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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EP.40

     

   비무대회 예선이 끝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나와 화영은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 진출자들은 내일 이십사시를 기준으로 진시辰時까지(오전 8시) 비무 대회장으로 오시면 됩니다. 모두들 수고하셨고 푹 쉬시길 바랍니다.”

     

   비무의 심판을 봤던 무인의 말에 사람들이 비무 대회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본선에 진출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워진 사람들도 보였다.

     

   나름 경험 삼아 대회에 참가 해 본 참가자들.

   애초에 본선 진출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았기에 깔끔한 탈락이 오히려 반가운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본선에 진출하고도 뭔가 불만이 있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시인 소협, 그 재미난 별호에 대해 할 말 없으세요?”

   “하. 하. 하.”

     

   면상을 파괴하는 주먹.

   거의 뭐 해운대 꿀주먹 같은 유치찬란한 별호에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눈을 피했다.

     

   “제가 시인 소협에게 검을 가르쳐 드린 이유…… 잊지 않으셨죠?”

   “예에……”

     

   화영의 검을 훔쳐본 나는, 그녀에게 검을 배우는 것을 대가로 천월문의 힘을 비무대회에서 펼쳐 보이기로 했다.

     

   천월문이 이름이 없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길.

   그리고 그녀가 지금 나에게 눈치를 주는 이유는 나는 원하지도 않았던 그놈의 파면권이라는 별호 때문이었다.

     

   “파면권이 뭐예요. 파면권이……”

   “처음에는 조금 그랬지만 마지막에는 천월신공 썼잖아요.”

   “그쵸. 그래서 권귀검수拳鬼劍手 같은 이상한 별호까지 붙었죠.”

     

   검을 쓰는 주먹 귀신이라……

   할 말이 없었다.

     

   화영과 특별한 계약 따위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비무대회를 통해 천월신공의 위상을 높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휴우… 그나저나 처음에는 왜 검을 안 쓴 거예요?”

     

   내가 최선을 다해 미안한 표정을 짓자 화영이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물었다.

     

   왜 검을 쓰지 않았느냐는 말.

   솔직히 말해 다른 사람들의 무공을 두 눈으로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상대가 너무 약해서요…”

   “네?”

   “쓰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중2병스러운 굉장히 오글거리는 말일지도 몰랐다. 상대를 죽일 것 같아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튜토리얼 때부터 나의 행보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말을 가볍게 생각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달려온 지난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에서 내가 검을 들었던 때는 진심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한 시간밖에 없었다.

     

   “……”

     

   나의 말을 들은 화영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상대가 무엇이든 목숨을 걸고 혈투를 펼쳐본 사람은 이곳이 무림이라고 해도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게다가 학관은 무공을 배우는 교육장이었지 전장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생사결은 그들의 목적이 아니었고 사부들도 그들에게 그러한 살초를 가르치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화영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녀는 지금까지 눈앞의 남자가 검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동작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상대를 베어내고 목숨을 취하고 가장 간결하고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낸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고 천월문의 부흥을 위한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죽을 것 같았다라…… 알겠어요. 누가 뭐래도 시인 소협이 천월문의 무인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앞으로 있는 본선에서는 최선을 다 할 테니까.”

     

   나는 그녀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앞으로 남은 본선은 비무는 내가 결승에 도달한다고 했을 때, 총 4회.

     

   그사이에 나올 상대는 분명 소림의 진휘보다 강할 것이라 기대를 해 보기로 했다.

     

   ***

     

   띠링.

     

   [이벤트 ‘본선 진출자를 맞춰라’가 종료됩니다.]

     

   [승리 : 김시인 4.2배]

   [승리 : 화영 1.6배]

     

   [배당금 : 100,800 코인을 획득합니다.]

     

   씨익.

     

   나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번 내기로 상당한 이윤을 남길 거라 예상은 했지만 15,000코인이 10만 코인을 훌쩍 넘어 버리니 현실감이 사라진다.

     

   “후후후…”

   “따흐흑…!”

     

   새어 나오는 웃음 뒤로 도박판 주인의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그에게 전해 받은 묵직한 전낭.

   100개가 넘는 은자를 품에 넣으니 상태창의 코인 수가 시원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1,000 코인을 획득합니다.]

   [1,000 코인을 획득합니다.]

   [1,000 코인을……]

     

   ‘이거 너무 든든한데?’

     

   남자의 여유는 주머니 사정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심지어 그냥 돈도 아니고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코인이라 생각하니 심적인 편안함이 몰려왔다. 그런데 그때.

     

   띠링.

     

   [임무 ‘비무대회’ 예선이 종료되었습니다.]

   [특수한 조건에 의거해 활동 반경이 확장됩니다.]

     

   “응?”

