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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EP.42

     

   해남파의 3대代 대제자大弟子 종악.

   그는 속가 문파도 아닌 본산의 제자였기에 차후 해남의 장문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아이였다.

     

   10살이 되기 전부터 검을 잡은 그는 딱히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풍족했던 집안.

   구파일방의 대제자.

   아쉬울 것이 없는 실력.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졌다 여기며 살아온 것이 화근이었을까.

   그에게는 무인이라면 가져야 할 겸손이라는 미덕이 한 끗 부족했다.

     

   「나는 해남파의 대제자 종악이다.」

   「나를 업신여긴다는 것은 곧 해남을 무시하는 일.」

     

   종악의 삶은 성공적이었다.

   그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고 해남의 어른들이 아닌 이상 그는 거리낄 것이 없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은 20대에 접어들며 서서히 묻혀갈 수밖에 없었다.

     

   「종악. 정무학관에 가서 세상을 배우고 스스로 정진하도록 하라.」

     

   현 해남 장문인의 전언이었다.

   그는 해남의 대제자로서 감히 장문인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기에 해남을 떠나 정무학관에 입관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귀찮게 됐군.」

     

   모든 것이 짜증났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때, 해남으로부터 한 통의 기별이 왔다.

     

   「정무학관 비무대회의 결승에 진출한다면 곧장 해남으로 돌아와도 좋다.」

     

   결승진출.

     

   우승도 아닌 결승에만 진출하면 이 귀찮은 공간을 벗어나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종악은 도전하기로 했다.

     

   종악은 본인이 결승에 진출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사제들과는 달리 본인은 해남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3대 항렬의 대제자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됐다.

   이곳 정무학관에는 감히 해남을 업신여긴 무뢰배가 하나 버젓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놈만큼은 잡고 간다.’

     

   비무대회 내내 종악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남자.

   사람들 앞에서 사제들을 제압한 그 녀석은 해남의 이름으로 반드시 혼쭐을 내줘야 했다.

     

   ***

     

   – 와아아!

     

   비무대회 본선은 차근차근 한 경기씩 치러진다.

     

   게다가 예선과는 달리 본선은 외부인들의 방문을 장려했는데,

   이는 이름 높은 명문 세가나 문파의 입장에서는 각 세력의 힘을 세간에 선보일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선 비무대회장은 학관의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근방에 사는 주민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 상태였다.

     

   ‘종악이라 했던가? 이거 생각보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를 바라보는 구경꾼의 시선이 아니었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첫인상은 일개 양아치에 불과했던 종악의 분위기가 검을 쥐는 순간 급변하기 시작하니 공기마저 싸늘해지는 기분이다.

     

   고오오…

     

   “김시인, 네놈이 예선에서 봤던 종혁의 검과 나의 검이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거대 문파의 한 항렬을 대표하는 자.

   대제자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웅성웅성-

     

   – 해남파 대제자의 비무라니! 기대가 되는군!

   – 해남도가 너무 멀어서 평생 남해삼십육검을 볼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분위기를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종악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그의 상대인 나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대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 그런데 차기 장문이라 거론되는 종악의 상대가 저런 무명소졸이라니……

   – 정말 문파가 없는 자로군. 운으로 올라온 건가?

   – 우리 저 자가 몇 합이나 버티는지 내기할까?

     

   비무장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입에서 환호와 함께 걱정과 장난 섞인 비난이 흘러나왔다.

     

   허나 아쉽다거나 화가 난다는 생각은 없었다.

   사람들의 실망과 걱정이 큰 만큼 나의 승리로 돌아올 영광은 배로 커질 테니.

     

   “자, 준비…”

   “잠시만요.”

     

   심판이 비무의 개시를 알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정정하기 위해 그를 제지했다.

     

   스윽.

     

   나는 비무 대진표에 적힌 나의 이름을 가리켰다. 예선을 통과하면서도 계속해서 거슬렸던 그것.

     

   【김시인 – 문파불명】

     

   “저 문파 있습니다.”

   “그…… 지금 수정할 수는 없다네.”

   “상관없습니다. 그냥 상대가 알았으면 해서요.”

     

   어차피 천월문과 사천당문의 무공을 사용하는 나로서는 저 자리에 두 문파의 이름을 떡하니 적어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까놓고 말하자면 천월문 소속은 것은 맞지만 사천당문에 입문한 것은 아닌 상황.

   당휘소에게 당문의 무공을 배우기는 했어도 대놓고 당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천월문의 문하생이자 사천당문 당휘소의 제자 김시인입니다.”

     

   관객석에서 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천월문이라는 문파를 들어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암기와 독을 사용한다는 사천당문의 무공을 사용한다니.

     

   하지만 내가 포권을 취하며 종악에게 고개를 숙이자 관객들은 입을 다물고 이어질 비무를 구경하기로 했다.

     

   상대가 무슨 무공을 쓰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마교나 사파의 사술을 쓰는 비겁자만 아니면 됐지.

     

   “해남파의 3대 제자 종악이오.”

     

   종악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지만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이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상대의 예를 무시하며 해남의 가르침에 먹칠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준비가 끝날 무렵 심판은 다시 한 번 손을 들어 비무의 개시를 알렸다.

     

   스릉.

     

   나는 종악을 보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위력은 다르겠지만 해남의 검은 이미 앞선 종혁을 통해 봐둔 바가 있었다.

     

   하지만 종혁의 검과 종악의 검은 그 둘이 같은 검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거대한 차이가 있었다.

     

   츠츳.

