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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EP.37

     

   며칠 후, 정무학관 비무대회가 막을 열었다.

     

   길거리에 흔하게 보이는 여러 문파의 제자들.

   매화나 구름, 파도 등. 다양한 문양이 그려진 옷을 입은 정파의 무림인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비록 정무학관에서 하는 행사였지만 무림의 뛰어난 후기지수가 배출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사안이었다.

   게다가 그 후기지수가 혹여나 소속된 문파가 없다면 그들을 각 문파로 영입하는 일 또한 정무학관을 방문한 무인들의 역할이었다.

     

   “자- 쌉니다. 싸요!”

   “고급 숫돌로 날 갈아드립니다! 반 시진이면 완료되니 필요하다면 맡기고 가셔요!”

   “당호로! 고기만두! 비무대회 구경하실 때 출출하시면 안 되죠! 먹을거리 팔아요!”

     

   무인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사치들도 이 특별한 연례행사에 빠질 수는 없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 심지어 관과 무림이 합세하여 열리는 행사였기에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놓치면 머저리로 취급받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도 꽤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는데 보통 그런 경우는 명성이 자자한 고수거나 나와 같은 정무학관의 학생들이었다.

     

   “사람들이 엄청 많네요. 이 넓은 정무학관이 좁아 보이네.”

   “첫날이라 오히려 적은 편이에요. 예선전이 끝나고 본선에서 승자 진출전으로 넘어가면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요.”

     

   승자 진출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비무대회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혹시 화영 소저는 무슨 조에 배정 받으셨죠? 시작부터 맞붙으면 좀 난감할 것 같은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통 지인들이 함께 가서 비무대회를 신청하는 경우, 그 사람들은 다른 조로 보내거든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만약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비무대회를 신청했고 모두가 같은 조가 된다고 해봐라. 고의적인 패배를 통해 한 사람을 본선으로 곧장 끌어올리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정정당당하게 비무를 하고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본선을 임하는데 한 사람만 완벽한 컨디션으로 나머지 비무를 치를 수 있으니 그것은 확실히 공정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렇게 되면 비무대회의 취지에 맞지 않겠네요. 다행입니다. 시작부터 만날 일은 없겠군요.”

     

   물론 나는 화영을 만나도 절대 승부조작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 문제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화영 소저. 저 사람들은 뭐죠?”

   “음, 뭐랄까요…… 대단한 건 아닌데 궁금하시면 구경이나 해보실래요?”

     

   멀리 보이는 인파에 내가 질문을 던지자 화영은 조금 씁쓸하다는 듯한 옅은 미소를 띠고는 대회장 우측 공터를 향해 앞장섰다.

     

   사람들이 모여 뭔가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수선한 것 같으면서도 질서정연한 모습.

     

   그리고 그 줄의 끝자락에 시선이 도달하자 나는 나무 책상에 꽤 고급진 비단을 펼친 채, 뭔가를 셈하고 있는 장사꾼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둘, 넷, 여섯, 여덟…”

     

   촤르르륵.

   파파팟!

     

   어마어마한 속도로 주머니의 동전을 꺼내 계산하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 앞에 선 손님들의 대화를 들으니 그곳이 무엇을 하는 장소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박판이었군요.”

   “학관 학생들의 힘을 돈으로 저울질하는 썩 건전하지 못한 오락이죠.”

   “으음…”

     

   화영의 말을 들은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뒤에 발을 맞춰 섰다.

     

   “시인 소협?”

   “아아, 제가 막 돈을 걸고 싶고 그런 게 아니라 대진표에 누가 있나 조금 궁금해서요.”

     

   나의 말에 화영의 눈이 가늘어진다. 아무래도 내 말이 의심스러운 모양.

   하지만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화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일단 그게 꽤나 신빙성 있는 추측일 것 같았으니까.

     

   “나는 정무학관 4학년 추사검이 본선에 진출한다에 걸겠소!”

   “추사검? 그자는 조금 무리가 아니겠는가?”

   “어허! 가능성은 낮아도 배당금이 높지 않소?”

     

   앞에서 학생들의 명단을 보던 두 사람이 고심 끝에 이름을 지목하며 베팅을 시작했다.

     

   커다란 종이에 이름과 별호가 수두룩하게 적힌 표.

