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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EP.32

     

   하루 종일 정무학관을 싸돌아다니며 사람이 있다 싶은 모든 교실에 들어가 시스템이 보여주는 임무를 정독했다.

     

   —

   『스승과 제자 – 상승검常勝劍』

     

   주제 : 수업

   난이도 : C

     

   설명 : 상승검(진강)의 무공은 종남파의 속가 문파인 비천문의 검을 따릅니다. 파죽지세破竹之勢. 그의 검은 종남파의 유지를 빌어 균형과 규칙을 중시합니다. 그의 검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를 따르십시오.

     

   임무 : 상승검(진강)의 수업을 5회 이상 듣기

   제한 : 시간이 겹치는 수업이 있을 시, 수락 불가능한 임무. (단, 정무학관에서 쫓겨날 시 임무 실패로 간주됩니다.)

     

   보상 : 상승검의 인정 / 비천문의 무공

   실패 페널티 : 상승검이 실망합니다.

   —

     

   또 C 등급.

     

   —

   ……

   난이도 : C

   ……

   설명 : 절강검(목걸)의 무공은 숭산파의 속가 문파인 의결문의 검을 따릅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그의 검은 숭산파의 유지를 빌어 극기와 의지를 중시합니다. 그의 검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를 따르십시오.

   ……

   —

     

   또 또 C 등급.

     

   —

   ……

   난이도 : C

   ……

   —

   계속해서 C 등급.

     

   그동안 스무 개가 넘는 장소를 찾아다녔지만 도저히 C보다 높은 등급의 수업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뭐시기파의 ‘속가 문파’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류, 삼류 무공만 가르치고 있으니,

   도저히 시간과 기회를 투자해 어정쩡한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 그래도 하나쯤은 받아 봤어야 하나?”

     

   이곳에 공략법 따위는 없다.

   나에게 주어진 가르침의 기회가 총 3회였으니 그중 하나를 들으며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지도 몰랐다.

     

   “흠…”

     

   나는 안일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한 차례 털어냈다.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도 너무 이르다.

   아직 나에게는 29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정말 급하다면 마지막 5일이 남았을 때, 밀린 방학 숙제를 처리하듯 수업 3개를 한꺼번에 들어도 될 일이니까.

     

   중천에 떠 있던 해가 뉘엿뉘엿 떨어져 어느덧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찾아온 첫째 날의 저녁.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허무함을 느끼며 숙소로 향했……

     

   “어?”

     

   나도 숙소가 있나?

     

   당황스러움이 일시에 나의 머릿속에 들이닥쳤다. 지금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던 부분.

     

   이런 거대한 시설이라면 기숙사가 있을 것이 당연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기숙사에 내 방이 배정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노숙을 해야 하나?”

     

   그냥 비어 있는 강의실에 들어가 적당히 눈만 붙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숙소 아닌 숙소가 있었으니.

     

   “의약당으로 가야겠다.”

     

   처음 내가 눈을 뜬 장소.

   게다가 정무학관 의원과도 나름대로 안면을 튼 사이였기에 매몰차게 쫓겨날 것 같지도 않았다.

     

   저벅저벅.

     

   이미 어두워진 복도를 달빛에 의지해 걷고 있으니 현대의 가로등이 얼마나 위대한 발명품인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어둡다. 혹여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하여 전방을 예의주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공이 확장되어 가며 어둠에 적응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쯤.

     

   스스슷…

     

   어디선가 파공음이 들려왔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정무학관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그 덕에 소리가 나는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수련관 방향이다.’

     

   머릿속에 스파크가 튀며 내가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깨달은 청량감을 느꼈다.

   그렇다 이곳은 무림! 무武를 숭상하며 강함을 추구하는 소위 전투민족들이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에 수련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리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걸음을 옮겨 소리가 나는 수련관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이게 이 스토리를 풀어나가는데 어떤 힌트가 될지도 몰랐다. 여느 RPG 게임을 하다 발견되는 히든 전직 퀘스트처럼.

