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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EP.23

     

   환상에서 깨어난 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붉은 눈을 가진 금발의 아이였다.

     

   “김시인 님 깨어나셨습니다.”

     

   나와 눈을 마주친 아이는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앉아 눈을 붙이고 있던 두 사람을 흔들어 깨웠다.

     

   창문 밖을 바라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성곽 너머로 떨어지고 있었다. 처음 환상을 봤을 때와는 달리 꽤 오랜 시간을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으음… 깨어나셨습니까?”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습니까?”

   “……저도 중간에 잠들어서 잘은 모르겠군요.”

     

   나를 바라본 남궁천호가 몽롱한 정신을 풀어보려는 듯 머리를 좌우로 털어냈다.

   그리고 곧이어 옆에서 깨어난 한가민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와, 이 소파 개쩔어요… 진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네…”

   “그래 보이네.”

     

   남궁천호 방에 걸려 있던 저주는 다름 아닌 수면.

     

   한가민의 얼굴을 보니 뺨에 허연 침 자국이 묻어 있었다.

   정말 꿀잠을 잔 듯한 그녀의 외관을 보고 있자니 메모리얼 피스가 활성화되며 꽤 강한 정신계 마법이 발동된 게 아닐까 싶었다.

     

   “……대체 얼마나 오래 잔거지?”

   “제가 남은 시간을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의 혼잣말에 남궁천호가 임무를 받을 당시 떠올랐던 제한 시간의 현황을 체크했다.

   하지만 잠시 후, 시간을 확인하던 남궁천호의 낯빛이 변하며 그의 입에서는 당황이 가득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어어…?”

   “무슨 문제 있어요? 남궁 아저씨 이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보는…… 어?”

     

   뒤이어 시간을 확인한 한가민의 반응도 마찬가지.

   이상함을 느낀 나는 곧바로 임무의 남은 시간을 확인했고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남은 시간 : 0일 07:01:41]

     

   시간이 사라져있었다.

   정확히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가 버렸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처음 탑의 1층에서 임무를 받았을 때, 넉넉하게 시간을 계산하며 침착하게 1층의 임무를 완수하려 했었다.

   임무의 주제에 맞게 튜토리얼에서 쌓였던 피로를 적당히 풀고 차곡차곡 정보를 모아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

     

   “말도 안 돼…… 우리가 잠들고 6일이 지난 거예요?”

     

   한가민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혹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

     

   ‘천천히 생각해 보자.’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는가.

     

   물론 한가민의 발언처럼 환상을 보여주기 직전, 메모리얼 피스가 재활성화되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타당성이 부족했다.

   만약 우리가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굶었다면 음식이나 제대로 된 수분을 섭취하지 못해 지금쯤 입을 여는 데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에 처했을 테니까.

     

   그렇다는 것은……

     

   “혹시 두 사람은 탑 1층에 들어오고 한 번이라도 시간을 확인한 적이 있었습니까?”

     

   나의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는 없었어요.”

   “저도 시간을 확인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늘…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1층에 와서 깨어 있었던 기억이 별로 없거든요.”

     

   남궁천호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곳에 도착하고 파티장 때를 제외하면 뭔가를 먹은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에 있는 두 사람도 마찬가지.

     

   심지어 남궁천호는 정말 쥐 죽은 듯이 방에서 잠만 자고 있었던 것 같으니 지금 상태가 멀쩡한 게 더더욱 이상했다.

     

   그 말은 남궁천호가 이곳에서 잠만 잔 것이 아닌 세뇌 상태에서도 음식은 꾸준히 섭취를 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주일이라……’

     

   1층에 들어온 직후에 우리가 받았던 제한 시간이 떠올랐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공교롭게도 환상 속에서 본 반복되는 7일과 우리에게 주어진 일주일이 겹치는 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그리고 그 일주일이 지났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페널티가 웬일로 ‘사망’이 아닌 ‘능력치의 하락’인 이유가 무엇일까?

     

   “흐읍! 후우……”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한 뒤, 현 상황을 다시 한 번 되짚었다.

     

   호텔 스위트룸 저리 가라 싶은 편안한 침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두 동료와 이곳에서 만난 붉은 눈의 꼬맹이.

     

   그리고 나의 시선이 화장대에 있는 작은 거울에 멈췄을 때, 소름 돋는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짜릿한 감각이 나의 뇌를 활성화 시킨다.

     

   내가 거울로 본 것은 셔츠에 피가 잔뜩 묻은 채 침대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언제, 어떻게 흘렀는지 어렴풋이 추측이 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탑의 1층은 시작부터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웠다.

     

   처음 내가 탑의 1층에 들어왔을 때, 나를 보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

     

   갑자기 허공에 짠하고 사람이 나타났는데 주민들은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각자의 생업에만 집중했다.

     

   ‘주민들한테는 그저 늘 있던 일이었던 거다.’

     

   사람들이 탑에 들어오고 기사들이 그들을 데려가는 상황이.

   누군가가 안내를 거부하고 병사들과 싸우고 끌려가는 모습이.

