천호 씨 표정 보여? 튜토리얼 하면서 그렇게 경계심도 많고 신중했던 사람이 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꿀잠을 자는데 그게 정상일 리가 없지.”

     

   역시나 그의 머리맡는 작은 조각상이 있었다. 물론 정신계 상태이상이 줄줄 흘러나오는 탓에 한가민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아무튼, 내 눈에는 보였다.

     

   덥썩! 뜨드득!

     

   나는 더 이상의 지체 없이 조각상의 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나와 한가민의 방에서 그러했듯 조각상이 바스러지며 빛바랜 구슬 하나가 드러난다.

     

   움찔!

     

   이 방에 상태이상이 무력화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침대에 있던 남궁천호가 몸을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죽은 듯이 누워 있던 남궁천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

   “괜찮아요?”

     

   나의 물음에도 남궁천호는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오랜 꿈에서 깨어나 그 꿈을 복기하는 사람처럼.

     

   “여기 어딥니까?”

   “천호 씨 방이에요.”

   “네……?”

     

   나의 말에 남궁천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숙소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 하지만 판단이 빠른 그답게 혼란스러운 눈빛이 진정되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괜찮으세요?”

   “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몸은 여느 때보다 개운한데 지금 좀 많이 당황스럽네요.”

   “어디까지 기억하시는데요?”

   “……기사들을 따라 마차에 오른 거?”

     

   한가민보다 기억에 공백이 컸다.

   하지만 그녀와 남궁천호의 가장 큰 차이는 다름 아닌 꿈이었다.

     

   “꿈을 꿨습니다.”

   “주무셨으니까 그럴 수 있죠.”

   “아뇨… 그런 꿈이 아니라 뭐랄까…… 엄청 생생한, 전생체험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꿈의 내용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봤던 것과 비슷한 유형의 환상. 하지만 그의 말을 쭉 이어서 듣다 보니 나는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꿈에서 왕이었다.

     

   내가 왕의 측근이 되어 명령을 수행했듯 그는 왕이 되어 자신의 기사와 마법사에게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는 반파된 왕좌에 앉아 무심히 명을 내렸다고 한다.

   아이들을 데려오라는 명령. 민심을 살피라는 명령.

   그리고 내가 환상 속에서 받았던 어떤 계획을 시행하라는 명령까지.

     

   “근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명령을 받드는 신하들의 얼굴이 기억은 안 나는데 저는 그들이 슬퍼한다고 느꼈거든요.”

     

   슬퍼했다라…

     

   “뭔가 다른 정보는 더 없었을까요? 2층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든지 뭔가 어색한 말을 들었다든지.”

     

   나의 물음에 남궁천호는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 그 마법사가 제가 있던 방에 들어오기 직전에 기사가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뭐라고 했는데요?”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이 나라의 미래’라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만…… 시인 씨의 설명을 들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군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천호가 환상 속에서 본 정보는 이게 최대인 것 같았다.

     

   부스럭.

     

   —

   [메모리얼 피스]

   …

   …

   ※ (???) 다른 메모리얼 피스와 함께 있으면 상실된 기능을 일부 되찾습니다.

   —

     

   연무장의 조각상을 파괴하고 얻은 메모리얼 피스가 반응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새로운 정보를 최대한 얻고 돌아오는 것.

     

   내가 무엇을 할지 눈치챈 한가민이 나를 바라보며 응원을 보냈다.

     

   “잘 다녀오세요. 뭐, 우리는 눈 깜빡하면 끝나겠지만.”

   “그래, 이참에 2층 가는 길도 확실하게 확인하고 올게”

     

   나는 크고 작은 두 개의 메모리얼 피스를 한 손으로 옮겨 잡았다.

   그러자 메모리얼 피스의 색이 서서히 푸르게 돌아오며 나의 눈앞에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당신의 능력치 ‘마력 Lv.6’이 ‘메모리얼 피스’와 반응합니다.]

     

   흐려지는 시야 가운데 한가민의 것인지 로랑의 것인지 모를 금발이 괜히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내가 눈을 감았다 뜨자 예상했던 데로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

     

   화려한 장식들이 즐비해 있는 곳.

   내가 눈을 뜨니 좌우로는 기사와 궁중예복을 입고 있는 문관들이 도열해 있었고 나는 왕의 우측에 자리한 채,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몇 초 동안 멀뚱히 주변을 살피니 이곳이 내가 방문한 전적이 있는 익숙한 장소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폐허가 되기 전인가…?’

     

   환상 속에서 왕을 알현했던 장소와 같은 곳이다.

   물론 분위기나 사람이 꽉 차 있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방의 구조상 같은 장소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전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우측에 도열한 문관들 중, 한 사람이 어전으로 나서며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보고하라.]

     

   대표로 보이는 문관은 상명에 복종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마침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듯 소매에서 보고서를 꺼내 왕국의 현 사태에 대해 읊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시의 아이들을 성안으로 들이라는 명을 내린 이유.

     

   부모와 이별했던 아이들이 떠오르자 괜히 기분이 언짢아졌었다.

   하지만 웬걸.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것인지 예상치 못한 서사가 더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단 지구 감염자 2700명 추정, 포리안 지구 감염자 1500명 추정. 데스란 지구 감염자 4100명 추정, 그라쉬 지구 감염자……]

     

   문관의 보고가 길어질수록 좌우로 나열한 사람들의 입에서 깊은 침음성이 흘러나온다.

