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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EP.25

     

   새롭게 개편된 임무.

     

   기존의 임무와 지금 받은 임무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제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거 오히려 쉬워진 거 아닌가요?”

   “설마…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는……”

     

   하지만 그 메시지 안에 제한 시간이 없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보다 너무나도 단순했다.

     

   벌컥!

     

   “왕을 시해한 자들이다!”

   “잡아들여라!”

     

   문이 열리며 반쯤 눈이 뒤집어진 병사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임무가 바뀌는 동시에 이곳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돌변한 상황.

     

   우리는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참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시간이 아닌 사람에게 쫓기게 생겼는데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 잠시만!”

     

   “쳐라아아!!!”

   “죽여어어!!!”

     

   잡아들이라 말한 게 방금인데 곧장 죽이라고 말을 바꾸는 병사들을 보니 억울함이 앞섰다.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성 안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왕의 침실로 집결한 것 같았다.

     

   퍼어억!

     

   나는 검을 거둔 채로 가장 선두에서 달려든 병사 하나를 앞굽으로 멀리 밀어 찼다.

     

   좀비와는 다르다. 지금 나에게 달려든 것은 뜨거운 피가 흐르는 완전히 살아 있는 사람.

   고작 발로 밀어낸 정도였지만 사람을 검으로 벤다는 게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드는 행동인지 이제야 깨닫는다.

     

   “쿠엑!”

     

   내가 밀어낸 병사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다른 병사들 틈으로 날아간다.

   그래도 전체적인 능력치가 상승한 덕분인지 병사 하나를 밀치는 것만으로도 진영을 흩트려 놓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곤란한 것은 도대체 지금까지는 어디에 숨어 있던 건가 싶을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는 물량.

   중세 시대 인해전술을 직접 목도한 남궁천호가 튜토리얼의 PTSD가 오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후우……”

     

   탕비실에 갇혀 튜토리얼 더미와 고군분투했던 상황이 겹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뒤가 없다. 하나뿐인 입구로는 공격하기 찜찜한 적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심지어 이번에는 바리케이드도 없었다.

     

   “그래도 튜토리얼이랑은 다르지…!”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 당시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능력적인 면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탕비실에 있었을 때는 정말로 ‘갇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론 지금도 입구는 하나뿐이었지만 출구는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침실 안쪽을 바라봤다.

   창문이 보인다. 사람 두셋은 거뜬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이즈의 창문이!

     

   “천호 씨! 로랑 챙겨요! 탈출하겠습니다!”

     

   남궁천호의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신뢰가 가득한 그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예! 알겠습니다!”

     

   그가 로랑을 양손으로 번쩍 안아 들었다.

   붉은 로랑의 눈이 토끼처럼 뜨였고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장 옆에 있던 티테이블을 들어 창문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챙그랑-!

   파스슷!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 이후 나뭇잎의 거친 마찰음이 내 귓가에 들려왔다.

   충분히 충격 완화는 가능한 상황. 게다가 내 기억이 맞다면…

     

   “천호 씨!”

   “예!”

     

   “아래에 큰 나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

     

   “거기로 뛰어요!”

   “예?”

     

   나는 마지막 말을 던진 이후, 곧장 한가민을 안아 들었다.

     

   한가민은 나나 남궁천호와는 달리 특별한 전투를 치른 업적이 없었다.

   튜토리얼 더미와 맞서 싸운 적도 없었고 좀비를 피해 달아났을 뿐,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거나 직접 좀비를 사냥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자…잠시만요!”

   “뛴다! 꽉 잡아!”

     

   그녀는 각성만 했을 뿐, 나나 남궁천호와는 달리 그렇게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한가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진다.

   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게 저 병사들의 창칼에 맞서는 것보다 훨씬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곧장 창문으로 내달렸다.

   왕의 침실은 대략 5층 높이.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7m와 근접한 높이였지만 내가 뛰어내렸던 스카이 게임즈 엘리베이터에 비하자면 귀여운 수준이다.

     

   “무서우면 눈감고 숨참아!”

   “꺄아아아악!!!”

     

   부웅-!

     

   별이 보인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드러난 그림 같은 새벽빛의 하늘.

   나의 품에 안긴 여인의 금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니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티 없이 맑은 하늘과 창가를 비추는 달빛의 군무가 우리의 탈출을 기원하는 것만 같았다.

     

   깨진 창문 밖으로 보인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환상적인 장면에 나의 등에서 날개가 피어오를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사람 살려어어어어!!!”

     

   내 목을 팔로 감싸고 나의 고막에 스트레이트로 고라니 같은 비명을 꽂아버린 이 금발 꼬마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나는 달빛에 의지해 발을 디딜 낙하지점을 찾았다.

     

   ‘저기다!’

     

   거의 미끄럼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스듬하게 깎여 내려간 지붕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도.

     

   – 으아아아!

     

   내가 뛰어내린 직후 나를 따라 과감한 선택을 한 모양인지 머리 위로 남궁천호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온다.

     

   콰앙!

     

   5층은 생각보다 그리 높은 층이 아니었던지, 우리의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붕 위로 착지했다.

   물론 경사면을 따라 몸이 미끄러지기 시작했지만 확실히 충격 완화에는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미끄럼틀을 타듯 지붕에 몸을 맡겼다.