   특정 시간에 숨겨진 장소에서 특별한 NPC 스승을 만난다는 건 이곳이 기연으로 똘똘 뭉친 무림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츠츠츳!

   쐐애액- 파앙!

     

   푸른 옥돌로 만들어진 연무장 바닥이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 뒤로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이어진다.

     

   가까워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소리. 내가 무공에는 문외한이지만 일정하고 깔끔하게 전달되는 이 소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

     

   수련관에 도착하자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하나의 인영人影이 보였다.

   나보다 작은 키. 무림인답게 골격이 잡힌 그 몸은 움직일 때마다 검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때 눈앞에 익숙한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띠링.

     

   [숨겨진 인물 ‘화영’을 발견했습니다.]

   [호감도에 따라 당신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인물입니다.]

     

   2층에 도착하고 받은 메시지 중 가장 특별해 보이는 알림이었다.

     

   스릉-

   츠츠츠츳-

     

   자세히 보니 화영이라는 이름의 무인은 나이가 제법 어려 보였다. 많이 봐줘야 이십 대 중반쯤?

   게다가 지금까지 봐 왔던 학관 교수들은 녹색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화영은 정무학관 학생들이 입는 청색 무복을 입고 있었다.

     

   ‘학관의 학생이라…’

     

   상대가 학생이라고 실망하기는 일렀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강호에서는 어린아이와 노인을 조심하라고.

     

   나는 화영이라는 이름을 곱씹으며 수련이 끝나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아니… 정확히는 달빛아래 펼쳐지는 검무를 감상하고 있었다는 말이 조금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름답다…’

     

   검이 만들어 내는 은빛 갈래가 눈을 즐겁게 한다.

   그 환상적인 광경이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도, 벅차게도 만든다.

     

   이윽고 그 모든 춤사위가 끝나고 검이 다시 검집으로 되돌아갈 때쯤,

   나는 꿈에서 깨어난 기분으로 눈앞의 무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후우……”

   “안녕하십니…”

   “꺄악!”

     

   어?

     

   하지만 갑작스러운 나의 인사에 비명을 지른 화영.

   중요한 건 그 목소리가 상당한 하이톤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찰나의 순간 나에게 검격이 날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뭔…!”

     

   핏!

     

   검을 뽑을 겨를조차 없었다. 그저 최소한의 발돋움으로 뒤로 물러나는 게 최선이었을 뿐.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와 화영의 거리가 그리 가깝지는 않았기에 그 공격 경로를 벗어나는데 무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죄…죄송해요!”

     

   화영이란 이름은 조금 중성적인 느낌이 있었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이 의문의 고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딱히 다친 곳은 없습니다. 다행히도 빗겨 갔거든요.”

   “혹여나 상처가 있으시다면 보상 할게요. 그런데…”

     

   화영은 말을 하다 말고 뜸을 들이며 우물쭈물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겁이 많아서 못하고 있는 모양새.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 그럼…”

     

   그녀는 나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은 듯, 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다른 사람의 수련을 몰래 훔쳐보는 건 실례입니다.”

     

   그녀는 조금이지만 화가 난 듯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화가 난 척하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귀엽다는 인상에 가깝다.

     

   무림에서 타인의 수련을 훔쳐본다는 것. 그것은 힘을 숭상하는 무인들에게는 전력의 노출이나 비전절기의 유출과도 연결될 수 있기에 결코 사소한 사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권리를 몇 차례의 결심 끝에 말할 수 있다니…… 이 사람 사기 잘 당할 것 같다.

     

   “아, 죄송합니다. 야밤에 수련관에 누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매일 이렇게 수련을 하십니까?”

     

   나의 말에 화영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애초에 상대와 대화하는 것을 익숙해 하지 않는 사람인 듯싶었다.

     

   “저는 김시인이라 하는데 혹시 소저의 이름은 어떻게 되십니까?”

     

   대화의 기본인 통성명. 그리고 나의 질문에 화영은 고개를 내리깔아 눈을 피하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했다.

     

   “……영”

   “네?”