     

   [본선 시작 전까지 정무학관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 24:00:00]

     

   예선이 마무리되며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정무학관을 벗어나간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벗어날 수 없었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외부 활동이 가능하다?’

     

   게다가 제한 시간까지 주어졌다.

     

   이것은 그냥 예선을 통과한 나에게 주어진 짧은 휴식 시간일까?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이벤트를 위한 하나의 발판일까?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후자가 이 탑과 2층의 목적에 조금 더 부합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영 소저 우리 밥이라도 먹을까요?”

   “……? 식사 시간은 아직 조금 이른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가시죠. 이번에 돈도 많이 땄으니 제가 스승님께 식사 대접 한 번은 꼭 해드리고 싶네요.”

     

   나의 말에 화영의 표정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평소에 내가 보였던 행동과는 약간 동떨어진 감이 있었으니 어색함을 느끼는 모양.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짧은 고민을 마친 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문하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천월문. 당연하게도 천월문은 돈이 넉넉한 문파가 아니었고 화영은 굳이 공짜 밥을 거절할 사람이 아니었다.

     

   ***

     

   끼익.

     

   처음으로 벗어난 정무학관의 공간.

   객점에 도착하자 화려한 나무문의 경첩이 삐걱거리며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십쇼! 두 분 이십니까?”

     

   키가 내 어깨 언저리에 머무는 점소이가 다가오며 웃음을 지었다.

   흐트러짐 없이 깔끔한 복장과 함께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오는 외모. 확실히 비싼 객점은 비싼 값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

     

   “네,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혹시 자리 있습니까?”

   “식사군요! 1층과 2층에 자리가 있는데 자리마다 가격이 조금 다릅니다. 1층은 동전 50푼. 2층은 동전 200푼입니다.”

     

   점소이의 말에 나는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은자를 가지고 있고 돈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 가치가 동전으로 계산하면 얼마인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나는 일단 은자 하나를 아이에게 내밀어 보기로 했다.

     

   “이 정도면 어디에 앉을 수 있습니까?”

   “어어……?”

     

   내 손에 들린 은자를 바라본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의 눈치를 보니 은자 하나의 가치가 생각보다 비싼 것 같았다.

   코인으로 치면 1,000코인에 해당하는 값이니 어느 정도 싼 돈은 아닐 거라 예상하긴 했다.

     

   “2층에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나머지는 추천하는 식사로 준비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앗,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죠.”

     

   나는 눈치껏 점소이에게 자리를 부탁했고 그는 우리를 데리고 객점이 훤히 보이는 2층의 넓은 테이블을 마련해줬다.

     

   “객점에 사람이 많군요.”

   “아무래도 비무대회 기간이니까요.”

     

   나의 말에 점소이가 상업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응답했다.

   그의 말마따나 비무대회라는 시기적 특성이 겹친 탓인지 객점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제각각의 문양이 그려진 옷과 검을 착용한 무인들.

   상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보였고 무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식사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럼 잠시……”

     

   점소이가 종종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자리를 뜨자 화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협, 은자가 얼만지 모르죠?”

   “……네?”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나는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화영은 ‘역시’라는 듯한 눈빛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은자 한 냥이면 1200푼 정도 돼요.”

   “그…으래요?”

   “1200푼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얼굴이네…… 뭐, 간단히 말하자면 평민이 만질만한 돈은 절대 아니라는 말이죠.”

     

   그녀가 나에게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낸다.

     

   “시인 소협은 정체가 뭔가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굳이 뭔가 특별한 비밀이 있어서 말을 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이 다물어졌을 뿐.

     

   ‘나는 뭐지?’

     

   스카이 게임즈의 인사팀 사원?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

   그것도 아니라면 무인?

     

   지구라는 곳에서 멸망을 경험하고 성좌들의 알 수 없는 목적으로 탑에 들어온 존재인 나를 표현할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는다.

     

   하지만 그때,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 속삭임이 어딘가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 ……준비는?

   – 문제없습니다.

     

   바로 옆의 식탁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누가 봐도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검은 옷을 입은 자들. 자세히 보니 약간의 짙은 녹빛이 섞여 있는 것도 같다.

     

   ‘근데 왜 몰랐지?’

     

   이상했다. 낯설면서도 너무나도 익숙한 기분이다.

   이런 느낌을 언제 또 느꼈던가.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은신(C-)’을 감지합니다.]

     

   그들의 대화가 조금씩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정무학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비무대회에 대한 자잘한 대화들이 나의 귓가를 맴돈다.

     

   – 내일, 본선이 시작되고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결승 때, 작전을 시작한다.

     

   검은 복장의 끝자락. 그곳에 맹렬한 글자가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사천당문 四川唐門

     

   나의 두 번째 스승.

   당휘소가 속한 당가의 무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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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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