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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EP.44

     

   대회의 우승자를 가리는 마지막 비무.

   심판의 안내에 따라 나와 화영은 서로를 마주보며 양끝 단에 서 있었다.

     

   웅성웅성-

     

   본선 첫 비무 때보다 훨씬 많아진 관객들이 우리를 향해 한껏 상기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쌈박질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학창 시절에 분위기에 휩쓸려 싸워 본 기억은 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얻어맞는 입장이었지 때리는 입장은 아니었던 기억이다.

     

   ‘물론 그때는 칼도 없었고.’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옆구리의 검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

   [주인 없는 무명검]

   종류 : 무기

   랭크 : ?

   설명 : 평범하게 생긴 검이다. 내구성이 좋아 잘 부러지지 않는다.

   —

     

   이 검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나름 검의 주인인데 이름이 ‘주인 없는 무명검’인 것도 아이러니다.

     

   ‘이참에 이름이나 지어 줄까?’

     

   이 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 튜토리얼 때, 공포 그 자체였던 괴물들을 소멸시킨 검이자, 수많은 좀비를 썰어 버린 내 생명의 은인되시겠다.

     

   그런데도 이름이 없다? 그건 낭만이라면 죽고 못 사는 대한의 건아로서 용납이 되지 않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나에게 느긋하게 작명을 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진 않았다.

   내 눈앞에 있는 결승 상대.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흑발을 뒤로 질끈 묶은 화영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드는 것이 보인다.

     

   “각자 위치로!”

     

   심판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서로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걷는다면 열 걸음은 걸어야 닿을 거리. 하지만 숙련된 일류 무인이라면 한두 번의 도약으로 상대의 목을 취할 수 있는 위치다.

     

   그리고 그 정도의 거리라면 조금 크게 말한다면 서로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관객들의 함성이 없었다면 말이다.

     

   “시인 소협!”

   “네?!”

     

   와아아아아!

     

   “■■…■! ■■■…! ■…!”

   “뭐라고요?!”

     

   그녀의 입이 방긋거리며 나에게 무언가 의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에게는 사람의 입 모양으로 언어를 읽는 독순술 따위는 없었고 화영은 그런 나의 상황을 이해했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척.

     

   하지만 이내, 화영이 검을 뽑아 들자 나는 어렴풋이 그녀가 하고자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월문의 검을 빛내주어 감사합니다.」

     

   그녀의 검이 나를 향했다.

   살을 에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이 목덜미를 스치는 착각이 들었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검을 들었다.

     

   천월문의 검수가 나에게 내려주는 마지막 가르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머리와 가슴에 새겨넣어야 했다.

     

   “상태창.”

     

   —

   이름 : 김시인

   성좌 : 없음

   능력치 : [근력 Lv.30], [민첩 Lv.30], [체력 Lv.30], [마력 Lv.30]

   스킬 : [빠른 납득(C-)], [전심전력(C+)], [천월신공(B+)]

   특성 : [잠재 고유 스킬]

     

   잔여 코인 : 53,000 C

   —

     

   평균 Lv.30으로 맞춰진 능력치.

   가능하다면 더 높은 수준까지 올려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코인을 쓰던 도중 익숙하지 않은 알림이 하나 떠올랐었다.

     

   삐빅.

     

   [근력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민첩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체력이 최대……

     

   [능력을 추가로 올리기 위해서는 3층에 올라야 합니다.]

   [초과 사용된 코인을 반환합니다.]

     

   2층에서 올릴 수 있는 능력치는 Lv.30이 고점이었다.

     

   하지만 신체 능력에 몰빵하려던 것이 제한되자 마력 스텟에 눈길이 갔는데 이게 어떤 면에서는 지금 나에게 더 필요한 능력치가 아니었나 싶다.

     

   “쓰으읍…”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무협지에서 소위 말하는 단전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배꼽 아래 단단하게 이뤄진 내력…… 아니, 마력의 공간.

   이를 통한 기의 흐름이 온몸으로 퍼지자 정신이 맑아지며 손에 쥔 검의 감각이 더욱 선명해진다.

     

   “비무…!”

     

   그렇게 이어진 심판의 마지막 외침.

     

   “시작!”

     

   비무의 첫발을 내디딘 것은 화영이었다.

     

   ***

     

   과거, 이제 고작 열 살 남짓했던 화영은 스승을 따라 사냥을 나왔다가 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산의 밤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따르던 스승의 뒷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보이는 거라곤 칠흑 같은 숲에서 보이는 정체 모를 짐승들의 안광뿐이었다.

     

   홀로 남겨졌다는 고독감이 스승의 빈자리를 채웠다.

   바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었던 산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자박자박.

     

   걸음을 땔수록 길은 깊어져만 갔고 어둠은 화영을 집어삼킬 듯 짙어져만 갔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가만히 구조를 청하기에 숲의 고요함은 너무도 강하게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으니까.

     

   화영이 넘어졌다. 들고 있던 나무의 열매가 쏟아지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허나 이 아득한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무릎이 까졌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쓰라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때 화영은 깨달을 수 있었다.

     

   빛이 있는 곳에 조금의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지만,

   어둠이 있는 곳에 조금의 빛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라 부른다는 것을.

     

   어둠이 깊을수록 빛의 가치는 상승한다.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옅은 월광은 한낮의 태양보다 눈부셨다.

     

   츠츠츳.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

     

   화아악!

     

   “이런 미친!”

     

   내 눈앞에서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는 혀를 내두르며 급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그동안 나와 수련을 하며 보여줬던 모든 무위들은 장난이었다는 듯, 그녀의 일 검 일 검이 한 줄기의 광선이 되어 나에게 들이닥친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빛을 가리기 위한 임시방편.