   감염자라는 말을 보니 이 왕국에 감당하기 힘든 역병이 퍼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 후 문관의 보고가 끝났음에도 왕은 침묵했다.

   깊은 적막감에 신하들도 덩달아 입을 다물었고 그 침묵 속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왕’이었다.

     

   [방법이…… 있네.]

     

   왕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올라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어진 그의 말에 신하들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이들을 왕궁으로 들이도록 하지.]

     

   [그…그게 무슨!]

   [전하! 감염자들을 왕궁으로 들이자니요! 너무 위험합니다!]

   [이 전염병은 평범한 병이 아닙니다. 백성들의 치사율이 구 할을 넘기고 있는 상황에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들의 말에 왕은 무심히 그들의 이기주의적 행태를 감상했다. 그러고는.

     

   [성좌의 말씀처럼 아이들은 멀쩡하지 않은가.]

     

   ‘아이들’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머릿속에 낯선 정보들이 해안가로 해일이 몰아치듯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으윽…!’

     

   전염병이 창궐한 세계.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병에 걸리고 길거리에서 죽어 간다.

     

   마치 독가스를 들이킨 사람처럼 온몸에서 진물이 나오고 면역을 위해 발악하는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성장을 마친 성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질환.

   무슨 이유에선지 2차 성징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이 지옥 같은 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였다.

     

   [그 아이들이 병균을 가지고 왕궁에 들어오면 어떡합니까?]

   [오, 옳습니다! 감염자들과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입니다! 충분히 위험 보균자가…]

     

   [그대들은.]

     

   왕은 그들의 되지도 않는 변명을 단호하게 잘라버렸다.

     

   [다 함께 멸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그…그게 무슨…]

     

   신하들의 의문에 왕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성좌의 권능 아래 보호받고 있는 왕궁의 공기는 그 어느 장소보다 맑고 신선했지만, 그 아래로 느껴지는 역함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미래라네.]

     

   왕은 떠올렸다.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는 평화로운 아침, ‘성좌’라는 존재가 나타나 그들에게 허락했던 단 한 번의 기회를.

     

   [그대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나의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되기 시작했다.

     

   성좌… 마치 화면에 노이즈가 낀 것처럼 흐리게 보이는 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역병’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우리에게 하나의 기회를 허락했다.

     

   「그대들에게 나의 권능을 허한다.」

     

   ‘일주일…’

     

   단 7일의 무한 루프.

     

   역병이 완전히 사라지는 동안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성좌는 우리에게 앞선 ‘7일이 무한적으로 반복되는 기적’을 행했다.

     

   그래서 우리는 버티기로 했다. 역병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음식을 먹어치워도 7일 후에는 그 자리에 음식이 다시 나타났고 건물이 무너져 내려도 7일만 지나면 완벽하게 수복된다.

     

   하지만 유일하게 시간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이었다.

     

   [우리는 결국 죽게 될 것이네. 수명이 다해 죽든, 불의의 사고를 당하든, 아니면 이 억겁의 시간 속에서 미쳐서 죽든.]

     

   그렇게 지난 몇 개월의 시간.

     

   수십만의 백성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도시는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살아남은 것은 고작 1%에 달하는 운 좋은 백성 몇 명과 부모를 잃고 겨우겨우 살아남은 무수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받아들이도록 하게.]

     

   왕의 말에 신하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후, 신하들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서 왕은 나를 바라봤다.

     

   [내가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되겠는가?]

   [명령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왕의 물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도구를 만들어주게. 부모를 잃고 궁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위해.]

   [뭘 말이십니까?]

   [……조각상.]

     

   나무로 만들어진 저주의 매개체.

     

   [전염병이 완전히 사라지고 성좌께서 힘을 되찾을 그날까지 아이들의 세뇌가 유지되도록 조각상을 만들어 주게나.]

     

   부모와 생이별을 겪은 아이들이 미치지 않도록.

     

   [자네만 믿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이윽고 왕의 알현실을 벗어난 나는 복도의 끝자락에 어두컴컴하게 자리 잡은 계단을 올랐다.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렇게 도착하게 된 성의 꼭대기.

   나는 투박하기만 한 낡은 나무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기상천외한 마법 도구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구석에는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시약들의 흔적이 여기 저기 널려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무시한 채, 구석에 놓인 거대한 푸른 보석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법이나 저주를 고정시킬 수 있는 마력석.

   나는 손을 뻗어 메모리얼 피스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나의 마력이 흘러들어간다.

   저주와 같은 흑마법은 정신력을 갉아먹기에 나의 기억과 감정들 또한 마력과 함께 마력석으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업을 끝마친 나는 압도적인 피로감을 버티며 겨우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거울과 같은 광택을 내며 반짝이는 푸른 마력석을 잠시 넋을 잃은 채 몇 초간 바라봤다.

     

   그때 알게 된 한 가지.

     

   ‘……’

     

   마력석을 통해 익숙한 외모가 비친다.

     

   탑의 1층을 다스리고 있던 그 왕. 노야와 똑같은 얼굴을 한 젊은 남성이 마력석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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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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