     

   종악은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왼손으로 옮겨 잡았다. 화영이 말한 해남의 검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

     

   반수검 反手劍

     

   해남파의 검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양손으로 검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무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검법이 우수右手로 펼쳐지는 검.

   그렇기에 좌수左手로 펼치는 해남의 검은 일반적인 검학과 상리가 완전히 어긋난다고 말할 수 있었다.

     

   ‘화영이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네.’

     

   작은 조각배에 올라 거센 파도를 마주하는 기분.

   종악이 검을 들어 흡사 춤을 추는 것 같은 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공을 퍼트려 주변의 공기를 장악해 흔들거리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앙!

     

   “준비 동작이 너무 길어.”

   “뭣?!”

     

   나는 그대로 종악의 복부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카앙! 피핏!

     

   나의 검을 쳐냄과 동시에 나는 녀석과의 거리를 벌렸다.

   약간 찢어진 놈의 상의가 나의 눈에 들어온다.

     

   “이 비겁한 새끼가!”

     

   나름 필살기를 준비하고 있던 것인지 녀석의 눈이 분노로 차오르며 나를 쏘아본다.

     

   “비겁? 네가 무슨 소년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그걸 다 준비할 때까지 내가 왜 기다릴 거라 생각하지?”

     

   사실 그놈의 남해삼십육검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다.

   종혁이 펼쳤던 격랑수검이라는 검법. 나도 조각배도 보고 싶고 커다란 파도도 보고 싶다 이 말이다.

     

   하지만.

     

   “아니면 그딴 식으로 살기를 풀풀 풍기는데 기다리면 병신이지.”

   “……”

     

   상대가 나를 죽이려 한다.

     

   내가 놈의 어떤 역린을 건드렸는지 알 수는 없었다.

   고작 자존심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놈의 말대로 해남파의 명예가 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중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진심으로 갈 수밖에 없어.”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비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진심이었으면 조금 전의 공격에서 복부가 아닌 목을 노렸을 것. 그리고 나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진다.

     

   “이익……!”

     

   하지만 놈의 표정 변화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나의 말에 본인이 겁을 집어 먹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인지 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닥쳐라!”

     

   그의 검이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기감과 함께 뻣뻣하기만 했던 검을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

     

   남해삼십육검 제이식

   파랑격류검 波浪激流劍

     

   이번에는 놈이 나에게 달려들며 검을 나에게 뻗었다.

     

   자잘한 물결과 커다란 물결이 사방에서 나를 덮쳐 온다. 유일하게 피할 길은 뒤로 물러나는 것뿐.

   하지만 좌수와 우수가 섞인 녀석의 기운은 사납고 빠르게 나의 퇴로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검이었군.”

     

   해남파의 막내 종혁이 펼쳤던 어정쩡한 검법이 아니었다.

   허초와 살초가 섞인 위협적인 종악의 검. 놈의 기운이 파도를 타고 날아와 나의 사지를 찢기 위해 춤을 춘다.

     

   ‘이번에는 좀 더 화려하게 가 볼까.’

     

   소림의 진휘를 쓰러뜨린 월광검법 제일식 신월은 천월문의 근간이 되는 검법이었다.

     

   꽃이든 나무든 갈대든. 그 어떠한 식물도 바람이 불 때, 뿌리가 먼저 흔들리지는 않는다.

   모든 무학의 하늘을 가리고 그것들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굳건해야 한다는 것이 천월문의 가르침.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의 시야를 사로잡는 것은 땅속에 자리를 잡은 뿌리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건 뿌리보다 위에 있다.’

     

   곧게 뻗은 줄기, 녹음을 뿌리는 이파리, 그리고 무엇보다 화려하게 세상을 피우는 꽃까지.

     

   하늘에 떠 있는 달도 다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달이 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달빛이 만들어 내는 광경은 감히 천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스윽.

     

   나는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검은 하늘을 유영하듯 부드럽게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카앙!

     

   나의 검이 날아드는 해남의 파랑波浪을 흩트렸다.

     

   카앙! 카앙!

     

   한 번에 하나씩.

   비무장을 가득히 메우던 강렬하고 화려했던 종악의 검류劍流가 나의 검광에 깨지고 있었다.

     

   해남의 푸름이 천월의 광채로 뒤덮이고 있다.

     

   파랑격류검을 펼치던 종악의 얼굴이 낭패와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그리고 그가 펼친 마지막 파도가 빛에 집어삼켜졌을 때.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나의 검광이 종악의 검을 깨트렸다.

     

   ***

     

   와아아아!

     

   “뭐야! 방금 뭐냐고!”

   “천월문? 저 소협이 속한 문파가 뭐라고 했지?”

     

   본선의 첫 비무가 종료되자 모든 관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평가도 ‘저 치’, ‘무명소졸’에서 ‘소협’, ‘무인’으로 바뀐 상태.

   그리고 그 와중에 검을 잃어버린 종악은 당황이나 분노를 넘어 허무에 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초는 없었는데 말이지.”

     

   나는 끝까지 비무라는 걸 인식하고 녀석에게 살초를 펼치지 않았다.

   굳이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살초 없이도 충분히 녀석을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

     

   게다가 비무를 승리했는데 상대에게 상처가 없다면.

     

   “상대를 베지 않고 승리하다니……”

   “도대체 저 자의 무위가 어느 정도 일지 감도 오지 않는군.”

     

   더 평판이 좋아진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멀리서 천월문의 제자 화영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천월문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 대한 기쁨의 감정을 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과 함께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낀 듯한 오묘한 얼굴.

   그리고 당시의 나는 몰랐으나 시간이 흘러 그녀의 표정이 굳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양의 내공을 가지고 음의 무공을 펼쳤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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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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