   “화영입니다. 그나저나… 시인 소협께선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로…?”

     

   그녀는 너무 단답식의 대화만 하는 것이 미안했던지 이번에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왜 이곳에 왔냐라…

     

   그녀가 보법을 밟았던 옥석 바닥이 시야에 들어온다.

   수련을 하며 흘린 땀방울과 검을 휘두르며 생긴 자잘한 검상들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맑은소리가 들려서요.”

   “……예?”

   “아주 맑은소리가 났습니다. 달빛이 검이 되어 울린다면 그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소리요.”

     

   나는 정말 솔직 담백하게 그녀의 검을 보며 느꼈던 감상을 전했다.

     

   “제가 검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런 검은 난생처음 봤습니다.”

     

   고작 열흘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검을 휘두른다는 것이 나를 지키거나 남을 해치는 데만 사용하는 일개 수단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틀어 검이 아름답다고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검’이라는 것은 뭇 사나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로망 같은 것이 있지만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는 마당에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기나 했겠는가.

     

   그런데 그녀에게는 내가 한 말이 조금 더 특별하게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다, 달빛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화영은 무엇인가 크게 감동을 받은 듯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오히려 당황한 것은 이쪽.

   지금껏 굉장히 소극적 태도로 내 말에 대꾸도 제대로 못 하던 사람이 얼굴을 들이밀며 확 다가오니 나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어… 뭐랄까요? 부드럽다 말하기에는 단단했고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서늘한…… 음, 표현이 너무 어려운데…”

   “아아…!”

     

   나의 애매한 설명을 듣자 화영은 옅은 감탄을 집어삼키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호, 혹시 부족한 점은 못 느꼈나요? 이게 아쉬웠다거나 뭔가 부족했다거나…!”

   “어… 뭐 그렇게까지?”

     

   [‘화영’의 호감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그녀의 반응에 나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흥미를 보이며 다가오는 그녀에게 헛소리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감히 제가 판단할 수준이 아니시긴 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죠.”

   “뭐였죠?”

   “저, 저기…”

     

   나는 이제는 거의 달라붙다시피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그녀를 슬쩍 밀어내고는 조금 전에 봤던 청옥석 바닥의 검상을 손으로 가리켰다.

     

   “제가 소저의 초식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검이 한 번씩 바닥에 걸려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게다가 키가 작은… 흠흠. 보폭이 좁으신 편이라 더 그런 느낌도 있었고요. 그리고 또……”

     

   나의 말이 이어질수록 화영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정말로 놀란 눈치다. 당연하지만 나는 그저 내 주관적인 생각을 말한 것뿐이었다.

     

   ‘빠른 납득’ 스킬 덕분인지 나는 상대를 파악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게 쉬워졌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 것을 말했을 뿐, 당연히 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짧은 검을 써 보는 건 어떠신가요?”

     

   나는 그냥 내 생각을 말했다.

     

   [‘화영’의 호감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정확해요! 제가 불편하게 느끼던 부분들을 단 한 번만 보고 어떻게…!”

   “그, 그렇군요?”

     

   화영은 그 직후 자신의 검에 대한 생각을 나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다른 사람의 무공 수련을 훔쳐보면 안 되니 어쩌니 했던 게 무색해질 정도로 많이.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분이 정무학관에 계신 줄은 몰랐어요.”

     

   그녀는 뭐가 그리 개운한지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상황을 보니 지금껏 이런 유형의 대화를 나눌 사람이 주변에 없었던 모양.

     

   나는 그녀에게서 괜한 측은함을 느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 겪는 외로움은 나도 잘 알고 있는 감정이었으니까.

     

   “저기…”

     

   나는 그녀에게 내일 또 이곳에 와도 되는지 물으려 했다.

   검을 배우는 건 둘째 치고 그녀를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먼저 말을 꺼낸 건 화영이었다.

     

   “혹시 내일도 오실 건가요?”

     

   띠링.

     

   [새로운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2층에 올라온 이후로 처음.

   이건 받아야겠다 싶은 임무가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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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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