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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EP.29

     

   스멀스멀.

     

   1층이 클리어되는 순간, 이미 굳게 닫혀 버린 연구실의 입구에 푸른 불꽃이 일어나며 귀가 위로 길쭉하게 솟아난 실루엣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짜자잔.

     

   도우미 토끼가 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마술사마냥 팔을 쫙 펼치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매번 입던 턱시도가 아닌 하얀 궁중 예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낯선 기분이 든다.

     

   – 다들 고생하셨어요! 1층 스토리가 바뀌었는데도 잘 해결해 주셨네요! 물론 한 사람이 거의 버스를 태운 것 같기는 하지만!

     

   토끼가 낄낄거리며 사람들을 놀려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토끼의 도발에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고 해야 하나?

     

   – 아니 이 양반들아! 뿌듯해 하지 말고 부끄러워하라고!

     

   그럴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1, 2차 튜토리얼이나 지금의 1층을 거의 멱살 잡고 캐리한 게 나였는데 그런 사람과 함께 위기를 해쳐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토끼의 얼굴이 이상하리만치 밝은 것을 보니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너 왜 웃어?”

   – 아아, 나요? 그러게요? 제가 왜 웃고 있을까아아?

     

   나의 말에 토끼가 이제는 대놓고 거들먹거리며 나의 말을 받아쳤다.

     

   묘하다.

   이놈의 도우미가 웃기만 하면 뭔가 불길한 일이 벌어졌었다. 놈들에게 재밌고 흥미 있는 일은 늘 플레이어들에게는 위기가 되어 왔으니까.

     

   – 자, 이제 슬슬 2층으로 가셔야죠?

     

   그리고 나의 예상과 맞아떨어지게 이어진 토끼의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 2층은 개인전입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 개인전 몰라요? 각자 알아서 생존하시고 성장하셔서 3층에서 만나는 겁니다!

     

   토끼의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한다.

     

   큰일이었다. 보통 큰일이 아니고 티라노사우르스급 큰일이었다. 굳이 왜 티라노사우르스냐고? 나도 모른다. 그냥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 중에 그게 제일 위협적인 느낌이라 그렇다.

     

   “그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 저희는 다 죽으라는 소립니까?”

   “마…맞아요! 저 사람 없이 탑을 어떻게 오르라고…!”

     

   – 에헤이!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토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한소리를 했다.

     

   – 당신네들이 겁쟁이라서 아무것도 안 한 걸, 뭐가 그리 억울하다고 투덜대요? 누가 구석에 짱박혀서 숨어 있으랬어요? 누가 미련하게 자기 살길을 남한테 맡기라고 협박이라도 했어요?

     

   토끼의 말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쌓여 갔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살길을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생존 방식을 선택한 것이었으며 이곳의 누구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우미뿐만 아니라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성좌들 또한 사람들의 생존 방식이 불만이었던 모양이었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겁쟁이들을 비난합니다.]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이 사람들의 한탄에 코웃음을 칩니다.]

     

   – 저기 당신들이 그렇게나 의지하고 있는 저 사람 보이죠?

     

   그러던 와중 토끼가 손을 들어 나를 그 조막만 한 손으로 가리켰다.

     

   – 저 인간… 그러니까 김시인 플레이어가 왜 저렇게 강한지 알아요?

     

   녀석의 말에 사람들의 고개가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돌아왔다.

   그들의 얼굴에 담긴 것은 그저 깊은 이해와 함께 섞인 의문.

   조화롭지 못한… 말 그대로 혼란과 혼돈이 융화된 그들의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저 인간이 님들을 다 지켜줘서 그렇다고요. 저 인간 뛰어다니는 거 봤죠? 아니, 분명 튜토리얼 시작했을 때는 당신들하고 다를 것도 없었다니까?

     

   토끼의 말에 사람들이 반쯤 굳은 얼굴로 귀를 기울인다.

     

   – 당신들 튜토리얼 더미한테 뭐라도 해 본 거 있어요? 저 인간은 말이죠. 사람을 구하려고 입던 옷도 던졌고요. 목숨 걸고 체어샷도 날렸고요… 아 그건 저 여잔가? 하여튼!