   자세히 보니 오른쪽과 왼쪽으로 칸이 나눠져 있었는데 오른쪽은 이미 어느 정도 이름을 날려 별호가 있는 학생들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었다.

     

   위로 갈수록 평판이 좋고 돈을 딸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인 것 같았다. 모두가 4학년인 데다가 별호가 있는 명문가의 사람들.

     

   무협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화산파부터 시작해 기본적인 구파일방의 제자들이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았다.

     

   ‘그럼 왼쪽은…’

     

   텅텅 비어 있다.

   그리고 내가 그 빈칸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 사람들에게 베팅을 받던 남자가 씩 웃으며 나에게 작은 붓 하나를 내밀었다.

     

   “여긴 혹시 모를 신성을 찾기 위해 마련한 칸이네. 자네가 혹시나 오른쪽 칸에는 없지만 이번 비무대회에 오를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적으시면 된다네.”

     

   그런 거였군.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슬쩍 화영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내가 적으려는 명단의 오른편에 이미 화영의 이름이 떡하니 적혀 있었기에 대놓고 내 이름을 왼쪽에 우겨넣기가 좀 찝찝했던 탓이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보던 화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고 이내 내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허, 그냥 빨리 적어요. 어차피 본선 진출자 뽑는 거니까.”

   “후후…”

     

   스스슥.

     

   나는 익숙하지 않은 붓놀림으로 내 이름 석 자를 왼쪽 칸에 적어 넣었다. 하지만 이름을 적고 나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음, 화영 소저?”

   “왜요? 막상 이름 적고 나니까 좀 아닌 것 같아요?”

   “아뇨… 그게 아니라…”

     

   나는 손바닥이 잘 보이도록 화영에게 쭉 뻗었다. 그리고.

     

   “제가 돈이 없습니다. 조금만 빌려주시면 안 됩니까?”

   “남의 돈으로 도박이라니…… 패가망신하기 딱 좋은 그림이네요.”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신의 뒤에 걸려 있던 전낭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의 전낭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내 앞에 떠오른 알림 하나를 확인하고는 동전을 꺼내던 그녀를 제지했다.

     

   “잠시만요. 생각해 보니 여기 돈이 있었네요.”

     

   나에게 돈이 있었다.

   정확히는 지금 생긴 것이었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나는 나의 눈앞에 떠오른 새로운 알림 하나를 보며 탑도 나름대로 센스는 있다는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벤트 ‘본선 진출자를 맞춰라’가 발생합니다.]

     

   —

   『본선 진출자를 맞춰라』

     

   설명 : 당신은 정무학관 비무대회에 앞서 본선 진출자를 가려내는 작은 도박판에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코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율은 ‘1,000코인’당 ‘은자 한 냥’입니다.

     

   승리 시 : 당신이 베팅한 금액의 ‘?’ 배를 획득합니다.

   패배 시 : 당신이 베팅한 금액을 전부 잃습니다.

     

   제한 : 하나 혹은 두 사람을 선택해 베팅할 수 있습니다.

   —

     

   오오.

     

   오른쪽 옆구리에 작은 전낭이 생성되자 괜한 감탄사가 나온다.

   나는 곧장 주머니에 있는 무언가를 손에 들어오는 만큼 끄집어냈다.

     

   [1,000코인을 꺼냅니다.]

   [1,000코인을 꺼냅니다.]

   [1,000코인을 꺼냅니……

     

   촤르륵!

     

   쉬지 않고 떠오르는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는 내가 꺼낸 은자를 본 주인장의 눈이 휘둥그레질 때쯤.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15,000코인을 환전했습니다.]

   [ 남은 코인 : 1,000 C ]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약간의 포션 값.

   그것을 제외한 모든 코인을 쏟아 내자 뒤에 있던 화영조차 나의 모습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은자가…… 얼마였더라?’

     

   무협도 결국 중국이 배경이니 어느 시대를 따르고 있을 것이다.

   은자의 가치가 시대별로 천차만별이긴 했지만 은의 유입이 많아 가치가 떨어진 청나라 때의 기준이라도 대충 한 냥에 한화 40~60만 원 정도는 했었으니…

     

   그저 학생이 덜렁 던지기에는 충분히 당황할 만한 돈이었다.

     

   “어어…… 자네 정무학관 학생 아니었나?”

   “맞습니다.”

