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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

   EP.34

     

   우연偶然.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인과 관계는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따돌림을 당한다더니 밖에서 처맞고 온 것이냐? 얼씨구? 칼빵도 있네?”

     

   꽤 오랫동안 의약당을 드나들어서 그런 것인지 의원 당휘소의 말투는 어느 순간부터 ‘하오체’를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한껏 가벼워진 그의 말투 따위가 아니었다.

     

   띠링.

     

   [‘당휘소’가 심심하던 차에 상처를 입은 당신을 발견했습니다.]

   [‘당휘소’의 호감도가 ‘반가움’입니다.]

     

   [정무학관 의원 ‘당휘소’의 히든 피스가 발동됩니다.]

     

   —

   『스승과 제자 – 귀중한 연구 자료』

     

   주제 : 히든 / 연계

   난이도 : A

     

   설명 : 정무학관 의원인 ‘당휘소’는 자신의 유일한 연구 자료에 상처가 생긴 것이 못마땅합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당신이 더 이상 얼뜨기처럼 삼류 얼간이들에게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십시오.

     

   임무 : 당휘소에게 열흘간 가르침을 받으십시오. (가르침의 종류는 당휘소의 기분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한 : 당휘소의 연구에 도움을 준 자, 당휘소가 안쓰럽게 여기는 자, 몸에 드러나는 상처를 입은 자.

     

   보상 : 당휘소의 인정 / 사천당가의 무공(D~A) 획득

   실패 페널티 : 당휘소의 실망 (정도에 따라 당휘소가 더 이상 당신을 치료하지 않거나 단전이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

     

   임무 알림을 모두 읽은 나는 예상치 못한 기회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물론 나를 대놓고 ‘연구 자료’니 ‘얼뜨기’니 말이 많기는 했지만 크게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대답 안 해? 맞고 온 거냐고.”

     

   당휘소가 나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물론 나는 저 그의 표정이 진심에서 나온 짜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 임무가 떠오른 조건 중 하나가 당휘소가 나를 ‘힘없는 약자’로 보고 있었기 때문.

     

   ‘나름대로 정파라 이건가?’

     

   정무학관의 ‘정’은 당연하게도 바를 정正이다. 그리고 그곳에 근무하는 의원이라면 정파답게 의협심이 있으며 정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을 터.

   죄 없는 약자가 강자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위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네… 뭐…”

     

   나는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당휘소의 눈을 피했다. 하지만 눈빛은 죽어있지 않은 신념을 머금었다. 내가 보일 수 있는 혼신의 공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힘으로 해결할 테니까요.”

     

   그들은 무武를 숭상한다.

   의義를 존중하고 협俠을 귀하게 여긴다.

     

   그리고 내가 지금 내뱉은 이 말은 내가 가진 무武의 가치를 보였고 당휘소가 가진 의義와 협俠을 자극했다.

     

   꿈틀.

     

   나의 말을 들은 당휘소의 이마에 얇은 핏줄을 꿈틀거렸다. 힘도 없는 얼뜨기가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선다.

     

   그는 떠올렸을 것이다.

   스스로 수련을 통해 언젠가는 자신을 무시한 모든 이들에게 나를 증명하는 모습을.

   허나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많은 시련을 겪고 고통받으며 나아갈 나의 소신을.

     

   “이름이 김시인이라 했지?”

   “……네? 그렇습니다만?”

     

   나는 그의 물음에 약간 시간차를 두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에 당휘소는 짐짓 진중한 표정을 짓고는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던졌다.

     

   “너, 나한테 뭐 좀 배워볼래?”

     

   [‘당휘소’가 당신에게 먼저 가르침을 제안합니다.]

   [수락할 시, 임무가 시작됩니다.]

     

   임무에 나오는 설명은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숙이며 가르침을 먼저 청하는 것과 그가 나에게 가르침을 베풀겠다고 제의를 하는 것은 완전히 그 느낌이 아주 달랐다.

     

   ‘내가 먼저 뭔가를 알려달라고 물어봤으면 그저 그런 놈으로 보였을 테지.’

     

   힘을 원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의 복수를 하기 위해 힘을 갈망하는 것은 확실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추가로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한 번 남겼다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괜찮습니다. 당 의원님의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지요. 스스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한 번쯤은 튕긴다.

     

   “허. 생각은 있는 놈이로구나. 그래도 나도 왕년엔 사천당가의 일원으로 꽤 이름을 날린 사람이니 원한다면 호신술 정도는 가르쳐주마.”

     

   호감도는 오른 상태.

   이럴 때는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의원이신데 무리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정무학관의 무공으로도 저에겐 과분합니다.”

     

   예의 바르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나마 그를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을 하자면 ‘아, 의원한데 배운다고 뭐 그렇게 대단한 변화가 있겠수?’ 라는 뉘앙스.