   나는 검을 들어 나에게 달려드는 빛줄기를 양단했다. 하지만 내가 갈라낸 것은 고작 하나의 검로였을 뿐.

     

   나의 시야에서 빛의 군무를 펼치는 수십 갈래의 검을 쳐내기에는 나의 깨달음이 부족했다.

   허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나는 눈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 날아드는 모든 검기를 파악하려 애썼다.

     

   실초와 허초.

   하체를 노리는 검과 상체를 노리는 검.

   힘이 많이 실린 검기와 가볍게 휘두른 검기.

     

   카가가가강!

   카카캉!

     

   그리고 내가 거의 5만에 달하는 코인을 때려 박은 게 헛짓거리는 아니었던지, 다행히도 대부분의 검을 악으로 깡으로 받아 낼 수 있었다. 대부분!

     

   핏!

     

   “크읏!”

     

   뺨을 스치고 지나간 화영의 검.

   공격의 속도를 달리 했던 것인지 티가 날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날아온 검 하나를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야.’

     

   뜨뜻한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Lv.30에 육박한 체력 덕분인지 간질거리는 감각과 함께 피는 금방 멎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월광검법 제삼식 月光劍法 第三式

     

   나는 아직 수련이 부족한 탓에 제대로 익히지 못한 월광검법의 후반부 초식.

     

   그녀가 들고 있던 검을 착검한다.

   그리고 내가 있는 방향으로 순식간에 도약하며 넣었던 검을 빠르게 발검했다.

     

   일섬 一閃

     

   월광검법의 세 번째 초식은 발검술.

   천월신공의 월광보법이 합쳐진 상승 무공이었기에 나는 아직 자유로이 저 기술을 펼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 펼치지 못한다는 것일 뿐. 이론은 알고 있었으니 파훼 또한 불가능은 아니었다.

     

   스윽.

     

   나는 검을 들었다. 차분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까놓고 말해서 나의 천월신공은 화영의 천월신공보다 한 수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의 검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았고 그에 따른 대처 방법을 고민할 수 있었다.

     

   강한 천월신공을 약한 천월신공으로 맞서는 건 멍청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녀에게 없는 사기적인 능력들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제대로 써먹어 주기로 했다.

     

   파지직!

     

   「추뢰신법 追雷身法」

     

   사천당문 스승인 당휘소가 맞을 일이 생기면 도주할 때 쓰라며 전수한 경공신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뒤로 물러서는 대신 발끝에 내력을 집중해 화영에게 달려들었다.

   발검술인 일섬은 그 공격이 빠른 만큼 빈틈이 길어진다는 단점이 명확한 초식.

     

   “하압!”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 번의 도약으로 화영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몸이 고양되는 기분. 오랜만에 느껴지는 뜨거운 감각에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뭔가.’

     

   뭔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천월신공을 펼치며 느끼던 것과 비슷한 기운이지만 정반대의 감각.

     

   천월신공을 펼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뜨거운 기운이 발끝에서 시작해 단전을 치고 올라온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화영이 검을 들어 나에게 겨눴다.

   나의 예상을 벗어난 빠른 검의 갈무리. 그리고 한술 더 떠서 그녀는 새로운 초식을 펼치기 시작한다.

     

   월광검법 비전절기 秘傳絶技

     

   그녀의 몸과 검에서 방출되는 내력에 몸이 저릿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을 뿐. 그녀의 초식이 완성되는 것보다 나의 검이 두 수는 빨랐다.

     

   추뢰신법 追雷身法

   월광검법 月光劍法

     

   카아앙!

     

   급하게 검을 들어 나의 검로를 막아서던 화영의 검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인을 잃어버린 검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땅으로 추락한다.

     

   양의 지기로 펼친 음의 무공.

   사천당문과 천월문의 무공이 합쳐진 완벽한 크로스였다.

     

   ***

     

   띠링.

     

   [화영과의 비무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스승과 제자 – 청출어람(화영)’이 완료됩니다.]

     

   [천월문의 화영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2층 – 청출어람’의 진행도가 상승합니다.]

   [이름난 고수 세 명의 인정 : 1/3]

     

   드디어 올라간 메인 임무의 진행도.

   나는 차오르는 숨을 차분히 고르며 떠오르는 알림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떠오른 후반부의 알림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는데.

     

   [비무대회에서 우승하셨습니다.]

   [당신의 비무에 많은 사람들이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석림문의 유화검(맹서한)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비천문의 상승검(진강)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의결문의 ……

     

   비무대회의 승리와 함께 떠오르는 무수한 고수들의 인정.

   나와 화영의 비무를 너무 감명 깊게 본 것인지 정무학관의 꽤 많은 무공 교관들이 나의 무위를 인정한 듯싶었다.

     

   [‘2층 – 청출어람’의 진행도가 상승합니다.]

   [이름난 고수 세 명의 인정 : 8/3]

     

   [메인 임무 ‘2층 – 청출어람’이 완료됩니다.]

   [당신이 원할 때, 3층으로 갈 권한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인정은 곧 나의 궁극적인 목표로 가는 길에 밑거름이 됐다.

   갑작스럽게 완료된 임무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데…’

     

   [임무의 최종 보상은 3층 입장 시, 획득합니다.]

   [‘3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뭔가 아쉬웠다.

   물론 화영과의 비무는 강렬했고 그 비무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

     

   당장 3층으로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기대하고 있던 것은 비무대회가 끝난 이후에 있었다.

     

   “승자는 김시인!”

     

   와아아-!

   아아아-!

     

   사람들의 함성.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심판의 웃는 얼굴.

   결승을 치르기 직전, 화산과 남궁의 두 사람과 나눴던 흥미로운 주제가 떠올랐다.

     

   비무대회의 진짜 보상.

     

   고수와의 비무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자리를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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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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