     

   토끼가 민망할 정도로 나의 일대기를 웅장하게 풀어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튜토리얼 더미를 잡은 이야기.

   목숨을 걸고 좀비들을 유인한 이야기.

   탑의 1층에 도착해 정신 공격을 꾸역꾸역 버텨 내며 외로운 싸움을 이겨 낸 이야기.

     

   물론 그 안에는 약간의 오해도 있었고 약간의 MSG가 가미된 과장도 존재했지만 내가 목숨을 걸고 이 멸망에 임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거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녀석이 나에 대해 이렇게까지 포장을 해서 나를 띄워줄 이유가 마땅치 않았다.

     

   매번 밸런스 파괴범이니 뭐니 떠들던 녀석이 내가 뭐가 예쁘다고 칭찬을 이렇게까지 하겠는가.

   이렇게 말한다고 사람들이 고양될 리도 없거니와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사람들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것도 아닌……

     

   [‘철 왕좌의 주인’이 당신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철 왕좌의 주인’이 당신에게 3,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살아 있는 무공서’가 당신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낍니다.]

   [‘살아 있는 무공서’가 당신에게 눈팅용 1,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 어이쿠! 코인을 바라고 한 이야기는 아닌데 말이죠! 개인 후원이지만 감사합니다. 헤헷.

     

   토끼가 나를 힐끗 보고는 눈을 몰래 찡긋거린다.

   그러고는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의 머리를 통해 텔레파시가 들리기 시작했다.

     

   「- 고맙죠? 탑에 올라오면서 좌표를 합병해서 한 번 떠들어 줬으니 고마워하세요.」

     

   ‘갑자기 뭐지?’

     

   왜 갑자기 놈에게 생긴 심경의 변화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커다란 의문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놈에게는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남의 생각을 읽는 능력도 있었던 모양이다.

     

   「- 에헤이, 갑자기라뇨. 저는 항상 응원했는걸요? 이참에 제대로 탑 한 번 올라 봐요. 이제부터 내가 제대로 보필해 줄라니까. 최대한 강해집시다! 탑 3층에 오르기 전까지만!」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나의 마지막 질문에 놈이 씨익 웃으며 답변을 회피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느낄 수 있었던 건 녀석이 정말 내가 탑 3층에 오르기 직전까지는 도움을 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 아무튼!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탑에 있는 층들 중에서 2층만큼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장소가 드물어요! 이참에 기회 한 번 거하게 잡아보는 걸로 갑시다! 알겠죠?

     

   거기까지 설명한 토끼가 손을 튕겨 탑의 2층으로 가는 포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탑에 진입했을 때와는 그 모양이 조금 달랐다.

     

   사람 한 명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포탈. 개인전이라는 말마따나 모두의 앞에 작은 포탈이 하나씩 생성되어 있었다.

     

   – 다들 앞에 있는 포탈 보이시죠! 여러분들이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2층으로 향하는 길이지요!

     

   토끼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더 이상 탑을 오르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지금의 삶에 안주하며 정착하고 살아가기를 바랄 수도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위기를 싫어한다. 간혹 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은 돌아갈 수 있는 뒤가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지 비유가 아닌 진짜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해내라 말하면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망설이지 마십쇼! 탑에 오르며 성장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십쇼!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따악!

     

   토끼의 손가락이 튕기며 어김없이 임무가 적힌 알림창이 떠오른다.

     

   —

   『2층으로』

     

   주제 : 없음

   난이도 : 없음

     

   설명 : 2층으로 가십시오.

     

   임무 : 포탈을 통해 2층으로 진입

     

   보상 : 2층으로 진입

   실패 페널티 : 포기를 선택할 시, 사망합니다.

   —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이젠 새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는 ‘사망’이라는 페널티.

   애초에 우리의 세상을 멸망시키는데 일조한 도우미라는 존재가 우리를 가만히 둘 것 같지도 않았기에 나는 쓸데없는 기대를 더 이상 그만두기로 했다.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살아남아주마.’

     

   나는 포탈로 걸음을 옮겼다.

   시야가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렇게 빛이 완전히 사라졌고 잠시 후 새로운 빛이 나타날 쯤.