     

   나의 마지막 말에 당휘소의 이마 핏줄이 조금 더 두꺼워진다. 아마도 자존심이 상한 모양.

   하지만 죽어도 이곳이 무림이라고 삼고초려까지는 해봄직 했나보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나에게 뭔가를 배워볼 생각이 있으냐? 내가 네놈이 정말 아까워서 그런다.”

     

   그의 말에 나는 최대한 고민하는 척하며 턱을 쓸었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진 상태.

   이윽고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그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남겼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것 같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싫증이 나신다면 말씀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이잉…쯧쯧. 그래! 나도 하다가 네놈이 대충한다 싶으면 바로 그만둘 생각이니. 힘들다고 포기나 하지 말아라.”

   “제가 먼저 포기할 일은 없을 겁니다.”

     

   [임무를 수락합니다.]

     

   나는 임무가 쌓인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스승과 제자 – 월광月光 (B)]

   [스승과 제자 – 귀중한 연구 자료 (A)]

     

   새롭게 들어온 임무.

   물론 임무의 이름이나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가 꺼림칙한 느낌도 있었지만 나는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

   나는 탑을 계속해서 올라야 했고 지금 성장하는 것이 나중에 목숨을 담보로 미지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방법이었다.

     

   ***

     

   A등급 난이도의 임무는 나의 상식을 벗어난 무언가를 마땅하다는 듯 요구했다.

     

   따악!

     

   “내가 딴생각하지 말랬지!”

   “아악!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이노무쉐끼가 어디서 말대답이야?! 그리고 스승님, 아니면 사부님이라고 불러라!”

     

   따악!

     

   아침부터 가부좌를 틀고 숨만 쉬기를 3시간째.

   검을 휘두르지는 않아도 몸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배울 거라 생각한 나는, 이어지는 그의 매질에 정신을 못 차리며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이놈아! 그냥 숨을 쉬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니 그럼 뭔데요?!”

   “이것도 못 해? 앉아서 엉? 코로 기운을 받고 그걸 슬쩍슬쩍 앙? 그리고 입으로 뱉으란 말이야!”

     

   아니, 그게 호흡이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건 혹시 배변활동 입니까?

     

   “또 딴생각하지!?”

     

   따악!

     

   눈물이 찔끔 나온다.

   이 나이에 매를 맞았다고 울다니 수치스럽다.

     

   사실 당휘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게 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무림인이 아닌 내가 그가 원하는 ‘운기’를 할 수 없다는 게 결정적인 문제였다.

     

   ‘도대체 그 내공이란 게 뭔데?’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느껴지지도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오른팔을 움직이고자 뇌에 자극을 주면 우리의 근육은 꿈틀거리며 오른팔을 움직여 준다.

     

   무언가를 입력하면 마땅한 출력이 나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아는 신체를 다루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행위는 눈앞에 컵을 가져다 놓고 ‘아, 빨리 염력으로 움직여 보라고!’ 따위의 지시를 내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젠장 감도 오질 않는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막혀 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렸다.

     

   숨을 들이킨다. 느낄 수는 없지만 공기에 담긴 기운을 천천히 인도한다.

   폐로 받아들인 기운을 혈액과 연동시킨다. 그리고 심장으로 이동한 기운을 조심스럽게 단전으로 가져간다.

     

   단전에 쌓인 노폐물을 맑은 기운으로 밀어낸다.

   자리 잡은 기운은 그대로 두고 미세하게 나온 탁기를 역순으로 배출한다.

     

   “후우…”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젠장.

     

   ***

     

   밤이 됐다.

     

   지난밤 화영과 한바탕 비무를 하고 의약당에서 숨을 어렵게 쉬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었기에 지금 나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한 상태였다.

     

   “아직 안 왔나?”

     

   매번 수련을 훔쳐보기 위해 화영보다 일찍 왔던 탓일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화영보다 먼저 공터에 도착했고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가부좌를 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쓰읍.”

     

   밤공기가 나의 폐를 적신다. 확실히 약재 냄새가 가득하던 의약당보다 맑은 공기가 가득한 외부가 숨을 쉬기 편안하다는 기분이 든다.

     

   ‘공기가 차갑네.’

     

   몸에 찬 기운이 흘러들어오니 낮에 했던 ‘운기’보다는 더 집중이 잘되는 것도 같다.

     

   마치 여름에 차가운 얼음물을 마신 것처럼.

   찬 공기가 움직이는 경로가 나의 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느껴졌고 나는 심드렁하게 그 기운을 똑같은 경로를 따라 이동시켰다. 그런데.

     

   [‘월광검법月光劍法’의 1초식을 익힌 상태입니다.]

   [‘월야심법月夜心法’이 발동됩니다.]

     

   ‘어?’

     

   눈을 감은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상태 메시지.

   나의 상태창 구석에는 화영에게 배운 월광검법이 생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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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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