     

   환상을 봤던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1층은 성좌의 권능으로 인해 7일의 시간이 반복되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그 타임 루프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고 우리는 그 시간선 안으로 늦게나마 합류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주민들은 플레이어들이었을지도……’

     

   일주일간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찾지 못해 세뇌를 당한 채, 이곳의 주민이 되어 버린 탑 밖의 존재들.

   아주 가능성이 없는 가설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탑에 들어오고부터 들었던 반복적인 말을 떠올리니 그 가설은 점점 더 신빙성을 얻어갔다.

     

   「안심해라.」

   「걱정하지 말아라.」

   「편안히 있어라.」

   「그간 고생했으니 쉬어라.」

     

   나를 안내하던 기사는 나에게 자신은 안내자일 뿐이라며 내 긴장이 풀리도록 유도했다.

     

   화려한 복도와 따뜻한 조명아래에서 나는 걸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복도를 걸었는지 그사이에 기사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것이 없었다.

     

   오로지 떠오르는 것은 그곳이 편안했다는 감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 나뿐.

     

   그리고 그때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갈무리하자 나는 이상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결정적인 사건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너 그 옷…」

   「아아, 이거요?」

     

   한가민이 당시에 입고 있었고 지금도 입고 있는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

     

   「예쁘죠? 여기 오니까 피 묻은 옷은 찝찝할 거라면서 이걸로 갈아입혀 주더라고요.」

     

   그녀의 드레스는 내가 복도를 상당히 오랜 시간 걸어 다녔다는 증거가 되었다.

     

   파티장에 갔을 때는 이미 모든 사람이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문 앞에서 만났던 한가민도, 남궁천호도, 서세영도…

     

   심지어 이곳에 오기 전,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않는다며 한바탕 날뛰었던 박조철 마저도 궁중 예복을 입고 있었는데 나만 옷이 그대로였다.

     

   ‘빠른 납득 덕분인가…’

     

   나도 결국에는 세뇌에 걸렸을 것이다.

   빠른 납득의 랭크인 C-보다 높은 정신계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내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파티장을 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닐지도 몰랐다.

     

   사람이 살아가며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잊어버리기도 하고 피로가 쌓이면 샴푸로 세수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게 단순한 반복에도 뇌가 생각을 멈추는 것이 인간인데 세뇌나 수면, 지배, 혼란 등의 다양한 정신계 공격을 받고 있는 상태라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눈앞에 있는 ‘로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꼬마 시녀가 그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보통 피칠갑을 한 사람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는 없지.’

     

   로랑은 많아봐야 10살 남짓한 나이의 어린아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좀비의 피를 뒤집어쓰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성인 남성을 보고도 담담하다는 것은 이미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둘 중 하나…’

     

   세뇌를 강하게 당해 공포를 전혀 느낄 수 없었거나.

     

   이미 피칠갑을 한 나를 안내한 경험이 있었거나.

     

   “쯧.”

     

   나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혀를 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에 홀려 몇 날 며칠을 놀아난 기분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슬슬 1층 클리어하러 갑시다.”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환상 두 번 보고 잠 좀 자다가 엿새가 지났는데 그사이에 어떤 답을 내렸다는 것이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그게 두 사람의 착각이라는 점.

   나도 정확한 클리어 방식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기에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을 족쳐보려는 것뿐.

     

   나는 환상 속에서 보았던 마지막 광경과 함께 지금 내가 노리고 있는 목표물을 상기했다.

     

   노야라 불리는 마법사의 연구실에 놓인 거대한 푸른 보석과 그가 파티장에 들고 나타났던 나무 지팡이.

     

   그렇게 나와 세 사람이 가장 먼저 향하게 된 장소는 바로 노야의 침실이었다.

     

   ***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우리와 함께 편을 먹기로 작정한 배신자 꼬맹이가 하나 있었고 로랑은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성의 내부 구조를 속속들이 꿰고 있었으니까.

     

   끼익…

     

   나는 한가민과 남궁천호에게 뒤를 맡긴 상태로 노야의 방에 진입했다.

     

   조용하기만 한 방.

     

   왕의 침실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기만 할 줄 알았던 방은 넓기만 더럽게 넓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산다고요? 왕이? 굳이?”

     

   천장 한구석에 쳐진 멋들어진 거미줄을 감상한 한가민이 몇 차례 의문을 표하며 내 뒤를 따랐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은 남궁천호나 로랑도 마찬가지.

     

   하지만 나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굳은 얼굴로 걸음을 땠다.

     

   [당신의 능력치 ‘마력 Lv.6’이 알 수 없는 기운에 반응합니다.]

     

   문을 통과한 직후부터 어두컴컴한 전방에서 흉흉한 기운이 느껴졌다.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상태이상 ‘세뇌(D+)’에 저항합니다.]

   [상태이상 ‘수면(D)’에 저항합니다.]

   [상태이상 ……

     

   가까이 다가갈수록 특정 상태이상이 발동되고 있었기에 나는 나머지 세 사람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이내 노야의 침상에 다가갔을 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새하얗게 질린 채 침대에 누워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남자와 그 옆에서 불길한 푸른빛을 뿜어대고 있는 지팡이 하나.

     

   “……도대체 뭐야.”

     

   그때 ‘노야’는 자신의 침상에서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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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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