   “혹시 부모님께서 상단을 운영하고 계신가?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주인장의 표정은 방금 전, 내가 화영에게 돈을 빌리려 했을 때와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당황스럽지만 확실한 돈 냄새를 맡은 상인의 그것.

   그리고 그는 내가 꺼낸 은자 열다섯 냥을 확실히 셈한 다음,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혹시…… 자네가 적은 이 사람은 누군가? 별호가 없는걸 보니 유명한 고수는 아닌 것 같네만…”

     

   그의 눈이 묘한 기대로 반짝인다.

   새로운 인재의 등장. 혹시나 왼쪽에 적힌 이 ‘김시인’이라는 사람이 은둔 고수라면 이번 판은 상당히 흥미로워질 예정이었다.

     

   “전데요?”

     

   하지만 나의 말에 주인장의 얼굴은 순간의 허탈감과 어이없음으로 순식간에 물들었다.

     

   갓 무공을 배운 초짜나 가지고 있을 법한 치기.

   게다가 이렇게 큰돈을 덜컥 걸어 버릴 정도로 넉넉한 형편이었으니 나름 학관에 들어온 부잣집 도련님의 유흥이 되시겠다.

     

   “아아, 그런가. 힘내보게. 자네는 할 수 있을 거야.”

     

   주인장이 상업적 미소를 내게 띠며 나의 배당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왼편에 적히는 사람들은 배당금이 높게 나오는 편이네. 못해도 세, 네 배. 많으면 열 배까지도 올라가긴 하는데…… 아무튼, 한 사람 더 고르겠는가? 둘 다 맞추면 그 배당을 곱으로 셈해준다네. 물론 하나라도 틀리면 나가리고.”

     

   그의 설명에 나는 건치 미소를 보이며 오른쪽에 적힌 이름을 손으로 당당하게 가리켰다.

     

   “소저 할 수 있죠?”

   “하아……”

     

   나의 반응에 화영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름값이 있어 배당은 높지 않지만 확실한 선택.

     

   나는 앞으로 있을 두둑한 코인을 기대하며 비무장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비무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

   『정무학관 비무대회』

     

   주제 : 이벤트

   난이도 : ?

     

   설명 : 비무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자신의 실력을 뽐내 결승에 도달하시기 바랍니다. 보상은 당신이 도달한 단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현재 참가자는 ‘423명’입니다.)

     

   임무 : 비무대회 1차 예선 통과

   제한 : 비무대회 참가자

     

   보상 : 2차 예선 진출

   실패 페널티 : 비무대회 탈락

   —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회장에 들어섰다.

     

   처음으로 들어와 본 대회장은 월드컵 축구장 저리 가라 할 만큼 넓었고 그곳에 모인 인파는 관객석을 터져 나갈 듯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화영 소저는 ‘갑甲’조였죠?”

   “네, 시인 소협은 ‘경壬’조였던가요? 본선까지 만날 일은 없겠네요.”

   “그렇겠네요… 당연한 말씀이지만 본선에서 봅시다.”

   “네, 그럼.”

     

   화영은 나에게 인사를 던진 후 ‘갑甲’이라는 팻말이 적힌 방향으로 움직였다.

   천간天干 중 앞의 여덟 개로 명명한 조.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후, 내가 속한 ‘경’조를 찾아 줄을 섰다.

     

   “경壬조 인원들은 나를 따라 오시게!”

     

   어느 정도 줄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검은 무복을 입은 무인이 다가와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에서 2명만 올라간다 이거지?’

     

   검은 무인을 따라 대회장 안쪽에 도착하니 다닥다닥 나열된 수많은 비무장이 보인다.

   그리고 나는 안내에 따라 경기장에 올랐고 나의 첫 상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응?”

   “이 새끼! 내가 이날만을 기다렸다!”

     

   끝에 작은 파도 문양이 그려진 청색 무복을 입은 그가 나를 향해 서슬 퍼런 검을 겨눈다.

   해남파의 3대 제자이자 나에게 시비를 건 양아치 중 가장 별 볼일 없던 녀석.

     

   – 경조 19번 종혁!

   “네!”

     

   비무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심판이 이름을 부르자 녀석이 호기롭게 응답한다.

   그리고 이어서.

     

   – 경조 20번 김시인!

   “……네.”

     

   – 비무 개시!

     

   그렇게 비무대회의 장이 열렸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나의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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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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