   빠른 하강에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이 돌 미끄럼틀은 그리 러닝타임이 길지 않았다.

     

   이윽고 지붕의 끝자락에 도착한 나는 처음 목표했던 나무를 향해 몸을 날렸다.

     

   파스스슷!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어느새, 숨을 참고 있던 한가민이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리고 마침내.

     

   풀썩!

     

   나는 땅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이어서 내려온 남궁천호가 로랑과 함께 나무에 걸리는 것을 보고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

     

   “…다른 분들은 괜찮을까요?”

     

   남궁천호가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마른세수를 했다.

     

   걱정이 될 만도 했다. 애초에 임무 내용이 확 바뀐 이유도 우리들 때문이었으니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할 테지.

     

   하지만 지금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좋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임무를 해결해 버리는 것이었다.

     

   “왕의 침실에 모여든 병사의 수를 생각하면 아마 다른 방에는 그렇게 많은 병사가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병사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으니 숨을 시간은 충분했을 겁니다.”

     

   병사들을 상대해 본 결과, 그들은 각성을 마친 플레이어라면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문제라면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압박감.

   진심으로 나를 해하려는 상대에게 검을 들이밀 수 있는 배짱이 없다면 도망치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선일 것이다.

     

   “난감하네요. 보스를 섬멸하는 임무인데 상대해야 하는 것들이 사람이라……”

     

   남궁천호의 말에 나는 그의 눈을 마주치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닐 겁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섬멸 대상이 사람이 아닐 거라고요.”

     

   남궁천호뿐 아니라 한가민까지 나를 보며 의문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보스의 섬멸이라는 임무에서 보스가 사람이 아닐 거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환상을 통해 탑 1층의 역사를 본 나는 보스의 정체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 최종 보스라는 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가장 강한?”

   “제일 위험한 놈이 아닐까요?”

     

   나의 물음에 한가민이 반문했다.

   오답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정답은 아닌 대답.

     

   나는 당당하게 머릿속의 생각을 던졌다.

     

   “저는 1층에 가장 피해를 많이 끼친 놈이 보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임무 메시지가 날아온 이후로 계속해서 고민했다.

     

   보스는 어떤 놈일까.

   조금 전 남궁천호가 ‘보스의 섬멸‘이라는 말을 했지만 정확한 임무의 클리어 조건은 보스의 섬멸이 아니었다.

     

   [임무 : 적의 섬멸]

     

   적이다.

     

   되짚어보면 1층에 도착한 우리에게는 딱히 적이랄 게 없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존재는 없었고 그것은 이곳의 왕, 기사나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

   1층의 주민들에게도 우리는 그저 경계할 만한 낯선 방문자일 뿐이지 까놓고 말해 시작부터 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1층 주민’들에게는 확실한 하나의 적이 있었으니.

     

   “전염병의 근원을 잡아야 합니다.”

     

   내가 봤던 메모리얼 피스 속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법사가 우리에게 준 하나의 안배…

   마법사는 우리에게 말했다. 세상에 죽음을 원하는 사람 따위는 어디에도 없고 이별을 기뻐하는 자 또한 그 어디에도 없다고.

     

   백성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전염병에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었다.

   왕은 백성을 잃었으며 백성을 잃은 국가는 희망과 방향성을 잃었다.

     

   모든 것의 발단은 전염병으로부터 시작됐다.

     

   그것을 끝내기 위해 마법사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나갔다.

   그리고 결국 환상을 통해 나에게 한 가지 힌트를 던졌다.

     

   “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의 말에 두 사람이 당황스럽다는 듯 탄성을 내던졌다.

     

   “저곳 꼭대기에 마법사의 연구실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면 뭔가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마법사의 연구실 구석에 있었던 거대한 마력석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리고 ‘노야의 지팡이’에서 나온 ‘메모리얼 피스’도 함께.

     

   ***

     

   “일단 들어왔는데 어쩌죠?”

     

   막상 성에 들어와 보니 어마어마한 양의 병사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병사에게 붙잡힌 사람들도 보였는데 왕을 시해한 용의선상에 없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어딘가로 질질 끌고 갈 뿐, 즉결처형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시인 씨, 여기에는 병사가 너무 많습니다. 들키지 않고 저 좁은 복도를 다 뚫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흐음……”

     

   난감한 상황이었다.

   물론 미친 듯이 달리며 강행 돌파를 하면 못 뚫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피를 보지 않고 저곳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혼자라면 가능하겠지만.’

     

   지금 옆에 있는 세 사람의 안전을 책임질 자신까지는 없었다.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나의 밥줄이자 모든 위기에서 나를 구해 준 스킬이 자연스럽게 발동됐다.

   하지만 그것도 충분한 상황 파악이 가능할 때나 도움이 되었을 뿐. 지금 상황에서는……

     

   “저기…”

     

   하지만 그때 나의 뒤에 있던 꼬마가 조용히 운을 띄웠다.

     

   “비밀통로 한 번 가보실래요?”

     

   로랑 사가르, 왕의 명령을 받아 성의 잡일을 도맡아 하던 붉은 눈의 시녀는 생각보다 훨씬 유능한 정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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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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