     

   나는 2층에 도달한 채로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

     

   약 1시간 전 도우미 대기실.

     

   – 휴우……

     

   지구의 광화문 좌표를 맡아 플레이어들을 이끌던 토끼는 터덜터덜 방에 들어서며 꺼끌꺼끌한 모자를 벽에 있던 모자걸이에 대충 걸었다.

     

   토끼가 사용하기에는 높아 보이는 소파가 있었다.

   사람의 키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기에 토끼가 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았지만 토끼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 온몸을 푹하니 파묻었다.

     

   그리고 그때.

     

   – 여어.

     

   토끼가 소파에 앉는 것을 지켜본 웬 뱀의 머리를 가진 남자가 토끼에게 말을 걸어왔다.

     

   – 토끼야 반갑다?

   – ……

     

   뱀머리의 인사에 토끼는 그를 무시하기 위해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더 깊게 파묻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덥썩!

     

   뱀머리가 토끼의 멱살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 으윽!

   – 허허. 이 새끼가 도우미라고 다 똑같은 도우미인 줄 아나. 왜 이렇게 건방져졌지?

   – 이거…놔…

   – ‘주세요’라고 해야지?

   – ……주세요.

   – 옳지.

     

   토끼의 목소리가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며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자 뱀머리는 토끼의 멱살을 놓으며 반대편 소파에 앉아 조소를 머금었다.

     

   탑의 도우미 중, 상위 랭킹에 위치한 뱀머리.

   도우미들은 플레이어들의 성장에 따라 자신의 격이 달라질 수 있기에 플레이어들의 성장에 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성장이란 적절한 보상과 시련이 동반되어야 오는 것이고 그 밸런스를 맞추는 건 언제나 어렵다.

     

   – 이번에 성좌님들한테 들었는데 네가 맡은 좌표 아주 말아 먹었다며?

   – ……네.

   – 그러게 플레이어들 신경 좀 많이 써 주질 그랬어? 적당히 죽이고 적당히 살려서 응? 아주 막! 응? 알잖아 너도?

     

   토끼는 저게 뭔 개소린가 싶었다.

   본인은 애초에 적자생존이 기본이 되는 이세계 좌표를 배정받은 주제에 아무런 힘도 재주도 없는 지구 좌표를 받은 자신과 비교를 하려는 것이 아주 기가 찼다.

     

   하지만.

     

   – 헤헤. 랭킹 3등이신 에키온님께선 역시 뭔가 다르시네요. 제가 배워야겠네요.

   – 그래그래. 토끼 너처럼 무능하면 나 같은 유능한 도우미한테 조언도 구하고 그래야 좀 더 랭킹을 올리고 그러는 거야. 이번 기수들 가지고 랭킹전 한 번 잡을 거라던데 잘해 봐라.

     

   뱀머리… 그러니까 에키온의 도우미 랭킹은 3위였다. 다음 성좌가 될 자격이 있는 5인 중 하나.

   토끼의 랭킹이 100위 밖인 것을 생각하면 까마득한 순위 차였다.

     

   – 그럼 나는 간다 토끼야. 뭐… 무능력한 지구 좌표 놈들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도 나름 칭찬해. 근데 3층에서는 다 죽을 테니 너무 발악하지는 말고.

     

   에키온의 인사에 토끼가 고개를 숙이는 척을 하며 뒷짐을 진 채로 더블엿을 날렸다.

     

   – 재수 없는 새끼.

     

   토끼의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는 없었다. 자신은 정말 재수 없게도 아무런 능력이 없는 지구 좌표를 배정받았고 저놈의 뱀 대가리 새끼는 운이 억세게 좋아서 또다시 마법이 존재하는 이세계를 배정받았으니까.

     

   하지만.

     

   – 너는 모르지? 우리 쪽에도 괴물 같은 놈 하나 있어.

     

   토끼의 머릿속에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검은 머리의 검은 눈을 가진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인간 하나.

     

   –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가서 후원 동냥이라도 좀 해야겠다!

     

   그 인간이 이번 3층 랭킹전에서 토끼를 도와줄 하나의 히든카드.

   녀석을 제대로 성장 시켜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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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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